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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돌아온 챔프

가정파탄으로 전재산 날린 전 세계챔피언 장정구 복싱계 복귀 사연

“이혼한 아내의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와 재혼하며 방황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 글·이영래 기자(laely@donga.com)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3.01.14 14:16:00

전 세계챔피언 장정구씨가 세계챔피언 복귀를 노리는 최요삼의 코치로 링에 돌아왔다.
장모와 아내의 사기로 전재산을 잃은 그는 89년 재혼후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이혼한 아내의 친구와 재혼, 행복을 되찾기까지 그가 겪어야 했던 고초, 그리고 링으로 돌아오게 된 사연 등을 들어보았다.
가정파탄으로 전재산 날린 전 세계챔피언 장정구 복싱계 복귀 사연

“트레이너를 왜 합니꺼? 나는 정말 안하려고 했는데 내 좋다고 우리 집 근처로 이사까지 온 동생(용프로덕션 전광진 매니저)이 하도 부탁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겁니더. 동생에게 요삼이를 소개시켜준 것도 내고, 동생이 권투 프로모터 해보겠다고 뛰어들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내 영향이니까네, 내가 빠질 수 없어 나선 거지, 정말 하기 싫었습니다. 어찌됐건 그 잘 나가던 한국 권투가 세계챔피언 하나 갖고 있지 못한 것도 말이 안되는 기고.”
80년대 세계 프로복싱 경량급을 주도했던 ‘짱구’ 장정구씨(40)가 링으로 돌아왔다. 장정구씨는 지난 80년대 전설적인 15차 방어 기록을 쌓으며 라이트 플라이급 ‘부동의 챔프’로 군림한 국민 복서. 91년 재기전 실패 이후 복싱 프로모터로 살아온 그는 ‘실전 경험을 전수해달라’는 복싱계의 수많은 요청에도 불구, 끝끝내 코치만은 하지 않겠다고 고사해왔다. 그런 그가 ‘노 챔피언 국가’로 전락한 한국 복싱의 재기를 위해 전 세계 챔피언 최요삼의 코치로 링에 복귀한 것. 최요삼은 지난 99년 챔피언이 된 뒤 2002년 7월 멕시코의 호르헤 아스세에게 6회 TKO패할 때까지 3차례 방어에 성공했다. 이후 은퇴했던 최요삼은 최근 장정구 코치 밑에서 다시 시작해보겠다며 링 복귀를 선언했다.
사실 복서로서 장정구씨는 이룰 수 있는 것은 다 이루었다. 그가 권투를 시작한 것은 지난 75년. 김득구의 생애를 소재로 한 영화 을 보면 체육관에 새로 들어온 선수들과 관장이 마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현치 관장은 그들에게 묻는다. “왜 권투를 하려고 하나?” 이런저런 대답을 내놓는 선수들을 뒤돌아보며 김관장은 단호하게 정의한다. “한마디로 너희는 몸뚱이 하나로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권투를 하는기다”라고. 장정구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그 또한 가난을 이기기 위해 권투를 시작, 헝그리 정신 하나로 세계 무대를 제패한 인물이다.
80년 MBC 신인왕전 우수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그는 83년 파나마의 일라리오 사파타를 3회 TKO로 이기며 WBC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리고 88년까지 무려 15차 방어에 성공했다. 15차 방어는 아무나 세울 수 있는 기록이 아니다. 세계 권투계에서 그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일이 지난 2000년에 있었다. WBC(세계권투평의회)는 무하마드 알리, 조 프레이저 등과 함께 장정구씨를 ‘20세기를 빛낸 복서’로 선정했다.
그러나 장씨는 은퇴 이후 링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공식적으로 보면 91년 은퇴 이후 숭민프로모션 이사였고, 2002년부터는 S&S 프로모션(현 용프로모션) 대표이사 생활을 해왔건만 그는 그간의 세월을 ‘이름만 걸어놓고 지냈을 뿐 아무것도 안한 백수 생활’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권투가 얼마나 험한 건지 압니까? 100g 더 뺄 거라고 며칠간 아무것도 안 먹은 놈에게 관장을 시켜요. 관장약 넣으면 뭐 나오는지 압니꺼? 먹은 게 없으니 토끼 똥 같은 게 똑똑 떨어져요. 그런 상태로 링에 올라가서 15회전을 싸우는 겁니다. 보통 정신력 갖고 될 일도 아니고, 그 고통이란 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걸 15년을 했으니 근처에라도 가고 싶었겠습니까?”

