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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전동거 후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부부& 이별한 사람들의 사연

■ 기획·최미선 기자(tiger@donga.com) ■ 글·최희정 ■ 일러스트·임희정

입력 2003.03.04 11:19:00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살아보고 결혼’하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몇해 전까지만 해도 ‘남녀 혼전동거’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동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결혼 전에 동거를 하면 상대를 잘 알아보고 미리 맞춰본 후 결혼생활을 시작할 수 있어 이롭다는 주장과, 순결을 중시하는 우리 나라 현실에서 동거는 여성에게 피해를 준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동거 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부부와 이별을 한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본다.
혼전동거 후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부부& 이별한 사람들의 사연

동거생활 중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이 보였던 남편
지금 생각해보니, 남편과 나는 8년을 별탈 없이 살아온 것 같다. 남들처럼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탄탄한 ‘사랑탑’을 쌓아야 하는데, 우린 아무 일 없이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것 같아 가끔 불안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우리는 먼 친척의 소개로 만났다. 그때 내 나이 서른, 남편은 서른하나였는데 처음 만나는 날부터 무척 편안했고 대화도 술술 잘 풀렸다. 두 사람 모두 술을 좋아하는 탓에 첫날부터 술을 마셨다. 그후에도 마치 술이 없으면 대화가 안되는 사람처럼 2, 3차까지 가면서 술을 마셨고 그만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매일 만나서 새벽까지 술 마시고 얘기하다보니 정도 많이 들어 ‘내가 결혼하면 이 사람하고 하겠구나’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었다.
그당시 나는 오피스텔을 얻어 살고 있었는데 남편은 퇴근 후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왔다.
처음에는 결혼을 전제로 양가 부모의 상견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둘이 결혼한다는 확신과 보장도 없어 솔직히 꺼림칙했다. 하지만 이왕 나이 들어서 만났으니 서두를 것 없이 서로 잘 파악하고 맞춰본 상태에서 결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만난 지 6개월 만에 실질적인 동거에 들어갔다. 동거를 시작하면서 가사를 분담했다. 남편은 청소와 설거지를 맡았고 나는 요리나 빨래, 세금납부 등과 같은 비교적 세심함을 요구하는 일을 맡았다. 서로 소득에 대해서는 일체 불문에 부치기로 했고, 혹시 나중에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통장을 공동으로 만들지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동거하는 줄 몰랐고, 남편 부모님은 알고 계셨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셨다.
동거를 하면서 크게 부딪치는 일은 없었다. 서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상대방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은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씩 귀가 시간을 두고 서로 언성을 높이고 싸울 때도 있었고 그때마다 남자가 너무 쫀쫀한 것 같아 헤어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남편은 그런 것 외에는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 사람과 헤어져서 더 나은 남자를 만날 자신도 없었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동거한 지 8개월째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지금 이대로 동거 상태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결혼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내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피임을 한다고 했는데 덜컥 아이가 생겼고 순간 앞일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남편은 이왕 이렇게 된 것, 이참에 결혼하자고 했고 나 역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동거를 마치고 결혼식을 올리며 정식으로 부부가 된 우리 두 사람. 동거할 때도 별탈 없이 서로 무난하게 지냈는데, 결혼 7년째에 접어든 지금도 친구처럼 무척 편안하게 지낸다. 나 역시 일을 하고 있는 까닭에 집안일은 여전히 분담해서 하고 육아는 그때그때 알아서 하는데 남편이 많이 돌보아주는 편이다.
남편과 내가 결혼생활 동안 권태기나 큰 위기가 없는 것은 아마도 동거기간 서로 이해하고 상대방을 잘 알았기 때문인 것 같다. 만약 동거기간이 없었다면 우리 부부 역시 신혼 초부터 티격태격 싸우며 결혼한 것을 후회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동대문구 이문동 B씨, 37세, 맞벌이 부부)

