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2’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화려한 테크닉이 아닌, 한 아버지의 진심이었다. ‘프렌치 파파’ 이동준(타미 리) 셰프는 동료들의 응원 속에,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아들 재진이의 이야기를 담담히 고백했다. 아빠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아들은 그가 진심을 다해 요리할 수 있게 만든 가장 큰 동력이었다.
그가 17년째 운영 중인 서울 청담동 레스토랑 ‘비스트로 드 욘트빌’은 단순한 식당을 넘어 그의 요리에 대한 열정과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시간이 쌓인 공간이다. ‘미쉐린 가이드’는 이곳을 두고 “클래식한 프렌치 비스트로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이곳의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는 마치 프랑스 본토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실제로 공간 곳곳에는 순수미술을 전공한 아내의 감각이 스며 따뜻한 온기를 만든다.
이동준 셰프는 다소 늦은 나이인 28세에 요리를 시작했다. 미국 유명 요리학교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서 수학하고 노부, 프렌치 런드리 등 세계적인 레스토랑에서 실무 경험을 쌓은 뒤 2008년 한국에 돌아와 비스트로 드 욘트빌을 오픈했다. 하지만 그를 진정한 요리사로 완성시킨 것은 화려한 커리어가 아닌, 아들 재진이라는 존재였다. 그는 자신에 대해 “재진이가 아니었다면 나밖에 모르는 셰프였을 것”이라며 “아들은 내 인생의 은인”이라 말한다. 그는 아이를 키우며 비로소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깊이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이는 요리에도 고스란히 투영됐다. 단순히 기술을 구현하는 조리사를 넘어 삶의 본질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접시 위에 풀어내는 그는 마치 ‘요리하는 철학자’ 같다. ‘요리사는 남을 행복하게 할 때 비로소 행복해지는 사람이며, 그 마음의 본질은 자식을 따뜻하게 맞는 어머니의 마음(hospitality)과 같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흑백요리사2’에 참가한 셰프들과 함께한 이동준 셰프(맨 오른쪽).
17년간 자리 지켜온 청담동 터줏대감
방송 이후 식당은 예약 오픈 1분 만에 만석이 될 정도로 붐빈다. 하지만 그는 아침마다 ‘손님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자문하며 초심을 다지고, ‘세계 자폐인의 날(4월 2일)’을 맞아 토크 콘서트를 여는 등 사회적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정성을 켜켜이 쌓아 올린 어니언 수프 한 그릇에 누군가를 안아주는 듯한 포근함을 담아내고 싶다는 이동준 셰프를 만나 요리와 삶,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흑백요리사 2’ 출연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뭔가요.
많은 분이 알아봐 주시는 것도 그렇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손님이 찾아주고 계세요. 예약을 오픈하면 1분 만에 한 달 치가 매진될 정도고, 홍콩·대만·싱가포르 등 해외에서 오시는 분들도 많아서 넷플릭스의 영향력을 실감합니다. 단골손님들은 예약이 어려워져서 불편할 법도 한데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주시고요. 한 손님이 “셰프님이 더 잘되기를 예전부터 기도했다”고 말씀해주셨을 땐 울컥하더라고요. 이런 변화들이 저에게는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방송 현장에서 동료들의 응원이 대단했습니다. 특히 송훈 셰프는 눈물까지 흘리던데요.
전혀 몰랐습니다. 요리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주변 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거든요. 송훈 셰프와는 CIA 동기예요.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다가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송 셰프가 아이를 데리고 찾아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 함께 식사하며 왜 다시 미국에 오게 됐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깊은 이야기를 나눴죠. 아마 그 시간이 기억에 많이 남았던 것 같아요. 제 삶의 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보여준 응원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요리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대 후반 상하이 유학 시절, 다양한 음식과 식당을 접하면서 ‘식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서치를 해보니 셰프가 곧 오너인 곳들이 오래가더라고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단골집이라도 주방장이 바뀌어 맛이 달라지면 다시는 안 가시는 모습을 보며, ‘내가 직접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늦게 시작한 만큼 제대로 배우고 싶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학비를 마련해 CIA로 향하게 됐습니다.
‘프렌치 요리’를 선택한 이유는요.
