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선행학습은 유아기 때부터 시작된다. 2023년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조사에 따르면, 만 5세 이전에 수학 사교육을 시작했다고 답한 이들은 70.6%에 달했다. 의대 열풍에 따라 학군지 ‘의대 준비반’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이 고2 문제를 풀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중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미리 공부하는 건 당연한 일처럼 됐다. 하지만 선행학습을 하는 모두가 1등급을 받고, 의대에 진학하는 건 아니다. 아이의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효과적인 학습 효과를 거두는 선행학습 방법은 있을까.
김성태 에이블에듀테크 대표는 대치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세대 교육학 석사과정과 인지과학협동과정 인지공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전공을 살려 박사과정에서는 수학 등 다양한 학습법과 관련된 논문을 쓰고, 1만여 명의 수학 학습 패턴을 분석하기도 했다. 자타 공인 수학 학습법 전문가에게 올바르고 효과적인 수학 선행학습법을 물었다.
왜 학생들이 수학에 어려움을 느낄까요.
암기로 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배운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까지 습득해야 하거든요. 사실 중학교까지는 문제 푸는 방법을 외우는 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수학이나 중학교 심화 단계에서는 문제에 어떤 힌트가 숨어 있는지 파악이 잘 안 되거나 풀이 과정이 매우 복잡해집니다. 문제 은행식으로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학생들이 더 어려움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선행학습을 선택합니다.
고등학교 내신은 상대평가이다 보니 문제를 쉽게 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위 1등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내신 킬러 문항을 맞혀야 하죠. 대치동 학생들은 내신 시험 한 번당 킬러 문항 유형을 적게는 400문제, 많게는 700〜800문제까지 연습해요. 이 문제들은 단시간에 풀 기에 까다로운 데다, 다른 과목도 함께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려운 문제만 풀기에는 시간도 부족하죠. 그러니까 고등학교에 들어올 때 지금 당장 시험을 봐도 3〜4등급은 받을 수준의 공부량을 갖추는 거죠.
진도를 빠르게 나가기보다는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걸 부모가 확인할 수 있나요.
풀이 과정을 잘 쓰고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고요. 스스로 생각해서 문제를 푸는지, 아니면 외운 대로 푸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거죠. 익숙해진 풀이 과정대로 습관적으로 풀면 되니까요. 또 수학이 어려워지면 부모님이 그걸 제대로 봐줄 수 없죠. 그래서 학원을 선택하는 거고요.
좋은 학원을 어떻게 고르나요.
학원에서는 솔깃한 이야기만 합니다. 학생들을 유치해야 하니 장점을 강조하고요. 그래서 동네 커뮤니티나 카페 등을 통해 후기를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 학생에게 관심이 얼마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대형 수학학원과 소형 수학학원을 놓고 고민하기도 합니다.
대형 학원은 커리큘럼이 다양해요. 한 학기 선행부터 3년 선행, 개념, 유형, 심화 수업 등 레벨도 다양하죠. 소형 학원은 일대일 케어가 가능합니다. 원장이 직접 강의하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더 많은 책임감을 갖고 수업에 임할 거고요. 기본적으로 자기 케어가 가능한 학생의 경우엔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대형 학원이 적합하고, 아이가 자기 걸 잘 챙기지 못하는 경우는 선생님이 구체적으로 아이들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소형 학원이 좋죠.
수학 문제를 보고 풀이 과정을 떠올리는 것을 ‘인출’이라고 합니다. 문제를 읽으며 우리는 정보를 얻죠. 식의 형태, 문제에 들어가 있는 개념들, 주어진 조건 등의 단서를 통해 머릿속에 있는 풀이 과정을 꺼내게 됩니다. 인출 단서와 풀이 과정이 잘 연결돼 있다면 문제를 금방 해결할 수 있죠. 자꾸 같은 문제를 틀리는 건 그 연결이 잘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문제에 대한 개념을 모르는 건 아니어서, 해설지를 보면 ‘아! 아는 거였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스스로 인출해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모르면 풀이를 다시 봐야 하지 않나요.
