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세계가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순간, 장르의 경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상상력이 태어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이라는 세계적인 대중문화와 한국 전통 설화의 퇴마 서사를 결합해 지금껏 본 적 없는 ‘K-컬처 애니메이션’을 완성해냈다.
세련된 작화와 한국 전통 무속에서 영감받은 악귀 디자인, 치밀한 음악 연출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전 세계 넷플릭스 차트를 석권했고, OST ‘Takedown’은 빌보드 글로벌 차트 1위에 오르며 진정한 ‘글로벌 K-팝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위상을 드러냈다. 등장인물들의 무대 안무는 유튜브 쇼츠와 틱톡에서 #데몬댄스챌린지로 수백만 회 재생되며 유행했고, 팬 아트와 2차 창작 영상이 전 세계 SNS 플랫폼에서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단순히 인기 애니메이션을 넘어 전 세계 팬들이 자발적으로 세계관을 확장하는 중이다.
이 독창적인 상상력의 중심에는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매기 강이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성장한 그녀는 드림웍스와 워너브라더스 애니메이션 등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뒤 첫 장편 연출작으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세상에 내놓았다. 기획부터 연출, 음악 방향과 문화적 고증까지 거의 모든 제작 과정에 깊숙이 참여한 매기 강 감독은 “처음부터 K-팝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여성 히어로가 등장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녀가 만들어낸 새로운 캐릭터와 이야기는 K-컬처가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탄생 과정부터 세계관 설정, 음악 작업, 문화 고증, 캐릭터 창작 그리고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까지, 매기 강 감독이 직접 들려주는 영화의 모든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헌트릭스 멤버, 루미, 미라, 조이.
장르를 넘는 상상력의 탄생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를 실감하고 계신가요.처음엔 솔직히 걱정이 앞섰어요. ‘K-팝이랑 퇴마라는 조합이 과연 괜찮을까?’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특히 한국 관객분들이 어떻게 보실지가 가장 궁금했죠. 문화적으로 너무 튀거나 낯설게 느껴지진 않을까 싶어서요. 작품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막상 공개되고 나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해외 팬분들이 실시간으로 리뷰를 올려주시고, SNS에서는 캐릭터 안무 따라 하는 영상도 막 올라오고요. 틱톡이나 릴스에서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지는데, 그걸 볼 때마다 ‘진짜 많은 분이 보고 계시는구나’ 싶어요. 한국에서도 가족들이 기사 링크나 유튜브 클립을 보내주고, 오랫동안 연락 없던 지인들까지 연락을 주시니까 그때야 실감이 좀 나기 시작했죠. 처음엔 너무 비현실적이라 얼떨떨했는데, 이제는 이 작품이 단순히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넘어서 많은 분과 뭔가 정서적으로 연결됐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게 제일 뿌듯하고 감사한 부분이에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문화적 배경이 감독님의 창작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 즈음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어요. 원래는 1~2년 정도만 있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는데, 그 ‘잠깐’이 대부분의 인생이 돼버렸죠. 다행히 여름방학마다 한국에 와 지내면서 한국 음악, 드라마, 예능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어요. 사촌들과 놀면서 한국어도 계속 쓰고, 한국적인 감성도 몸에 배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저는 늘 두 문화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가지고 자라온 듯해요.
또 아버지가 영화와 예술을 굉장히 좋아하셔서 저는 어릴 때부터 구로사와 아키라, 페데리코 펠리니,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왕가위, 찰리 채플린 같은 감독들의 작품을 자주 봤어요. 그런 경험들이 제게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영상으로 표현하는 일’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던 것 같고요. 상상하는 걸 그림으로 옮기고, 캐릭터를 만들고, 짧은 스토리 쓰는 걸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걸 본 부모님이 ‘이쪽으로 재능이 있나 보다’ 하고 많이 응원해주셨어요.
그래서 캐나다에서 애니메이션 명문으로 알려진 셰리던 칼리지에 진학해 2D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졸업 후엔 드림웍스를 시작으로 블루스카이, 워너브라더스, 일루미네이션 같은 여러 스튜디오에서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 일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다양한 현장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다 보니 어느 순간 ‘이제는 나만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어요. 그 마음이 구체화된 결과물이 바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죠.
