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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 페스티벌‘경(慶)칠 년들의 축제’

■ 기획·이지은 기자(smiley@donga.com) ■ 글·장옥경 ■ 사진·조영철 기자

2002. 10. 11

터부시해 온 여성의 월경을 당당히 드러내고 즐기자! 금기의 주제를 도발적으로 표현해 눈길을 끌어온 페미니즘 문화제 ‘월경 페스티벌’이 지난 8월31일 연세대 대강당에서 열렸다. 태풍 루사의 강타에도 열기가 식을 줄 몰랐던 행사장의 이모저모를 스케치했다.

월경 페스티벌‘경(慶)칠 년들의 축제’
그날, A급 태풍 ‘루사’는 간판을 뒤흔들고 현수막을 휘젓고 스커트를 뒤집었다. ‘여자와 불쏘시개는 쑤석거리면 안된다’는 금기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루사’는 사나운 몸짓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스커트 사이로 스며든 바람은 여자들을 미치게 했다. 거센 강풍과 비를 휘감은 루사의 등장으로 부랴부랴 장소는 노천극장에서 대강당으로 옮겨졌고, 제 4회 월경 페스티벌 ‘경(慶)칠 년들의 축제’는 시작 전부터 심상치 않은 광기를 불러일으키며 달아오르고 있었다.
‘달-계수나무, 토끼/ 변화하는 날/ 놀랍고 신나는 일/ 새롭게 미쳐보는 날/ 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모여라/ 태풍이 불어도 우리는 달려간다/ 경칠 놈들은 나가라’
대강당 입구의 월경에 관한 상상을 적은 부스엔 예사롭지 않은 문구들이 휘날리고 있다.
“월경은 ‘월’마다 하는 ‘경’사스런 일입니다. 여성과 남성의 신체 차이를 드러내는 가장 분명한 현상이 월경이지만, 차별 받아서는 안됩니다. 터부시했던 여성의 생리현상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주체성을 회복하자는 1회 때부터의 취지를 발전시켜 올해는 특히 개인들의 이야기를 열린 공간으로 끄집어내고자 합니다.”
여대생 중심의 여성문화기획 ‘불턱’이 주관하는 이 날의 행사를 총기획한 푸른달 오선진씨(29)는 기존의 월경 페스티벌이 월경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그 의미를 알리는 행사였다면, 이번 축제는 “넌 어떤 월경을 하니?”라는 주제로 보통 여자들의 공통 체험을 즐거운 수다로 풀고자 하는 데 의미를 두었다고 한다.
축제의 막이 오르면서 월경을 하는 여자가 옷에 피를 묻히고 당당히 군중 속을 활보하는 영상과 함께 ‘넌 감추고 다니니? 난 감추지 않아’ 라는 메시지가 뜨며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어 안티 미스코리아, 여성의 날 행사 등을 진행했던 사회자 최광기씨가 ‘붉은 색만 보면 미치는 여자’들을 위해 ‘달맞이 체조’로 몸풀기를 시도했다.
손 털기, 제자리서 뜀뛰기, 다리 올리기, 다리 벌리기, 다리 돌리기, 무지개 그리기 같은, 여성의 몸에 좋은 체조를 하나씩 시연하며 무대 위의 빨간 토끼와 관객들은 한마음으로 동화되어 갔다.
예로부터 붉은 빛은 악귀나 병마, 액마를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쫓아버리는 제마(除魔)의 작용이 있다고 믿었다. 동짓날 팥죽을 끓여 집 안팎에 뿌리거나 금줄에 붉은 고추를 매다는 것, 시집갈 때 연지곤지를 칠했던 것이 그런 맥락. 그와 마찬가지 일환으로 여성의 월경 혈이 묻은 속옷을 기다란 장대에 걸고 마을 곳곳을 다니며 악귀를 쫓았던 풍습도 있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 성담론 만화 색녀열전을 연재했던 장차현실씨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 은혜(12)와 함께 그 풍습을 재현하는 도깨비굿 한판을 벌였다. 장차현실씨는 장애아이며 여자아이를 둔 엄마의 입장에서 딸이 초경을 하는 것이 우려가 됐지만, 오히려 진정한 여자가 됐다는 것을 축하하고 북돋워줘야 한다고 생각해 참여를 결정했다고 한다. 은혜가 선택적으로 성을 누리고 사는 야하고 섹시한 여자가 되길 바란다는 말에 관객들 사이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따뜻한 생명력이 넘치는 피에 대한 사랑은 ‘트렌스젠더와 함께하는 보지 패션쇼’에 이르러 더욱 가열됐다. 정작 여성들은 월경에 대한 부정적인 터부로 인해 월경을 귀찮은 것, 더러운 것, 불길한 것으로 마땅찮아 한다. 하지만 트렌스젠더에게 월경은 여성임을 확인시켜주는 정체성과도 같다. 여자들이 내다버린 생리대를 소중한 것으로 감싸안는 트렌스젠더. 그는 마음은 여자지만, 몸의 일부는 완전한 여자가 되지 못함으로 인해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린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여자들과 트렌스젠더의 화해는 ‘육체가 아닌 심리적 의미의 월경’에 대한 생각을 곱씹어보게 한다.

