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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월급 절반 저축, 30년 후의 나를 위한 확실한 선물”

김민식 전 PD의 슬기로운 은퇴생활

조지윤 기자

2025. 06. 17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등 온갖 투자법이 난무하는 시대에 ‘저축’이라는 재테크의 기본 원칙으로 경제적 자유를 이뤄낸 김민식 전 PD. ‘절약이 최고의 재테크’라는 이 어려운 진리를 30여 년간 실천해온 그를 만났다.

‘한탕’에 대한 기대가 유독 커진 시대다. ‘영끌’로 집을 사고, ‘빚투’로 주식을 사고, ‘단타’로 코인을 쫓는다. 투자 대신 저축을 한다고 하면 “그걸로 부자 되겠냐”는 말이 돌아온다. 분명 돈을 버는 방식은 과거와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부의 본질은 여전히 단순하다. 버는 것보다 적게 쓰고, 꾸준히 모으는 것. 하지만 ‘월급 모아봤자 쥐꼬리’라는 체념 속에서 이 원칙은 너무도 쉽게 간과된다.

그 단순한 진리를 30년 동안 지켜낸 사람이 있다. 바로 MBC 드라마 PD로 24년간 일하며 ‘뉴 논스톱’ ‘내조의 여왕’ 등을 연출했던 김민식 PD. 대학 시절 입주 과외를 하며 받은 월급 10만 원 중 절반을 저축하던 그 습관은 직장인이 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2020년 명예퇴직을 하기 직전까지도 그는 ‘버는 돈의 절반은 미래의 나에게 보낸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렇게 30년을 ‘반’만 쓰며 살다 보니, 앞으로 남은 30년도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충분하겠다는 확신이 생겼고, 퇴직을 결심할 수 있었다고. 이제 그는 짝수 달마다 해외여행을 다니고 매년 책 한 권을 펴내며, 줌바댄스를 배우고 새로운 외국어에 도전하며 그야말로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삶을 살아가고 있다.

투자가 화려한 수익률을 약속하는 시대, 김민식 전 PD는 말한다. ‘월급’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재테크의 기회라고. 그에게 부란 특정 수치나 조건이 아닌, 스스로의 시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김 전 PD를 만나, 그가 30년간 몸소 증명해온 ‘월급으로 시작하는 재테크’와 이를 가능케 하는 단단한 삶의 태도에 대해 들었다.

월급은 확실한 재테크 기회

다양한 주제로 책을 써왔지만 ‘재테크’ 주제는 처음이네요.

최근 경제나 자기 계발 분야 베스트셀러를 보면 빌라 월세로 수익 내는 법이나 가상화폐로 대박 나는 법 등 투자 관련해선 온갖 책이 있는데 ‘저축’에 관한 책은 많지 않습니다. 정작 제가 52세의 나이에 퇴직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이유는 20세 때, 버는 돈의 절반을 저축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책을 읽었던 덕분이었어요. 실제로 부자가 되는 법은 아주 간단해요. 버는 것보다 적게 쓰면 되죠. 이 격차를 늘릴 방법은 남은 돈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저축부터 하고 남은 돈 내에서 생활을 하면 됩니다. 20세에 과외로 첫 월급을 받은 이래 30년간 꼬박꼬박 급여의 절반을 저축하니 늘 여윳돈이 있고, 돈 걱정이 없어졌죠. 이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사실을 누군가는 알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책을 썼습니다.



월급 절반을 저축,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출간 후 욕을 많이 먹고 있어요(웃음). 물가도 싸고, 집값도 폭등하기 전에 태어났기에 가능했던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라고요. 특히 팬데믹 시기 자산의 버블로 재미를 본 사람들이 많고, 이들이 성공담을 퍼뜨리면서 투자만이 유일한 자산 상승의 방법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재테크의 3요소인 투자금, 수익률, 기간 가운데 우리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기간’밖에 없습니다.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먼저, 투자금은 냉정하게 어느 환경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집이 가난하면 초기에 투자금을 구하기도, 투자금을 모으기도 힘들죠. 수익률은 어떤 시기를 만나는지가 중요합니다. 개인이 아무리 기업 가치를 분석해도 정책 하나에 주식이 폭락하기도 하죠. 유일하게 자의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투자 기간입니다. 1년, 2년 안에 부자가 될 수 없다면 10년, 20년을 투자하면 됩니다. 저 역시 월급을 30년 동안 모았기에 경제적 자유를 달성할 수 있었고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저축을 통해 종잣돈을 모은 다음에 수익률이 높은 상품을 고민해야 하는데 최근 많은 사람이 수익률만 고민하죠.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산의 가치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가치를 키우는 게 더 중요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쉽게 몸값을 높여야 한다는 건데, 이는 재테크와는 반대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집중력은 희소한 자원입니다. 이를 주식, 부동산 투자 등에 쏟기 시작하면 정작 ‘내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져요. 직장인이라면 회사에서, 자영업자라면 사업에서 더 성과를 내는 법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결국, 월급이야말로 ‘보통’ 사람들에게도 매달 오는 소중한 재테크 기회죠.

