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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끝까지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은 기훈의 선택을 존중해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이정재

정세영 기자

2025. 07. 22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을 이끈 배우 이정재가 시즌 3를 끝으로 5년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이정재를 만나 전 세계의 유례없는 성공을 기록한 시리즈를 떠나보내는 심정을 들었다.

6월 2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3가 넷플릭스 톱 10을 집계하는 93개국에서 모두 1위를 석권했다. 이는 넷플릭스 최초로 공개 첫 주 전 국가 1위라는 전무후무한 성과다.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 투둠의 ‘넷플릭스 톱 10’은 “6월 30일~7월 6일 집계된 ‘오징어 게임’ 시즌 3의 시청 시간은 2억8380만으로, 시청 수는 4630만”이라고 밝혔다. 이는 영어권 쇼, 영어·비영어 영화를 포함해 가장 높은 기록이다. 이와 같은 시즌 3의 인기에 힘입어 시즌 1, 2도 넷플릭스 비영어 부문 10위권에 진입하며 역주행 중이다. 

‘오징어 게임’은 시리즈가 발표될 때마다 스크린을 넘어 전 세계의 문화까지 침투하고 있다. 시즌이 오픈되면 길거리는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들로 즐비하고, 여러 가지 굿즈를 탄생시키는 등 진풍경이 펼쳐진다. 또 글로벌 팬들의 환호에 한국의 뛰어난 제작력은 물론 출연 배우들이 조명받고 있다. 그 중심에는 배우 이정재가 있다. 456번 참가자 성기훈 역을 맡은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 모든 시리즈의 여정을 함께한 주인공이다. 다시 게임판에 돌아온 성기훈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시즌 3는 정체를 숨긴 채 게임에 숨어든 프론트맨(이병헌), 그리고 그 잔인한 게임 속에서 살아남은 참가자들의 마지막 운명을 실감 나게 그려냈다. 

이정재가 이번 시즌에서 보여준 섬세하면서도 압도적인 연기는 극의 심리적 깊이와 긴장감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특히 감정과 고통이 여실히 드러나는 풍부한 표정 연기는 언어를 초월해 전 세계 팬들에게 진한 인상과 감동을 남겼다. ‘이정재’라는 인물 자체가 ‘오징어 게임’의 모든 시즌을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7월 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정재를 만났다. ‘오징어 게임’의 잇따른 흥행으로 들떠 있을 법도 한데, 그는 차분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시리즈의 긴 여정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이정재는 “‘오징어 게임’이 큰 성공을 거뒀지만 매일 이 기분에 젖어 있을 순 없다”며 “감사함과 더욱 커진 책임감으로 앞으로의 작품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로벌 프로모션의 마지막 행선지는 서울이었어요. 광화문광장에서 서울광장까지 퍼레이드를 진행했는데, 기분이 어땠나요.



이병헌 형과 “올림픽 선수 같다. 이래도 되는 거냐?”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웃음). 사실 저희는 설렘보다 걱정이 컸어요. 퍼레이드로 인해 시민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잖아요. 또 날씨가 굉장히 습해서 준비하시는 분들의 고생도 염려됐고요. 행사의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우려되는 점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오징어 게임’ 시즌 3가 넷플릭스 역대급 기록을 썼어요. 뿌듯하실 것 같아요.

일단 큰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개인적으로는 한국 콘텐츠로 넷플릭스에서 이런 거대한 기록을 세웠다는 점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가장 기분 좋은 점은 ‘오징어 게임’에 대한 관심이 한국 콘텐츠로 이어지고 있다는 거예요.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한국의 다양한 작품을 찾는 현상이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고 들었거든요. 정말 뿌듯합니다.

 ‘오징어 게임’ 시즌 1, 2의 흥행으로 이번 시즌에 대한 부담감이 크진 않았나요.

사실 부담감은 시즌 2 촬영 준비할 때 엄청 심했어요. 당시 머릿속에는 ‘어떻게 해야 하지?’ ‘더 잘해야 하는데…’ ‘뭘 더 해야 잘할 수 있는 거지?’라는 고민으로 가득했죠. 시즌 3 역시 이런 부담감이 있었지만 촬영 첫날 다행히 없어졌어요. 집중해서 촬영하니 그간 했던 고민이 자연스럽게 없어지더라고요. 홍보 역시 지금이 훨씬 편해요. 시즌 2 때는 말하면 안 되는 것들이 많았거든요. 지금은 모두 공개돼서 오히려 더 재미있게 임하게 된 것 같아요.

콘텐츠에 대한 반응이 갈리는 것도 사실이에요. 연기 의도가 대중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않아 속상한 마음도 들 것 같아요.

