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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시원하게 달콤하게 김래원 식 로코

editor 김지영 기자

2016. 10. 18

오랜만에 로맨틱 코미디로 돌아와 여심을 홀린 ‘심쿵 유발자’ 김래원의 에필로그.

서글서글한 인상에 매력적인 중저음의 목소리를 지닌 배우 김래원(35)에게 로맨틱 코미디(이하 로코)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맞춤옷 같은 장르다. 데뷔 6년 만에 그를 스타 반열에 오르게 한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와 영화 〈어린 신부〉는 물론이고, 최근 그에게 뜨거운 찬사를 안긴 드라마 〈닥터스〉도 로코다.

그렇다고 그가 멜로 연기를 할 때만 두각을 나타낸 건 아니다. 지난해 영화 〈강남 1970〉에서는 의리를 저버리는 건달, SBS 드라마 〈펀치〉에서는 죽음을 앞두고 부패한 정치인들의 민낯을 까발리는 검사로 분해 섬세한 내면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그 때문에 그가 〈닥터스〉에서 전작의 서늘한 느낌을 완전히 비우고 9세 연하의 박신혜와 케미를 잘 살려나갈지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기우일 뿐이었다. 극에서 사제지간이던 박신혜와 의사 선후배로 다시 만나 못다 한 사랑을 꽃피운 김래원은 첫 회부터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매력으로 여심을 사로잡았다.

8월 말 이 드라마의 중심에서 인기 고공 행진을 이끈 김래원을 만났다. 드라마가 21.3%의 높은 시청률로 유종의 미를 거둬선지 그는 시종 달뜬 표정이었다. 


▼ 한동안 로코에서 보기 힘들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일부러 피한 건 아니에요. 로코 장르의 작품이 꾸준히 들어왔지만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않아서 더 흥미로운 작품을 선택했을 뿐이에요. 〈닥터스〉도 그런 기준으로 출연 결정을 했어요. 제가 해보지 않은 의사 역이어서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박신혜 씨는 이미 캐스팅돼 있었고 촬영도 한 달 반이나 진척된 상태에서 뒤늦게 합류했죠. 범죄 영화 〈더 프리즌〉 촬영을 마무리하자마자 죄수복에서 의사 가운으로 갈아입었다니까요(웃음).



▼ 어떤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나요.

어려운 의학용어와 다소 오글거리는 표현이 많아서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넘길 수 있을까’만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나쁜 기집애’ 같은 말투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그게 재미있다고 나중에는 감독님(오충환 PD)이 대놓고 요구하시더라고요(웃음). 홍지홍(김래원)이 병원 옥상에서 만난 혜정(박신혜)에게 “결혼했니? 애인 있어?” 한 대사도 제가 순서를 바꾼 거예요. 원래 쭈뼛거리며 한마디 하는 신이었는데 그때는 ‘상남자’ 느낌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 촬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뭔가요.

올여름의 무더위요. 야외 촬영을 할 때마다 푹푹 찌는 날씨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수술복에 의사 가운을 입는 건 예사였고, 엔딩 신에서는 슈트까지 입다 보니 그야말로 땀범벅이었죠.

▼ 아쉬운 점도 있나요.

드라마 중반쯤 시간에 쫓겨 대본을 충분히 보지 못한 거요. 저는 대본을 많이 봐요. 만약 감독의 입장이라면 이 부분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대본을 보면서 생각하곤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거든요. 연기를 통해 무엇을 말하느냐가 핵심인데 그걸 놓쳐서 아쉬워요. 예를 들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오열하고 굉장히 힘들어하던 제가 다음 회에는 아버지의 신변 정리를 마치고 선글라스를 끼고 귀국해요. 이후 계속 감정을 무겁게 가져갔는데 나중에 나온 대본을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더라고요.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뒤에 이어질 내용을 모르고 찍는 경우가 많아서 감정선을 놓치는 일이 왕왕 생기는 것 같아요. 또 20대 초반 인턴 시절의 풋풋한 모습이 좀 더 담기지 못한 것도 아쉬워요. 촬영 전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거든요.

▼ 빗속 키스 신에서 자세가 엉거주춤했다는 평이 있었어요.

보는 분들에게는 어색했을지 몰라도 저 나름대로는 상황에 맞게 했다고 생각해요. 제자였던 혜정이를 10여 년 만에 다시 만나서 적극적인 스킨십이나 딥 키스를 하면 징그러운 느낌이 들었을 것 같아요. 그 장면을 찍을 때 알게 모르게 노력을 많이 했어요. 사랑하는 상대를 앞에 둔 남자의 설레는 마음을 표현하려고 저 스스로 최면을 걸었더니 진짜 얼굴이 빨개지더라고요(웃음).

▼ 비 맞으며 춤추는 장면이 어색하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안 그래도 종방연 때 춤추는 연기는 다시는 안 할 거라고 했어요. 그건 실수였어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 감독님에게 부담스럽고 이상하다고 말씀드렸더니 “편집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믿고 제멋대로 춤을 췄는데 결과물이 정말 별로였어요. 하하하. 드라마가 끝나고 그 장소에 공중전화 부스가 생겼대요. 전화 부스를 놓기엔 생뚱맞은 장소인데 누가 갖다 놨다고 하더라고요.