정작 직장인 시절 이직 제안은 거절했다고요. 몸값 인상을 위한 핵심 방법이 이직 아닌가요.

자신의 가치를 올린다고 할 때, 조심해야 할 게 있어요. 현재보다 나의 가치를 아주 높이 부르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 사람한테 ‘나’를 팔면 안 돼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평생 ‘나’라는 상품을 팔며 살아가는 것은 맞지만, 이때 돈을 제일 많이 주는 사람한테 파는 게 아니라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 팔아야 해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돈을 버는 이유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예요. ‘경제적 자유’의 핵심도 결국 ‘자유’에 있고요. 그런데 당장 하고 싶은 일도 아니고, 심하게는 이직을 해서 다른 직원들을 쪼는 등 악역을 맡아야 하는 일이라면 아무리 많은 돈을 받아도 행복하지 않아요. 다만 당시 이직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매달 월급의 반을 저축하면서 가진 돈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때 돈이 없었다면 돈에 좌우된 선택을 했을 거예요.

저축이 재테크의 기본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교육비 부담으로 인해 저축이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이에 대해 그는 맞벌이 가정이라는 점과 자녀 교육비의 상당 부분을 배우자가 부담해왔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다만 그는 “맞벌이를 하고 배우자가 고소득자라 저축이 가능했던 것 아니냐”는 시선에는 선을 그었다. 생활 전반에서 소비를 줄이고, 실천 가능한 절약을 지속해온 습관이 핵심이었다는 설명이다. 여전히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고, 15년 된 차량을 타며, 국내 여행 시에도 5만 원 이하 숙소를 찾는 생활 방식은 그 절제의 연장선이다.

1억 원부터 모아야 하는 이유

예나 지금이나 재테크의 기본은 ‘1억 원 모으기’라고들 합니다. 왜 하필 1억 원인가요.

1억 원 모으기라는 목표를 세우면 시스템을 만들게 됩니다. 예컨대 5년 안에 1억 원을 모으겠다고 하면 월 기준 얼마를 저축해야 하고, 보너스가 나오면 얼마나 저축해야 하는지 등 자동으로 계산이 따라붙어요. 목표를 구체화하면 일상 속 소비, 저축, 보너스 운용까지 모든 경제 활동이 설계되기 시작해요. 이달에는 얼마를 써야 하고, 비정기 수입이 생겼을 때는 어떻게 활용할지 자동으로 플랜이 짜이더라고요. 그게 바로 시스템이에요.

막연한 ‘부자 되기’보다는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액수를 설정하라는 말씀이군요.

맞아요. 재테크에 있어서 어느 아파트를 사겠다거나 매달 수익률을 얼마 내겠다는 것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닙니다. 집값이 갑자기 뛸 수도 있고 시장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죠. 하지만 1억 원 모으기는 내가 그 과정을 직접 선명하게 통제할 수 있어요. 매달 수입과 지출을 직접 조절하며 달성할 수 있는 아주 현실적인 목표예요. 이를 달성해서 첫 1억 원을 모을 때의 효능감은 상상 이상입니다. 이런 성취감을 조금씩 맛보면서 점점 단단해져요.

저축을 잘하는 방법이 있나요.

기본적으로 소비를 적게 해야 하죠. 저는 술, 담배, 커피는 물론이고 돈 들어가는 취미는 하지 않아요(웃음). 보통은 대중교통을 타고, 차를 타야 할 일이 있으면 15년 된 차를 이용하죠. 결정적으로는 할부로 물건을 사지 않아요. 12개월 무이자 할부로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12개월 적금에 들어요. 그렇게 하면 목돈도 생기고 이자도 생기고, 1년을 기다리면서 매달 설렘도 생기죠. 무엇보다 1년이 지나면 그 물건을 사고 싶은 욕망도 사그라들 수 있어요. 결국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은 ‘보상 지연’에 있어요.

보상 지연이 무엇인가요.