호불호는 작품을 할 때마다 따라오는 숙명 같아요. 안 좋은 반응을 들으면 당연히 속상하죠. 붙잡고 이런저런 설명이나 변명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제가 어렸을 때는 영화를 상업과 예술 섹션으로 나누기도 했어요. 돈벌이 영화를 하는 사람과 예술 영화 찍는 사람으로 구분한 거죠. 하지만 지금은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경계가 희미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오징어 게임’처럼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6월 27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 3는 넷플릭스 최초로 공개 첫 주 전 국가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6월 27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 3는 넷플릭스 최초로 공개 첫 주 전 국가 1위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마지막 기훈의 선택과 행동을 보며 깜짝 놀랐어요. 사실은 대본을 받고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끝에서부터 읽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그래도 꾹 참고 앞부분부터 쭉 읽었는데 예상치 못했던 결말을 맞이해서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나요. 한편으론 ‘시즌 1을 좋아해주신 분들까지 만족시킬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럼에도 ‘오징어 게임’의 시나리오를 쓴 황동혁 감독의 선택에 만족해요. 시즌 3로 ‘오징어 게임’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겠다는 결심이 느껴졌거든요. 사실 이렇게 크게 성공한 프로젝트는 보통 시즌 5를 넘어가잖아요. 몇 년을 더 할 기회가 생겼음에도 그에 구애받지 않고, 작품의 완결에 대해서만 집중한 흔적이 보였어요. 그걸 느끼면서 ‘황 감독이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이 사람 그냥 작가구나’라고 생각했죠. 황 감독은 작가로서 ‘오징어 게임’과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와 같은 주제에 대해 많은 사람과 토론해보고 싶었던 거예요. 

시나리오를 보며 결말 외에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다면요.

준희(조유리)가 아이를 출산하는 장면이요. 시즌 1은 456명이 456개의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잖아요. 게임이 진행되면서 결국 마지막에는 기훈과 상우(박해수), 새벽(정호연) 3명만 남게 되죠. 침대가 딱 3개 놓여 있는 휑한 공간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고요. 이번에도 첫 숙소 장면을 찍으러 스튜디오에 들어갔는데 느낌이 그때와 같았어요. ‘깨끗한 바닥이 피로 물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요. 더 충격적인 건 이곳에서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고 생각했어요.

시즌 3에서 기훈의 활약이 다소 미미해 아쉽다는 반응도 있어요.

맞아요. 하지만 이 또한 작품 전체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즌 1에서는 기훈의 다양한 감정 표현이 주를 이뤘다면, 시즌 2에서는 여러 캐릭터의 활약을 통한 이야기 전달에 중심을 뒀죠. 이러한 흐름에 맞춰 기훈 역시 자연스럽게 관찰자 입장으로 변화한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시즌 3에서 기훈 중심으로 서사가 흘렀다면 작품의 재미와 흥미가 떨어졌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전체를 두고 봤을 때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역할과 활약에 대한 아쉬움은 별로 없어요.

마지막 장면 위해 14개월간 다이어트

준희가 부탁한 아기를 살리기 위해 모든 걸 건 기훈의 결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대다수 사람이 좋아할 만한 엔딩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아요(웃음).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잘 알겠죠. 하지만 황 감독이 이와 같은 엔딩을 통해 의미를 찾고, 성공한 시리즈의 결말을 내겠다는 용기가 멋지다고 느꼈어요. 황 감독의 이런 의도를 시청자들이 잘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결말을 촬영할 때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해당 장면을 시청자들이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집중해서 볼 거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래서 미세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결말 부분인 명기(임시완)와 아이를 안은 기훈의 대립 장면은 ‘오징어 게임’ 시즌 3의 하이라이트 신이라고 불리죠. 이 장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을 것 같아요. 

엔딩만 찍으려고 하루를 모두 빼뒀어요. 그 몇 컷을 찍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했죠. 많은 분에게 이게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걸 입증하고 싶었거든요. 특히 명기와 기훈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 장면은 정말 다양하게 찍었어요. 사실 어떻게 연기를 해도 부족하다는 느낌이었거든요. 스스로 더 잘하고 싶은 욕심과 욕구가 가득했어요. 또 연출자에게도 만족을 줘야 하기에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감독님 역시 여러 번 찍기를 원했고요. 계속 찍다 보면 더 좋은 컷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매 순간 최선을 다했습니다. 

기훈의 초췌한 모습이 담긴 장면도 화제가 됐어요. 

이 컷을 위해 무려 14개월간 다이어트를 했어요(웃음). 마지막 게임이었던 ‘고공 오징어 게임’ 신 촬영 전부터 식사량을 차근차근 줄여나갔죠. 그 후 마지막 촬영 일주일 전부터는 삶은 채소를 하루 2번 나눠 먹으면서 식단을 관리했고요. 엔딩 촬영 이틀 전부터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물만 마셨어요. 시청자들이 마지막 장면에 몰입하려면 기훈의 비주얼도 확실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시청자들에게 ‘오징어 게임’ 시즌 3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나요.

