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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coop #interview

한국 힙합이 신세 많이 졌지! BewhY

editor Kim Ji Young

2017. 09. 27

‘대체 불가’ ‘괴물 래퍼’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다. 욕설이나 ‘디스’를 섞지 않고도 울림이 있는 랩을 귀에 쏙쏙 꽂히게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모습도 그런 수식어들과 잘 어울린다. 요즘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남자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슬릭’한 헤어스타일도 그가 ‘스타’ 래퍼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비와이(24·본명 이병윤)는 지난해 역대 시즌 가운데 가장 폭발적인 관심을 모은, 대한민국 최고의 래퍼를 가린 Mnet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Show Me The Money5〉(이하 〈쇼미더머니5〉)를 통해 그렇게 독보적이고도 괴물 같은 매력으로 대중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그는 일찌감치 ‘어우비(어차피 우승은 비와이)’로 통했다. 자신감이 느껴지지만 과하지 않고 우승에 집착하지 않는 듯한 여유로움으로 편안하게 대중에게 다가서는 그의 무대는 매번 열띤 환호와 ‘엄지척’을 받았다. 결국 그는 최대 라이벌 씨잼을 제치고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방송을 지켜보며 언젠가 그를 꼭 인터뷰하리라 마음먹었던 기자는 지난 9월 12일 오후, 그  바람을 이뤘다.

당시 그는 첫 정규 앨범 〈The Blind Star〉 발매를 앞두고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 음반은 9월 3일 앞서 선보인 미니 앨범 〈The Blind Star 0.5〉의 완결판이다. 사각 테이블과 커피를 사이에 두고 그와 음악과 삶에 대해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그 끝에서 비와이는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했다!”며 웃었다. 어릴 적 열등감에 시달리던 왜소한 소년이 대체 불가능한 래퍼로 우뚝 서기까지 겪은 성장통의 고백은 누구나 가슴 한 귀퉁이에 묻어두고 있을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줄 듯하다. 비와이가 〈여성동아〉에 들려준, 그동안 한 번도 언론에 밝히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비와이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뭘까요.
저의 랩이라든지 평소 제가 보여주는 말과 행동이 새롭게 다가가서인 것 같아요. 반감이 드는 새로움이 아니라 기분 좋은 새로움이랄까요. 제 자신이 봐도 신기하긴 해요. 〈쇼미더머니5〉에 출연한 저를 보면 이미 이긴 것처럼 표정을 짓고, 행동도 랩도 그렇게 하더라고요. 언행일치죠. 예전의 저였으면 그러지 못했을 거예요. 실패를 많이 겪었거든요.

어떤 실패를 경험했나요.
초등학생 이병윤은 남을 많이 의식하는 아이였어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도 엄청 심했어요. “못생겼다” “원숭이 같다”는 놀림을 받기 일쑤였죠. 키도 작고 마르고 정말 볼품없었어요. 힘도 약해서 열등감이 심했죠. 괴롭히는 아이도 있었어요. 그게 저한테는 큰 상처가 됐어요. 더구나 그때는 꽃미남이 대세였어요. 동방신기가 엄청난 인기를 끌 때였죠. 예체능에 관심이 많았지만 ‘난 안되겠구나’ 싶어 혼자만의 취미로 즐겼던 것 같아요. 만화 그리기, 노래하기, 마술, 축구 등 다방면으로 재능이 뛰어났거든요(웃음).