‘K-팝 퇴마’라는 전례 없는 조합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처음부터 ‘K-팝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에요. 애니메이션 일을 하면서 늘 마음속에 품은 바람이 있었죠. 바로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 언젠가는 꼭 나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어요. 감독을 맡게 된 이후 처음 구상한 것은 우리 신화에 나오는 도깨비, 저승사자, 물귀신 같은 존재들이었고, ‘이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 정말 멋진 비주얼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해외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상상력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악귀를 사냥하는 히어로’, 즉 데몬 헌터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어떤 캐릭터들이 이 역할을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게 됐죠. 그때부터는 ‘완벽하고 멋진 히어로’보다는 좀 더 인간적이고, 웃기고, 어딘가 덤벙대고, 먹는 걸 좋아하고, 감정도 솔직한 캐릭터, 말하자면 저 자신과 많이 닮은 캐릭터의 히어로를 담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스크린에서 볼 수 없던 새로운 여성 히어로 말이에요.
하지만 데몬 헌터는 정체를 숨겨야 하잖아요. 이들이 현실 속에서 어떤 가면을 쓰고 살아가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K-팝 아이돌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무대 위에서는 반짝이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세상을 구하는 존재라니! 정체를 숨기기에 완벽한 직업이잖아요. 그렇게 K-팝과 퇴마라는, 얼핏 보면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두 요소가 제 머릿속에서 하나로 이어지게 된 거예요.
작품 속 음악이 ‘K-팝이다, 진짜 무대 같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음악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처음부터 목표는 분명했어요. ‘단순히 배경 음악이 아니라 진짜 K-팝 음악처럼 느껴지도록 하자.’ 그래서 실제 K-팝 시장에 내놔도 손색없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추구했죠. 전통적인 뮤지컬처럼 캐릭터가 감정을 노래로 설명하는 방식은 피하려고 했어요. 대신 실제 아이돌처럼 활동하며 직접 곡을 쓰고 무대에서 부르는 방식이 저희 영화와 더 맞는다고 판단했어요.
진짜 K-팝처럼 들리게 만들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작곡가들도 한국에서 활동 중인 K-팝 프로듀서들과 협업했어요. 더블랙레이블의 테디 님과 작업한 것은 제 개인적인 팬심도 있었기 때문이에요. 더블랙레이블의 프로듀서분들, ‘위키드’ ‘백설공주’의 실사 영화에 참여했고 스토리텔링을 잘 이끌어주시는 글로벌 음악 프로듀서 이안 아이젠드래스 등 굉장한 실력자들과 협업했죠. 그 덕분에 실제 K-팝 시장에 나와도 손색없는 음악들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다만 쉽진 않았던 게, K-팝 작곡가들이 뮤지컬 구조를 따라야 하는 작업은 처음이라 한 곡당 7~8번씩 수정하는 일도 있었죠. 그런 모든 시행착오를 거쳐서 완성된 음악이니 많은 분이 더욱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특히 호응이 좋은 한국음식 디테일과 호랑이 더피.
처음 스토리보딩 단계에서 장면마다 음악을 실험적으로 붙여보는 작업을 해요. 그 과정에서 엑소의 곡과 멜로망스의 곡을 사용해봤는데, 너무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음악 사용 허가를 요청했고, 다행히 라이선싱이 이뤄졌죠.
트와이스의 경우는 리퍼블릭레코드 측에서 먼저 제안을 주셨어요. 그분들이 이전에 트와이스와 협업한 경험이 있고, 이 프로젝트가 가진 메시지에 잘 어울린다고 보신 거예요. 저희로서는 정말 기쁜 일이었고요. 트와이스 멤버들이 여러 곡 중 커버하고 싶은 것으로 ‘Takedown’을 직접 골라주셨는데,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신을 찾는 이야기인 영화의 주제와 트와이스 멤버들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잘 어우러진 것 같아요.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 멤버들의 비주얼은 실제 K-팝 아이돌에서 영향을 받은 걸까요.
특정 그룹을 직접 모델로 삼지는 않았어요. 저와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 팀원들이 각자 좋아하는 그룹의 스타일을 보드에 붙이다 보니 그야말로 K-팝 사전처럼 방이 꽉 찼죠. 다양한 스타일이 섞여서 더 입체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K-팝 그룹마다 맡는 ‘역할’이 있잖아요. 맏형, 비주얼 담당, 댄싱 머신, 막내 등 이런 전형들을 조합하면서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가 탄생했어요.
