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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작가의 향기

10대 ‘날라리’ 소녀들의 방황 다룬 소설 펴낸 작가 이명랑

글·송화선 기자 / 사진·성종윤‘프리랜서’

2008. 03. 21

등단 10년을 넘긴 중견 작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이명랑씨가 청소년 문제를 다룬 소설 ‘날라리 on the pink’를 펴냈다.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날라리’ 청소년들을 만나며 “사회 제도나 암묵적 분위기가 이들을 ‘날라리’로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는 그를 만났다.

10대 ‘날라리’ 소녀들의 방황 다룬 소설 펴낸 작가 이명랑

지난 97년 등단한 뒤 ‘삼오식당’ ‘나의 이복형제들’ 등 사회 주변부의 삶을 따뜻하게 보듬는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 이명랑씨(35)가 최근 10대 ‘날라리’ 소녀들의 삶과 방황을 다룬 소설 ‘날라리 on the pink’를 펴냈다. 거칠고 불량스런 느낌의 단어 ‘날라리’와 순수함을 상징하는 ‘핑크’를 결합시켜 만든 이 제목은 “반항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도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10대 소녀들”을 상징하는 것. 이 소설을 쓰기 위해 2년여간 홍대 앞 클럽, 한강시민공원, 미혼모쉼터와 소년원까지 ‘날라리’ 소녀가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다녔다는 이씨는 “그들을 ‘날라리’로 만드는 우리 사회와 어른들”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실업계 고교에 다니는 여학생 5명이에요.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가하는 폭력에 의해 너무 일찍 삶의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들이죠. 80~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엔 ‘인문계 학생 못지않게 똑똑하고 모범적이지만 가정환경 때문에 실업계에 진학한 아이’에 대한 이미지가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완전히 달라졌죠. 학생은 다 대학에 가야 한다고 여겨지고, 그 문턱에조차 가지 못한 실업계 아이들은 ‘날라리’로 여겨지거든요. 제대로 시작도 못한 채 내쳐지는 그들의 삶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의 소설 속에서 ‘날라리’들은 “우리에겐 우리를 표현할 어떤 방법도 없다. 우리의 말은 변명이고, 우리의 행동은 반항일 뿐. 억눌린 감정을 표현할 어떤 수단도 갖지 못한 우리에겐 상처낼 몸과 움켜쥔 주먹만이 유일한 언어”라고 말한다. 그들이 자신의 불완전함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하는 행동은 험한 욕설을 뱉고, 다리를 떨며 세상을 향해 ‘선빵’을 날리는 것이다.

“‘날라리’는 알고 보면 누구보다도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보통 아이들”
10대 ‘날라리’ 소녀들의 방황 다룬 소설 펴낸 작가 이명랑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생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이씨는 그런 아이들을 만나 대화하며 많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제가 작가라는 걸 밝히고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려 한다’고 하면 아이들은 의외로 선선히 저와 놀아줬어요. 금세 ‘피자 사줘요’ ‘담배 하나 줘요’ 하며 친근하게 대하고, 자기 친구들도 소개해줬죠.”
그렇게 점점 아이들의 세상을 알게 되면서 느낀 건 그들이 세상이 부여한 이미지에 갇혀 있을 뿐, 실은 참 여리고 상처받기 쉬운 존재라는 사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 ‘날라리 on the pink’는 한 소녀가 어느 날 문득 엉뚱한 오해에 휩싸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등굣길 버스 안에서 2학년 선배들에게 찍힌 주인공 ‘정아’는 화장실로 끌려가 구타당하기 직전, 주머니칼을 꺼내들고 반항한다. 하지만 두려움에 칼을 쥔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마는데, 그 모습을 본 선배들은 “저 아이가 간질 발작을 일으키려나보다”며 귀찮은 일이 생길까봐 자리를 피한다. 별것 아닌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던 이 사건이 확대된 건 그 장면을 목격한 동급생이 “선배들이 정아를 피해 도망갔다”는 소문을 퍼뜨리면서부터. 졸지에 ‘2학년을 한 방에 쓸어버린 대단한 년’이 된 정아는 ‘학교 짱’이 되고, 그 이미지는 이후 ‘정아’와 친구들의 삶을 이끌어간다.

10대 ‘날라리’ 소녀들의 방황 다룬 소설 펴낸 작가 이명랑

등단 후 1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책을 읽고 글을 쓸 때면 늘 설렌다는 작가 이명랑씨.