학교에서 축구는 제일 잘했고, 그림은 세 손가락 안에 들었고, 노래도 곧잘 하고, 마술은 저만 할 줄 알았어요. 마술사 이은결 씨를 무척 좋아했죠. 그렇게 제 능력으로 기쁨을 찾고자 노력하면서 가치관을 만들어갔던 것 같아요.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자신감이 생겼나요.  
그때도 몸이 많이 약해서 힘과 멘탈이 센 친구를 사귀고 싶었는데, 그런 친구가 한 명 있었어요. ‘김원호’라는 친구예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봤는데 너무 멋있었어요. 그 친구는 힘이 셌는데도 무리 지어 다니지 않았어요. 스스로 끼지 않았어요. 그냥 혼자인 느낌이었는데도 센 애들이 걔를 못 건드렸어요. ‘쟤랑 친해지고 싶다’고 기도를 했어요. 기도가 바로 이뤄지진 않았지만 그 친구랑 3년 내내 같은 반이 됐죠. 그러다 중3 때 친해졌는데 걔는 남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길거리에서 유머를 하고,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자존감이 정말 ‘갑’이었어요. 그 친구가 제 인생 최고의 힙합이죠. 지금도 제일 친한 친구예요. 그 친구를 만나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덕분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 됐죠. 그때부터 지금의 제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직접 변화를 이끌었나요.
남의 눈치 안 보고 그 친구처럼 당당하게 행동하면서 유쾌한 웃음을 유발하려고 하다 보니 고등학교에 가서는 저만의 방식과 스타일을 찾게 된 거죠. 그 무렵 우연히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을 읽고 꿈꾸는 법을 알게 되고, 꿈을 가져야겠다는 의지도 생겨났죠. 때마침 학교에서 적성검사를 실시해 프로듀서, 음악가, 미술가 같은 직업이 제게 잘 맞는다는 것도 알려줬고요. 어릴 때부터 창작하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부터 구체적으로 꿈을 꾸기 시작했죠. 그 전에는 세상이 저를 좋게 봐주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앞서서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엄두를 내지 못했거든요. 〈쇼미더머니5〉의 세미파이널 무대에서 선보인 ‘데이 데이(Day Day)’라는 곡의 가사가 바로 예전의 제 모습과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쓴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꿈을 꿨나요.
먼저 생생하게 꿈을 꿨어요. ‘비비드 드림(Vivid Dream)’이죠. 사진·장소·영상 비비드 드림을 실현하려고 고1 때 YG엔터테인먼트 사옥 연습실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 왔어요. 새벽에 몰래요. 하하. 마침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둬서 들어갈 수 있었죠. 글 비비드 드림도 있어요. 자신의 꿈을 이미 이룬 것처럼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구체적으로 쓰는 거예요.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이게 〈쇼미더머니5〉에 나가기 전인 2015년에 쓴 거예요. ‘제 노래가 역주행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6년 제일 잘나가는 가수가 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제 소원을 이미 이룬 듯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썼는데 정말 그대로 이뤄졌죠(웃음). 꿈꾸면 이뤄진다는 말은 진리예요. 고교 시절부터 그런 식으로 생생하게 꿈꾸고 기도하면서 뮤지션의 꿈을 키워왔어요.

고1 때까지 비와이의 롤 모델은 빅뱅의 지드래곤이었다. 언행도, 패션 스타일도 남다른 지드래곤의 모습에 매료돼 빅뱅의 음악에도 관심이 갔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고,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랩 음악의 매력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다이나믹 듀오의 음악을 듣고 래퍼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고1 때부터 자신의 이름 병윤의 영문 머리글자를 따 만든 ‘비와이(BY)’라는 예명을 썼다. 비와이에 ‘이유가 되라(Be Why)’는 의미를 부여해준 이는 고등학교 동창이자 〈쇼미더머니5〉에서 2등을 한 래퍼 씨잼이었다. 고교 시절 각자 랩에 심취해 있다 다른 친구를 통해 만난 두 사람은 한동안 크루 활동을 함께했다. 그러는 사이 롤 모델도 바뀌었다. 미국의 래퍼 에미넴, 50센트, 닥터 드레가 그들.

비와이는 “이 래퍼들은 그냥 김원호였다.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누구 의식하지 않고 해도 미국에서 제일 잘나간다”며 “그들처럼 되고 싶어 데뷔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믹스테이프를 연습 삼아 내다 2014년 자비로 데뷔 앨범 〈Waltz〉를 만들었다. 당시 랩은 비주류 음악이었다. 그때부터 소속사 없이 활동한 그는 〈쇼미더머니5〉 우승 후 수많은 힙합 레이블의 달콤한 제안을 사양하고 1인 기획사 ‘데자부그룹’을 차렸다. 무명 시절부터 동고동락하며 그의 매니지먼트를 도맡아온 교회 형 권중용 이사와 함께.



무명의 설움을 느껴봤나요.
데뷔 초반에는 둥지 없이 활동하는 게 서러울 때가 있었어요. 저보다 먼저 주목받은 씨잼이 부럽기도 했고요. 씨잼은 믹스테이프를 발표한 후 ‘초신성 루키가 나왔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인정받았어요. 그 소문이 스윙즈 형 귀에 들어가 저스트뮤직이라는 힙합 레이블에 영입됐고, 2014년 〈쇼미더머니3〉에서는 본선까지 올라갔죠. 저도 이듬해 〈쇼미더머니4〉에 나갔는데 3번째 무대에서 떨어졌어요.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담담하게 버틸 수 있었어요.

