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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한국의 영원한 친구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

EDITOR 김정안 동아일보·채널A 워싱턴 특파원

입력 2019.06.17 17:00:01

한국의 영원한 친구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
영상 20℃를 오르내리는 따뜻한 5월의 첫날 오후. 미국 워싱턴의 외교 공관이 밀집한 거리, 매사추세츠가에 위치한 한국문화원을 찾았다. 

마크 리퍼트(46) 전 주한미국대사가 매주 한국어를 배우는 곳이다. 한국 관련 이야기를 한 보따리 풀어놓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을 듯해 리퍼트 전 대사에게 만남의 장소로 제안했다. 평일 오후임에도 흔쾌히 이곳을 찾은 그는 먼저 악수를 청하며 약속 시간보다 5분여 늦게 도착한 이유를 설명했다. 

“우버(한국의 카카오택시와 같은 개념의 일반차량)를 타고 오는데 운전기사가 한국분이었어요. 저를 알아보고 기념 촬영까지 요청하셔서 조금 지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웃음).”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여전히 인기가 높은 것 같다고 운을 떼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제게는 두 개의 인생이 있는 것 같아요. 절 알아봐주시고 좋아해주시는 한국분들을 만났을 때와 아무도 저를 모르는 이곳 워싱턴에서의 삶이오. 하하.” 



하지만 이런 겸손한 답변과 달리 그는 주한미국대사로 취임하기 전부터 이미 서울과 워싱턴 외교가에서 화제를 뿌리던 유명 인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명문 스탠퍼드대 졸업 후 1999년 의회 보좌관으로 입성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상원의원 시절 외교담당 정책 보좌관을 역임했으며, 백악관 국가안보부 보좌관 등을 거쳐 국방장관 비서실장을 지내다 2014년 10월 한국으로 부임했다. 게다가 자신과 다른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 출신인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에게까지 아끼는 참모로 인정받을 만큼 뛰어난 전문성과 소탈한 매력을 갖추기도 했다. 그의 한국 부임 소식을 듣고 헤이글 당시 장관은 이슬람 국가(IS) 격퇴전 등 바쁜 일정에도 워싱턴 인근 최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나 장도를 축하해줬다고 한다. 

역대 최연소 주한미국대사였지만 이런 배경 덕분에 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 중에서도 몇 안 되는, 당·정·청을 두루 경험한 인사라는 점도 한몫했다. 치열한 파워게임이 일상인 워싱턴에서 의원과 보좌관으로 인연을 맺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 리퍼트 전 대사는 함께 농구를 즐길 만큼 막역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2005년 러시아 출장 중 짐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예기치 않은 대기시간이 발생하자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이 리퍼트 당시 보좌관의 운동화를 빌려 신고 일대일 농구 게임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피습사건 이후 더욱 단단해진 한국 사랑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 2014년 10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재임한 최연소 주한미국대사.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다양한 경험만큼이나 화려하다. 
하지만 미국 워싱턴 현지에서 만난 마크 리퍼트 전 대사는 
자신의 인생에서 추억하고 싶은 ‘대박’은 “한국과의 인연이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최측근, 2014년 10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재임한 최연소 주한미국대사.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다양한 경험만큼이나 화려하다. 하지만 미국 워싱턴 현지에서 만난 마크 리퍼트 전 대사는 자신의 인생에서 추억하고 싶은 ‘대박’은 “한국과의 인연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리퍼트 전 대사가 한국인들에게 깊이 각인된 결정적 계기는 2015년 3월 발생한 피습사건이다. 그해 3월 5일 아침,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가 주최한 조찬 강연회에 참석한 리퍼트 당시 대사는 그 현장에서 문화운동 단체인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 씨에게 습격을 당했다. 김씨가 과도를 휘둘러 오른쪽 턱 위 12㎝ 자상 등 총 5곳에 상처를 입었고 선혈이 낭자한 채 근처를 지나던 차를 타고 황급히 병원으로 이송된 것이다. 

