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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그래왔듯, 영혼이 시키는 대로 천천히 가보려 해요”

대한민국 힙합·R&B의 여왕, 윤미래가 ‘숨’을 고르는 법

이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6. 05. 06

대한민국 힙합의 여왕이 가장 담백한 목소리로 돌아온 이유.

대한민국 힙합 신에는 유명한 농담이 하나 있다. ‘한국 4대 래퍼는 윤미래, T, 타샤, 그리고 조단 엄마’라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윤미래가 지닌 절대적 위치는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장르의 경계를 허문 선구자이자 K-힙합의 살아 있는 역사라는 거창한 수식어들이 그를 감싸지만, 지금의 윤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가볍고 투명해 보인다. 지난 연말 발표한 싱글 앨범 ‘숨’에는 화려한 편곡과 정교하게 쌓아 올린 레이어를 걷어낸 자리에 오직 ‘진심’이라는 날것의 재료만 담아냈다.

이른 아침, 남편이자 음악적 동지인 타이거 JK와 나란히 앉아 코드를 듣던 중 불현듯 찾아온 감정 하나를 그대로 담아낸 결과물이다. 수십 년을 치열하게 달려온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힘을 뺀 자리에서 비로소 완성된 노래. ‘숨’은 윤미래가 가장 오래 걸어온 끝에 내놓은 가장 솔직한 고백이다.

그의 세계는 무대 안팎에서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수만 명의 관객과 영혼으로 연결되는 무대 위의 카리스마는, 무대 밖으로 내려오면 달 사진을 찍고 사춘기 아들을 걱정하며 같은 영화를 수십 번 반복해서 보는 조용하고 단순한 일상으로 치환된다. 그 평범한 일상의 결이 고스란히 음악 안으로 스며든다는 걸, ‘숨’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K-팝이 아이돌 중심으로 재편되고 비주얼 중심의 음악이 트렌드가 되어버린 지금도, 윤미래는 자신의 속도를 잃지 않고 때로는 ‘숨’도 고르며 음악을 즐기고 있다.  

음악 안에서 만나, 삶이라는 무대를 함께 완주하는 윤미래와 타이거 JK.

음악 안에서 만나, 삶이라는 무대를 함께 완주하는 윤미래와 타이거 JK.

가장 윤미래다운 그래서 가장 편안한 ‘숨’

싱글 앨범 발표 후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공연 준비를 하는 날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또 어떤 날은 아주 평온해요. 그 극명한 차이 속에서 균형을 찾아가고 있죠.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 지금 저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그대로 누리며 지내고 있어요.

최근 발표한 싱글곡 ‘숨’을 작업하며 담아내려 한 감정적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무엇보다도 ‘숨’은 하나의 감정에서 시작된 곡이었어요. 어느 이른 아침에 타이거 JK와 함께 스튜디오에서 코드들을 가만히 듣고 있었어요. 어떤 부담이나 뚜렷한 방향도 없이 그저 분위기만 존재하는 시간이었죠. 요즘 음악들은 정말 풍성하고, 정교하고, 거의 완벽하다고 느껴질 만큼 잘 만들어져 있잖아요. 물론 그것도 좋지만, 가끔은 그 안에 ‘숨 쉴 틈’이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저는 음악에 숨 쉴 공간을 담고 싶었고, 무엇보다 솔직함이 필요했어요. 사람들에게 이 곡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보다는 제 곡을 듣고 각자가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꺼내고 느낄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신곡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요.

공간과 시간에 집중했어요. 저는 원래 기타 사운드를 좋아하는데, 기타에는 굉장히 날것의 느낌이 있고 또 아주 친밀한 결이 있거든요. 꾸미거나 숨기는 게 없는 악기라고 느껴져요. ‘숨’에 담긴 정서는 ‘가슴 아픔’보다는 ‘그리움’에 더 가까웠어요. 정확히 뭐라 부를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한 조용한 갈증 같은 감정이요. 보컬도 의도적으로 담백하게 가져갔어요. 마치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혼자인 상태에서 부르듯이 불렀어요. 그 순간의 진심만 남기고 싶었어요.

데뷔 초창기 때 목소리와 지금의 목소리를 비교해본다면요.

