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민(36)이 최근 잇단 연기 변신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아는 와이프’에서 억척스러운 워킹맘을 연기한 데 이어 10월 11일 개봉된 영화 ‘미쓰백’에서는 15년 연기 내공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릴 적 친엄마에게 학대를 당하고, 고교 시절 스스로를 지키려다 전과자가 된 불우한 청춘 ‘백상아’ 역을 맡은 그는 짧은 탈색 머리에 진한 화장을 하고, 몸에 딱 달라붙는 미니스커트 차림으로 극에 등장한다. 비주얼도 강렬하지만 육두문자와 담배를 입에 달고 사는 모습은 힘들게 살아온 상아의 인생을 대변하는 듯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상아가 아동 학대 피해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의 묵직한 여운을 안고 고즈넉한 가을날 오후, ‘미쓰백’ 한지민을 만났다.
지금까지 한 작품 중 가장 무거운 영화더군요. 출연 동기가 뭔가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런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어요. 시나리오 자체가 여느 작품과 달랐어요. 이지원 감독님이 스토리를 다 직접 쓰셨는데 인물들의 감정이 아주 정교하고 섬세하게 묘사돼 있었어요. 시나리오를 덮었을 때 백상아와 지은이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래서 매니저에게 감독님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죠.
이지원 감독도 한지민 씨를 만나보고 싶어했나요.
감독님은 원래 저를 캐스팅할 마음이 없었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뒤 마음이 바뀐 거예요. 2016년 영화 ‘밀정’ 배우들과 함께 무대 인사를 마치고 송강호 선배님의 단골 호프집에 간 적이 있어요. 감독님도 그곳에 계셨던 거죠. 그날 제가 블랙 맨투맨에 슬랙스를 입고 옆구리에 클러치백을 일수 가방처럼 끼고 지나가는 모습이 감독님의 눈에 슬로비디오처럼 들어왔대요. “저 여자가 누구야?” 했더니 동석한 연출부가 “얼마 전에 감독님이 물망에 오른 배우 리스트를 보고 ‘됐다 그래!’ 하신 그 한지민”이라고 하더래요. 이후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님을 만나 그런 사연을 듣게 됐죠. 그렇게 영화처럼 만났고 서로 호감을 갖고 있어서 그날 바로 의기투합했어요(웃음).
작품 준비를 하면서 염두에 둔 점은요.
배우로서 그동안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컸는데 그걸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품을 통해 연기로 보여주는 것이더라고요. 이번 작품에선 상아가 살아온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였어요. ‘엄마한테 버림받은 뒤 상아가 어떻게 생활했을까? 전과자가 되고 나서는 세상을 어떤 생각으로 살아갔을까? 자살 시도는 안 했을까? (상아를 도와주는 형사) 장섭(이희준)은 어떤 감정으로 상아 옆에 있으며 상아는 장섭에게 어떤 감정일까?’ 하고 계속 질문을 던져봤죠. 상아의 감정이 쌓이지 않은 채로는 표현해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거든요.
영화를 보니 상아처럼 거친 캐릭터도 잘 어울리더군요. 그동안 다른 작품에서 한지민 씨를 허투루 쓴 듯합니다(웃음).
하하하. 연기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저란 사람 자체가 바뀐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예전 같으면 엄두를 못 냈을 거예요. 데뷔 초반에는 연기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었어요. 이왕 시작했으니 조금이라도 덜 혼나자는 심정으로 열심히 촬영에 임했죠. 그러다 제 연기가 부끄럽고 고민되는 시기가 찾아왔어요. 같은 상황에 놓인 비슷한 캐릭터를 기시감이 들지 않게 연기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더라고요. 그때 만난 영화가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이에요. 그 작품에 조선 최고의 거상으로 출연하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재미를 느끼게 됐죠.
