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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이것까지 수리해? 이색 수리 서비스 5

조지윤 기자

2024. 11. 08

비싼 물건만 고쳐 써야 할까. 수리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경제적으로 더 낫다 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내일과 소중한 추억을 위해 기꺼이 고쳐 쓰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 일명 ‘아나바다’ 운동은 IMF 구제금융 요청 사태 이래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기 위해 대두했다. 30여 년 전 전국적으로 유행한 캠페인은 최근 경제 위기가 아닌 환경 위기 극복을 위해 다시 화두에 올랐다. 이번에는 4가지 ‘아나바다’에 하나를 더했다. 바로 ‘고쳐 쓰자’다.
환경부는 지난 8월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시행령의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골자는 제품의 ‘지속 가능한 사용’을 보장하는 것. 제품을 판매한 업체는 소비자에게 수리 서비스뿐만 아니라 자가 수리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제품을 제조할 때부터 수리하기 쉬운지도 고려해야 한다. 소유자가 제품을 고쳐 쓸 수 있게 하는 ‘수리권’은 유럽에서는 이미 익숙한 개념이다. 프랑스에서는 전자제품에 한해서 ‘수리 가능성’ 등급을 부착해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으면 벌금을 매기고 있다. 200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시민들이 저마다 고장 난 물건을 가져와 수리할 수 있도록 돕는 ‘수리 카페’가 출범했다. 장비와 재료, 가이드를 모두 무료로 배급해 누구든 물건을 고쳐 쓸 수 있게 한 것. 이는 2011년 ‘리페어 카페 재단’ 설립으로 이어져 현재 영국, 벨기에, 일본 등 세계 각지로 퍼졌다.

국내에서도 2018년 리페어 카페 서울을 기점으로 고쳐 쓰기 위한 다양한 전문가와 전문 업체들이 하나둘 활성화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 사는 것이 더 저렴할 때도 있지만, 환경을 보호하고 나아가 물건에 얽힌 소중한 추억을 보존하기 위해 기꺼이 수리·수선하는 이가 늘어나는 추세다. 지속 가능한 내일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다채로운 국내 수리 문화를 모아봤다.

연필깎이

지난 2022년 온라인에서 42년 된 연필깎이를 무상 수리받았다는 글이 화제가 됐다. 해당 제품은 ‘기차 연필깎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하이샤파 연필깎이. 한창때는 연간 20만 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이를 제조한 문구 회사 ‘티티경인’은 보증 기간도 없이 자사의 연필깎이를 무상으로 수리해주고 있다. 칼날을 교체하는 경우에는 칼날 비용이 추가되지만, 이 외에는 전부 무료다. 소비자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손해를 보더라도 무상 수리를 이어가겠다는 것. 티티경인의 AS 장인 김원래 수리공은 “오래된 연필깎이 수리를 요청하는 분들은 부모님과의 추억을 기리기 위해 맡기는 경우가 많다”며 “편지처럼 ‘아빠가 사줬는데 생각이 많이 나서 고쳐 쓰고 싶다’며 보내기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우산

우산은 한 사람당 하나만 있어도 충분한 물건이지만 1명이 여러 개를 가진 경우가 부지기수다. 비 오는 날 우산을 깜빡했다면 편의점 등에서 쉽고 저렴하게 일회용 비닐우산을 구할 수 있다. 쉽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우산이 찢어지거나 고장 나면 버리는 것도 쉽다. 하지만 우산을 ‘잘’ 버리는 것은 쉽지 않다. 3단 우산 등 작은 우산은 종량제 봉투에 버릴 수 있지만 장우산 등은 대형 생활폐기물로 신고하거나 재료별로 해체해서 분리배출해야 한다. 고장 나서 쓰지도 못하는 우산이 현관 옆에 자꾸만 쌓이는 까닭이다. 의외로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우산 수리하는 방법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시 자치구가 진행하는 우산·칼·가위 수리 서비스 ‘우동칼(우리 동네 칼갈이·우산수리 센터)’이 대표적이다. 지역 내 주민센터와 복지관 등을 돌아가며 ‘찾아가는 서비스’로 동대문구, 강북구, 관악구 등 10개 자치구에서 진행하고 있다. 1인당 최대 2개까지 우산 수리를 맡길 수 있고, 별도 예약 없이 현장 접수만으로 운영된다. 지난해 기준 총 2만8982건을 수리 완료했다. 우산뿐만 아니라 가위, 칼 등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물품도 함께 수리해준다. 경기 부천시도 우산을 무료로 수리하거나 대여해주는 우산 수리센터 총 3개소를 운영 중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 위치한 ‘수리상점 곰손’ 역시 우산 수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장난감