어릴 적의 제 목소리에는 어떤 절박함이 있었어요. 데뷔 당시 저는 스스로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언가 증명해야 한다고 계속 생각했어요. 그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의 목소리는 조금 달라요. 이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감각에서 나오기도 하고, 동시에 내려놓는 마음에서도 나오는 것 같아요. 예전처럼 어떤 음을 끝까지 붙잡고 쫓아가려 하기보다는 그 안에 머물고 숨 쉬게 두는 쪽에 더 가까워졌어요. 절제하는 힘은 더 강해졌지만, 강함이 항상 큰 에너지로 나타나는 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래도 가끔은 생각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던, 무모할 만큼 겁 없던 그 시절의 에너지가 그립기도 해요. 만약 20대의 저에게 말을 해줄 수 있다면 이렇게 전하고 싶어요. “모든 걸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붙잡으면서 싸우지 않아도 돼. 너의 것은 결국은 너에게 오게 되어 있거든”이라고요.

지난 활동 중 꼭 한 번 더 해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요.

저는 라이브 공연하는 걸 정말 사랑해요. 특히 대학 축제 공연을 좋아해요. 꾸밀 수 없는 자유가 있거든요. 사실 지금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긴장을 많이 해요. 때로는 그 불안이 너무 커져서 ‘내가 정말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가’ 싶을 만큼 스스로를 의심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관객과 연결되는 순간, 모든 게 달라져요. 관객이 열 명이든 만 명이든 중요하지 않아요. 그 순간 오가는 에너지, 바로 그 힘이 저를 계속 움직이게 하고 제가 가장 살아 있다고 느껴요.

힙합과 R&B라는 뿌리를 지키며 활동하는 게 쉽지만은 않잖아요. 그럼에도 활동을 이어오게 한 본인만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저에게 음악은 ‘무엇을 하느냐, 마느냐’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늘 마음속에 솔(soul)이라는 건 스스로 전해진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오랜 시간 활동하며 힘들었던 건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음악을 둘러싼 주변의 시선이나 시스템이었어요. 예전에는 랩을 하지 말라는 소리도 정말 많이 들었고, 이런 장르는 금방 끝날 거라는 편견 섞인 말도 참 많았죠.

하지만 제 안에 어떤 뜨거운 에너지가 살아 숨 쉬고 있는데, 그걸 남들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끌 수는 없잖아요. 비록 누군가는 제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던 순간에도, 제 안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걸어온 것. 그게 저를 지금까지 있게 한 유일한 힘인 것 같아요.

여전히 비워둔 페이지, 새로 채워갈 윤미래의 장르

여성 솔로 장르 아티스트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현실, 선배로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어느 시대나 음악 산업은 대중의 관심과 자본이 쏠리는 쪽으로 움직이기 마련이에요. 예전에는 또 다른 기준들이 있었고, 지금은 그 중심에 ‘알고리즘’이 있을 뿐이죠. 우리는 큰 회사가 아닌 작은 레이블이에요. 자본이나 시스템 면에서 대형 회사들과 같은 힘을 갖고 있다고는 할 수 없어요. 대신 우리에게는 자유가 있어요. 비비 같은 아티스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새로운 아티스트들이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걸 보면 아직도 분명히 가능성은 있다고 느껴요. 큰 시스템 안에서도 결국 그 틀을 깨고 나오는 사람들은 늘 존재하거든요. 저는 그 가능성을 믿고 응원하고 있어요.

타이거 JK 님과는 이번 싱글 앨범 작업을 어떻게 함께했나요.

타이거 JK와 저 사이에는 음악 그 이상의 단단한 연결 고리가 있어요. 저희는 나란히 앉아 무엇이 트렌드인지, 어떻게 하면 잘 팔릴지 계산하며 대화하지 않아요. 어떤 날은 아주 오래된 솔 음악을 깊게 파고들고, 또 어떤 날은 아주 생소하고 새로운 음악에 맞춰 함께 춤을 추기도 하죠. 장르나 형태를 가리지 않고, 그저 음악이 가진 모든 모습을 사랑해요.