고교 시절부터 꾸준히 봉사 활동을 하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한 그는 연기자가 된 후에도 소외 계층을 돕기 위해 10여 년째 국제 구호단체 JTS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드라마 촬영 도중 화상을 입은 보조 출연자를 그가 직접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한 일이나 시각 장애인을 위해 영화에 음성 해설을 더하는 ‘배리어 프리’ 작업에 참여한 일화는 지금도 훈훈한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런 그가 아동 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한 건 우연이 아니다.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나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와 집만 오가는 학생이었어요. 수능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혼자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없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살았나 싶어요. 그러다 대학 시절 우연히 드라마 ‘올인(2003년)’ 오디션에 합격했어요. 여주인공이던 송혜교 선배님의 아역이었죠. 당시엔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은 아이였는데 연기를 하면서 자주 혼났어요. 그 전엔 한 번도 야단맞은 적이 없거든요. 그다음 미니시리즈를 찍을 때는 만날 울었어요. 제가 부족해서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 도망 다니고만 싶었어요. 드라마 ‘대장금’을 찍을 땐 그래도 편했어요. 주인공이 아니어서요(웃음). 제가 원래 배움이 더뎌요. 일도, 사람도 익숙해지는 데 오래 걸리고요. 20대 때는 코드가 잘 맞지 않으면 마음도 안 열었어요. 친구나 가족들 앞에서만 활달했던 것 같아요.
말수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완전 반전이에요(웃음).
그런 말, 자주 들어요. 하하하. ‘아는 와이프’의 조명 감독님도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제게 “지민아, 왜 이렇게 변했니? 원래 이렇게 말수가 많았냐?”고 하시더라고요. 예전에는 작품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잘 안 했거든요. 술자리도 편한 사람하고만 갖고요. 저도 제 자신이 계속 진화하는 느낌이에요. 그런 변화를 싫어하지 않고, 드라마 뒤풀이 때 그 감독님이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배우는 지민이”라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변화의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영화 ‘밀정’을 찍으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김지운 감독님이 이끄는 현장에는 응원차, 구경 삼아 많은 분들이 찾아오세요. 그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같이 일하는 배우들, 현장의 스태프들과 어울리면서 소통하는 법을 뒤늦게 배운 거죠.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다 보니 말도 많아지고요(웃음).
이번 영화는 촬영하는 동안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이 컸을 것 같아요. 아동 학대와 폭력, 폭언 신이 많아서요.
육체적으로는 크게 힘들지 않았어요. 지은 역을 맡은 아역 배우 시아가 너무 춥게 입고 연기를 하면서도 묵묵히 그 상황을 견뎌냈기 때문에 어른인 제가 불평을 할 수도 없었고요. 다만 상아가 지은이를 학대한 계모와 몸싸움을 하는 신은 저 스스로 악에 받칠 정도로 힘들게 찍었어요. 3일 동안 촬영했는데 남자 배우들의 액션 신처럼 설정을 하고 합을 맞춘 게 아니라 무식한 방법으로 싸워서 둘 다 온몸이 멍투성이였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요.
상아가 지은이를 보러 달려갔는데 코너를 돌자 지은이가 서 있는 실루엣이 멀리서 눈에 들어왔을 때요. 쌀쌀한 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상아도 지은이처럼 세상에 내몰려서 그렇게 서 있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과거를 부정하고 싶어하던 상아가 자신을 닮은 지은이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달려갔기에 찍고 나서도 그 여운이 진하게 남았어요.
한지민 씨도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요.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태어나면서 부모를 만나는데 너무나도 무책임하고 악한 부모가 있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가슴 뭉클하지만 불편한 지점이 많다는 평도 있어요.
저도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고, 제 조카들이 어려서 그런지 아동 범죄를 뉴스로 접하면 불편해요. 그 때문에 분노 게이지도 엄청 상승하고요.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히더라고요. 제가 이 작품을 하면서 새삼 깨달은 건 지은이 부모 같은 사람을 부모로 만나면 누구나 지은이처럼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세상을 물려주려면 관심을 계속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영화가 그런 생각을 갖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요. 불편해도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니까요.