가정파탄으로 전재산 날린 전 세계챔피언 장정구 복싱계 복귀 사연

89년 재혼 후 부인 이숙경씨의 도움으로 그는 안정을 찾고 재기에 도전했다.

권투가 끔찍하게 싫어서, 또 그냥 쉬어보고 싶어서 놀기 시작한 게 벌써 10년이라고 그는 말했다. “뭐해서 먹고 살았냐”고 물었더니 “주변 도움으로 살았다”고 대답했다. 챔피언 시절 벌었던 돈을 다 털어먹은 게 벌써 한 10년 된다고 했다. 가정 파탄 때문이었다. 당시 그의 사연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 이야기는 뭐하러 또 합니까? 내가 이혼하면서 벌어놓은 돈 다 까먹은 거 모릅니까? 사기였습니다. 전처가 장모하고 짜고 아파트도 팔아먹고 사놓은 식당도 명의 변경해놓고 도망친 거죠. 어릴 때부터 권투만 한 놈이 세상 뭘 압니까? 내 생각엔 그기 말도 안되는 긴데 법적으로는 배우자가 하면 문제가 없다 합디다. 참말로 대한민국 법이란 게 말도 안됩니다. 그거 싹 다 바꿔야 합니다. 지금도 그 생각하면 분통이 터져요.”
당시 그의 고통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85년 결혼했으니 햇수로 결혼생활 3년째였다. 88년, 그의 전 부인은 아파트 판 중도금까지 챙겨서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는 “못 배운 놈이 돈 벌었다고 많이 배운 여자 찾은 게 잘못이었다”고 한탄했다. 당시 두 사람은 성격 차이로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래도 아이가 있으니 설마 다른 생각이야 하겠나 생각했다고. 더욱이 결혼 3주년을 맞아 1천2백만원짜리 에메랄드 반지를 선물한 뒤로 전 부인의 태도도 많이 부드러워져 안심하고 있던 때 당한 일이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재산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전 부인과 장모의 명의로 변경돼 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통장에 있는 돈, 아파트를 판 돈 또한 부인이 갖고 도망친 뒤였다. 억울하고 분했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내와 장모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하자 세상이 싫어졌다. 그는 모든 의욕을 상실했다.
“가정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오하시 히데유키하고 15차 방어전하러 88년 여름 일본에 가면서 그런 꿈을 꿨어요. 시합 끝나고 돌아오는 꿈인데 양손에 큰 가방을 들고 있습디다. 가방을 하나 여니까 콜라가 우르르 쏟아져요. 항상 배가 고팠으니까 먹는 거 꿈꾸는 거야 당연한데, 또 한 가방을 여니까 뭐가 나왔는지 압니까? 총이 나오더라 말입니다. 그 총이 뭘 말하겠습니까? 콜라 한잔 마음놓고 못 먹고 권투를 해왔는데….”
그는 아내와의 문제로 챔피언 벨트를 자진 반납했다. 이런 정신상태로 링에 올라가봐야 승산이 없다는 생각에 16차 방어를 포기한 것. 그는 한동안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방황했다. 소주병을 깨 하늘이라도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그를 붙잡아 준 건 지금 부인 이숙경씨(37)다. 공교롭게도 부인 이숙경씨는 전 부인과 친구였다. 친구의 친구로 다 연결되는 그 또래들이 방황하는 그를 보다못해 이씨와 연결해주었던 것. 그는 부인과의 연애 과정을 “아플 때 누가 다독여주다보면 그게 사랑이 된다 아닙니까?”라는 말로 설명했다.