그래서 잊어버리기 전에 반복해서 풀어보는 게 중요합니다. 손으로 하면 제일 좋고요. 머리로 생각만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그 사이의 시간이 길지 않아야 해요. 낮에 공부했으면 저녁이나 다음 날 아침에는 한 번 더 봐야죠. 학생들에게 그 부분에 인덱스를 붙여놓고 까먹지 않게 표시해두는 걸 권합니다. 다시 볼 때 ‘내가 막혔던 부분이 어딘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 과정을 두세 번은 반복해야 풀이 과정이 곧바로 생각납니다.
최근에 사고력 수학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시중 사고력 문제집이나 사고력 수학학원 프로그램 중 일부는 이런 식입니다. 몇 학년 위 문제를 아이들에게 풀게 하는 거죠.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12개의 색연필을 주고 모든 색깔을 표현하라는 거죠. 그런데 전문가용 툴을 주면 색을 칠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그러니까 사고력 문제라고 하는 게 시간이 지나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라는 거죠. 사고력은 쉽게 말해 사고하는 힘입니다. 사고력 문제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풀어도 알고 있는 개념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하면 사고력은 길러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안타깝게도 사고력 수학이라는 말은 마케팅으로 새롭게 포장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싸해 보이니까 학부모님들이 휩쓸리기 쉽죠.
심화 문제를 풀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요.
저는 초중학교 단계에서는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까지 풀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자기 학년에서 배워야 하는 수준을 또박또박 잘 챙기는 게 중요하죠. 학부모님들은 자기 학년 수준에서 어려운 문제도 못 푸는데 고등학교에서 어떻게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겠냐고 얘기하십니다. 하지만 심화는 고등학교에 가서 해도 됩니다. 불필요한 심화 문제를 아이들에게 풀게 해서 괜히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최상위’ ‘최고 수준’ 등 고난도 문제집은 수학에 대한 동기부여가 스스로 가능하고 어려운 문제를 풀면서 희열을 느끼는 아이가 아니라면 굳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교재인 ‘쎈’의 C단계 문제도 심화에 속하나요.
그 정도는 풀어볼 만한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고등 과정을 염두에 두고 선행학습을 하는 거라면 풀어도 되고 안 풀어도 되는 문제 정도로 열어둘 수 있을 것 같아요.
B단계만 잘 짚고 넘어가도 되는 건가요.
다만 B단계를 확실하게 풀고 넘어가야 해요. 틀린 문제에 대한 풀이 과정을 완벽하게 인출할 수 있을 정도로요. 필수 문제집 한 권 정도는 적어도 3회독을 추천합니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수학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10년 전 조사이긴 하지만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초등학생은 36.5%, 중학생은 46.2% 고등학생은 59.7%가 ‘수포자’라고 합니다. 그 말은 고등학교 때까지 수학을 포기하지 않으면 상위 40% 안에 들어간다는 거죠.”
포기하지 않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나요.
수학을 포기하는 건 수학에 대한 자기효능감이 부족해서입니다. 자기효능감은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 필요한 능력이 나에게 있다고 믿는 겁니다. 사실 공부를 못하는 건 공부를 안 해서거든요. 그런데 포기하는 학생들은 ‘해도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면 된다는 믿음의 계기를 줘야 합니다. 문제를 풀었는데 절반 이상 틀리는 어려운 문제집은 안 되고요. 적어도 70점 이상은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한 단원을 오랫동안 파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끝장을 보게 하는 방식인데, ‘나도 공부하기만 하면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구나’를 알게 해주는 거죠.
특히 어렵게 느끼는 단원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수학에서는 대표적으로 소수의 곱셈과 나눗셈입니다. 이때 많은 아이가 수학을 포기하죠. 하지만 중학교 이후부터는 이걸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소수가 있으면 분수로 바꿔버리면 약분하기 편한 형태가 나오죠. 어려운 단원이지만 힘을 빼고 공부해도 괜찮은 단원이 있다는 걸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중학교 수학에서도 그런 단원이 있나요.
