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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따뜻한 세상

24시간 무인 포장마차 운영하는 '믿음의 전도사' 최계월

■ 글&사진·경인수

입력 2003.04.15 10:53:00

주인이 없어도 24시간 운영되는 포장마차가 있다. 강원도 동해역 광장에 있는 삥꼬분식.
주인 최계월씨와 단골 손님들의 믿음과 정직이 만들어낸 따뜻한 현장.
24시간 무인 포장마차 운영하는 '믿음의 전도사' 최계월


밤11시, 강원도 동해시 송정동 동해역 앞에 있는 3평 남짓한 작은 실내 포장마차 ‘삥꼬분식’. 다른 포장마차와 달리 이곳엔 김밥 한줄 1천5백원, 핫도그 7백원, 가락국수 2천원, 핫바 1천원, 라면 2천원, 떡볶이 1인분 2천원이라고 쓰여진 빛바랜 가격표가 붙어있을 뿐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폐차시킨 승용차에서 뜯어내 만든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이곳이 지금 영업중임을 알려줄 뿐이다.
잠시후 한쌍의 20대 남녀가 주인이 없는 가게에 들어와 주방을 점령(?)한다. 이들은 익숙하게 냉장고를 열어 김치와 반찬을 꺼내고는 가스레인지 불을 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리고 어묵을 몇개 집어먹고는 냉장고 속에 돈을 집어넣고 떠나버렸다.
이어서 이번엔 택시기사 한명이 들어왔다. 그는 김밥 두줄을 어묵국물과 함께 먹고는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가게가 약간 더럽다고 느껴졌는지 택시기사는 빗자루를 잡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돈과 함께 메모를 남기고 사라졌다. 자정이 가까워 들어온 한 30대 여성은 튀김을 먹은 후 각종 그릇을 주섬주섬 모아 설거지를 하고 가게를 나갔다.
다음날 새벽 7시, 부식거리를 들고 가게에 나타난 주인 최계월씨(49)는 이내 익숙한 듯 손님들이 음식을 먹고 이곳저곳 숨겨놓고 간 음식값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돈은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재떨이 밑 등 이곳저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곳이 주인이 없어도 24시간 문을 열어놓고 손님들이 와서 먹고싶은 대로 먹고 스스로 계산하는 양심식당이다. 인근 주민들은 이곳을 가리켜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어 참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곳’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렇게 해서 운영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최씨는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더 많다”고 말한다. 물론 최씨가 분식점을 비우고 손님이 자율적으로 돈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용기를 준 것은 손님들이었다. 그가 이 가게를 시작한 것은 2년반 전인 지난 2000년 8월5일.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는 4남매를 혼자 키워야 하는 절박한 시절이었다.
남편의 건강이 안 좋아 요양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홀로 4남매의 학업을 책임져야 했던 최씨는 이곳 동해시 동해역 앞에 실내 포장마차를 차려놓고 24시간 동안 문을 열었다. 한푼이 아쉬웠다. 정말 악착같이 일했다. 그녀는 하루에 한번 포장마차에서 1시간 떨어진 삼척시 원당동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는 다시 돌아와 포장마차 이층에 있는 골방에서 잠깐 눈을 붙이며 하루 종일 일했다.
그러던 그가 건강의 한계를 느낀 것은 1년 후인 2001년 8월. 한동안 큰딸과 셋째아들이 도와주어서 그런 대로 건강을 유지했으나 학업을 위해 자식들이 떠나자 그는 병석에 누웠다. 병명은 만성피로. 더이상 24시간 밤새도록 일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밤중이나 새벽에 따뜻한 어묵국물을 먹으러 멀리서 오는 단골 손님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24시간 무인 포장마차 운영하는 '믿음의 전도사' 최계월

무인포장마차 삥꼬분식은 주인 최씨가 음식을 만들어 놓고 집에 가면 손님들이 알아서 먹고 돈을 놓고 간다.


할 수 없이 밤중에 문을 닫지 않는 대신 어묵국물을 끓여놓고 각종 튀김을 준비해놓은 후 그대로 2층 골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그는 깜짝 놀라 눈물을 글썽였다. 늦은 밤과 새벽에 분식점을 찾은 단골 손님들이 스스로 라면을 끓여먹고 어묵국물을 데워먹은 후 음식값을 놓고 간 것이었다.
어묵국물이 떨어지면 물을 다시 부어놓고 가스 불도 조정해놓았다. 청소를 해놓고 가는 손님도 있었고 설거지를 한 손님도 있었다. 평소 잠을 안 자고 누구보다 열심히 자식들을 위해 살아가는 그녀를 봐왔던 손님들이 주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이런 일들이 하나 둘 소문나고 화제를 만들어내면서 주인이 없어도 단골들은 오히려 늘어갔다. 기자가 찾은 3월16일 밤에도 주인 없는 가게에 들어와 음식을 먹고 가는 손님들이 남겨놓은 쪽지들이 수북했다.
‘아줌마, 이것저것 2만원어치 싸가지고 갑니다. 순대 떡볶이 튀김 가져가고요. 돈은 냉장고에 두고 갑니다. 어묵은 그냥 먹었어요^^.’
‘1만원 놓고 3천원 거슬러 갑니다.’
‘아줌마, 김밥 등 맛있게 먹고 가요. 설거지 못해서 미안해요.’
‘어묵 가스 불 너무 높아서 줄여놓았어요. 잘했죠?’
손님들은 주인이 없어도 불편한 것은 없고 더 편할 때가 많다고 말한다. 단골인 김영순씨(31·회사원)는 “주인이 없지만 라면 가락국수를 끓여 먹고 가는 데 아무 불편이 없다”며 “기본적인 음식이 맛있어 자주 온다”고 말했다. 정광수씨(36·렌터카업)도 “항상 부담없이 먹고 간다. 믿고 사는 사회가 정겨워 주인에게 고마운 생각마저 든다”고 했다.
물론 공짜 손님도 있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는다. 자신을 도와주는 다른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손해 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공짜손님은 감사의 메모를 남겨놓고 간다.
‘제가 돈이 없어가지고요. 어묵 세개 감자튀김 한개 그리고 떡볶이 먹었어요. 돈 생기면 갚으러 올게요. 죄송합니다.’
한동안 앓고 난 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가게를 비워야 했던 그녀는 “손님들이 따뜻한 마음을 두고 가 너무 고마웠다”며 “주인 없는 가게지만 주인처럼 생각해주는 손님이 많은 가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새벽장을 볼 때마다 손님에게 보답할 길을 찾으려고 정성을 들인다. 쌓아놓은 돈은 없지만 최씨는 가끔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산다. 동해역은 가출한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곳이기도 하다. 10여일 전에도 동해역 앞에서 가출한 여중생 3명이 갈 곳이 없어 헤매고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은 4천원뿐. 최씨는 그들을 거두어 밥을 먹이고 기차 삯을 주어 고향으로 보냈다. 또한 가출한 엄마와 청각장애인 아버지를 둔 초등학생들이 사는 집을 찾아가 반찬을 해주고 가게로 불러서 음식도 해주기도 했다.
가게를 비워도 손님들이 양심적으로 돈을 내고 가는 것에 자신감을 얻은 최씨는 앞으로 주인 없는 가게를 한곳 더 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의 가게가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에 더욱 믿음을 나누는 우리 사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동아 2003년 4월 4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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