비결이 뭔가요.
신앙의 힘이죠(웃음). 〈쇼미더머니4〉에서 떨어진 걸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러지 않았다면 ‘포에버(Forever)’나 ‘데이 데이’ ‘구찌뱅크(9UCCI BANK)’ ‘레드카펫(Red Carpet)’ 같은 노래가 못 나왔을 거예요. 경연에서 떨어짐으로써 승리에 너무 집착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승리가 저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것도요. 그때부터 제 표정이 바뀌었어요.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이미 승리한 것처럼 살 수 있게 됐죠.

〈쇼미더머니5〉에서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누구였나요.
씨잼이죠. 지금도 제겐 둘도 없는 친구예요. 고1 생활이 끝나갈 무렵부터 같이 다니며 서로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죠. 씨잼이 학창 시절 랩도 잘하고 몸도 좋고 힘도 진짜 셌어요. 김원호 같은 친구였죠. 그리고 진짜 순수해요. 요즘은 자주 보지 못하지만 한번 만나면 저희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폭풍 수다를 떨죠. 하하.

그 당시 가장 잘한 선택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팀 결정전에서 쌈디 형과 그레이 형이 있는 소속사 AOMG를 택한 거요. 두 형을 만난 게 제 인생의 대박이었어요. 두 형을 안 만났다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거예요. 그 형들은 진짜 스타메이커예요. 쌈디 형은 대중이 좋아하는 코드를 간파하는 능력이 탁월하고, 그레이 형은 비트를 정말 잘 만들어요. 가사는 제가 직접 썼고요. 정말 환상의 조합이었어요. 이번 정규 앨범의 비트도 그레이 형이 만들어줬어요.

우승을 차지했을 땐 어떤 기분이었나요.
유명해져서 제 음악의 멋을 알려주려고, 소속사 없이도 잘되는 걸 보여주려고 〈쇼미더머니5〉에 나갔는데 정말 뜻한 대로 이루어져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어요. 하지만 우승의 기쁨보다 아티스트로서 이제야 제대로 자리를 잡았구나 하는 뿌듯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1인 기획사여서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고 들었어요.
어릴 때부터 회사를 만들고 싶었던 꿈이 있어서 1인 기획사를 차렸는데 주주가 권중용 형과 저, 둘뿐이어서 맥도날드에서 주주총회를 해요. 하하하. 최근 직원 두 명이 늘었는데 다들 술도 못하고 시간도 많이 안 나서 가까운 돼지국밥집에서 회식을 하고요. 앨범 작업을 마치면 한우 고기 한번 실컷 사주려고요. 저는 동네 정육식당에서 삼겹살 구워 먹는 것도 좋아해요.

대학 축제 섭외 1순위더라고요.
데뷔 초반에는 홍보 방식을 몰라 국내 거의 모든 대학에 일일이 손 편지를 보냈어요. 받는 이 주소란에 저희 집 주소를 잘못 써서 낭패를 보기도 했고요. 그때는 영남대에서만 연락이 왔던 걸로 기억해요. 그런데 작년엔 70여 곳, 올해는 40여 곳의 대학 축제에 참석했어요. 대학 축제 열기가 정말 대단해요. 무대보다 더 폭발적이죠. 그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동안 수입이 크게 늘었을 것 같아요.
많이 벌었어요. 그런데 청담동에 음악 작업실을 얻고, 아버지 차 사드리고, 공연 의상을 많이 구입했더니 남은 게 별로 없어요.

〈쇼미더머니5〉 우승 후 한동안 경제적인 풍요로움과 인기에 취해 있었다고 들었어요.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제가 연예인이 된 거예요. 웬만한 연예인보다 섭외가 더 많이 들어왔어요.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데 스케줄이 하도 많아서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지난해를 보내고 돌아보니 ‘내가 뭘 한 거지?’ 싶더라고요. 명품 옷을 엄청 많이 샀거든요. 예전에 여자친구랑 구찌 매장에 갔다가 화가 날 정도로 무시당한 적이 있어서 거기 있는 명품이란 명품은 다 샀죠. 원 없이 사보긴 했는데 남는 게 없었어요.

