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뇨기과 의사로 남성의 성의식 실태를 조사한 이윤수씨.
‘한국 성인 남성들의 성생활과 성의식은 어떨까’에 대한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나왔다. 한국성과학연구소(소장 이윤수)에서 성인남성 2천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한국 남성 성의식 및 성 실태 조사’가 그것. 2003년 한국판 킨제이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연구를 주도한 이윤수 소장(49·명동이윤수비뇨기과 원장)을 만나 설문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국성과학연구소(www.sexacademy.org)는 정신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같은 성 관련 의사를 비롯해 교육, 심리 등 각계 전문가 20여명이 모여 성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는 단체. 97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며 매달 한 차례씩 모여 성과 관련한 한 가지 주제를 정해 토론이나 세미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저희 연구소의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가 계층별 성의식 실태를 조사하는 겁니다. 97년엔 남성을 대상으로, 98년엔 여성을 대상으로, 2001년엔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분석을 했어요. 이번 한국 성인 남성의 성의식 및 성 실태조사는 97년에 이어 두번째로 하는 것이죠.”
부부갈등 원인, 섹스 불만이 40%
97년 첫 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먹는 발기유발제인 비아그라가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비아그라는 그동안 감추고 터부시했던 성에 대한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아우성센터 구성애 소장(47), 자신의 성 고백서를 출간한 탤런트 서갑숙 등 여성들도 당당하게 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또한 ‘O양 비디오가 우리나라를 인터넷 선진국으로 만들었다’는 우스갯소리처럼 인터넷을 통한 포르노의 확산은 우리 사회의 성의식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그밖에 최근 확산되고 있는 동거문화도 지난 5년 전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의식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살펴보고 싶었어요. 먼저 성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한달 동안 조사를 했고, 성인 여성들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실시할 생각입니다. 5년 정도의 시간이면 변화의 흐름을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거든요.”
조사 응답자는 총 2천1백여명으로 조사 지역은 서울과 경기로 한정했다고 한다. 나이별로 살펴보면 20대 11%, 30대 54%, 40대 25% 50대 8%, 60대 이상 1%로 20∼40대가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문항이 1백개가 넘어요. 현재 설문조사 응답에 대한 비율만 나온 상태일 뿐, 심도 깊은 분석을 하거나 97년 결과와 자세히 비교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회원들과 함께 해나가야죠.”
조사결과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동거 비율. 전체 응답자의 2%가 결혼이 아닌 동거를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리 높은 수치는 아니지만 주목할 점은 젊은층으로 내려갈수록 동거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35∼40세는 1%, 30∼34세는 2%, 25∼29세는 6%, 24세 이하는 16%가 동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문화에 대한 변화된 가치관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결혼(동거 포함)생활 만족도를 묻는 질문에서 2.4%가 불만스럽다고 응답했다. 이소장은 “매우 만족, 대체로 만족, 보통, 불만, 모름의 응답항목에서 불만이라고 기표한 것은 심각한 상태일 때 가능한 것”이라며 그들은 곧 이혼으로 갈 수 있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결혼생활에 대한 불만족도를 세대별로 살펴보면 20대 0%, 30대 1.9%, 40대 3.6%, 50대 5.3%, 60대 4%로 나이가 들수록 높아졌다.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선 40%가 성에 대한 불만이라고 응답, 부부생활에서 섹스가 중요 갈등요인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제는 가정에서 성적 불만을 느끼는 남성들의 행태입니다. 가정에 충실하기보다 불륜의 싹을 키우는 경우가 많거든요. 실제 조사결과를 보면 결혼생활에 불만이 있다고 대답한 남성을 대상으로 ‘배우자 외에 주기적으로 만나거나 성관계를 가지고 있는 고정된 섹스파트너가 있느냐’고 한 질문에 24.4%가 그렇다고 응답을 했어요.”