행복은 지금 당장 쾌락을 추구하는 것보다 잠시 불편하고 고통스럽더라도 먼 훗날 나에게 쾌락을 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마시멜로 이야기’와 비슷하죠. 소비는 쾌락이고 저축은 고통이죠. 당장 사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바로 사지 않고 할부 대신 적금으로 스스로에 대한 보상을 한번 지연시키는 훈련을 자꾸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원래 인생의 주된 요소는 고난과 시련이고 가끔씩 행복하고 기쁘다는 관점인데, 요즘은 모두 빛나는 순간을 기록해서 SNS에 올립니다. 30만 원짜리 공연을 본 모습만 떠올리면서 부럽다고 하지만 그 뒤에 돈을 모으기 위해 애쓴 순간은 생략돼 있죠. 남의 화려한 장면만 보다 보면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어요. 쾌락을 추구하고 살다 보면 그 쾌락이 오지 않을 때는 내 삶이 힘든 것처럼 느껴지죠. 담백하게 살면 화날 일이 없어요. 저도 늘 어떻게 하면 도파민을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하며 삽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단기적인 보상에 익숙하다 보니 꾸준함을 실천하기 힘드네요.

사람의 실력은 뭔가 대단한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작은 일을 꾸준히 반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꾸준히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어떤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걸 하나하나 해나가는 거 말고는 인생을 바꿀 방법은 없어요.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보다는 이를 위해 매달, 매일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꾸준함만이 나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이를 실천하는 팁이 있다면요,

꾸준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늘 30년 후의 나와 상의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500만 원 성과급을 받고, 해외여행을 고민하고 있으면 70세의 김민식이 40세의 김민식 앞에 나타납니다. ‘너는 다음 달에도 월급이 나오겠지만 나는 당장 돈 들어올 곳은 없고 나갈 데만 있다’며 그 돈을 자길 달라면서요(웃음). 돈뿐 아니라 건강도 마찬가지예요. 요즘 저는 매일 푸시업 100개, 스쿼트 100개를 해요. 물론 어떤 날은 피곤하고 하기 싫죠. 그럴 땐 또 80세의 김민식이 나타나요. ‘지금 네가 운동해줘야 그 근육으로 내가 살 수 있어.’ 우리는 결국 60세까지 모은 돈과 60세까지 만든 몸으로 남은 30년을 살아가야 하잖아요. 30년 후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부탁하는 걸 꾸준히 그냥 반복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인생은 되게 쉬워요. 

읽고 쓰고 걷는 사람

퇴직 후에는 ‘직함’이 아닌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요.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그걸 깨달은 건 2015년, 회사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이상하게도 그 이유가 성과 때문이었어요. 어떤 드라마가 잘됐는데, 그걸 못마땅해하던 경영진이 저를 성과 낼 수 없는 부서로 발령을 냈거든요. 회사 엘리베이터를 타는 게 무서워서 오죽하면 계단으로 걸어 다닐 지경이었어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나 산티아고 순례길 다녀올래” 하며 사표를 내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딱 한마디 하더라고요. “그냥 참고 다녀.” 그 순간부터는 회사보다 아내가 미워졌어요(웃음). 나는 지금 당장 산티아고로 가야 하는데, 그래야 살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이대로 가면 내가 아내를 너무너무 미워하게 될 것 같아서 다시 생각했죠. ‘산티아고를 왜 가려고 했더라?’ 하루에 4~5시간씩 걸으면서 삶의 의미를 되짚고 싶었던 거예요. 굳이 스페인까지 가지 않아도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쉬는 날마다 서울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고, 주말마다 걷다 보니 결국 완주했어요. 이 과정에서 꿈에는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픈 사람을 돕고 싶으면 의사가 되는 것만이 방법이 아니라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고요. 작가가 되고 싶으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책을 쓰면 됩니다. 의사 또는 베스트셀러 작가처럼 꿈에 조건을 단다고 해서 무조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죠. 저를 책 읽고, 글 쓰고, 길을 걷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이유입니다.

PD로 오랫동안 카메라 뒤에 섰는데 이제는 앞에 서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떤가요.

사실 좀 부끄럽기도 해요. 그런데 PD 시절에도 가끔 카메라 앞에 선 적이 있어요. 필리핀에서 촬영할 땐 제가 직접 현지인 악사 역할로 엑스트라 출연하기도 했죠. 그렇게 했던 이유는 단 하나예요. 역지사지. 카메라 뒤에서 지시만 내리다 보면, 정작 카메라 앞에 선 사람이 느끼는 긴장이나 어려움을 몰라요. 직접 해봐야 알죠. ‘아, 이래서 배우들이 긴장하는구나’ ‘이래서 말이 꼬이는구나’ 그런 걸 몸으로 알게 되더라고요. 이는 일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깊이 있게 살기 위해서는 항상 타인의 입장에 공감하고 이해해야 하죠. 그래서 지금 제가 카메라 앞에 서는 일들도, 여전히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김민식PD #재테크 #저축 #여성동아
‌사진 이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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