인간다움이요. 황 감독과 생각이 다를 수는 있지만, 저는 끝까지 인간답기를 바라는 기훈의 소신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사실 ‘오징어 게임’은 하나로 규정하기 힘들어요. 감독님은 사회적, 정치적인 스토리라고 하시는데 저는 양심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임했거든요. 부끄럽지 않은 삶을 선택한 기훈의 마음을 시청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진심을 다했습니다. 

시즌을 거듭하며 기훈의 마음은 어떻게 변화하는 것처럼 느껴졌나요.

시즌 3에서 했던 “우리는 말이 아니야”라는 대사는 시즌 1에서도 했었어요. 이 말은 ‘모든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시즌 1의 마지막 게임은 오징어 게임이 아니었어요. 병상에 누워 있는 일남(오영수)이 창밖에 쓰러진 노숙자들을 두고 벌이는 내기였죠. 이에 일남은 인간을 믿지 않았고, 기훈은 누군가 도와줄 거라고 말했어요. 기훈은 이 말로 인해 승리하게 됐고요. 이는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보여준 신이라고 생각해요. 시즌 3에서는 일남과 같은 생각을 가진 영일(이병헌)이 “사람을 믿냐”고 물어요. 당시 고공 오징어 게임은 끝났지만 기훈과 프론트맨이 또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죠. 기훈은 ‘게임은 내가 이겼어’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구하며 영일에게 “사람은 말이 아니야”라고 되짚어줍니다. 하나의 대사가 세 시즌 동안 반복되면서 나온 의미 있는 엔딩이라고 생각해요. 또 사람을 믿는 기훈다운 선택이었고요. 프론트맨에게는 “내가 이런 선택을 할지 몰랐지?”라며 잘못된 생각을 지적하고요. 저는 결론적으로 기훈이 승리했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이 사회가 희망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청자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으면 하는 바람이고요.

 ‘오징어 게임’ 연출자인 황 감독과 오랜 시간 함께하며 어떤 점을 배웠나요.

대본을 직접 보시면 좋겠는데, 지문이 길지 않아요. 그 짧은 문장 안에 본인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밀도 있게 채워넣죠. 대본은 배우는 물론 모든 스태프가 이해해야 실현되는 설계도나 다름없어요. 설계도가 어렵고 복잡하면 각자의 상상으로 해석하게 되고, 현장에서 불협화음이 나오죠. 황 감독은 이런 불상사가 없게 지문을 굉장히 깔끔하고 명확하며 직관적으로 표현해요. 이런 점을 따라 하고 싶은데 쉽지 않더라고요(웃음).

시즌 1부터 3까지 긴 여정을 함께한 배우 이정재. 456번 참가자 성기훈 역할로 압도적인 연기력과 감정선 펼치며 시리즈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시즌 1부터 3까지 긴 여정을 함께한 배우 이정재. 456번 참가자 성기훈 역할로 압도적인 연기력과 감정선 펼치며 시리즈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제2의 이정재를 꿈꾸는 이들이 많아요. 조언해주실 부분이 있다면요.

사적인 자리에서 연기, 행보 등의 고민을 털어놓는 후배들이 있어요. 그러면 전 항상 이렇게 대답해요. “다음은 네 차례야. 그러니까 열심히 해.” 사실 이 말밖에 해줄 게 없어요. 저만의 무기나 특별함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온 것 같아요. 촬영을 준비할 때 ‘이 대사를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어떻게 해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등을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해요. 사실 오랫동안 촬영을 해도 2~10초 내외의 컷만 활용되잖아요. 그 찰나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여전히 고민하죠. 한 장면을 잘 찍으면 그 기운이 다음 컷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한 신의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사소한 디테일까지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징어 게임’을 전후로 배우로서 성장했다고 느끼는 점이 있나요. 

홍보차 해외에 나가면 “‘오징어 게임’으로 네 인생이 어떻게 바뀌었냐”라는 질문을 늘 받아요. 물론 많은 분에게 사랑받고 다양한 기회가 생겼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꾸준히 연기를 이어오니 이 자리까지 왔구나’ 싶죠. ‘오징어 게임’을 통해 상상해본 적이 없는 경험도 해봤어요. 해외에서는 파파라치가 붙기도 하고, 제 사인을 받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리는 분들도 있죠. 또 수많은 상도 받았어요. 제가 젊었을 때는, 남자는 군대 다녀오면 연기자의 길은 끝나는 시대였어요. 드라마의 주연 자리에서 밀려나는 등 불확실함이 컸죠.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어요. 자신의 위치와 상관없이 열심히 하면 누구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에요. 저 역시 마냥 두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노하우를 얻게 됐어요. 그 경험치를 캐릭터에 접목해 다양하게 표출할 수 있었던 작품이 ‘오징어 게임’이라고 생각해요.

#오징어게임 #이정재 #넷플릭스 #여성동아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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