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용암사.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옥천
충북 옥천군은 감각적이고 절제된 언어로 사물을 표현한 모더니즘 시인 정지용(1902~1950)의 고향이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먼저 대중에게 알려진 시는 ‘향수’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로 시작되는 이 시는 누구의 작품인지도 모른 채 테너 박인수와 가수 이동원의 노래로 먼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소박하고 편안한 목소리를 지닌 대중음악가와 클래식 음악가가 함께 부른 노래라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것. 어울리지 않을 듯하면서 잘 어울렸던 두 사람의 음색도 인상적이었다.
시보다 노래가 먼저 알려지게 된 것은 정지용 시인이 월북인사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문학적 제재가 풀린 것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다. 이후 그의 문학을 기리는 여러 가지 사업이 시작됐다. 그 첫 번째가 지용제다. 그의 제자들이 모여 만든 지용회가 주축이 돼 1989년 5월, 시인의 고향인 옥천에서 문학축제를 연 것. 그로부터 지금껏 이어오는 이 축제의 주요행사는 내로라하는 중견시인들의 작품 중 작품성이 뛰어나고 낭송하기 좋은 시를 골라 지용문학상을 시상하는 것이다. 제1회 수상자인 박두진 시인부터 이가림, 유안진, 정호승, 김지하, 김초혜, 도종환 등 22명이나 되는 시인이 이 상을 받았다.
아름다운 시어로 장식된 향수 30리 길의 시작점, 구읍
옥천의 구읍지역은 정지용 시인의 시로 가득하다. 구읍은 문정리, 죽향리, 하계리, 상계리 등 옛 옥천의 중심지를 일컫는다. 옥천의 신시가지는 1900년대 초, 구읍사람들이 철로가 구읍을 관통하는 것을 반대해 도시의 외곽에 옥천역이 만들어지면서 형성됐다. 교통의 편리함을 따라 상권과 행정기관이 옮겨가면서 시가지의 중심지도 옮겨진 것.
구읍에는 죽향초등학교 구 교사, 옥주 사마소, 옥천향교 등 옛 중심지였음을 말해주는 다양한 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유적들은 모두 정지용 시인의 시로 꾸며진 ‘향수 30리 길’로 연결된다.
길의 시작점은 구읍삼거리. 이곳에 닿으면 향수 30리 길이 시작되었음을 저절로 알 수 있다. 도로변 상점마다 정지용 시인의 시를 간판으로 달고 있는 것. ‘잘난 남보다 조그마치만 / 어리둥절 어리석은 척 / 옛사람처럼 사람 좋게 웃어좀 보시요’(내 맘에 맞는 이-혜선상회)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우로!’(나무-문정정미소) ‘모초롬만에 날러온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울렁거리여 / 가여운 글자마다 먼 황해가 남설거리나니’(오월 소식-구읍우편취급국) 등이다. 상점마다 제 몸에 꼭 맞는 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정지용 시인의 시집을 가지고 다니며 벽에 적힌 시의 원본을 찾아보는 것도 즐겁다.
2 3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정지용문학관 내부. 4 향수 30리 길 끝 지점임을 알리는 장계관광지 입구 안내판.