중학교 기하 파트가 대표적입니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기하는 논증 기하라고 해서 증명하는 문제가 많아요. 가령 삼각형 ABC와 삼각형 DEF가 합동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죠. 물론 이걸 공부하면 추론 능력이 발달합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해석 기하를 배웁니다. 기하 문제를 방정식이나 함수 형태로 풀어내기 때문에 중학교 심화 문제와는 결이 다릅니다. 학생이 여력이 안 된다면 굳이 중학교 수준의 어려운 기하 문제를 풀 필요가 없다는 거죠. 우리는 마라톤 대회를 나갈 건데 자꾸 허들 연습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물론 허들 연습을 하면 지구력에 도움이 될 수는 있죠. 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겁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어려운 문제를 풀면 되나요.
현재 중3 학생들은 조바심을 내면서 어려운 수능 기출을 풀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가야 합니다. 아무리 선행학습이 돼 있더라도 수능 문제부터 접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일단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에 해당하는 심화 문제, 어려운 내신 기출부터 풀어봐야죠. 선행학습을 할 때 풀었던 ‘쎈’이나 ‘개념원리 RPM’ 같은 교재와 어려운 내신 기출은 이렇게 다르게 출제되는구나, 하면서 먼저 분석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내신 1등급과 2등급을 가르게 될 겁니다.
인지과학의 세부적인 전공 분야입니다. 사람들의 인지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죠. 감각으로 무엇인가를 듣거나, 보거나, 알게 됐을 때 그 과정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일어나는지를 분석하죠.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학습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일어나는지,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교육이 이뤄졌을 때 학습 효과가 높아지는지를 주로 공부했죠.
교육과 관련된 최신 트렌드가 있나요.
최근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기억의 메커니즘을 신경생물학 단위로도 밝히고 있죠. 효과적인 학습이 이뤄졌을 때 뇌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 반응을 일으키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가 밝혀지고 있어요.
효율적인 공부라는 게 가능할까요.
암기 과목으로 예를 들어볼게요. 우선 공부를 한 다음 바로 인출해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백지에 공부한 내용을 적어본다거나 머릿속으로 공부 내용을 생각해보는 거죠. 그렇게 바로 인출하는 연습을 하면 기억이 오래 지속됩니다.
복습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복습은 공부했던 걸 다시 공부하는 거죠. 다시 내용을 읽어보거나 문제를 다시 풀어보는 겁니다. 인출은 스스로 기억을 떠올리는 거예요. 근육처럼 뇌에서도 기억이 생성될 때 단백질 합성이 일어납니다. 뉴런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되죠. 머릿속에 잘 저장돼 있을뿐더러 필요할 때 그 정보를 쉽게 꺼낼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님이 인출 과정을 도와줄 수 있나요.
시험 전날, 아이들이 서로 공부한 내용을 물어보잖아요. 그게 인출 과정의 사례입니다. 부모가 평소에 그런 퀴즈 타임을 만들어줄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답답하더라도 화를 내면 안 됩니다. 아이가 모른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해요. 또 일주일에 한 번 퀴즈 타임을 가지는 걸 권합니다. 게임도 횟수에 한계가 있으면 더 재밌는 것처럼, 자주 하지 않아야 아이도 승부욕이 생겨서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됩니다.
수많은 학생을 지켜봤을 텐데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나요.
