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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출마 선언하며 자신의 출생 비밀 솔직하게 털어놓은 정몽준의원

■ 글·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2. 10. 07

정치권을 비롯, 세간의 관심사로 떠오르며 숱한 루머가 난무하는 가운데 정몽준 의원이 자신의 출생비밀에 대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공세에도 입을 굳게 다물었던 그가 9월17일 대선출마 선언을 하며 자신의 출생과 관련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꺼낸 것.

대선 출마 선언하며 자신의 출생 비밀 솔직하게 털어놓은 정몽준의원
사실 ‘출생 문제’는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부분으로 후보의 자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다. 아무리 공직자의 모든 것을 검증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까지 공개하라고 강요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이기에 정치권의 공세는 필연적이고, 언론과 국민의 관심도 클 수밖에 없는 문제다. 정몽준 의원(51)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수차례에 걸쳐 “적절한 때가 되면 밝히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출생의 비밀’은 정의원 마음 깊숙한 곳에 깊게 파인 생채기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상처를 공개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아내와 자식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의원은 사실을 공개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민을 거듭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의원의 출생 비밀이 밝혀진다고 해서 대권경쟁 구도에 큰 변화가 있으리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출생은 대선 후보의 자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부를 중심으로 한 국민들 사이에서는 정의원의 가슴 아픈 개인사에 대해 동정론까지 일고 있을 정도다.
정의원의 생모가 호적상 친모인 변중석 여사가 아닐 것이라는 소문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정주영 명예회장은 9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막내인 몽일씨만 “배다른 자식”이라고 밝혔을 뿐 더 이상 어떤 언급도 하지 않은 채 지난 2001년 작고했다. 어머니 변여사도 현재 와병중이기 때문에 정의원 본인이 말문을 열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생모’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공론화된 것은 지난 8월16일 정의원이 지리산 산행을 하며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였다. 이날 간담회에서 출생에 대한 궁금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잠깐 말을 멈춘 그는 이내 농담처럼 “나도 뭐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 뭐 딴 데서 나나”라며 말을 돌렸다. 하지만 이를 시발점으로 해서 일간지와 시사지에서 속속 정의원의 출생 비밀에 대해 기사화하기 시작했고, 언론사마다 비밀리에 정의원의 생모를 밝히기 위한 특별팀을 꾸렸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그 뒤 정의원은 9월9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출생비밀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밝히기도 했다. 작고한 국악인 안비취가 생모라는 소문이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아버님(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안비취씨를 좋아하셨다. 그러나 그 분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라고 대답한 것. 그러면서 그는 “어느 시점에서 (생모가) 누구인지 밝히겠다”고 했다.
이는 정의원 스스로 호적상 모친인 변중석 여사가 자신의 생모가 아님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정의원의 생모가 따로 있다는 것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한 것은 기자가 정의원의 아내 김영명씨(46)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였다. 김씨는 생모설의 사실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의원이 직접 이야기할 문제”라며 “나도 최근에야 남편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시인했다. 하지만 더 이상 생모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
그동안 ‘정의원의 생모는 누구다’라는 설은 무척 많았다. 89년 출간된 정주영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돈황제>에는 정회장과 함바집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이 출생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소설은 많은 부분 사실을 근거로 쓰여진 것이었기에 이 부분도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그 아들이 바로 정의원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저자 백시종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그는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또한 경기민요 명창이었던 고(故) 안비취 여사라는 설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더구나 2001년 3월 사망한 정주영 회장이 사망하기 몇 개월 전 이미 작고한 안여사를 찾으면서 사실로 굳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안여사를 18년 동안 모셨고, 특히 작고하기 6년 전부터는 24시간 병수발을 했던 수양딸 K씨는 그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정회장과 안여사는 20대 때부터 절친한 친구여서 정회장이 집안 행사가 있으면 항상 부르곤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대선 출마 선언하며 자신의 출생 비밀 솔직하게 털어놓은 정몽준의원

“만약 정의원이 어머니(안비취 여사)의 아들이라면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이라도 언급을 했거나, 혈육에 끌려 한번이라도 만났을 거예요. 그게 인지상정 아닌가요? 더구나 사람이 가장 솔직해진다는 임종 순간에 이름이라도 한번 불러봤겠죠. 하지만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정의원이 집에 찾아온 적도, 만난 적도 없었고요.”
이 외에도 6·25전쟁 때 정주영씨가 사업을 확장하면서 사채를 끌어쓰는 와중에 만난 여자 사채업자라는 소문도 있는데, 정의원이 최근 자신의 출생지가 부산이라고 밝힘에 따라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있다. 또한 정주영씨가 데리고 있던 경리사원이라는 소문도 떠돌았다.