혼전동거 후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부부& 이별한 사람들의 사연

우리 부부는 서로 외롭고 오갈 데 없는 처지에서 만났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다들 대학에 갔는데 나 혼자만 직장을 구해야 해서 자연히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졌다. 게다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일자리도 쉽게 구해지지 않았다.
대학 진학과 동시에 친구들은 한두명씩 고향을 떠났고 나 혼자만 달랑 남겨지자 너무나 외로웠고 세상 사는 게 너무 싫었다. 아마 그당시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안정된 내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졸업한 지 1년이 지난 후 나는 아는 분의 소개로 조그만 물류회사 경리로 취직했고, 그곳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던 남편을 만났다. 회사 회식을 할 때나 서류를 처리할 때 가끔 마주치던 남편. 그의 모습은 늘 씩씩했고 매사 긍정적인 태도였기에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운전을 배워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알고보니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혼자 방을 얻어 자취 생활을 했는데, 흥청거리지 않고 반듯하게 살았고 검소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 자연스레 호감이 갔다. 남편 역시 내가 자기처럼 외롭고 어려운 처지인 것을 알고 나에게 무척 잘 해주었다.
그렇게 서로 사귀다가 우리는 생활을 합치기로 했다. 그때는 일단 둘이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앞섰고 둘이 살면 한푼이라도 더 저축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촛불에 케이크 하나 놓고 둘만의 결혼식을 치른 우리는 동거에 들어갔다. 그때 나는 스물셋, 남편은 스물일곱이었다.
동거를 하면서 서로 지켜야 할 원칙을 세워놓거나 약속 따위를 만들어놓지는 않았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마음만 잘 간직하고 있으면 큰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사실, 나는 남편을 사랑했지만 “반드시 이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결혼까지 이어지면 좋겠지만, 사람 사는 일이 맘처럼 쉽지 않음을 어린 나이에 이미 알아버려 미래에 대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나를 무척 잘 이해해주었고, 다독거려주어 비교적 무난하게 동거생활을 할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2년 동안 동거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다. 싸울 때도 있었고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헤어질 만큼 큰일은 없었고 어느새 정도 쌓여 도저히 헤어질 수 없었다.
결혼한 지 4년째 접어들었지만 우리는 동거할 때 어려웠던 날들을 생각하면서 산다. 그때는 월급도 적었고 각자의 집에 생활비를 보태주어야 해서 변변한 외식 한번 못했고 남들처럼 영화 한편 제대로 못 봤다. 그래도 서로 보듬어주고 살아서 참 행복했던 것 같다.(서대문구 남가좌동 K씨, 27세, 전업주부)

사랑보다 가족을 택한 남자
혼전동거 후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부부& 이별한 사람들의 사연

그이와 난 처음부터 남들 보기에 미더워 보이는 커플은 아니었다. 그는 대학을 나와 조그만 자영업을 하고 있었고,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직장 없이 이일 저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던 나는 술집에서 그를 만났다.
내가 그보다 두살 많았는데, 그 사람은 나보다 어린 사람답지 않게 어른스러웠고 자기 생각이 아주 분명했다. 우리는 만난 지 5개월 만에 동거에 들어갔다. 서로 나이도 들 만큼 들어서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생활을 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동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주위의 반대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특히 홀어머니의 외아들인 그에게 집안에서 거는 기대가 남달랐고 그런 만큼 배우자도 그의 어머니 맘에 쏙 들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학벌에서도, 나이에서도, 더구나 카페 여종업원으로 잠시 일했던 이력까지, 도무지 그의 어머니 마음에 들만한 구석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아 헤어지자고 몇 차례 얘기했고, 무작정 그의 곁을 떠나기도 했지만 그는 그런 나를 잘도 찾아냈다. 나 역시 그를 잊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그의 어머니 몰래 동거에 들어갔다. 어머니나 주위 사람들에게는 너무 미안했지만 그 당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동거밖에 없었다. 순진하게도 동거를 하면 언젠가는 우리 사이를 인정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처음에는 참 행복했다. 그는 자상했고 참 성실했다. 나에게 참 과분하다 싶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치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나이가 들어서 동거를 하는 우리를 주변에서는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수근거리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예상대로 우리의 동거생활은 쉽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찾아왔고, 우리 사는 모습을 보시고는 바로 쓰러지셨다.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을 것이다.
그후 집안 식구까지 동원해 그와 나를 헤어지게 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처음에 그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나를 위로해주었지만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지쳐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몸져누운 것을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일 자식이 어디 있겠는가?
무작정 동거에 들어간 우리 사이도 그때부터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창 예민해져 있던 그는 별일 아닌 것 갖고 시비를 걸었고 그러다보니 자주 싸웠다. 차리리 헤어지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급기야 그는 나에게 함부로 대하고 가끔 폭력까지 휘둘러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다.
우린 동거 2년7개월 만에 헤어졌다. 나는 그곳에 혼자 남았고 그는 그의 엄마품으로 돌아갔다. 그러고 1년 후 그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그와 만나서 동거를 하면서 참 행복했다. 그러나 헤어지고 나니 그런 일들이 모두 부질없는 것 같다. 지금도 그가 다른 여자의 남편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는다.(종로구 평창동 S씨, 35세, 미혼)