왜 자기가 공부를 하는지 분명해요. 그리고 공부하는 걸 즐깁니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숙달접근동기라고 합니다. 낑낑거리며 문제를 풀다가 정답을 맞히면 ‘아싸!’ 하며 기분 좋아지는 감정을 아는 거죠. 선생님이 질문받은 문제를 풀어줄 때도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맞힐 수 있었다고 아쉬워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모습을 통해 그 학생이 얼마나 그 문제를 고민했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부모가 숙달접근동기를 만들어줄 수 있는 건가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부모와의 관계가 좋습니다. 반대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요. 부모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죠. 아이와 관계가 좋은 경우엔 부모가 동기를 만들어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중학생이 되는 순간 힘들어져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거리두기를 강조합니다. 부모님과 아이가 성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일 수는 있지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말라는 거죠.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방임하라는 건 아니고 선을 그으라는 거예요. ‘공부하는 건 네 일이다. 다만 공부를 안 하면 부모가 제공하던 걸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죠. 다만 그걸 함께 써서 집에 붙여두길 권합니다. 부모는 약속의 결과에 대한 집행자일 뿐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죠. 그러면 아이는 ‘우리가 함께 만든 규칙을 지키는 거지, 부모 말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돼요. 고압적인 태도로 아이를 다그치면 역효과가 납니다.
그래도 화가 날 텐데요.
아이가 받은 성적에 대한 실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실망하는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럴 때 앉아서 얘기를 해보는 거죠. “지금 성적이 네 생각엔 어떤 것 같아?” “왜 이런 성적이 나왔다고 생각해?”라고 물어봐야 합니다. 이 역시 아이에게 숨 막히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제안하는 거죠. “다음에도 성적이 이렇게 나오면 스마트폰 사용을 제재할 수밖에 없어. 너도 공부에 스마트폰이 방해가 된다는 건 알고 있지?” 이렇게 서로 대화해가며 규칙을 정하고 그걸 문서화해두는 거죠.
김 대표는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 아이의 수준이 대학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역할은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언제든 시작해도 늦지 않았고, 지금은 건너는 징검다리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알려줘야죠. 그래야 그런 말에 힘을 얻어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김성태 #인지과학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출처 네이버카페 캡처 에이블에듀테크블로그
김성태 에이블에듀테크 대표는 대치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세대 교육학 석사과정과 인지과학협동과정 인지공학 박사과정을 밟았다. 전공을 살려 박사과정에서는 수학 등 다양한 학습법과 관련된 논문을 쓰고, 1만여 명의 수학 학습 패턴을 분석하기도 했다. 자타 공인 수학 학습법 전문가에게 올바르고 효과적인 수학 선행학습법을 물었다.
‘수포자’가 많은 이유
김성태 에이블에듀테크 대표는 강연과 네이버 카페 ‘아이인사이드’를 통해 인지공학에 기반한 공부법을 알리고 있다.
암기로 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배운 지식을 활용하는 방법까지 습득해야 하거든요. 사실 중학교까지는 문제 푸는 방법을 외우는 게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수학이나 중학교 심화 단계에서는 문제에 어떤 힌트가 숨어 있는지 파악이 잘 안 되거나 풀이 과정이 매우 복잡해집니다. 문제 은행식으로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학생들이 더 어려움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선행학습을 선택합니다.
고등학교 내신은 상대평가이다 보니 문제를 쉽게 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소위 1등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내신 킬러 문항을 맞혀야 하죠. 대치동 학생들은 내신 시험 한 번당 킬러 문항 유형을 적게는 400문제, 많게는 700〜800문제까지 연습해요. 이 문제들은 단시간에 풀 기에 까다로운 데다, 다른 과목도 함께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려운 문제만 풀기에는 시간도 부족하죠. 그러니까 고등학교에 들어올 때 지금 당장 시험을 봐도 3〜4등급은 받을 수준의 공부량을 갖추는 거죠.
진도를 빠르게 나가기보다는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걸 부모가 확인할 수 있나요.
풀이 과정을 잘 쓰고 있는지 확인해볼 수 있고요. 스스로 생각해서 문제를 푸는지, 아니면 외운 대로 푸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거죠. 익숙해진 풀이 과정대로 습관적으로 풀면 되니까요. 또 수학이 어려워지면 부모님이 그걸 제대로 봐줄 수 없죠. 그래서 학원을 선택하는 거고요.
좋은 학원을 어떻게 고르나요.