대선 출마 선언하며 자신의 출생 비밀 솔직하게 털어놓은 정몽준의원

부산 피란시절의 정몽준의원 가족 사진.

최근 정가에서 유력하게 나도는 소문은 두 가지인데 모두 성이 ‘안’씨이고, 국악을 하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첫번째 소문은 해방 후 거물 정치인이었던 Y씨의 소실로, 48년 Y씨의 장남 S씨를 낳은 A씨라는 것. A씨는 그후 술집을 운영하면서 Y씨를 배경으로 당시 거물급 정치인·은행가들과 깊은 교분을 가지던 중, 정회장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현재 생존해 있으며 S씨와 정의원이 생활비를 보태주고 있다는 게 소문의 내용.
이같은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Y씨를 잘 아는 원로정치가를 찾아갔다. 그는 소문처럼 Y의 아들 S씨가 본부인이 아닌 소실에게서 난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전혀 뜬소문은 아닌 셈이다. 그래서 이번엔 S씨를 찾아갔다. 소문이 사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정의원과의 만남이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S씨는 늦은 밤 느닷없이 찾아와 정의원과의 관계를 묻는 기자에게 사실이 아니라면 화를 낼 법도 하건만 의외로 담담하게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줄곧 길러주신 어머니가 생모인 줄 알았어요. 출생의 비밀을 안 것은 한참 큰 후였어요.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저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고, 생모가 절 찾아온 적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친어머니가 누구인지, 이름이 뭔지, 뭘 하던 분인지 전혀 몰라요.”
그에게서 더 이상 정의원과의 관계를 밝혀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보다 24세나 많은 이복누이는 알 법도 하건만 그는 끝내 누이의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기자만의 느낌일까, S씨는 긴 얼굴형과 마른 몸, 큰 키가 정의원과 닮아있었다.
두번째 소문은 안비취 여사 밑에서 활동하던 후배 국악인 B씨로, 당시 고급술집이던 대원각에서 일하다 정주영 회장을 만났는데, 정의원을 낳은 후 불운한 삶을 살다 50년대 말에 자살했다는 것이다. 또한 B씨는 정의원이 7세(혹은 11세)가 될 때까지 장충동 안비취 여사의 집에서 데리고 살았는데, 이 때문에 세간에 안비취 여사가 정의원의 생모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B씨가 일했다는 대원각이 만들어진 게 51년이고 정의원의 출생연도도 51년이다. 따라서 B씨가 대원각에서 일하며 정주영 회장을 만났다는 것부터 설득력을 잃는다. 또한 53년 부산에서의 피란시절 찍은 정회장 가족사진에 만 2세가량의 어린 정몽준의 모습이 있어 정의원이 안여사의 집에서 자랐다는 소문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의원측으로부터 직접 생모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각도로 접근을 해보았다. 하지만 한결같이 “본인이 직접 밝힐 문제이지 다른 사람이 언급할 내용이 아니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던중 어렵게 정의원과 전화통화가 이루어져 ‘생모가 안씨라는 소문’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언론사에 수많은 제보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라며 간접적으로 부인했다.
그리고 마침내 9월17일 자신의 출생에 대해 입을 열었다.
“78년 미국유학 갔을 때 서울에서 ‘내가 네 친엄마다…’라는 내용의 편지가 왔다. 그래서 여름방학 때 나와 그분을 만난 뒤 아버지와 상의했다. 그때 아버지는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 일은 너와 아무 관련이 없다. 그건 내 문제이니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셨다. 그후론 만난 적이 없다….” 정몽준의원은 생모 관련 질문에 답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생모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확인해주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직계 가족에게조차 밝히지 않았던 출생의 비밀을, 대선출마선언을 계기로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심경이 몹시 착잡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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