여자들이 모여 일상 속의 월경에 대한 이야기를 수다로 풀어내는 ‘월경 모놀로그’에서는 다양한 경험담이 나왔다.
“생리를 좋아하는 여자가 몇 명이나 될까? 찝찝하고 귀찮고 번거롭고. 그래서 싫었다. 또 생리통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다이어트를 해서 45kg까지 감량을 했다. 아침, 점심을 굶으며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한 결과 월경이 없어졌다. 오직 다이어트에만 관심이 있어 다이어트 후유증은 생각 못했는데 월경이 멈추자,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생리대를 사러 가게에 갈 때 남자가 있으면 다른 가게로 갔다. 여자가 있는 가게를 찾아 동네를 한바퀴 돌았던 적도 있었다. 내 돈 주고 사면서도 왜 찜찜해야 할까, 생각했지만 생리대를 주는 아줌마도 검정 봉투에 담아줬고 어떤 집은 두장이나 겹친 봉지에 담아주었다.”
“생리대를 사러 가서 괜히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 언니가, 엄마가 사오라고 해서’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MT를 갔다.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고 즐거웠는데 그 와중에서도 생리에 대한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거 터지면 어쩌지? 생리가 불규칙해서.”
“초등학교 4학년 때 책을 보고 월경에 대해 알았다. 여자들은 피를 흘리면서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 멋졌다. 동경해서 엄마 생리대를 미리 차보기도 했다. 엄마 생일날 생리대를 종류별로 사서 선물했다. 그런데 엄마는 그런 건 선물하는 게 아니라며 나를 나무랐다. 중2때 생리를 했다. 엄마는 오빠와 남동생 몰래 나에게만 가르쳐줬다. 난 알았다. 생리는 남에게 말해서는 안되고 숨겨야 하는 것임을. 생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좋은 게 아니었다. 그때 엄마가 내게 솔직하게 말씀해주었다면 가슴이 많이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월경, 두 글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타악기의 ‘공명’으로, 안은미의 ‘with’로, 지현의 축하공연으로 이어지며 붉은 달의 주문에 걸린 여자들의 끼 판을 한껏 경사스럽게 했다.
여성문화기획 ‘불턱’은 제주도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는 장소에서 이름을 따왔다. ‘솔직한 수다’를 통해 여성들의 웃음과 아픔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위로받는 자리를 의미한다고. 매년의 월경 페스티벌을 통해 여성에 대한 억압과 편견을 없앰으로써 양성의 평등사회를 만드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생필품인 생리대에 붙은 부가세의 부당함을 알리고 그 폐지를 위한 서명 운동을 펼치는 것도 올해의 주요 행사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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