정지용의 문학세상을 배우다, 정지용문학관
구읍우편취급국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작은 하천을 건너 나지막한 담장을 두른 초가가 보인다. 그곳이 정지용 시인이 나고 자란 생가다.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면 一자로 지은 초가 두 채와 마당이 있다. 시인의 아버지는 약재상이었다. 때문에 어린 시절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의 유복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홍수로 집과 재산을 모두 잃은 것. 휘문고등보통학교를 장학금을 받아 다닌 까닭이다. 방 안에는 약재상을 했던 아버지의 직업을 알 수 있는 약장이 놓여있다. 방문 앞 툇마루가 널찍하니 편안하다. 그곳에 앉아 겨울 한 낮의 따스한 햇살을 쬐며, 방 안에 걸린 시인의 작품 ‘호수’와 ‘할아버지’를 감상해보자.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풍랑몽’을 쓰면서 문학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의 문학세계는 생가 뒤편에 자리한 문학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문학관 안으로 들어서면 생전 모습의 시인이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단정히 앉아 손님맞이를 한다.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한복이라며 먹물 들인 검은 두루마기를 늘 입고 다녔던 시인의 모습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았다. 시인의 대표 이미지가 된 검은 두루마기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말을 다루는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고단했음을 상징하는 듯하다. 시인의 시어가 고도로 정제되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문학관의 전시도 평범하지 않다. 사람들이 손바닥으로 시어를 받아 읽는 공간, 읽기에는 아름답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시 속의 단어를 찾아볼 수 있는 공간, 시인이 생전에 만들었던 다양한 책들, 시인의 문학의 맥을 잇고 있는 후배들의 작품 전시 등이 그것이다. 단순히 흘려듣는 시가 아닌 직접 체험해 알 수 있도록 준비된 공간인 것. 직접 시를 낭송해볼 수 있는 시 낭송 체험공간도 있다. 문학관 곳곳에서 교과서에 실린 정지용 시인의 시를 만나는 것은 덤이다.
정지용문학관(043-730-3588, www.jiyong.or.kr)의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매주 월요일과 1월1일, 설날, 추석날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
1 2 장계관광지 모단스쿨과 향수별자리.
되살아난 문학관광지, ‘멋진 신세계’ 장계관광지
정지용 시인의 두 번째 문학공간은 1986년, 대청호반에 조성된 장계관광지(043-733-7833)다. 이곳에 정지용 시인의 시를 주제로 한 문학공원이 만들어진 것. 공원의 이름은 ‘멋진 신세계’다. 구읍에서 시작된 향수 30리 길의 종착점이기도 한 장계관광지는 구읍에서 보은방향 37번 국도를 따라가다 길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 옥천군 안내면 장계리에 위치한 이곳은 원래 놀이기구 가득한 유원지였다. 1994년, 대전 엑스포과학공원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곳이 옥천 제1의 놀이터였다. 하지만 이제는 낡고 쇠락했다. 이 공간을 되살린 것이 정지용 시인의 시다. 공공예술프로젝트로 새로운 옷을 입은 것. 이곳에는 모단광장, 모단가게, 모단스쿨, 카페프란스 등의 시설물과 일곱 걸음 산책로가 있다. 이 중 시인의 숨결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은 대청호반을 따라 이어지는 ‘일곱 걸음 산책로’다.
일곱 걸음 산책로는 모단가게 앞 호반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시작된다. 계단으로 내려서면 계단 옆 숲 속에 사시사철 피어 있는 나무 꽃이 눈에 띈다. 이 공간을 조성한 이완 작가는 “한 철만 지나면 시들어버리는 꽃이 아쉬워 판때기에 꽃 그림을 그려 심었다”고 한다. 잎을 떨군 삭막한 숲에 산소처럼 그림 꽃이 피어난 것이다.
일곱 걸음 산책로라는 이름은 정지용 시인의 시 ‘꽃과 벗’에서 따왔다고 한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길의 이름뿐 아니라 풍경조차 시에서 튀어나온 듯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옥천 사람들은 이 산책로의 이름에 ‘시의 무덤이자 산실’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고 말한다. 그 까닭은 ‘삼국지’에 기록된 일화 때문이다. “조비와 조식을 놓고 후계자를 고민하던 조조가 전쟁터에서 죽자 조비가 황위에 올랐다. 조비는 자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동생 조식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형제를 죽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때 대신들이 내놓은 계책이 일곱 걸음 안에 주어진 주제에 맞게 시를 쓰라는 것. 그렇지 못하면 목숨을 거두겠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이처럼 가혹하게 하는 형에 대한 섭섭함을 담아 쓴 동생의 시를 들은 조비는 동생을 죽이지 못하고 멀리 변방으로 보내 살게 했다”는 이야기다. 이때 조식이 쓴 시를 일곱 걸음의 시, 즉 ‘칠보지시(七步之詩)’라 부른다고.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시 한 수로 목숨을 얻은 셈이다.