학원에서는 솔깃한 이야기만 합니다. 학생들을 유치해야 하니 장점을 강조하고요. 그래서 동네 커뮤니티나 카페 등을 통해 후기를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선생님과 상담을 통해 학생에게 관심이 얼마나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대형 수학학원과 소형 수학학원을 놓고 고민하기도 합니다.
대형 학원은 커리큘럼이 다양해요. 한 학기 선행부터 3년 선행, 개념, 유형, 심화 수업 등 레벨도 다양하죠. 소형 학원은 일대일 케어가 가능합니다. 원장이 직접 강의하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더 많은 책임감을 갖고 수업에 임할 거고요. 기본적으로 자기 케어가 가능한 학생의 경우엔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대형 학원이 적합하고, 아이가 자기 걸 잘 챙기지 못하는 경우는 선생님이 구체적으로 아이들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소형 학원이 좋죠.
“‘쎈’ B단계 문제 3회독으로 선행 충분하다”
틀렸던 수학 문제를 다시 풀면 왜 같은 곳에서 막힐까요.수학 문제를 보고 풀이 과정을 떠올리는 것을 ‘인출’이라고 합니다. 문제를 읽으며 우리는 정보를 얻죠. 식의 형태, 문제에 들어가 있는 개념들, 주어진 조건 등의 단서를 통해 머릿속에 있는 풀이 과정을 꺼내게 됩니다. 인출 단서와 풀이 과정이 잘 연결돼 있다면 문제를 금방 해결할 수 있죠. 자꾸 같은 문제를 틀리는 건 그 연결이 잘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문제에 대한 개념을 모르는 건 아니어서, 해설지를 보면 ‘아! 아는 거였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스스로 인출해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모르면 풀이를 다시 봐야 하지 않나요.
그래서 잊어버리기 전에 반복해서 풀어보는 게 중요합니다. 손으로 하면 제일 좋고요. 머리로 생각만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만 그 사이의 시간이 길지 않아야 해요. 낮에 공부했으면 저녁이나 다음 날 아침에는 한 번 더 봐야죠. 학생들에게 그 부분에 인덱스를 붙여놓고 까먹지 않게 표시해두는 걸 권합니다. 다시 볼 때 ‘내가 막혔던 부분이 어딘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적어도 그 과정을 두세 번은 반복해야 풀이 과정이 곧바로 생각납니다.
최근에 사고력 수학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시중 사고력 문제집이나 사고력 수학학원 프로그램 중 일부는 이런 식입니다. 몇 학년 위 문제를 아이들에게 풀게 하는 거죠.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12개의 색연필을 주고 모든 색깔을 표현하라는 거죠. 그런데 전문가용 툴을 주면 색을 칠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그러니까 사고력 문제라고 하는 게 시간이 지나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라는 거죠. 사고력은 쉽게 말해 사고하는 힘입니다. 사고력 문제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풀어도 알고 있는 개념을 바탕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하면 사고력은 길러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안타깝게도 사고력 수학이라는 말은 마케팅으로 새롭게 포장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싸해 보이니까 학부모님들이 휩쓸리기 쉽죠.
심화 문제를 풀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요.
저는 초중학교 단계에서는 지나치게 어려운 문제까지 풀어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자기 학년에서 배워야 하는 수준을 또박또박 잘 챙기는 게 중요하죠. 학부모님들은 자기 학년 수준에서 어려운 문제도 못 푸는데 고등학교에서 어떻게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겠냐고 얘기하십니다. 하지만 심화는 고등학교에 가서 해도 됩니다. 불필요한 심화 문제를 아이들에게 풀게 해서 괜히 수학에 대한 호기심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죠. ‘최상위’ ‘최고 수준’ 등 고난도 문제집은 수학에 대한 동기부여가 스스로 가능하고 어려운 문제를 풀면서 희열을 느끼는 아이가 아니라면 굳이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많이 사용하는 교재인 ‘쎈’의 C단계 문제도 심화에 속하나요.
