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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동의한다면 수락을 눌러줘” ‘성관계 합의 앱’ 실효성 논란

장혜정 프리랜서 기자

2024. 12. 31

상호 동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는 증거를 남기는 앱이 등장했다. 성폭행, 성추행 등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분쟁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두고 법조계 및 누리꾼 의견이 크게 엇걸리고 있다.

성관계는 은밀하고 개인적인 행위다. 밀폐된 곳에서 오직 두 사람이 깊은 교감을 나누기 때문에 설령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객관적인 정황을 파악하기 어렵다. 이에 상대의 거짓 신고로 성범죄자로 몰리는 등 종종 억울한 상황도 생긴다.

40대 여성 A 씨는 마사지방에서 성매매를 한 뒤 남편에게 이 사실을 들키자 성폭행을 당했다며 허위 고소를 감행했다. 그런가 하면 직장 동료와 호감을 갖고 성관계를 가진 20대 여성 B 씨는 성폭력을 당했다고 거짓 신고한 사실이 발각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또한 사귀던 남성이 헤어지자고 통보하자 수백 통의 전화를 걸어 상대를 괴롭힌 C 씨는 남성이 스토킹 혐의로 자신을 고소하자 강간을 당했다며 역고소를 감행했다.

실제 성범죄 사건은 일반적으로 신고 또는 고소 후 가해자로 의심받는 사람이 “동의하에 이뤄졌는데 고소했다. 억울한 마음에 무고로 역고소한다”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는 성범죄 사건과 무고가 늘어나는 현상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무고죄 발생 건수는 2017년 3690건에서 2023년 4809건으로 6년 새 30% 이상 증가했다. 아쉽게도 이 중 성범죄 관련 무고 사건을 따로 집계하진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전체 무고죄가 증가하는 현상이 성범죄 사건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한 사건의 피해자들이 누명을 벗고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한다면 다행이지만, 거액의 합의금을 물거나 최악의 경우 준강간, 강간, 특수강간 등을 저지른 성범죄자로 낙인찍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본인이나 가족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는 일이다.

성관계에 동의한다면 ‘수락’을 눌러줘

성관계 동의 앱은 변호사 검토를 마친 성관계 동의 서비스를 표방하고 있다.

성관계 동의 앱은 변호사 검토를 마친 성관계 동의 서비스를 표방하고 있다.

성관계 관련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요즘, 급기야 ‘ssCherry’라는 일명 ‘성관계 동의 앱’이 등장해 화제다. ‘안전한 사랑을 위해 변호사 검토를 마친 성관계 동의 서비스’를 표방하고 있는 이 앱은 사전에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기록을 남겨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을 막겠다는 취지로 개발됐다. 지난해 7월 출시된 ssCherry는 3개월간 1000여 건의 다운로드가 이뤄졌다. 해당 앱의 제작 지원 및 검수를 진행한 김호평 법무법인 호평 대표변호사는 “상호 신뢰가 어려워지는 등 사회적 문제를 해소하고자, 양측이 합의한 사실을 기록해 불안감을 덜어주려는 취지였다”고 앱의 개발 의도를 설명했다.

앱의 작동 방식은 이렇다. 성관계를 갖기 전 제안하기 버튼을 누르면 QR코드가 생성된다. 상대가 이를 스캔하면 곧 ‘성관계 합의서’를 열람할 수 있다. 합의서 본문에는 ‘본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제안자(갑)와 수락자(을)는 다음과 같이 합의하고 향후 합의 내용에 대해 일체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갑과 을은 XXXX년 X월 X일 X시 X분부터 12시간이 경과하는 시점까지 상호 간의 스킨십과 성관계에 동의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때의 스킨십이란 ‘성적인 표현을 사용한 대화 및 신체 접촉 일체를 포괄한 것’으로 규정한다. 상대는 이를 수락하거나 거절함으로써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 또한 본인과 상대방의 핸드폰에 제안, 수신 내역이 각각 남아 일종의 인증서 같은 역할도 한다. 새로운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한편 겉치레보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MZ세대에게 확실히 어필할 만한 포인트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자발적 동의’ 입증 어려워··· 법적 효력 미지수

성관계 동의 앱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나 판례가 없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성관계 동의 앱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법적 분쟁이나 판례가 없어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ssCherry 앱이 등장하자 일부 누리꾼은 “억울한 일이 확실히 줄겠다” “요즘 같은 세상에 꼭 필요한 앱이다”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편 “하다하다 성관계까지 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느냐”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성관계 합의 앱의 법적 효력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유사시 과연 법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이에 이길호 법무법인 청녕 변호사는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길호 변호사는 “음주, 약물 등으로 인한 심신미약 등의 상태에서 발생하는 준강간의 경우 상대의 휴대폰을 빼앗아 임의로 동의 버튼을 누를 염려가 있다”며 “만일 앱 내에 오직 본인만이 진정한 의사를 가지고 동의 여부를 표시할 수 있는 기능이 갖춰져 있다면, 동의의 의사표시로서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박연숙 법무법인 다원 변호사는 “앱을 통한 수락, 거절의 의사표시는 형사처벌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요건 중 하나인 ‘동의의 의사표시’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으로부터 증거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보였다. 오히려 해당 앱이 강압적으로 성관계 동의를 유도하는 등 성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에서는 지난해 성관계 동의 앱인 ‘키로쿠’를 출시할 예정이었으나 강제로 동의 버튼을 누르게 할 수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몇 달간 출시를 미루기도 했다. “만일 성관계를 시작 한 후 마음이 바뀌어 관계를 거부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처음 동의한 합의서가 발목을 잡아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해야 하면 어쩌나” “앱을 통해 남긴 성관계 동의 기록이 유출되면 심각한 사생활 침해가 일어나는 셈이다” 등 누리꾼들의 의견도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관련 전문가는 “녹음, CCTV, 문자, 메신저 등의 자료를 통해 성관계 전후의 사정을 가늠해보고 때론 이러한 자료들이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며 “해당 앱 역시 참고 자료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했다. 실제 성범죄 사건을 심리하는 법원에서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진술이 첨예하게 엇갈릴 경우 평소 두 사람의 관계는 어땠는지, 현장에서 폭행이나 협박 등이 있었는지, 성관계 전후의 상황을 알 수 있을 만한 단서는 무엇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혐의 성립 여부를 결정한다.

성관계 동의 앱이 허위 신고 등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등장한 서비스라는 점에서 차라리 무고죄의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이길호 변호사는 “현재 무고죄는 형법 제156조에 의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실형이 선고되는 비율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형량도 1년 안팎으로 가벼운 편이며 집행유예나 벌금형으로 그치는 경우도 있다”면서 “무고죄의 수사 및 처벌을 확대하는 한편 무고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상향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성관계앱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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