그 모습을 접한 이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한미동맹에 대한 피습이다’ ‘양국 관계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된다’ 등 많은 우려를 쏟아냈지만 정작 그는 차분하게 대처했다. 그가 피습된 직후 기자는 그의 부친과 통화한 일이 있다. ‘리퍼트 대사 가족의 반응을 취재하라’는 데스크의 지시 때문이었는데 국제전화로 피습당한 아들에 대해 물어야 하는 상황이 난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 오하이오에서 변호사로 일해 온 부친 제임스 리퍼트 씨도 당시 통화에서 차분한 어조를 유지하며 “(아들) 마크가 겪은 비극적 사건도 명예로운 공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개인이 행한 일이니만큼 한미 간의 우정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답했다. 

봉합수술을 받은 뒤, 닷새 후 퇴원한 리퍼트 당시 대사는 부친의 말처럼 누구도 탓하지 않았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오히려 한국인들의 따뜻한 격려와 응원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가 ‘한미동맹의 영웅’으로 많은 이들에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마주한 그의 얼굴엔 흉터가 선명했다. 그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처음엔 모든 게 멍했어요. 그러다 우리 대사관에서 일하는 공보관이 피 흘리는 저를 보고 펑펑 울더라고요. 그 순간 저마저 무너지면 안 되겠다 싶어 정신을 바짝 차린 덕분에 상대적으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2007~2008년 해군 예비역으로 이라크에 파병돼 네이비 실(Navy SEAL) 소속 정보장교로 복무했다. 당시 공로를 인정받아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2009~2011년엔 아프가니스탄에서 재복무했다. 그때의 경험이 피습 직후 평정심을 찾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군에서 훈련받은 대로 돌발 상황에 대처했을 뿐입니다. ‘첫째 침착할 것, 둘째 추가 공격 여부를 파악할 것, 셋째 공격받은 장소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날 것, 그리고 병원이 가까이 있으니 빨리 치료받을 것’이라는 말을 되뇌었죠.” 

물리적 공격이 아니더라도 살다 보면 갑자기 위기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이 때문에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는지 묻자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를 포함해 누구에게나 외롭고 힘든 순간은 찾아옵니다. 하지만 모두의 경험이 같을 수 없기에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상황에서든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세상이 이야기하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에게 편안한 방법이 답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아들 세준과 함께 한국어 배우고 노래 들어

한국의 영원한 친구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
그는 피습사건이 있은 후 한국인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2014년과 2016년 한국에서 태어난 아들 세준(제임스 윌리엄)과 딸 세희(캐럴라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리퍼트 가족의 한국 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며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공개했다. 두산 베어스의 팬임을 자처하며 아내와 함께 야구장을 찾아 한국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기도 했다. 모두 부인 로빈 여사의 지지와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두 사람은 2000년 미국 상원 세출위원회에서 함께 일하다 사랑에 빠졌고 결혼에 골인했다. 이후 로빈 여사는 금융 서비스 회사를 거쳐 남편의 대사 재직 시절에도 유나이티드헬스그룹 임원으로 일하며 보건 분야에서 자신만의 커리어를 이어갔다. 이들 부부는 서로의 ‘성장’을 격려하는 동반자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늘 노력한다.


마크 리퍼트 전 대사(왼쪽)는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매주 한국어를 배운다.