처음엔 일식을 하고 싶었어요. 퓨전 일식으로 유명한 노부 셰프가 롤 모델이어서 인턴십도 그곳에서 했어요. 그런데 저와는 잘 맞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틈틈이 찾아갔던 프랑스 레스토랑의 음식과 분위기에 매료돼 프랑스 요리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요리를 위해 이런 것까지 해봤다’ 싶은 게 있다면요.
요리 하나만 생각하며 연고도 없는 나파 밸리 시골 마을까지 갔던 때가 떠오르네요. 돈이 없어서 와인 밭 한가운데 있는 오두막 같은 방을 빌려 살았죠. 일하고 싶었던 레스토랑이 처음엔 저를 안 받아줘서 무작정 무급으로 일하겠다고 매달렸어요. 아침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9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더니 몸무게가 18kg 넘게 빠지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나’ 싶을 정도로 요리에 몰두해 있었죠.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면 한 번쯤 그런 언덕을 넘어야 하잖아요. 제겐 그때가 잊을 수 없는 첫 번째 언덕이자, 지금의 저를 만든 시간입니다.

이동준 셰프가 운영하는 ‘비스트로 드 욘트빌’은 청담동 골목에서 1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늘 가장 맛있는 프렌치 어니언 수프
비스트로 드 욘트빌의 시그니처 메뉴를 꼽자면요.처음 문을 열 때부터 바뀌지 않고 자리를 지켜온 프렌치 어니언 수프입니다. 오랜 시간 같은 요리를 반복하면서 맛이 조금씩 발전해서, 오늘 아침에 만든 수프가 가장 맛있는 수프라고 자부합니다.
방송에서 가족사진을 공개하셨죠. 아빠 품으로 달려오는 아들을 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언제 찍은 건가요.
재진이가 세 살 때 제주도에서 찍은 거예요. 아이가 아프다는 진단을 받고 몇 달 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떠났던 여행이었죠. 평소 식당에 매여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 힘들었던 탓에 그날은 오랜만에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것 같아요. 아내가 그 순간을 잘 포착해줬죠. 지금 다시 떠올려도 마음 한구석이 울컥해지는 사진입니다.
아들이 ‘인생의 은인’이라고요.
재진이가 처음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을 때 아이를 돌봐야 할 긴 여정, 그러니까 다른 사람보다 더 힘든 부모로서의 삶이 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비로소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지하철을 타고 가다 나이 많은 장애인 자녀를 케어하는 노부부를 보면 마음이 짠해지기도 하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비슷한 상황에 있는 부모님들과 가족들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좁은 시야로 살고 있었는지 알게 됐고, 많은 부분이 바뀌었습니다. 재진이가 아니었다면 저밖에 모르는 셰프가 됐을지도 몰라요(웃음).

달려오는 아들을 향해 환하게 웃는 이동준 셰프. 아들이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은 몇 달 후 제주도 여행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자폐 아이들은 감각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어요. 재진이도 비행기나 지하철을 무서워해서 못 탈 정도로 두려움이 많았죠. 먹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자기가 먹는 한두 가지 말고는 잘 못 먹었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 김밥 속 재료의 식감이나 맛이 어떨지 몰라 힘들어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희 아이도 비슷했거든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아이의 입맛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긴 코스 요리도 같이 즐길 수 있게 됐지만, 그래도 한식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 한식 책을 사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불고기와 국수, 2가지를 좋아하는데 음식을 먹다가 맛있으면 눈을 맞춰 저를 봐줘요. 그 표현을 해줄 때가 저에게 큰 기쁨입니다.
아내도 요리를 전공했다고요.
아내와는 CIA에서 만났어요. 원래 미술을 전공했는데, 어느 날 슬럼프가 찾아와 그림을 못 그리게 되면서 두 번째로 하고 싶었던 요리를 배우러 그곳에 온 거였죠. 아내를 처음 본 순간 ‘저 사람이 만약 남자 친구가 없다면 무조건 결혼한다’는 마음을 가졌을 정도로 반했습니다. 결국은 그렇게 됐죠(웃음). 사실 비스트로 드 욘트빌에 있는 거의 모든 것에 아내의 손길이 묻어 있어요. 식당에 걸린 그림, 인테리어, 쇼 플레이트와 테이블웨어, 메뉴판 디자인에까지 아내의 감각이 녹아 있거든요. 하지만 아이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13년 동안 아이를 위해 살았습니다. 본인이 아끼던 레스토랑에서 더는 일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해 처음에는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결국 아이를 선택했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희생해준 거죠.