그 정도는 풀어볼 만한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고등 과정을 염두에 두고 선행학습을 하는 거라면 풀어도 되고 안 풀어도 되는 문제 정도로 열어둘 수 있을 것 같아요.
B단계만 잘 짚고 넘어가도 되는 건가요.
다만 B단계를 확실하게 풀고 넘어가야 해요. 틀린 문제에 대한 풀이 과정을 완벽하게 인출할 수 있을 정도로요. 필수 문제집 한 권 정도는 적어도 3회독을 추천합니다.
김 대표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수학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10년 전 조사이긴 하지만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초등학생은 36.5%, 중학생은 46.2% 고등학생은 59.7%가 ‘수포자’라고 합니다. 그 말은 고등학교 때까지 수학을 포기하지 않으면 상위 40% 안에 들어간다는 거죠.”
포기하지 않도록 어떻게 도와줄 수 있나요.
수학을 포기하는 건 수학에 대한 자기효능감이 부족해서입니다. 자기효능감은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 필요한 능력이 나에게 있다고 믿는 겁니다. 사실 공부를 못하는 건 공부를 안 해서거든요. 그런데 포기하는 학생들은 ‘해도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면 된다는 믿음의 계기를 줘야 합니다. 문제를 풀었는데 절반 이상 틀리는 어려운 문제집은 안 되고요. 적어도 70점 이상은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한 단원을 오랫동안 파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끝장을 보게 하는 방식인데, ‘나도 공부하기만 하면 어려운 문제도 풀 수 있구나’를 알게 해주는 거죠.
특히 어렵게 느끼는 단원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수학에서는 대표적으로 소수의 곱셈과 나눗셈입니다. 이때 많은 아이가 수학을 포기하죠. 하지만 중학교 이후부터는 이걸 그렇게 많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소수가 있으면 분수로 바꿔버리면 약분하기 편한 형태가 나오죠. 어려운 단원이지만 힘을 빼고 공부해도 괜찮은 단원이 있다는 걸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중학교 수학에서도 그런 단원이 있나요.
중학교 기하 파트가 대표적입니다. 중학교에서 배우는 기하는 논증 기하라고 해서 증명하는 문제가 많아요. 가령 삼각형 ABC와 삼각형 DEF가 합동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죠. 물론 이걸 공부하면 추론 능력이 발달합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해석 기하를 배웁니다. 기하 문제를 방정식이나 함수 형태로 풀어내기 때문에 중학교 심화 문제와는 결이 다릅니다. 학생이 여력이 안 된다면 굳이 중학교 수준의 어려운 기하 문제를 풀 필요가 없다는 거죠. 우리는 마라톤 대회를 나갈 건데 자꾸 허들 연습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물론 허들 연습을 하면 지구력에 도움이 될 수는 있죠. 하지만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겁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어려운 문제를 풀면 되나요.
현재 중3 학생들은 조바심을 내면서 어려운 수능 기출을 풀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근차근 가야 합니다. 아무리 선행학습이 돼 있더라도 수능 문제부터 접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일단 고등학교 첫 중간고사에 해당하는 심화 문제, 어려운 내신 기출부터 풀어봐야죠. 선행학습을 할 때 풀었던 ‘쎈’이나 ‘개념원리 RPM’ 같은 교재와 어려운 내신 기출은 이렇게 다르게 출제되는구나, 하면서 먼저 분석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내신 1등급과 2등급을 가르게 될 겁니다.
내 아이 ‘인출’ 돕는 매주 퀴즈 타임
교육과 접목한 인지과학은 어떤 학문인가요.인지과학의 세부적인 전공 분야입니다. 사람들의 인지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죠. 감각으로 무엇인가를 듣거나, 보거나, 알게 됐을 때 그 과정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일어나는지를 분석하죠. 저는 사람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학습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일어나는지,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교육이 이뤄졌을 때 학습 효과가 높아지는지를 주로 공부했죠.
교육과 관련된 최신 트렌드가 있나요.
