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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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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웨딩, 소확행, 이나영의 ‘뷰티풀 데이즈’

EDITOR 김지영 기자

2018. 11. 26

노 개런티로 저예산 영화 출연. 10대 아들을 둔 탈북민 출신의 술집 마담 역할. 6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이나영의 선택은 뜻밖의 연속이다. 2015년 원빈과 결혼 후 체험한 여성의 무게를 영화 속에 투영해낸 그에게 그동안 쌓인 궁금증을 던졌다.

이나영(39)은 다작 배우가 아니다. 1998년 청바지 CF 모델로 데뷔한 후 20년 동안 연기자로 살았지만 그의 필모그래피에 이름을 올린 작품은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 20편이 조금 넘을 뿐이다. 그럼에도 ‘네 멋대로 해라’ ‘아는 여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에서 보여준 인상 깊은 연기로 ‘배우’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11월 21일 개봉된 그의 스크린 복귀작 ‘뷰티풀 데이즈’도 여러모로 기억에 남을 만하다. 그가 ‘하울링’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영화고, 노 개런티로 출연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16세에 탈북 후 연변 조선족 남자와 결혼한 주인공 ‘엄마’ 역을 맡았다. 촌스럽고 수수한 10대 소녀, 중국의 술집에서 일하는 도발적인 20대 여자, 한국 남자와 동거하며 술집을 운영하는 30대 마담 등 20여 년에 걸친 굴곡진 삶을 통해 전보다 한층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극에서는 19세 청년의 엄마지만 실제 그에겐 세 살배기 아들이 있다. 2015년 동료 배우 원빈과 결혼한 그해 겨울 태어난 아이다. 그동안 자식을 키우며 몸에 밴 모성애의 발로일까. ‘뷰티풀 데이즈’에서 그가 14년 만에 재회한 아들에게 건네는 눈빛에는 건조한 말투와 달리 촉촉함이 서려 있었다. ‘엄마’ 이나영이 더욱 궁금해진 이유다.

쉬는 동안 섭외가 들어온 작품이 많다고 들었어요. 그럼에도 공백기가 길어진 이유가 있나요. 

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건 아니에요. 그동안 출연 제의를 받은 작품들이 모두 훌륭했지만 제가 잘할 수 있는 작품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었을 뿐이에요. 



이번 영화는 확신을 줬군요. 

원래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좋아해요. 내용도, 구성도 좀 거친 듯한 영화요. 벨기에 영화 제작자 다르덴 형제의 작품들처럼요.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을 보다 보면 그 안에 들어가서 살아보고 싶어요(웃음). ‘뷰티풀 데이즈’는 예전에 제의가 왔어도 출연했을 것 같아요. 전체적인 구성과 엔딩 신도 마음에 들었고 특히 시나리오의 흡인력이 대단했어요. 시나리오를 쓴 윤재호 감독님을 만나 대화를 해보고 싶었어요. 어떤 엄마, 어떤 모성애를 그리고 싶은지. 또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싶어하는지가 저한테는 되게 중요했거든요. 단편 영화를 주로 만들던, 장편은 처음인 신인 감독이라는 것밖에는 몰랐기 때문에 전작인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찾아 봤는데 거기서 답이 나오더라고요. 이런 소재에 깊은 관심을 갖고 5년 동안 준비한 작품이었어요. 

노 개런티 출연이 훈훈한 화제가 됐어요. 


이런 다양성 영화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는데 저예산이 걸림돌이 돼선 안 되겠더라고요. 이번 영화를 통해 예산이 적어도 웰메이드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화 초반 비현실적인 외모가 몰입을 방해했어요. 뒷골목 술집 마담 옷차림으로 ‘워킹’하는 모습조차 근사해 보이더군요(웃음). 

제 나름대로는 감각적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각별히 신경을 썼어요. 이나영 하면 떠오르는 선입견을 떨치고 온전히 그녀가 되기 위해서요. 직장이 술집이니 수수한 옷차림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빨간 재킷에 빨간 머리로 스타일링을 하고, 은색 원피스 같은 경우는 시장에서 천을 떠다가 별도 제작했어요. 염색도 일부러 검은 머리가 드문드문 보이게 했고요. 촬영용 의상은 대부분 스타일리스트 언니와 함께 구제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준비한 거예요. 그렇게 발품 팔아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어요. 

출산 후에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비결은 뭔가요. 

진짜 제가 (군살을) 잘 가려요. 남자 옷을 잘 입고. 가리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에요. 하하하. 

영화를 보면서 감정 표현이나 눈빛이 전보다 훨씬 깊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실제로 아이를 키우며 경험한 다양한 감정들이 극 중 ‘엄마’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나요. 


엄마로서의 경험이 제 감정선에 영향을 미치긴 했을 거예요. 근데 저희 아이가 아직 어려서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하진 못했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사실 엄마보다 여성에 주안점을 두고 연기했어요. 10대에 탈북하면서 생존을 위해 고초를 견디고, 20대엔 아이를 버리고 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여자. 다른 선택지가 없어 주어진 환경에 순종하며 기계적으로 살다 보니 30대엔 굳은살처럼 감정이 무뎌진 여자거든요. 연기할 때는 그 여자의 역사를 다 안고 마음을 눌러 눈빛으로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제가 눈동자 연기를 좋아해요. 하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요. 