마크 리퍼트 전 대사(왼쪽)는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매주 한국어를 배운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고별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여러 번 훔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에 아내와 단둘이 왔지만 남매를 얻어 넷이 되어 돌아간다는 생각에 잠시 감정이 복받쳤던 것 같습니다. 잠시나마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 위급한 순간을 맞았던 피습에서부터 이후 한국민들의 따뜻한 응원을 받으며 행복했던 수많은 추억까지 한꺼번에 떠올랐어요. 이제 한국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프기도 했고 또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설렘도 섞여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고별 기자회견에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며 한국과의 끈을 놓지 않겠다던 그는 지금까지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대사 임기를 마친 뒤 미국 워싱턴으로 돌아온 그는 보잉사 부사장직을 수행하며 비상임으로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도 일하고 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퇴근 후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따로 한국어 개인교습까지 받을 정도로 한국어 공부에 열성적이다. 최근엔 아들 세준도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여러 언어 중 한국어를 아들에게까지 배우게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한국에서 우리 가족이 만들어졌고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곳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언어 자체가 정말 과학적이고 아름답기 때문에 아이들도 꼭 능숙하게 구사하면 좋겠습니다. 

한국어 중 가장 좋아하는 단어나 인용 문구를 떠올린다면요. 

‘대박’요. 참 유쾌해서 좋아하는 단어예요. 

영어로 잭팟(Jackpot)과 같은 개념인 대박을 말하는 건가요. 

네. 대박! 대박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한국인들도 같이 즐거워 해주시더군요. 

한국에서의 근무 경험도 본인의 삶에 대박이 되었나요. 

네, 정말 그래요. 대박!


한국의 영원한 친구 마크 리퍼트 전 주한미국대사
최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미쓰 코리아’에서 마크 리퍼트 전 대사(왼쪽)가 2015년 피습사건 이후 한국인들이 보여준 따뜻한 관심에 대해 아내에게 얘기하고 있다.

최근 방송된 tvN 예능 프로그램 ‘미쓰 코리아’에서 마크 리퍼트 전 대사(왼쪽)가 2015년 피습사건 이후 한국인들이 보여준 따뜻한 관심에 대해 아내에게 얘기하고 있다.

그는 한국 프로야구를 향한 애정도 각별하다. 휴대전화 커버가 두산 베어스 로고로 장식돼 있을 만큼 이 구단의 열성 팬이다. 아침에 눈을 떠 애완견을 산책시키며 두산 경기나 동향을 살피는 게 일상이 되었다는 그는 퇴임 후에도 3년 연속 개막전 관람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에는 서울, 부산, 광주 등 4개 구장에서 11경기를 관람했다. 

“경기뿐 아니라 응원을 모두 함께 즐기는 분위기 자체가 좋아요. 어디서든 한국 야구 팬들을 만나 대화할 수 있고요. 올해도 기회가 닿는 대로 한국을 찾아 경기를 관람할 예정입니다.” 

한국 사랑은 세준, 세희에게도 대물림 중이다. 퇴근 후 가족들과 어울려 한국 프로그램을 시청하기도 하고 한국어 노래 등을 찾아 들으며 아들 세준과 함께 한국어 공부를 하기도 한다. 

최근엔 추억의 맛을 찾아주고 하룻밤을 얻어 자는 콘셉트의 tvN 예능 프로그램 ‘미쓰 코리아’에 출연해 국내에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모든 출연자들이 저희 집으로 와 요리를 선보였는데 무척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출연자 중 한 분인 박나래 씨는 저를 ‘세준이 아빠’라고 부르더라고요. 모두 저를 친숙하게 대해줘 고마웠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리퍼트 전 대사는 요즘 한국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담은 노래가 있어 즐겨 부른다고 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고백(?)’이었다. 

“어젯밤에도 유튜브를 보면서 아들 세준과 함께 그 노래를 따라 불렀어요. 정말 그뤠잇(Great)한 노래예요.” 

그 말끝에 한 소절을 부탁하자 그는 기꺼이 노래를 들려줬다. 그의 애창곡은 가수 나미의 ‘영원한 친구’였다. “오 영원한 친구, 오 행복한 마음, 오 즐거운 인생, 예~!” 

다소 서툴긴 했지만 진심이 전해지는 열창이었다. 그는 한국의 ‘영원한 친구’임이 분명했다.


기획 김지영 기자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시스 디자인 최정미
사진제공 연세대학교 tvN ‘미쓰 코리아’ 캡처




여성동아 2019년 6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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