만약 본인의 친구가 지은이 부모처럼 아동 학대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아이에게서 떼어놔야죠. 근데 우리나라는 부모의 권한이 너무 커서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을 구제할 방법이 제한적인 것 같아요. 영화 속에 나오듯이 가정 폭력 가해 혐의가 있는 부모 앞에서 아이에게 폭행을 당했는지를 물어보면 어떻게 아이가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겠어요. 여러모로 세심한 배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상아처럼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요.
완전 있죠(웃음). 제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노희경 작가님이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때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힘들 만큼 제가 눈물이 많았어요. 말하기도 전에 감정이 복받쳐 울기만 했거든요. 그러다 선생님의 조언대로 법륜 스님을 찾아 마음공부를 하면서 멘탈이 많이 단단해졌어요. 집안일로 괴로울 때도 작가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며 평정심을 찾았고요. 제 인생의 멘토 같은 분이죠. ‘아는 와이프’가 방영될 때도 “네가 신나게 노는 것 같아서 보기 좋다”며 저보다 훨씬 기뻐해주셨죠.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 있나요.
좌우명을 정해놓은 건 아닌데 ‘지금 현재를 살자’는 다짐을 매일 되새깁니다. 예전에는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후회도 많이 하고 아직 겪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해했어요. 제가 그런 고민을 털어놨더니 노희경 작가님이 “깨어 있어라. 상대가 이야기할 때 공감하라”고 일러주시더군요. 공감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제가 연기할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배우의 삶과 자연인으로서의 삶이 균형을 이루고 있나요.
예전에는 둘을 별개로 여겼는데 지금은 연기 활동을 제 삶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요. 그랬더니 연기 생활과 사적인 생활이 한결 조화롭고 균형을 이루게 됐어요. 20대 때는 그렇게 살지 못했어요. 여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집순이’로 지냈어요. 그때 못 한 걸 30대에 다 하려다 보니 나름의 원칙을 세워 균형을 맞춰가고 있어요. 나이가 더 들면 제가 좀 더 단단해지고 유연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는 또 다른 새로운 기준으로 작품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설렘이 생겨요.
미래를 설레며 기다릴 수 있다니 부럽네요.
걱정이 하나도 없진 않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제 하루가 달라지더라고요. 계속 감사한 것, 소중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지금 제게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해요.
사진제공 BH엔터테인먼트 디자인 김영화
지금까지 한 작품 중 가장 무거운 영화더군요. 출연 동기가 뭔가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이런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어요. 시나리오 자체가 여느 작품과 달랐어요. 이지원 감독님이 스토리를 다 직접 쓰셨는데 인물들의 감정이 아주 정교하고 섬세하게 묘사돼 있었어요. 시나리오를 덮었을 때 백상아와 지은이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래서 매니저에게 감독님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했죠.
이지원 감독도 한지민 씨를 만나보고 싶어했나요.
감독님은 원래 저를 캐스팅할 마음이 없었는데 뜻밖의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뒤 마음이 바뀐 거예요. 2016년 영화 ‘밀정’ 배우들과 함께 무대 인사를 마치고 송강호 선배님의 단골 호프집에 간 적이 있어요. 감독님도 그곳에 계셨던 거죠. 그날 제가 블랙 맨투맨에 슬랙스를 입고 옆구리에 클러치백을 일수 가방처럼 끼고 지나가는 모습이 감독님의 눈에 슬로비디오처럼 들어왔대요. “저 여자가 누구야?” 했더니 동석한 연출부가 “얼마 전에 감독님이 물망에 오른 배우 리스트를 보고 ‘됐다 그래!’ 하신 그 한지민”이라고 하더래요. 이후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님을 만나 그런 사연을 듣게 됐죠. 그렇게 영화처럼 만났고 서로 호감을 갖고 있어서 그날 바로 의기투합했어요(웃음).
작품 준비를 하면서 염두에 둔 점은요.