튀는 옷은 한 번 입으면 또 입기가 그렇더라고요. ‘이게 맞나? 너무 돈과 인기에 취해 있지 않았나?’ 하면서 반성하게 됐죠. 9월 3일 낸 앨범 〈The Blind Star 0.5〉의 수록곡들이 그때의 감정을 담은 거예요. 커튼콜이 끝난 후 다시 시상식과 레드카펫에 서면서 교만해지고, 눈에 보이는 반짝임과 화려함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명품에 집착하던 당시의 상황을 일기처럼 기록한 노래들이죠. 그래서 앨범 제목을 ‘눈먼 별’이라는 뜻의 영문으로 한 거예요. 그게 끝이 아니기에 ‘0.5’를 붙인 거고요.

자신의 치부를 보여줄 용기를 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동안 돈과 화려함의 유혹에 빠져 있던 자신의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는 건 그만큼 용기 있고 자존감이 강하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웃음). 사실 〈The Blind Star 0.5〉 앨범의 수록곡을 들으면 혼란스러울 수도 있어요. 비와이가 변했나 싶어서요. 하지만 그건 영화의 절반만 보고 전체를 평가하는 것과 같아요. 진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정규 1집 앨범 〈The Blind Star〉를 들어보면 오해가 풀릴 겁니다.

〈The Blind Star〉에는 어떤 깨달음이 담겨 있나요.
지난 6월에 나온 ‘데자부(Dejavu)’라는 노래에 제가 깨달은 바를 처음 녹여냈어요. 눈에 보이는 반짝임은 달콤하고 강렬하지만, 보이지 않는 더 가치 있는 것들을 따라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죠. 래퍼로서 저 역시도 보이진 않지만 정말 가치 있는 것들에 대해 노래하고 싶고요. 한동안 일탈을 했지만 지금은 언제 들어도 좋은 클래식 같은 음악을 만들려고 했던 데뷔 시절의 초심을 되찾았어요.

▼여자친구를 대학교 1학년 때 만났다고 들었어요. 사랑도, 우정도 오래가네요.
만남과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는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기가 좀 어려운 것 같아요.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제가 주목받지 못할 때도 변함없이 저를 사랑한 이들인데, 작년에 다가온 사람들 중에는 제 명예와 인기, 돈을 보고 관심을 보이는 이가 많아서 저도 모르게 경계심이 생겼거든요. 지금 제 곁에 있는 사람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지금의 상황에 만족해요(웃음).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군가요.
성경 속 다윗이요. 비비드 드림의 원조죠. 초등학생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있기에 이미 승리했다고 생각하고 가장 힘 센 골리앗에게 물맷돌을 던져 이겼거든요. 자신감은 인간이 가진 최고의 감정인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래퍼가 되길 꿈꾸고 있나요.
누가 들어도 좋은 음악을 만드는 세계 최고의 래퍼요. 한국의 국가대표로서 미국 국가대표들과 경쟁하고 싶어요.

‘제2의 비와이’를 꿈꾸는 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좋아하는 것을 찾고 좋아하는 걸 하라. 눈에 보이는 멋짐과 화려함에 현혹되지 말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자기 자신한테 집중하고 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마라. 내 정체성과 내 가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보이는 대로 살지 말고, 본인이 살아가려는 대로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보이는 대로 산다는 건 사람들에게 맞추는 거잖아요. 본인이 꿈꾸고 살아가려는 대로 바라봐야 그 꿈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9월 17일 〈The Blind Star〉를 통해 한층 성숙해진 자신을 세상 밖으로 드러낸 비와이는 10월 14일 서울 광진구 예스24 라이브홀에서 첫 단독 콘서트를 펼친다. 아직 구체적인 명단을 공개할 순 없지만, 한 무대에서 만나기 힘든 쟁쟁한 게스트들이 출연해 그와 멋진 콜래보레이션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음악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도 ‘스웨그(자신만이 가진 특정한 멋과 분위기)’ 넘치는 삶의 여정을 이어가는 ‘독보적인 괴물 래퍼’ 비와이가 앞으로도 꽃길만 걸어가기를 응원한다.

designer Choi Jeong Mi
사진제공 데자부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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