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그만두고 카페 한번 차려볼까?”
2024년 채용 정보 서비스 알바천국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9명꼴로 ‘창업’을 꿈꾼다. 유정수 대표는 그 흔한 직장인의 꿈을 현실로 만든 인물이다. 스타트업 개발자로 일하던 그는 ‘익동 정육점’ ‘살라댕 방콕’ ‘심플 도쿄’를 연달아 성공시키며 익선동을 서울의 대표 핫 플레이스로 만들었다. 그 외에도 익선동의 ‘청수당 베이커리’, 망원동 ‘소설원’ 등 대중의 사랑을 받는 카페를 기획하며 탁월한 감각을 인증받았다.
물론 그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IT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던 그는 친구의 제안으로 첫 레스토랑을 열었다. 대박의 꿈은 잠시, 매출 부진으로 결국 폐업을 겪었다. 이후 두 번째부터 네 번째 가게까지 인테리어업체에 연달아 사기를 당하는 시련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 좌절이 지금의 ‘글로우 서울’을 만들었다. 현재 글로우 서울은 단순한 F&B 브랜드 그룹을 넘어 ‘공간 기획 컨설팅 회사’로 자리 잡았다. 서울 창신동과 대전 소제동 같은 노후 도시 재생 프로젝트부터 스타필드 수원 별마당 도서관, 롯데 타임빌라스 등 대형 상업 공간까지 다양한 공간 기획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며, 2024년 매출 633억 원을 기록했다. 트렌드를 읽는 남자, 유정수 대표에게 초보 사장들을 위한 실전 조언을 들었다.
“첫 가게는 저도 망했어요”
직장 생활을 하다가 장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현재 ‘글로우 서울’의 부대표이자 당시 지인이었던 강성구 셰프가 경기도 안양에서 가게를 운영하다가 서울에 새로운 가게를 열고 싶다고 했어요. 저도 요리를 좋아해서 선뜻 동업 제안에 응하게 됐죠. 워낙 요리를 잘하는 친구라 서울에서 가게를 열면 무조건 잘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운영을 해보니 현실적인 어려움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요즘 같은 시대에 요리 실력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매출이 0원이던 날도 많았으니까요. 결국 첫 가게는 영업 부진으로 폐업했죠. 그때는 브랜딩, 인테리어, 공간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랐어요. 그 부족한 점을 채우다 보니 지금의 글로우 서울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어떤 가게였나요.
한마디로 브랜딩이 잘못된 가게였죠. 동업자인 강 셰프가 모든 요리를 잘하다 보니 이탈리아 요리, 일식, 한식, 태국식 등 다양한 메뉴를 구성했거든요. 이렇게 되면 레스토랑이 아니라 그냥 ‘술집’이 돼버려요. 브랜딩이 잘된 레스토랑으로서는 기능하지 못합니다.
다음 가게부터는 어떤 전략을 세웠나요.
첫 번째 가게에서 했던 메뉴를 장르별로 나눠 새로운 매장을 각각 냈어요. 이탤리언 음식점인 ‘익동 정육점’, 태국식 요리점인 ‘살라댕 방콕’, 일식 요리점인 ‘심플 도쿄’를 1년 주기로 개업했죠. 세 군데 모두 대박이 났어요. 평범한 식당에서 팔던 팟타이와는 다르게 태국의 리조트를 연상시키는 공간에서 먹는 팟타이는 인기가 많더라고요.
인테리어업체에 세 번 연달아 사기를 당하셨다고요.
두 번째 가게부터 네 번째 가게까지 연달아 3번 사기를 당했죠. 패턴도 항상 동일했어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공사 대금을 앞당겨 받고 결국 잠적하는 패턴이었죠. 그런 사기를 치는 사람들 대부분은 신용불량자거나 통장에 잔고가 없거든요. 돈을 돌려받기 어렵다고 판단해 소송도 진행하지 못했죠.
인테리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결국 제가 인부들을 모아 직접 인테리어를 했어요. 심지어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던 동생들도 같이 공사를 도왔죠. 타일도 직접 붙이고 미장도 하고, 심지어 전기 설비도 손수 했어요. 아마추어였지만 제법 그럴듯한 작품이 나와서 두 번째 매장부터 큰 성공을 거뒀죠. 결국 인생사 새옹지마예요. 만약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면 제가 직접 공간 기획에 뛰어들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지도 못했을 거고요.

글로우 서울의 대표작인 청수당 베이커리. 정원을 갖춘 300평 정도의 한옥 카페로, 익선동 대표 명소로 떠올랐다.