“참말로 그런 사람을 일찍 만났더라면 내가 이리 되진 않았을 긴데…. 사람이 제짝 찾는 게 그리 힘듭디다. 지금은 집사람하고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큰딸 한올이는 중학교 1학년 이고, 둘째딸 다슬이는 이제 일곱살이죠. 뭐요? 여자 복서 시킬 생각 없냐고요? 어이구야! 결혼하셨습니까? 아이 낳아서 아들 낳으면 남자 복서 시키고, 딸 낳으면 여자 복서 시키소. 어이구, 권투가 웬 말이고!”
89년 5월 약혼 이후 다시 정신적 안정을 찾은 그는 재기를 선언했다. 어찌보면 지금 그가 재기를 돕고 있는 최요삼과 그는 비슷한 면이 많은 셈이다. 둘 다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이었고 20대 후반의 나이에 재기를 선언했으니.
가족을 위해 진정한 ‘재기의 길’ 나서
가정파탄으로 전재산 날린 전 세계챔피언 장정구 복싱계 복귀 사연

그의 심벌과도 같던 ‘장정구 파마’는 없지만 아직도 주먹을 쥐면 예전의 카리스마가 번뜩인다.

“솔직히 말하면 돈이 없어서 권투를 다시 시작했던 겁니다. 근데 안되대예. 한번 링을 내려오고 나니까 예전처럼 안돼요. 상대가 잘해서 진 게 아니라 제가 못해서 진 겁니다.”
그는 89년 멕시코 움베르토 곤살레스를 만나 재기전을 치렀으나 12회 판정패를 당했다. 그리고 90년, 91년 연패를 당하면서 은퇴를 선언했다. 재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그의 실패를 보면 가늠할 수 있는 일이다.
은퇴 이후 그는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았다. 선수 시절 스폰서를 맡았던 가구 회사에서 자리잡을 때까지 있으라며 자리를 마련해줬으나 그는 하는 일 없이 돈만 받을 수는 없다고 고사했다. 그렇다고 직장생활을 전혀 안 해본 건 아니다. 사회 경험을 해봐야 한다는 선배의 충고에 못이겨 한 회사에 나갔던 적이 있다.
“무슨 위원으로 있었는데 뭐, 영업팀을 관리하는 거였습니다. 사원 교육한다고 나가서 아침에 이런저런 얘길 하는 게 일인데 내 성격에 안맞아 못해먹겠더란 말입니다. 검은 양복에 흰 면양말을 신고 온 사람이 있길래 제가 그건 아니라고 가르쳐줬는데, 그 사람이 저한테 그래요. 그럼 양말 하나 사달라고. 아이고! 가르쳐주는 사람한테 그게 할 소립니꺼, 어디? 마, 내는 그런 사람들하고 못 있는다고 나왔지요.”
그간 국내 복싱은 완연한 침체의 길을 걸어왔다. 프로모션 이사 자리로 생기는 소득이란 게 한정적일 수 밖에 없었다. 직장생활이 안 맞는다고 돈벌이도 변변히 하지 않으며 10년을 보냈으니 부인의 불만이 없을 리 없었다. 그는 부인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라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중이라며 두고 보라고 했다. 더욱이 아버지가 ‘20세기를 빛낸 복서상’을 받으러 멕시코에 갈 때 학교까지 쉬어가며 쫓아와 축하해주던 두딸을 위해서도 그는 보란 듯이 일어서겠다고 다짐했다.
최근 그의 생활은 정신없이 바쁘다. 그는 ‘용프로모션’은 프로모션대로 운영하는 동시에, 친구들이 세운 광고, 인테리어, 컨설팅 전문회사인 ‘더베스트 플랜’에서 전무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이번엔 똑똑하고 능력 있는 친구들하고 하니 괜찮을 깁니다. 잘 해야지. 두고 보이소. 요삼이도 챔피언 만들고 이제 나도 주변 도움 없이 잘살아볼 테니. 우리 딸들이 자랑스러워하는기 만큼 잘살아야제.”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을 찍으러 일어나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공원으로 갈까예”하며 일어서는 그를 “모델 화보 찍는 것도 아니니 추운날 그런 수고까지 안하셔도 된다”며 만류했다. 그러자 그는 어린애처럼 소파에 털썩 앉아서 “아이고, 내가 그래도 남성 토털패션 XX사 화보도 찍었던 사람인데, 내를 무시하면 안되지. 나 사진 안 찍어”하며 너스레를 풀어놓았다. 부산 사투리로 순박하게 이야기를 엮어가는 그의 모습이 한없이 정겨웠다.

여성동아 2003년 1월 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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