이소장은 성으로 인한 부부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나라 남성들이 부인이나 자신의 섹스파트너에 대한 성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파트너에 대한 성지식은 결혼생활 만족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파트너의 성감대를 모르고 있다는 응답이 24%나 되었는데, 배우자의 성감대를 모르는 남성은 결혼생활 만족도도 낮았다. 반대로 성감대를 알고 있는 남성의 만족도는 훨씬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국성과학연구소 회원들은 성을 의학적, 문화적, 사회적 등 다양하게 분석하고 토론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관심을 갖는 게 ‘다른 사람들은 섹스를 얼마나 자주 할까, 도대체 1주일에 몇 번을 얼마만큼 해야 정상일까’이다. 그건 그만큼 자신의 섹스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방증일 것이다. 설문조사를 보면 섹스의 횟수를 묻는 질문이 두개가 나온다. 하나는 ‘하고 싶은 섹스 횟수’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하는 섹스 횟수’이다. 이 두 가지를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조사결과 ‘하고 싶은 섹스 횟수’는 매일 1회 이상 11%, 주 3∼4회 35%, 주 2회 27%, 주 1회 16%, 2주 1회 4%, 월 2회 2%, 월1회 미만 2%로 나타났다. 반면 실제 하는 섹스 횟수는 매일 1회 이상 2%, 주3∼4회 13%, 주 2회 25%, 주1회 26%, 2주1회 13%, 월1회 7%, 월1회 미만 5%, 전혀 하지 않는다 6% 순이었다. 남성들은 성행위를 하고자 하는 욕구에 비해 하는 횟수가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남성들이 항상 성적 갈등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현실이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거죠.”
연령대별로 보면 20대 주3회, 30대 주2회, 40대 주1회, 50대 주1회가 가장 많았다. 이에 대해 이소장은 실제 성행위의 빈도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충고한다. 섹스의 횟수보다 상대에게 얼마나 충실한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
“의학적으로 성교 횟수에 대한 정답은 없어요. 그냥 평균적으로 이렇다 하는 통계만 있을 뿐이죠. 매일같이 하든 한달에 한번만 하든 간에 상대와 교감이 이루어지느냐가 중요합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가끔 ‘남편이 너무 많이 요구한다. 남편의 성욕을 줄이는 방법을 알려달라’ ‘아내가 너무 밝힌다. 도저히 힘이 달려 못하겠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경우 횟수가 많더라도 만족은커녕 부부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셈이죠.”
흥미로운 것은 기혼남성 중에 성관계가 전혀 없다는 응답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지난 3개월 동안 섹스를 전혀 하지 않은 ‘섹스리스’라고 응답한 사람이 3% 정도였다. 이들에게 섹스를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섹스가 귀찮아서 36%, 상대로부터 성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어서 11%, 상대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 9%, 상대와의 섹스로 만족할 수 없어서 5% 등 무려 60% 이상이 성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성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적 욕구가 있어야 하고 발기가 되어야 합니다. 남성들이 성생활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바로 성관계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지기 때문이에요. 특히 중년 남성의 경우 언제부터인가 성생활에 관심이 떨어진 자신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경우가 많아요. 진료를 하다보면 최근 몇달간 한번도 성관계가 없었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털어놓은 환자가 의외로 많아요. 젊은이들도 스트레스 등으로 성적 욕구가 사라져 상담하러 온 경우도 있고요.”
통계자료에서 흥미로운 것은 비만과 성관계의 관계다. 이소장은 설문응답자들에 대해 키와 체중을 이용한 비만도를 저체중, 정상, 과체중, 비만으로 나누어 분류한 결과 월 1회 이하로 섹스를 하는 비율이 정상인은 11%인데 비해 비만인 사람은 16%로 비만인 사람이 상대적으로 성관계를 적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좀더 분석을 해보아야 하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비만으로 생긴 성인병으로 인한 발기부전이거나 혹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문제는 상담을 하러 온 비만자들을 보면 성격이 느긋해요. 그래서 자기에게 문제가 있어도 그게 문제인 줄을 몰라요. 오히려 몸에 비해 성기가 작아 보인다며 성기확대수술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아요.”
5년전 통계와 비교해볼 때 크게 달라진 것 가운데 하나가 조루에 대한 인식이다. 97년 조사에서는 전체 남성의 36%가 스스로 조루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는 14%만이 조루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만큼 사회가 성적으로 개방되면서 성지식이 많아졌다는 방증인 셈이다.
조루란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의에 따르면 본인 스스로 사정을 조절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삽입 후 3분을 기준으로 그보다 짧은 시간 안에 사정을 하면 조루라고 일컫는다.