글로우 서울은 롯데 타임빌라스, 스타필드 수원의 별마당 도서관 등 다양한 상업 공간 기획 에도 참여했다.
좌절이 열어준 공간 기획의 길
지금의 글로우 서울은 요식업체인가요, 공간 기획사인가요.이제는 ‘공간 기획 컨설팅 회사’라고 보는 게 맞아요. 제가 과거 경험을 통해 공간 기획에 눈을 뜨고 이 부분을 더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익선동 프로젝트’나 ‘창신동 프로젝트’ 같은 마을 기획까지 나아갔고요. 지금은 회사에서 건축가를 비롯한 공간 기획 전문 인력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현재 글로우 서울은 F&B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공간 기획 컨설팅 회사로 자리를 잡았죠.
익선동을 글로우 서울의 첫 무대로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제가 첫 가게를 2015년 9월에 열었는데 당시 익선동에는 카페, 레스토랑이 하나도 없었어요. 단지 한옥에서 매장을 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부동산을 찾았죠. 그런데 북촌에 있는 한옥은 너무 비싸기도 하고 무척 고급이어서 함부로 개조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익선동은 한옥 보존지구도 아니고, 재개발 구역이라 한옥을 부수는 중이었어요. 직접 개보수하면서 가게를 차리기에는 적합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왜 한옥이었나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래된 건물은 그 귀한 시간을 품고 있잖아요. 오래된 미술품은 수십억 원에도 팔리는데, 우리나라에서 한옥 같은 오래된 건축물들은 너무 저렴한 가격에 거래됩니다. 그렇지만 저는 오래된 건물 하나하나가 거대한 조각 작품처럼 느껴지거든요. ‘이 규모의 거대한 조각 작품을 이 정도의 비용으로 살 수 있다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죠.
상업적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판단이라고 생각하셨나요.
이미 한옥이 하나의 예술품이기 때문에 여기에 제 미적 감각을 더해 창조적인 공간을 만들면, 고객들에게 신축 상가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익선동이 그 가치를 증명했죠. 익선동에서 한옥을 부수고 세운 4층 상가보다 그 옆에 있는 단층 한옥이 더 높은 수익을 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공간이 주는 힘이 막대한 거죠.
‘카페 한번 해볼까?’를 고민하는 미래의 자영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하지 마세요(웃음). 뉴욕과 서울이 인구가 비슷한데 카페 수는 서울이 뉴욕보다 11배 더 많아요. 이런 시장에서 투자비를 회수하고 돈을 벌어가는 매장은 극히 드물어요. 그리고 프랜차이즈가 아닌 카페들도 글로우 서울처럼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회사들이 기획한 경우가 많거든요. 메뉴, 공간, 브랜딩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설계한 카페와 개인 사업자가 경쟁하긴 어려운 구조예요. 회사 생활 지겨운데 ‘카페나 한번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접근하지는 마세요.

“카페는 전문가의 영역, 쉽게 보면 안 돼요”
진지하게 자영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요.자영업자 중에 가장 폐업률이 낮은 업종이 미용실이에요. 미용 기술을 최소 1년 이상은 배우고 업장에서 일하다가 개업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업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기반하는 거죠. 최소 2~3년 동안 업계에 대한 이해를 몸으로 체득하셔야 해요. 카페를 하고 싶다면 커피 자격증을 따고 현장에서 기술을 배우면서 내공을 기르셔야 합니다.
초보 사장님들이 간과하기 쉬운 포인트가 있다면요.
대부분 테이블 욕심이 너무 많으세요. 많은 사장님이 직원, 재료, 테이블 같은 리소스를 주말 피크 시간대에 맞춰 설정하세요. 주말이면 테이블 모자란다는 이유에서죠. 하지만 모든 요소를 최대치로 설정하면 오히려 영업이익률에 있어서는 손해죠. 평일에는 매출이 받쳐주지 못하니까요. 여유 자원이 생기는 부분까지 고려해 리소스를 적정하게 설정하셔야 합니다.
매장 콘셉트를 잡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요.
나쁜 콘셉트는 없어요. 다만 ‘나쁜 구현 방식’만 있을 뿐이에요. 바로 일관성을 해치는 구현 방식입니다. 휴양지풍, 북유럽풍 등 다양한 콘셉트가 있는데 이런 취향들에 우위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일관성 없이 서로 다른 스타일을 섞어버리는 방식은 최악입니다. 하나의 콘셉트를 정하고 메뉴부터 인테리어까지 일관성 있게 따라가도록 해야 합니다. 공간이 아무리 넓더라도 하나로 인지되는 공간은 하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글로우 서울도 실패한 브랜드가 있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식업을 하면 매장의 주인공이 ‘요리’여야 하거든요. 패션 브랜드라면 주인공이 패션 아이템이어야 하고요. 그런데 공간의 존재감이 너무 강해 본질을 가려버린 매장은 대부분 운영이 잘 안 됐던 것 같아요. 공간이 앞에 나서면 정작 판매해야 할 상품이 빛을 못 보더라고요.
글로우 서울의 경영 철학은 무엇인가요.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공간과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에요. 우리 사회는 새로운 것에 빠르게 열광하고 대신 오래된 것에는 쉽게 염증을 느끼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환경에서 오래 계속되는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정말 어렵죠. 한옥처럼 고전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트렌디함을 잃지 않는 균형감 있는 브랜드를 추구하고자 합니다.
#글로우서울 #F&B #여성동아
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글로우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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