이 남자와 평생 같이 살 생각하니 끔찍해
혼전동거 후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부부& 이별한 사람들의 사연

우리는 같은 대학 과커플로 학교 내에서 알아줄 만큼 요란하게 연애를 했다. 수업을 빼먹고 다방에서 노닥거리기도 하고 도서관에서는 자리만 잡았지 책하고는 담 싼 사람들처럼 공부는 하지 않고 소곤거려 주위의 눈총을 많이 받았다.
졸업 후 나는 운 좋게 광고회사에 들어갔고 그는 방위 제대 후 별다른 취직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빈둥대고 있었다.
그와 나는 지방 출신으로, 나는 이모집에서 살았고 그는 혼자 하숙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내가 졸업 후 직장을 얻으면서 이모로부터 독립을 했고 4년 넘게 사귄 우리는 자연스럽게 동거에 들어갔다.
그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취업공부를 하기로 했고, 생활비는 내가 번 돈에서 충당하기로 했다. 나는 대학 때 빌린 학자금을 갚는 일도 빠듯했지만, 우리의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그에게 책값과 용돈을 주었다.
그런데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어찌된 일인지 그는 취직을 하려 하지 않았다. 아는 선배가 직장을 소개해줘도 회사가 너무 멀다느니, 하는 일이 너무 고리타분하다느니 하면서 한달을 못 넘기고 사표를 던졌다.
처음에는 ‘자기에게 맞는 일을 찾느라 그러나 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는 대학 때부터 빈둥거리며 놀기 좋아하던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공부한답시고 용돈 받고, 내가 일하는 동안 실컷 자고, 시간 남으면 친구나 후배 만나서 술 마시면서 하루 이틀을 보냈다.
나는 직장 일에 한창 재미를 느끼고 나름대로 인정을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그 사람은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취직을 하기 싫으면 집안일이라도 해줘야 하는데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퇴근 후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처음 맞닥뜨리는 건 방안에 누운 채 TV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려대는 그의 모습이었다. 가끔 그 옆에 소주병이라도 나뒹굴고 있을 때면 너무 화가 나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이토록 한심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에 대학 내내 사귀었던 정도 없어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이런 사람과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암담했고 비참했다.
더구나 수시로 복권이 당첨되면 외국으로 뜨니 어쩌니 할 때는 정말 한심스러웠다. 직장에서 보는 동료들이나 상사들은 모두 자기 관리한답시고 퇴근 후에도 영어학원이다 일어학원이다 하며 공부하러 가는데, 졸업 후 2년 동안 만화책이나 TV를 보면서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내 인생을 걸기 싫었다.
나는 그에게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더 이상 내 돈 써 가며 뒷바라지해줄 자신도 없고, 좀 떨어져서 서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고 했다. 이런 나에게 그는 “내가 무능력하다고 얕보지 마라. 너 남자 있냐?” 하며 다그쳤지만,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결국 2년 동안의 동거생활을 마치고 나는 다시 집을 얻어 나왔고 그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후 소식이 끊어져 그가 지금 뭘 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고향에서 자리를 잡고 유치원 교사와 결혼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나 역시 그와 헤어지고 1년 후 거래처에 근무하는 남자를 만나 1년 연애하고 결혼해서 지금껏 별탈 없이 살고 있다. 가끔 그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때 헤어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양천구 목동 P씨, 33세, 맞벌이 주부)

여성동아 2003년 3월 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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