“조루는 두 가지 원인이 있어요. 하나는 정신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육체적인 것이죠. 예전엔 정신적인 걸 많이 봤는데, 요즘은 성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경향이 많아요. 귀두가 너무 예민해서 조루가 된다고 보는 거죠. 그래서 귀두의 신경을 절단해 감각을 떨어뜨리는 수술을 많이 합니다. 제가 수술한 환자만도 1천명이 넘는데 70% 정도가 효과를 보았어요.”
또한 심리적인 요인이 있는 조루환자들은 항우울제나 행동요법 등을 통해 치료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조루와 함께 남성들의 가장 큰 고민이 발기부전이다. 발기부전은 처음에 삽입은 가능하지만 삽입운동을 하다보면 금세 사그라드는 경증과 아예 처음부터 발기가 안되는 중증으로 나눌 수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중증 발기부전을 고민하는 남성은 30대 3%, 40대 4.2%, 50대 15.2%, 60대 28%로 나이가 들수록 비율이 높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원인은 당뇨병, 고지혈증, 동맥경화 등 성인병과 흡연이에요. 나이가 들면 신체적으로 발기능력이 떨어지는데, 그런 상태에서 성인병이 있으면 발기부전으로 이어져요. 따라서 빨리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치료를 하면 좋아집니다. 그런데 성기 자체가 망가졌다고 하면 먹는 발기유발제나 약물요법, 음경고형물 삽입술로 치료해야 합니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성심리 및 성경험에 대한 부가적인 조사가 있었다. 눈길을 끄는 게 오럴섹스를 한 적이 있다는 응답이 59%였고, 흔히 변태섹스라 부르는 항문섹스를 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도 10%에 이르는 등 사회적 통념보다 많은 숫자였다.
“인터넷을 통한 포르노의 확산으로 인해 좀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결과로 보입니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성인전용 사이트에 접속해보았다는 응답이 72%에 이릅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가 88.2%, 30대가 79.1%로 무척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죠.”
인터넷 인구의 증가로 인한 폐해도 설문조사를 통해 입증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여성과 직접 만나본 경우가 있는지에 대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14%가 있다고 응답했다. 예상보다 높은 수치인 셈이다. 연령별로는 20대 37.6%, 30대 13.8%, 40대 8.1%, 50대 4.6%였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알게 돼 직접 만난 여성과 성관계까지 간 경우가 71%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는 처음부터 섹스를 목적으로 인터넷상에서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혼외정사 경험을 알아보기 위해 파트너 이외의 여성과 섹스를 해본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엔 78%가 그런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97년 조사 때 72.9%에서 5% 가량 늘어난 수치다. 또한 배우자 외에 주기적으로 만나거나 성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섹스파트너가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가 15%, 없다가 78%로 조사되었다. 한국 남성 20명 중 3명 가량이 바람을 피고 있는 셈이다. 이소장은 외도의 비율이 늘어난 것은 성문화 개방, 인터넷, 발기유발제의 증가 등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만큼 정력제를 선호하는 나라도 없다. 조사 결과 실제 정력강화를 위해 정력제를 복용해본 경험이 있는 응답자가 27%로 10명 중 3명꼴이었다. 어떤 음식물을 복용해보았냐는 질문엔 보신탕이 67%로 가장 많았고, 개소주 35%, 뱀과 흑염소가 각각 16%, 노루피 9%, 해구신과 자라탕이 각각 5%로 나타났다. 특이한 것은 보신탕, 흑염소, 개소주는 젊은층에서 많이 먹는 반면 해구신과 자라탕은 주로 50∼60대 노년층에서만 애용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러나 복용 후 효과가 있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사람은 10%에 불과했다.
한편 비아그라가 국내에 시판된 지 3년이 지난 지금 이를 복용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조사결과 성행위를 강화시킬 목적으로 비아그라를 사용한 적이 있는 남성은 연령대별로 20대 2.8%, 30대 5.0%, 40대 15.3%, 50대 33.1%, 60대 20%로 나타났다. 20∼30대의 4%정도가 비아그라를 먹은 것으로 답한 것을 보면 잘못된 의학지식으로 인한 무분별한 약물남용이 우려된다는 게 이소장의 이야기다.
이번 조사결과에 대해 확실히 5년 전에 비해 성의식과 성풍조가 개방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이소장은 자칫하면 사회 풍조로 인해 가정이 파괴될 위험성이 더 높아진 만큼 부부간에 대화를 통해 성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앞으로 5년 후에 또다시 같은 내용의 설문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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