배우로서 그동안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컸는데 그걸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품을 통해 연기로 보여주는 것이더라고요. 이번 작품에선 상아가 살아온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였어요. ‘엄마한테 버림받은 뒤 상아가 어떻게 생활했을까? 전과자가 되고 나서는 세상을 어떤 생각으로 살아갔을까? 자살 시도는 안 했을까? (상아를 도와주는 형사) 장섭(이희준)은 어떤 감정으로 상아 옆에 있으며 상아는 장섭에게 어떤 감정일까?’ 하고 계속 질문을 던져봤죠. 상아의 감정이 쌓이지 않은 채로는 표현해낼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거든요.
영화를 보니 상아처럼 거친 캐릭터도 잘 어울리더군요. 그동안 다른 작품에서 한지민 씨를 허투루 쓴 듯합니다(웃음).
하하하. 연기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서 저란 사람 자체가 바뀐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예전 같으면 엄두를 못 냈을 거예요. 데뷔 초반에는 연기에 대한 애착이 별로 없었어요. 이왕 시작했으니 조금이라도 덜 혼나자는 심정으로 열심히 촬영에 임했죠. 그러다 제 연기가 부끄럽고 고민되는 시기가 찾아왔어요. 같은 상황에 놓인 비슷한 캐릭터를 기시감이 들지 않게 연기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더라고요. 그때 만난 영화가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이에요. 그 작품에 조선 최고의 거상으로 출연하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재미를 느끼게 됐죠.
고교 시절부터 꾸준히 봉사 활동을 하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한 그는 연기자가 된 후에도 소외 계층을 돕기 위해 10여 년째 국제 구호단체 JTS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2008년 드라마 촬영 도중 화상을 입은 보조 출연자를 그가 직접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한 일이나 시각 장애인을 위해 영화에 음성 해설을 더하는 ‘배리어 프리’ 작업에 참여한 일화는 지금도 훈훈한 미담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런 그가 아동 폭력을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한 건 우연이 아니다.
어떻게 연기를 시작하게 됐나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와 집만 오가는 학생이었어요. 수능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혼자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없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살았나 싶어요. 그러다 대학 시절 우연히 드라마 ‘올인(2003년)’ 오디션에 합격했어요. 여주인공이던 송혜교 선배님의 아역이었죠. 당시엔 겁도 많고, 두려움도 많은 아이였는데 연기를 하면서 자주 혼났어요. 그 전엔 한 번도 야단맞은 적이 없거든요. 그다음 미니시리즈를 찍을 때는 만날 울었어요. 제가 부족해서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 도망 다니고만 싶었어요. 드라마 ‘대장금’을 찍을 땐 그래도 편했어요. 주인공이 아니어서요(웃음). 제가 원래 배움이 더뎌요. 일도, 사람도 익숙해지는 데 오래 걸리고요. 20대 때는 코드가 잘 맞지 않으면 마음도 안 열었어요. 친구나 가족들 앞에서만 활달했던 것 같아요.
말수가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완전 반전이에요(웃음).
그런 말, 자주 들어요. 하하하. ‘아는 와이프’의 조명 감독님도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제게 “지민아, 왜 이렇게 변했니? 원래 이렇게 말수가 많았냐?”고 하시더라고요. 예전에는 작품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잘 안 했거든요. 술자리도 편한 사람하고만 갖고요. 저도 제 자신이 계속 진화하는 느낌이에요. 그런 변화를 싫어하지 않고, 드라마 뒤풀이 때 그 감독님이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배우는 지민이”라고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변화의 계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영화 ‘밀정’을 찍으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김지운 감독님이 이끄는 현장에는 응원차, 구경 삼아 많은 분들이 찾아오세요. 그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같이 일하는 배우들, 현장의 스태프들과 어울리면서 소통하는 법을 뒤늦게 배운 거죠.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다 보니 말도 많아지고요(웃음).
이번 영화는 촬영하는 동안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이 컸을 것 같아요. 아동 학대와 폭력, 폭언 신이 많아서요.