호반을 따라 걷는 동안 정지용 시인의 시는 의외의 장소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깔끔하게 단장된 건물의 외벽, 피로해진 다리를 쉬어갈 수 있는 나무의자, 대청댐이 생기면서 수몰된 마을을 추억하는 공간, 문득 고개를 들어 바라본 조형물 등에서 시인의 시가 인사를 건네온다. 이곳에서 지용문학상을 수상한 시인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산책로를 모두 돌아본 후에는 모단가게 오른쪽에 자리한 향토전시관에 들러보자. 옥천군의 역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다. 전시관 앞 연못에 놓인 청석교는 신라 문무왕 때인 660년 만들어진 다리다. 증약마을에 있던 것을 200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교각의 원래 높이는 지금보다 낮았다고 한다. 교각 양쪽에 새로 만들어 넣은 듯 보이는 석재 높이만큼 높아진 것. 그렇다면 왜 다리 높이가 달라졌을까. 그것은 연못 바닥이 콘크리트이기 때문이다. 교각 일부분이 땅속으로 묻혀야 하는데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옮기는 과정에서 생겨난 실수다. 높이가 달라져 옛 정취를 고스란히 누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장계관광지의 입장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입장료는 어른 1천원, 청소년 7백원, 어린이 5백원. 월요일과 명절에는 관광지 내 시설들이 문을 닫는다.
3 장계관광지 곳곳에 지용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의 시비가 있다. 4 용암사 마애불. 자연 암벽에 새겨져 있다.
시심이 저절로 일어날 듯 아름다운 용암사
옥천IC를 나와 구읍으로 가지 않고 우회전해 옥천역 방향으로 가다 역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가면 옥천읍 삼청리 장령산에 자리한 용암사에 닿는다. 신라 진흥왕 13년에 창건됐다는 이 사찰의 매력은 뛰어난 조망이다. 대웅전 앞에만 올라서도 옥천군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 이처럼 뛰어난 풍광을 바라보며 중생의 안녕을 비는 공간도 있다. 대웅전에서 천불전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마애불이다. 마치 하늘에 떠 있듯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과 시선의 방향을 같이하면 옥천의 그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이 마애불에는 신라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새겨놓았다는 이야기와, 마의태자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새겨놓은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것이 맞든 마애불은 꽤 오랜 세월, 이곳에서 중생들의 기원을 듣고 있는 것이다. 소원명당으로도 손꼽히는 장소다.
대웅전 안쪽에도 문화재가 있다. 조선 효종 2년인 1651년에 경북 문경 오정사에서 만들어 용암사로 옮겨온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다. 대웅전을 나오면 으레 있어야 할 석탑이 보이지 않는 것도 용암사의 특징이다. 이 사찰의 석탑은 왼쪽 산자락에 세워졌다. 그것도 석탑 두 개가 나란히 선 쌍3층석탑(보물 제1338호)이다. 석탑이 이처럼 대웅전 앞이 아닌 옆쪽 산자락에 세워진 것은 대웅전 오른쪽의 거대한 산세에 비해 빈약한 왼쪽의 산세를 보충하기 위해서라 한다. 석탑이 만들어진 고려시대 산천비보사상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다.
5 장계관광지 향토전시관 앞 청석교. 6 용암사 쌍3층석탑.