최근 뇌과학이 발전하면서 기억의 메커니즘을 신경생물학 단위로도 밝히고 있죠. 효과적인 학습이 이뤄졌을 때 뇌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 반응을 일으키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가 밝혀지고 있어요.
효율적인 공부라는 게 가능할까요.
암기 과목으로 예를 들어볼게요. 우선 공부를 한 다음 바로 인출해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백지에 공부한 내용을 적어본다거나 머릿속으로 공부 내용을 생각해보는 거죠. 그렇게 바로 인출하는 연습을 하면 기억이 오래 지속됩니다.
복습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복습은 공부했던 걸 다시 공부하는 거죠. 다시 내용을 읽어보거나 문제를 다시 풀어보는 겁니다. 인출은 스스로 기억을 떠올리는 거예요. 근육처럼 뇌에서도 기억이 생성될 때 단백질 합성이 일어납니다. 뉴런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되죠. 머릿속에 잘 저장돼 있을뿐더러 필요할 때 그 정보를 쉽게 꺼낼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님이 인출 과정을 도와줄 수 있나요.
시험 전날, 아이들이 서로 공부한 내용을 물어보잖아요. 그게 인출 과정의 사례입니다. 부모가 평소에 그런 퀴즈 타임을 만들어줄 수 있어요. 중요한 건 답답하더라도 화를 내면 안 됩니다. 아이가 모른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해요. 또 일주일에 한 번 퀴즈 타임을 가지는 걸 권합니다. 게임도 횟수에 한계가 있으면 더 재밌는 것처럼, 자주 하지 않아야 아이도 승부욕이 생겨서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됩니다.
수많은 학생을 지켜봤을 텐데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나요.
왜 자기가 공부를 하는지 분명해요. 그리고 공부하는 걸 즐깁니다. 전문적인 용어로는 숙달접근동기라고 합니다. 낑낑거리며 문제를 풀다가 정답을 맞히면 ‘아싸!’ 하며 기분 좋아지는 감정을 아는 거죠. 선생님이 질문받은 문제를 풀어줄 때도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맞힐 수 있었다고 아쉬워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모습을 통해 그 학생이 얼마나 그 문제를 고민했는지를 알 수 있는 거죠.
부모가 숙달접근동기를 만들어줄 수 있는 건가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부모와의 관계가 좋습니다. 반대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고요. 부모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죠. 아이와 관계가 좋은 경우엔 부모가 동기를 만들어줄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중학생이 되는 순간 힘들어져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 거리두기를 강조합니다. 부모님과 아이가 성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어느 정도 관심을 보일 수는 있지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말라는 거죠.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방임하라는 건 아니고 선을 그으라는 거예요. ‘공부하는 건 네 일이다. 다만 공부를 안 하면 부모가 제공하던 걸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거죠. 다만 그걸 함께 써서 집에 붙여두길 권합니다. 부모는 약속의 결과에 대한 집행자일 뿐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죠. 그러면 아이는 ‘우리가 함께 만든 규칙을 지키는 거지, 부모 말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돼요. 고압적인 태도로 아이를 다그치면 역효과가 납니다.
그래도 화가 날 텐데요.
아이가 받은 성적에 대한 실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도 실망하는 건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럴 때 앉아서 얘기를 해보는 거죠. “지금 성적이 네 생각엔 어떤 것 같아?” “왜 이런 성적이 나왔다고 생각해?”라고 물어봐야 합니다. 이 역시 아이에게 숨 막히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제안하는 거죠. “다음에도 성적이 이렇게 나오면 스마트폰 사용을 제재할 수밖에 없어. 너도 공부에 스마트폰이 방해가 된다는 건 알고 있지?” 이렇게 서로 대화해가며 규칙을 정하고 그걸 문서화해두는 거죠.
김 대표는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 아이의 수준이 대학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역할은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언제든 시작해도 늦지 않았고, 지금은 건너는 징검다리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알려줘야죠. 그래야 그런 말에 힘을 얻어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김성태 #인지과학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출처 네이버카페 캡처 에이블에듀테크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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