육체적으로는 크게 힘들지 않았어요. 지은 역을 맡은 아역 배우 시아가 너무 춥게 입고 연기를 하면서도 묵묵히 그 상황을 견뎌냈기 때문에 어른인 제가 불평을 할 수도 없었고요. 다만 상아가 지은이를 학대한 계모와 몸싸움을 하는 신은 저 스스로 악에 받칠 정도로 힘들게 찍었어요. 3일 동안 촬영했는데 남자 배우들의 액션 신처럼 설정을 하고 합을 맞춘 게 아니라 무식한 방법으로 싸워서 둘 다 온몸이 멍투성이였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요.
상아가 지은이를 보러 달려갔는데 코너를 돌자 지은이가 서 있는 실루엣이 멀리서 눈에 들어왔을 때요. 쌀쌀한 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상아도 지은이처럼 세상에 내몰려서 그렇게 서 있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과거를 부정하고 싶어하던 상아가 자신을 닮은 지은이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달려갔기에 찍고 나서도 그 여운이 진하게 남았어요.
한지민 씨도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요. 아이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태어나면서 부모를 만나는데 너무나도 무책임하고 악한 부모가 있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는 가슴 뭉클하지만 불편한 지점이 많다는 평도 있어요.
저도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고, 제 조카들이 어려서 그런지 아동 범죄를 뉴스로 접하면 불편해요. 그 때문에 분노 게이지도 엄청 상승하고요.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잊히더라고요. 제가 이 작품을 하면서 새삼 깨달은 건 지은이 부모 같은 사람을 부모로 만나면 누구나 지은이처럼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세상을 물려주려면 관심을 계속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영화가 그런 생각을 갖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요. 불편해도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니까요.
만약 본인의 친구가 지은이 부모처럼 아동 학대를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아이에게서 떼어놔야죠. 근데 우리나라는 부모의 권한이 너무 커서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을 구제할 방법이 제한적인 것 같아요. 영화 속에 나오듯이 가정 폭력 가해 혐의가 있는 부모 앞에서 아이에게 폭행을 당했는지를 물어보면 어떻게 아이가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겠어요. 여러모로 세심한 배려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상아처럼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요.
완전 있죠(웃음). 제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노희경 작가님이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때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힘들 만큼 제가 눈물이 많았어요. 말하기도 전에 감정이 복받쳐 울기만 했거든요. 그러다 선생님의 조언대로 법륜 스님을 찾아 마음공부를 하면서 멘탈이 많이 단단해졌어요. 집안일로 괴로울 때도 작가님과 많은 얘기를 나누며 평정심을 찾았고요. 제 인생의 멘토 같은 분이죠. ‘아는 와이프’가 방영될 때도 “네가 신나게 노는 것 같아서 보기 좋다”며 저보다 훨씬 기뻐해주셨죠.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 있나요.
좌우명을 정해놓은 건 아닌데 ‘지금 현재를 살자’는 다짐을 매일 되새깁니다. 예전에는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후회도 많이 하고 아직 겪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해했어요. 제가 그런 고민을 털어놨더니 노희경 작가님이 “깨어 있어라. 상대가 이야기할 때 공감하라”고 일러주시더군요. 공감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제가 연기할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배우의 삶과 자연인으로서의 삶이 균형을 이루고 있나요.
예전에는 둘을 별개로 여겼는데 지금은 연기 활동을 제 삶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요. 그랬더니 연기 생활과 사적인 생활이 한결 조화롭고 균형을 이루게 됐어요. 20대 때는 그렇게 살지 못했어요. 여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집순이’로 지냈어요. 그때 못 한 걸 30대에 다 하려다 보니 나름의 원칙을 세워 균형을 맞춰가고 있어요. 나이가 더 들면 제가 좀 더 단단해지고 유연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때는 또 다른 새로운 기준으로 작품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설렘이 생겨요.
미래를 설레며 기다릴 수 있다니 부럽네요.
걱정이 하나도 없진 않지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제 하루가 달라지더라고요. 계속 감사한 것, 소중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지금 제게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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