여·행·정·보
[ 향수 30리 길 안에 자리한 그밖의 볼거리 ]
죽향초등학교 구 교사(등록문화재 제57호) 죽향초등학교는 정지용 시인의 모교다. 4회 졸업생인 그가 다녔던 당시 학교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가 이 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한다. 이를 증명하듯 건물 옆에는 정지용 시인의 시비와 육영수 여사의 휘호탑이 나란히 서 있다. 구 교사는 현재 옥천교육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래된 풍금과 나무책상 그리고 도시락을 얹은 난로, 오래된 교과서와 교복은 물론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타자기와 등사기 등 어른들의 추억 속에 남아 있는 다양한 물건들을 만날 수 있다. 관람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첫째·셋째 토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다. 이 외의 시간에 관람하고 싶다면 하루 전 행정실로 연락해야 한다. 관람료는 무료. 문의 043-732-0054
옥천향교 옥천읍 교동리에 자리한 옥천향교는 조선 태조 7년인 1398년에 처음 지어졌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불타 없어진 것을 여러 번 다시 지었다. 지금 건물은 1979년에 지은 것으로 대성전과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고직사 등이 있다. 특이한 것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던 명륜당이 문루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물 아래를 지나 향교 안쪽 마당으로 들어서는 구조다. 이 건물엔 재미있는 시설이 있다. 사람들이 주로 다니는 건물 중심부를 제외하고 양옆으로 공중온돌이 놓여 있는 것. 1층이 비어 있는 상태로 2층 아래쪽에 아궁이를 만들어 불을 땔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옥천향교의 관람시간은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다. 평상시에는 문이 잠겨 있으니 상세히 보고 싶다면 정지용문학관에 근무하고 있는 문화관광해설사에게 문의 후 출발하는 것이 좋다. 관람료도 없다.
육영수여사생가지 향교 옆에는 복원된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고 육영수여사생가지(충청북도기념물 제123호)다. ‘교동집’이라고 불렸던 이 집은 1600년대부터 삼정승이 살았을 만큼 규모가 큰 충청도의 상류층 가옥이었다. 1918년 육영수 여사의 아버지가 이 집을 구입해 기단을 높이고 아래채, 위채, 안채, 사랑채, 연당사랑으로 공간을 나누어 고쳐 지었다 한다. 현재 건물은 복원됐지만 아직 유품 및 생활용품 등이 갖춰지지 않았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주 월요일과 1월1일, 설날과 추석날은 문을 열지 않는다. 관람료는 없다. 문의 043-730-3417(옥천군청 문화관광과)
[ 찾아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옥천IC를 나오면 군청사거리에 닿는다. 이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구읍으로, 우회전하면 용암사로 길이 이어진다. 군청사거리에서 좌회전해 문정삼거리를 지나 구읍삼거리가 나오면 좌회전 할 것. 구읍우편취급국 사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구읍 일대를 걸어서 돌아보는 것도 좋다. 옥천향교와 육영수여사생가지로 갈 때는 차량으로 움직일 것. 그곳에서 바로 장계관광지로 이동하는 것이 편리하다.
[ 맛집 ] 정지용 시인의 공간인 구읍에는 깔끔한 맛집이 많다. 그중 옥천여중 교무실로 사용되던 한옥에 자리한 마당넓은집(043-733-6350)은 비빔밥을 잘한다. 정지용문학관 가까이에 자리한 옥천묵집(043-732-7947)은 도토리를 재료로 한 음식을 만든다. 도토리묵밥, 도토리칼국수 등이 맛있다. 용암사로 가는 옥천역 인근에 옥천의 대표메뉴로 손꼽히는 올갱이해장국집들이 있다. 그중 미락분식(043-732-4845)을 추천한다. 돼지 막창을 깨끗하게 손질해 직접 순대를 만드는 아바이순대(043-732-8813)는 옥천사람들이 손꼽는 맛집이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하루 종일 고아내는 사골육수의 고소함도 일품이다.
[ 숙박 ] 옥천읍 문정리에 자리한 명가모텔(043-733-7744), 교동리 궁전모텔(043-731-1567), 금구리 흥림모텔(043-731-2348) 등이 깨끗하다. 용암사가 있는 장령산 너머 군서면 금산리에 자리한 장령산자연휴양림(043-730-3491~3 www.cbhuyang.go.kr)도 이용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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