▼ 취미가 낚시라고 들었는데 극에서는 낚시에 영 관심이 없어 보였어요.

저보다는 혜정이가 낚시를 잘하는 설정이 재미있을 것 같아 작가님께 제 의견을 말씀드렸는데, 알고 보니 박신혜 씨가 정말 낚시를 잘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낚시를 다녀서 전문 용어도 훤히 알고 있더군요.

▼ 2003년 〈옥탑방 고양이〉를 찍을 때보다 발전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뭔가요.

그때는 밑도 끝도 없이 개인기 한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재미있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죠. 그런데 지금은 연기 폭을 넓히는 데 주안점을 둬요. 이번 드라마에서도 홍지홍이라는 캐릭터 안에서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려고 노력했고요. 감정을 조여야 할 땐 바짝 조이고, 풀어야 할 땐 확 풀었는데 결과적으로 잘한 것 같아요(웃음).

▼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또 어떤 노력을 했나요.

어려 보이려고 머리 스타일도 바꾸고, 피부 관리도 꾸준히 했어요. 연기에 관해서는 고집을 많이 부리는데 헤어나 메이크업, 스타일링은 주변에 잘하는 분들에게 믿고 맡겨요.

▼ 박신혜 씨와의 나이 차가 느껴졌나요?

전혀 의식하지 않았어요. 박신혜 씨도 저를 친오빠처럼 대했고, 촬영 스태프들과 감독님도 연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서 편하고 즐겁게 찍었어요.

▼ 둘이 정말 사귀면 좋겠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박신혜 씨와의 케미가 좋았어요.

어떤 배우는 마음을 닫아놓고 자기감정에만 빠져 있는데, 저희는 서로 마음을 열고 감정을 주거니 받거니 해서 좋은 케미가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혼자 돋보이게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시청자들이 보지 않아요. 박신혜 씨는 그걸 잘 아는 똑똑한 배우죠.

▼ 박신혜 씨에게 연기 조언도 해줬나요.

후배가 하는 연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저 자신도 완벽하지 않은데 누구를 가르치겠어요. 다만 한 후배가 시간이 없어 대본에서 자기가 나온 장면만 봤다고 하기에 ‘전체를 봐야 연출자의 의도를 알 수 있다’고 말해준 적은 있어요.

▼ 〈닥터스〉를 통해 얻은 건 뭔가요.

저도 어려질 수 있다는 희망요. 하하. 이번 작품에는 특별 출연을 한 배우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조달환 씨가 맡은 스토커 역할을 언젠가 꼭 한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사이코패스여서가 아니라 반전이 있는 역할이어서 좋았어요. 강약 조절을 잘하면 정말 임팩트 있는 연기를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기회가 되면 정통 메디컬 드라마에서 병마와 치열하게 싸우는 의사 역할도 해보고 싶어요.  

▼ 로맨틱한 연기를 하다 보면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평생 독신으로 살 생각은 아니지만 아직 상대도 없고 결혼하려면 몇 년 더 걸리지 않을까요. 영화도 두 편 찍어놨고, 앞으로 할 것도 많거든요. 제2의 삶에 대한 큰 꿈을 가지고 있어요.

▼ 그동안 탄탄대로를 달려온 것 같은데, 배우 생활에 회의가 들거나 슬럼프에 빠진 적은 없나요.

배우는 열정이 없어지면 끝인데,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면서 낙담한 때가 있었어요. “배우는 잘하면 멋있는데 잘못하면 천박한 직업이 될 수 있다”고 한 어느 감독님의 말씀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어요. 그때는 대중이 주시는 사랑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그걸 교만이라고 보더군요. 돌아보면 그런 시기도 제 인생의 일부고, 지금의 제가 있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또 슬럼프가 찾아올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연기가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죠.

▼ 작품 속 캐릭터가 실제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나요.

제 경우엔 그런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서 제가 맡은 캐릭터의 장점만 가지려고 하죠. 실제의 나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서 많이 느끼고 깨닫고 배우며 성장한다고 할까요.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한때는 밝은 작품만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복잡한 내면의 갈등을 겪으며 인과응보의 결론에 도달하는 인생을 연기하는 것도 저를 성숙하게 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 앞으로 로코에서 자주 만날 수 있을까요.

원래 로코를 좋아해요. 애초에 로코로 연기를 시작했고, 저를 알려지게 한 작품도 로코예요. 가장 자신 있는 장르이기도 하고요. 이번에 시청자들로부터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아서 정말 황송했어요. 그 덕분에 광고도 찍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죠. 앞으로 좋은 로코 작품이 있으면 또 하고 싶어요. 개봉을 앞둔 영화(더 프리즌)가 있어서 당장은 힘들겠지만요.



사진 제공 HB엔터테인먼트 SBS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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