서울 골목과 휴게소 풍경, 배경부터 한국으로 채웠다
디자인과 설정에 한국 전통문화가 세심하게 반영된 것 같아요. 이런 디테일은 어떻게 구현된 건가요.전통문화는 저희 팀 전체가 정말 공들여 담은 부분이에요. 단순히 ‘한국적인 느낌’을 내기보다는 실제 한국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고 싶었죠. 팀원 10여 명과 함께 직접 한국을 방문해 북촌, 민속촌, 명동 골목까지 발로 뛰며 취재했어요. 골목길의 경사도, 벽돌의 질감, 간판이나 포장지에 적힌 글자까지 전부 꼼꼼히 살폈고, 그런 현장감 있는 디테일을 영화에 고스란히 녹여냈어요.
작품 속 음식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어요. 한국 문화에서 음식을 빼놓을 수 없잖아요. 어린 시절 즐겨 먹던 국밥 같은 음식들을 애니메이션에서 꼭 한번 표현하고 싶었죠. 사실 애니메이션에서 음식을 표현하는 게 쉽지는 않거든요. 그런데도 팀이 끝까지 도전해줬어요. 또 하나 신경 쓴 부분은 캐릭터의 입 모양조차 영어 대사임에도 한국어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애니메이터들이 따로 작업해줬어요. 이런 세세한 디테일까지 챙긴 건 모두가 ‘진짜 한국’을 담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예요. 수저 밑에 냅킨을 까는 습관처럼 작지만 리얼한 디테일도 빠짐없이 담아내려고 했어요. 이 작품은 정말 팀 전체가 한국의 정서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한마음으로 움직인 결과물이에요.


저승 아이돌, 사자 보이즈.
사실 처음엔 이 친구들이 이렇게 큰 역할을 하게 될 줄 몰랐어요. 민화 속 호랑이 그림이 너무 유쾌하고 매력적이어서 관련 이미지들을 모아두기 시작했죠. 애니메이션에서 ‘진우’가 ‘루미’에게 연락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옛사람인 진우가 갑자기 문자를 보낸다는 건 좀 어색하잖아요. 그래서 “호랑이가 편지를 전달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렇게 탄생한 거예요. 눈이 3개인 까치 캐릭터는 아트디렉터님의 아이디어예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어디선가 계속 지켜보고 있는 듯한 신비로운 존재처럼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거든요. 실제로 작업하면서 두 캐릭터 모두 팀에서도 너무 사랑받았고, 저 역시 정말 애착이 가는 존재들이에요.
K-팝을 비롯한 한국 문화가 이토록 전 세계의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한국인들이 지닌 ‘열정’이 그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일이든 감정과 에너지를 온전히 쏟아붓는 그 진심이 세계인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거든요. 요즘은 ‘K’라는 말만 붙어도 사람들이 반응하잖아요. K-팝부터 K-뷰티, K-드라마까지. 이런 흐름을 보면서 ‘우리 문화가 이제는 정말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갖게 되었구나’라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영어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지만 한국 전통과 감성이 진하게 담긴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에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캐나다로 이민 갔고, 그 후로 북미에서 쭉 살아왔어요. 그래서 늘 두 문화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고, 그 감정이 저의 창작에도 큰 영향을 줬죠. 이번 작품은 그런 제 삶의 결을 고스란히 담은 결과물이에요. 영어로 대사를 주고받지만, 캐릭터들의 입 모양은 한국어처럼 보이도록 작업했어요. 간판이나 포장지, 음식 디테일까지 모두 한국적인 정서가 살아 있어요.
저는 ‘영어로 한국 문화를 전하는 것’이 저한테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작품이 미국 스튜디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의 한국 문화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수용의 대상이 아니라, 전파하고 창조하는 문화의 주체가 된 거죠. 그런 흐름 안에서 저 역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서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통해 궁극적으로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지닌 상처나 결핍, 두려움을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길 바랐어요. 루미와 진우는 겉으론 화려해 보여도 내면에는 외로움과 불안이 가득한 인물들이잖아요. 완벽한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연결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어요.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용기 그리고 그 안에서 진짜 나로 살아가려는 태도, 이 영화가 그런 마음을 북돋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앞으로도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을 이어가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물론이에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저에게 시작일 뿐이에요. 한국에는 여전히 수많은 미지의 이야기들이 있어요. 특히 여성 중심의 설화나 공동체적인 치유의 서사 등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형식은 꼭 애니메이션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실사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장르일 수도 있죠. 중요한 건 그 이야기가 왜 지금 필요하고, 어떤 울림을 줄 수 있느냐는 점이에요. 앞으로도 문화적 뿌리를 기반으로 하면서 새로운 세대와도 연결될 수 있는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가고 싶어요.
#케이팝데몬헌터스 #매기강감독 #헌트릭스&사자보이즈 #여성동아
사진제공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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