장난감은 가격이 비싼 편이다. 크기와 가격이 반비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손바닥만 한 자동차가 몇만 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그런데 장난감은 AS 조항이 없는 경우도 많고, 있어도 보증 기간이 1년가량으로 짧은 편이다. 직접 구매한 경우에는 아이의 흥미가 1년 내로 떨어질 수도 있지만, 주변에서 물려받은 경우에는 고장이 나면 낭패다. 그렇지만 장난감 역시 무료 수리 센터가 활성화돼 있다. 대표적으로 ‘키니스장난감병원’ ‘뚝딱! 장난감 수리연구소’ 등 비영리 봉사 단체를 들 수 있다. 은퇴한 과학 교사나 기술공 등 노인들의 일자리 창출과 봉사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다. 이들은 친환경적인 목적과 더불어 부모들의 보육 비용을 줄이기 위해 무료로 장난감을 수리해준다. 지자체와 연계해 출장 수리를 나서기도 하지만 택배 등으로 접수받기도 한다. 인천 남동구청도 2019년부터 전국 지자체 최초로 직영으로 장난감 수리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남동구 주민뿐 아니라 전국에서 신청할 수 있는데, 연간 이용 건수가 2000여 건에 달한다. 이 외에도 경기 수원시 육아종합지원센터는 10월 장난감 수리스쿨 수강생을 모집하기도 했다. 가정에서 직접 장난감을 고쳐 쓸 수 있도록 수리법을 강연하는 것이다. 장난감은 쓰레기통에 버리면 산업폐기물로 분류되는 만큼 가급적 수리를 권하는 대상이다.

장미는 세상에 무수히 많지만 어린 왕자에게 특별한 장미는 단 한 송이뿐이었다. 마찬가지로 똑같은 글자가 인쇄된 책은 무수히 많지만 그 시기에 우리에게 위로와 감동, 공감을 준 책은 단 한 권뿐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하면 당일 배송되는 시대에 굳이 책을 수선하는 사람들이 있는 까닭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 손때가 묻은 책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책 수선 스튜디오 ‘브링더북’은 한 권을 수선하는 데 길게는 한 달이 걸리곤 한다. 오래된 책을 1장씩 분해해 본드를 긁어낸 후 새로 붙이기도 하고, 하드커버 책의 경우 직접 바느질을 해 제본한다. 이 경우 책 출고가보다 몇 배 더 비싼 수선비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소중한 추억이 담긴 만큼 기꺼이 수선을 맡기는 이들이 있다. 한편 도서관들도 자체적으로 책 수선 팀을 운영하기도 한다. 도서관 책들은 많은 이의 손을 거치는 만큼 망가지는 일도 잦아서다. 노원중앙도서관도 2013년부터 11년째 책 수선 전문 팀, 일명 ‘책병원’을 운영 중이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통해 책 수선 과정도 공개한다. 표지가 찢어졌을 때는 색감이 비슷한 한지를 붙이거나, 심하게 접힌 종이는 접힌 부분에 물을 칠하고 프레스기로 눌러 말끔하게 말려주는 식이다. 속지가 뜯어진 경우에는 메스로 종이를 살살 들어 올려 내부까지 꼼꼼하게 풀칠한다. 아예 빠진 페이지가 있을 때는 다른 책에서 내용을 복사해 붙여넣기도 한다. 울산 꽃바위작은도서관 도서보수 팀은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보존연구센터를 견학해 고서 보수에 대한 교육 및 도서보수 팀 책 보수 노하우를 전수받아 전문적으로 운영 중이다.



인형

애착 인형이라는 말이 있다시피 인형은 단순한 물건을 넘어선 애정의 대상이다. 성인이 돼서도 어린 시절에 좋아하던 인형을 버리지 못하고 머리맡에 두는 이들이 많다. 수십 년을 함께하면서 해지고 뜯어져도 그 모습 그대로 아끼는 것. 하지만 더욱 오래 함께하기 위해서는 탄탄히 보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인형을 마치 친구처럼 대하는 이들을 위해 인형을 치료(!)해주는 수선 전문점들이 있는 이유다. ‘토이테일즈’ ‘이젠돌스’ ‘인형병원 안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인형을 ‘아이’, 수선점을 ‘병원’, 수선 과정을 ‘치료 과정’, 인형을 맡긴 주인을 ‘보호자’라 칭한다. 상담을 진행한 후 ‘입원확인서’를 발급하고, 치료가 끝난 인형을 보관하는 곳을 ‘회복실’이라 부르는 등 인형 병원에 진심이다. 보호자는 새 인형을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추억이 어린 인형의 모습을 보존하고 싶어 한다. 인형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질까 봐 겁나서 차마 맡기지 못하는 보호자가 있는 이유다. 이에 수선점은 인형이 원래 입고 있던 옷이랑 최대한 같은 패턴의 원단으로 옷을 손질하고, 비슷한 강도로 솜을 충전해서 몸을 빵빵하게 만들고, 꺾인 팔다리를 원형으로 복원한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은 살리되 더 오랜 시간을 보호자와 함께할 수 있게 돕는 것. 가격만 생각한다면 새로 사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지만, 함께 보낸 시간과 추억을 떠올린다면 인형 가격의 몇 배가 되는 금액을 지불해도 아깝지 않다는 평이다.

#수리 #리페어카페 #여성동아

‌사진 뉴스1 
‌사진출처 노원중앙도서관 책병원 인스타그램 토이테일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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