“우리도 세상을 살다 보면 주변 사람의 기대나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이미지에 갇혀 벗어나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잖아요. 아직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될지 전혀 모르는 아이들은 더 쉽게 이미지에 갇히게 되죠. 그리고 자신이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기력하게 끌려가요.”
이씨가 원하는 건 정아가 칼을 버리는 것, 그렇게 아이들이 자신을 옥죄는 사회의 시선을 벗어던지고 스스로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한때는 ‘세상이 규정한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겨워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씨는 개인적 체험에 바탕을 둔 소설 ‘삼오식당’을 통해 널리 알려졌듯, 서울 영등포시장 안 식당집 둘째 딸이다. 억척스럽고 투박한 시장 사람들과 더불어 자라나 이화여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작가가 된 그는 한 에세이에서 “나는 한때 이곳(영등포시장)에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나와는 너무도 다른 사람들. 대학에 들어가 만난 사람들은 내겐 엄청난 생의 충격이었다. … 학교에서 돌아와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갈 때까지 엄마의 식당에서, 형부의 과일가게에서 접하게 되는 시장 사람들의 소박하지만 거친 입담과 투박한 행동들, 과 사무실의 조교로 근무하면서 모시던 교수님들의 정제된 언동, 같이 근무하는 다른 조교들의 사근사근한 말투와 얌전한 걸음걸이, 나는 그렇게 하루에도 너무나 다른 두 세상을 여과도 없이 건너다녔다. 그러면서 내 몸에 밴 시장 사람들의 냄새를, 투박함을, 내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을 가난의 찌꺼기를 모두, 온전히, 몰아내버리자고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모른다”라고 적었다. 어린 시절 그는 시장 안에서 “1등과 반장을 놓치지 않는 특별한 존재”였고, 시장 밖에선 “그래봤자 시장 사람”인 모습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가 자신을 옭아매던 ‘입지전적 인물’이나 ‘시장 촌년’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이명랑’ 자신으로 살 수 있게 된 건 글을 쓰면서부터다.

“청과물 경매사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평범한 일상이 문학에 대한 열정 북돋워줘요”
이씨의 남편은 엄마 식당에 자주 들르던 열 살 연상의 청과물 경매사. 지난 97년 두 사람이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시집에서는 “작가면 책 읽느라 밥 타는 줄 모르고, 빨래가 비에 젖어도 모르는 거 아니냐”며 반대했다고 한다. 작가와 청과물 경매사가 어울리지 않는 결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 ‘작가’와 ‘경매사의 아내’ 사이 경계를 자유롭게 넘어다닌다.
“사실 제 일상생활은 ‘작가’라고 하면 그려지는 이미지와는 좀 다를 거예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문학을 열망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죠. 제 침대 머리맡엔 늘 독서용 스탠드와 책이 놓여 있어서, 잠을 깨면 책부터 읽어요. 아침에 아이들 아침 먹여 학교 보내려면 6시쯤 일어나야 하는데, 보통은 훨씬 일찍 일어나 책을 읽죠. 남편이 새벽 3시면 출근해서 이른 아침은 온전히 저 혼자만의 시간이거든요. 그러다 아이들 깨우느라 책을 덮어야 할 시간이 되면 다시 펼 때까지 계속 마음속으로 ‘아, 그 뒤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 하며 조바심을 내요. 그러니 다시 책을 펼쳤을 때 문장 하나하나가 얼마나 더 소중하겠어요(웃음).”
이씨는 집필도 집에서 한다. 오후 1시면 퇴근하는 남편은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분담하고, 아이들 역시 그가 글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특히 이씨가 지난해 펴낸 동화책 ‘오늘은 촌놈 생일이에요’가 초등학교 2학년 추천도서로 선정된 뒤엔 엄마를 부쩍 자랑스러워하는 게 느껴진다고.
“한번은 작은딸이 ‘엄마 책이 학교 도서관에 있는데 인기가 얼마나 많은지 나는 빌릴 수도 없어’ 하더라고요(웃음). 그전에는 작가가 뭔지도 모르던 아이가 그렇게 기뻐하는 걸 보니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래서 자꾸 동화가 쓰고 싶어져요.”
그렇게 이씨는 지금 자신의 삶에서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세상이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며 “‘날라리 on the pink’를 통해 세상의 아이들을 ‘모범생’과 ‘날라리’로 규정하는 세상의 틀이 조금이라도 깨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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