주인공을 탈북시킨 후 계속 괴롭히는 역을 맡은 이유준 씨가 실제로는 마음이 참 여려요. 촬영할 때마다 엄마가 너무 가엽다며 울먹이곤 했죠. 제가 NG를 많이 낸, 가족들과 식사하는 신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제 남편 역을 맡은 오광록 선배님이 음식을 잘 못 집어 곤혹스러움을 참느라 얼굴 근육을 실룩거리는 모습을 보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스쿠터를 몰고 다니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하울링’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 오토바이 운전 면허증을 따둔 게 도움이 됐어요. 촬영에 필요한 면허는 웬만하면 직접 따요. 대역도 안 쓰려고 하는 편이고요. 탈북자들이 쓰는 연변 사투리도 이번 작품을 하면서 배웠어요. 영화에 같이 나오는 탈북자 출신 배우에게요. 

남편 원빈 씨는 영화를 어떻게 평했나요. 

개봉 전 예고편을 보고 나서 “느낌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출연 결정을 하기 전 시나리오를 한번 봐달라고 했는데 그때는 “너무 슬프다”고 했어요. 제가 한 역할에 대해서도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인물이지만 잘 어울린다”고 했고요. 판단이 서지 않거나 헷갈릴 때는 남편과 상의해요. 예를 들어 ‘이 장면에서 이 옷이 어떨까?’ 하는 식으로요. 그럼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객관적이고도 성의 있는 답을 해줘요. 남편에게 이번 영화는 꼭 돈 주고 보라고 했어요. 관객이 최소 10만 명은 들어야 모두가 행복하거든요. 하하하. 

영화의 주된 배경이 시골이더군요, 

엄마 아빠 고향이 다 시골이어서 어릴 때부터 시골로 많이 놀러 갔어요. 시골에 가면 정겨워서 좋아요. 푸른 자연을 좋아해요. 

결혼식 장소도 원빈 씨 고향인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청보리밭이었잖아요(웃음). 당시까지 우리나라는 식장에서 결혼식을 하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다 보니 두 분의 스몰 웨딩이 엄청난 화제를 모았죠. 그곳에서 식을 올린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텐데요. 

되게 좋아했던 공간이고 기본에 충실하고 싶었어요. 국수를 먹고 싶었어요. 결혼식 하면 국수잖아요. 하하하. 그 일이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많은 분들이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했어요. 

요즘 엄마들의 가장 큰 고충이 육아라고 해요. 이나영 씨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듯합니다. 

저도 육아가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남편이 육아를 함께하고 제가 바쁠 땐 가사도 거들어줘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내가 못 미더워서 그런 건가. 하하하. 이유식은 다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쉴 때 즐기는 취미는 뭔가요. 

유일한 취미가 영화 보는 거예요. 호러만 빼고 웬만한 장르는 다 좋아해요. 최근 개봉한 작품 중에는 ‘너는 여기에 없었다’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은퇴작인 ‘팬텀 스레드’를 재미있게 봤어요. 영화를 보면서 큰 위안을 받아요. 감독의 시선이 배우에게 집중된 작품을 볼 때는 ‘나도 저런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나기도 하고요. 

영화를 극장에 가서 관람하나요. 

상영 중인 작품은 될 수 있으면 극장에서 봐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극장에 가는 걸 꺼리진 않아요. 가는 곳이 다양하지 않을 뿐이지, 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는 편이 아니네요. 

이번 영화를 보면 전체적인 스토리는 어두운데 엔딩이 희망적이에요. ‘뷰티풀 데이즈’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그런 이유라고 들었어요. 이나영 씨가 추구하는 뷰티풀 데이즈는 어떤 건가요. 

‘뷰티풀 데이즈’는 행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결국 행복하기 위해 뭔가를 추구하는 거고요. 어떤 사람은 그 행복을 위해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명예나 또 다른 것을 갈망하기도 하죠. 하지만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에요. 아무리 좋은 여건에서 살고 있어도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요. 요즘 그것을 ‘소확행’이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추구하는 뷰티풀 데이즈는 소확행이 있는 삶이에요. 

이나영 씨에게 최고의 소확행은 뭔가요. 

먹는 거요. 하하하. 그래서 다이어트를 못 해요. 거하지 않더라도 뭔가 하나를 맛있게 먹으면 그게 큰 기쁨을 주더라고요. 

10대, 20대, 30대 때의 행복의 기준이 다 달랐을 것 같아요. 


10대부터 20대 초반에는 큰 성과를 이뤄내는 것이 행복인 줄 알았어요. 특히 10대 때는 정말 막연하게 살았어요. 중간고사, 기말고사 보기에 급급했고 정신없이 살아서 행복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청바지 브랜드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한 후에는 저에 대한 생각들을 더 많이, 깊이 하면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 행복의 원천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됐고요. 

현재 행복 지수는 100점 만점에 몇 점인가요. 

조금 전에 단팥죽을 먹었으니 88~89점은 될걸요. 하하하. 저는 이렇게 사람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해요.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저도 모르게 힐링이 되더라고요. 

힘들 때 마음을 다잡아주는 좌우명이 있나요. 

그런 좌우명은 없어요. 대신 난감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는 제 자신에게 가장 솔직했던 것 같아요.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궁극적인 원인이 보이거든요. 그런 다음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해 최선의 해법을 찾죠. 

새해에 방영되는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이종석 씨와 함께 촬영하고 있다죠. ‘도망자 Plan. B’ 이후 8년 만에 드라마를 찍는 소감이 어떤가요.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이번 영화와 달리 굉장히 밝은 로맨틱 코미디예요. 촬영이 4~5회 차 진행됐는데 정말 많이 긴장돼요. 화질이 너무 좋아져서 포커스 아웃 좀 해달라고 계속 조르고 있어요(웃음).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어떤 배우를 좋아하면 그 사람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저도 궁금증이 이는 배우이고 싶어요. 제가 작품 속에서 어떤 눈빛과 연기로 관객에게 다가갈지 궁금해지는 배우요.

디자인 김영화 사진제공 이든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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