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은 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다. 터프함과 섹시함의 사이, 어디에도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 않다. 터프함이 지나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어색할 수 있고, 섹시함이 지나치면 능글맞고 느끼할 수 있는데 정우성은 그 중간 지점에 있다. 영화 ‘비트’ ‘태양은 없다’에서 반항하는 청춘의 상징으로, CF에서는 세련미 넘치는 섹시하고 부드러운 남자로 뭇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런데 그가 망가졌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똥개’에서 그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무릎이 튀어나온 싸구려 체육복 바지를 입고 콧물을 흘리며 아무데서나 널브러졌다. 그에게서 멋진 모습을 기대한 사람들한테는 분명 배반이다. 그런 만큼 그의 변신은 흥미롭다.
“왜 망가진 역할을 했냐고요? 저는 제 이미지가 고착되는 걸 원하지 않거든요. ‘똥개’의 철민처럼 망가지는 인물이라도 초라한 이미지보다는 그 인물이 갖는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 내가 맡았던 배역은 대개 닫혀 있었는데 철민은 열려 있었어요. 처음 시나리오만 읽었을 때는 철민의 일부분만 마음에 들었는데 영화를 촬영할수록 철민에게 점점 동화되더라고요. 따뜻하고 풋풋한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죠.”
언제라도 철민보다 더 심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태세다. “영화 속에서 표현을 다양하게 하고 싶다”며 “표현을 자유롭게 하는 인물이라면 얼마든지 연기할 마음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턱수염과 콧수염을 살짝 기른 그의 모습은 색다른 매력을 풍겼다.
“촬영하면서 사투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경상도 사투리는 악센트가 강하잖아요. 말의 뜻을 알면서 악센트를 넣어야 하는데 처음에는 모르고 악센트를 넣으니까 어색하더라고요. 그래서 연습을 많이 했는데 곽경택 감독님이 도움을 주셨어요. 대본 리딩도 같이 하고 곽감독님이 직접 사투리를 녹음해줘서 그 테이프를 받아서 대사 연습을 했죠. 나중에는 사투리가 입에 배니까 저절로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철민이란 인물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 채 긴장하면서 연기를 했다. 그랬더니 어느날 곽경택 감독이 술 마시러 가자고 하더란다. 이에 그가 “내일 촬영 있다 아이가” 하고 튕겼더니 “니는 별로 하는 것도 없다 아이가” 하고 말을 해 그날 술을 엄청 마셨다.
그 뒤로는 긴장이 풀어져서 철민이란 인물을 즐겼고 촬영장에서도 철민의 아버지 역을 맡은 김갑수에게 “아버지, 아버지” 하고 외치며 따라다녔다. 김갑수가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손사래를 쳐도 영화 속 부자지간의 친밀감을 살리기 위해 계속 김갑수를 “아버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영화 ‘똥개’는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얘기예요.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하고 밥상의 달걀 프라이를 놓고 싸울 정도로 극중의 철민은 아버지와 거리낌이 없어요. 아버지와 별로 대화가 없는 저는 영화를 하면서 철민과 아버지의 관계가 부러웠죠. 언젠가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영화에서처럼 친구 같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결혼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그는 TV의 한 연예프로그램에서 “여자친구를 생각하면 결혼을 빨리 해야 되는데 일로 뭔가를 이룬 상태에서 결혼하고 싶어서 미루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 ‘똥개’에서 유감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준 정우성.
다른 연예인들 같았으면 여자친구가 있어도 인기를 위해서 없는 척했을 텐데 정우성은 달랐다. “여자친구가 있다”고 당당히 밝혔고 그의 솔직함이 팬들의 눈에는 더 매력적으로 비쳤던 것도 사실이다. 그는 “배우라고 해서 왜 남성과 여성까지 포기해야 하냐”며 “여자친구가 있으니까 있다고 말한 것뿐”이라고 했다. 참 솔직하고 당당한 남자다.
그는 ‘술’에 대해서도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술을 마실 때는 주로 소주를 마시는데 술이 몸에 잘 받는 날에는 많이 마시고 안 받는 날에는 적게 마신다고 한다. 술버릇은 비교적 얌전한 편이지만, 기분이 좋을 때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만취한 상태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는 휴대전화에 다운받아 놓은 노래를 자그마치 1시간 반이나 들려준 것.
“10년 뒤의 제 모습을 상상해보면 상상이 안돼요. 놀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어요. 저는 감독이 꿈이에요. 10년 전 무지한 상태에서 시작해 현장에서 연기를 배웠듯 연출 역시 그렇게 배우고 있어요. 연출을 따로 공부하고 있진 않고요. 현장에서 모든 걸 다 배운 느낌이에요.”
하지만 그가 자신의 꿈인 영화감독이 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한테 듣고 싶은 말은 ‘영화배우’라고 한다. 그만큼 연기를 하는 것에 애정이 있다는 뜻인데 연기 잘하는 영화배우로 불리는 것이 그의 바람이기도 하다.
기존의 깔끔하고 세련된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영화 ‘똥개’로 새롭게 이미지 변신을 한 정우성, 그 안에는 너무도 많은 ‘다양함’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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