비스트로 드 욘트빌의 인테리어와 그림, 플레이트 등은 모두 아내의 손에서 탄생했다. 이동준 셰프는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CIA에서 요리를 공부한 아내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한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내는 자폐 아이의 부모들
최근에 아내가 일을 다시 시작했다는 소식이 있던데요.저는 이번에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서 많은 메시지를 받으며 큰 위로가 됐어요. 그러면서 구겨졌던 마음이 다 펴진 느낌이에요. 그런데 아내의 마음엔 아직 구김살이 남아 있지 않나, 하는 미안함이 있었어요. 그러다 최근에 아내가 테이블 스타일링 클래스를 열었는데, 제가 옆에서 음식 하는 걸 도와줬거든요. 클래스가 끝나고 수강생 몇 분이 보내주신 문자나 DM을 보며 아내가 밤새도록 행복해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이제는 아내 차례구나. 내가 많이 도와줘야겠다’고요. 아내가 자신의 브랜드를 준비 중인데, 가을쯤에는 정식으로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아내가 저보다 더 유명해질 거라 믿고, 옆에서 든든하게 외조할 계획입니다.
‘세계 자폐인의 날’을 맞아 진행한 토크 콘서트에서 울컥했다는 참가자의 후기를 봤어요.
어떤 분이 “우리나라의 인식이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고 있는데,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분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시기에 “이 자리에 계신 부모님들”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분들은 한 분 한 분이 ‘잔 다르크’ 같으세요. 다들 평범한 부모였지만 아이를 통해 삶이 완전히 변하신 분들이거든요. 아이가 갈 곳이 없으면 길을 만들고, 아이가 가질 직업이 없으면 직접 직업을 만들 정도로 강한 분들이에요. 그런 분들과 마주하면서 저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진심이 전달돼 많은 분이 공감해주셨던 것 같아요.
나중에는 재진이와 비슷한 아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요.
‘흑백요리사 2’ 인터뷰 때 요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라 편집될 줄 알고 지나가는 말로 했던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그 장면을 제작진분들이 잘 담아주셨더라고요. 덕분에 제 꿈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죠(웃음). 이제는 말해버렸으니 안 할 수가 없게 됐는데, 방송 이후 멕시코, 브라질, 프랑스 등 전 세계에서 비슷한 형태의 카페를 보여주시며 도와주고 싶다는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제가 만들고 싶은 공간은 재진이와 비슷한 아이들, 그리고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부모님들을 위한 일종의 플랫폼이에요. 그런 모델이 실제로 가능할지 직접 실험해보고, 보완해서 확장해나가고 싶습니다. 훗날 재진이가 자랐을 때, 아이가 원한다면 제 아들로서가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곳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 그것이 제가 꿈꾸는 모습입니다.
이곳을 찾는 분들이 어떤 기억을 가져가길 바라나요.
저는 우리 식당의 요리가 손님들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어요. 요즘은 혼자 사는 분들도 많잖아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마음속에는 어릴 적 어머니가 나만을 위해 정성껏 끓여내 주시던 ‘최고의 요리’에 대한 기억이 있다고 생각해요. 타지에서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며 버티는 분들에게, 비록 메뉴는 프랑스 요리일지라도 그 바탕에 담긴 마음만은 어머니의 된장찌개 같은 요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손님들이 한 입 드셨을 때 “오늘 참 고생했다” “요즘 많이 힘들지?”라며 누군가 안아주는 듯한 포근함을 느끼셨으면 해요. 제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직원들에게도 전달되고, 손님들도 느끼시더라고요. 그게 요리가 가진 힘이라고 믿어요.
#프렌치파파 #이동준 #비스트로드욘트빌 #여성동아
사진 박해윤 기자 이상윤 사진제공 이동준 인스타그램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