사실 타이거 JK는 때로는 현실적으로 손해처럼 보이는 선택일지라도 늘 제 편에 서서 저를 지지해줘요. 실제로 더 큰 비즈니스 기회를 포기하면서까지 우리의 평온을 지키는 쪽을 택한 적도 많았죠. 우리는 늘 ‘우리의 영혼에 맞는 선택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무엇보다 고마운 건, 제가 한번 결정하면 오빠(타이거 JK)는 제가 흔들리지 않고 그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끝까지 곁을 지켜준다는 거예요. 제가 새 음악을 발표할 때마다 마치 처음인 것처럼 설레어주는 사람. 저 역시 그런 오빠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고 늘 노력해요.

무대 위 카리스마와 달리, 가정에서의 윤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굉장히 단순한 사람이에요.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영화를 자주 봐요.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볼 때도 많아요. 그냥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남편은 늘 제가 영화 평론가가 됐어도 잘했을 거라고 말해요.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커피 마시는 시간도 좋아하고, 달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해요. 제 공간, 제 가족, 저와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고요. 그 안에 있을 때 가장 나다운 느낌이 들어요.

아들 조단도 많이 컸죠.  조단과 가장 많이 나누는 대화는 어떤 건가요.

조단은 아무리 커도 저에게는 여전히 아기 같아요. 요즘은 삶에 대한 이야기와 음악 이야기, 이런저런 많은 대화를 나눠요. 원래 정말 호기심이 많아서 질문도 많은 편이에요. 자미로콰이(Jamiroquai)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같은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러면서 동시에 저를 자기 세대의 세계로 데려가 주기도 해요. 요즘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무엇에 끌리는지, 어떤 문화 안에서 움직이는지를 자연스럽게 알려줘요. 그렇게 서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아티스트와 엄마, 두 삶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노하우가 있다면요.

우리 각자의 삶은 모두 다르고, 저는 이제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저에게 음악은 생활과 동떨어진 무언가가 아니라, 제가 살아가는 방식 그 자체예요. 그래서 저는 아티스트와 엄마라는 역할이 억지로 나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하지 않고, 매 순간 놓인 제 삶에 충실해지려 노력할 뿐이죠. 아들 조단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아이가 누구의 아들이 아닌, 스스로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 그만의 공간을 지켜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 눈여겨보거나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요즘 존경하는 아티스트들이 정말 많아요. 전 아직 성장 중일지라도 자신만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끌려요. 그 솔직함이 완벽함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고 에너지가 진짜라고 느껴지면, 함께 작업하는 것에 대해 언제든 열려 있어요.

‘레전드’라는 호칭,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럽지는 않은가요.

그렇게 불러주시는 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진심으로요. 하지만 아직도 저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저 자신을 ‘레전드’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전 여전히 무대에 오르기 전에 긴장도 많이 하고, 진정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해요. 아마 다른 누구보다도 저 자신에게 가장 엄격할 거예요. 그래서 많은 분이 칭찬해주실 때, 그저 감사히 받아들이고 계속 노력할 뿐이에요.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나 아직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 있다면요.

앞으로도 해보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아요. 1970년대 모타운(미국 음반 회사)에서 영감받은 스타일, 라이브 악기와 실제 밴드가 주는 에너지가 담긴 음악도 꼭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랩도 다시, 더 많이 하고 싶어요. 제 안에는 래퍼 윤미래의 모습이 여전히 살아 있어요. 팝 음악도 여전히 사랑하고요. 그저 제 마음이 옳다고 느끼는 방향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어요.

훗날 사람들이 ‘윤미래’를 떠올렸을 때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나요.

제가 어떻게 기억될지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제 음악이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켰는지 기억해주길 바랄 뿐이에요. 만약 제 노래가 누군가의 삶 속 진실한 순간에 함께 있었다면, 전 그것만으로도 충분해요.

마지막으로 팬들을 위해 향후 계획을 살짝 귀띔해주세요.

항상 감사해요. 아직도 제 음악을 듣고 사랑을 보내주시는 모든 분께, 여러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여전히 음악과 진심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저에게는 정말 큰 의미예요. 지금도 새로운 음악을 작업 중이고, 곧 더 많은 걸 들려드릴 수 있길 기대하며 준비 중이에요. 그리고… 공연에서 직접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윤미래 #싱글앨범타이틀숨 #여성동아

기획 강현숙 기자 사진제공 윤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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