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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대기업 아닌 ‘롱보드’로 일과 행복 다 얻었어요”

2000만 조회수, 롱보드 전문 유튜버 고효주

정세영 기자

2025. 09. 16

취미로 시작한 롱보드를 업으로 삼아 새로운 스포츠 콘텐츠 분야를 개척해나가고 있는 고효주.
좋아하는 일이 ‘해야 하는 일’로 바뀌었음에도 즐거움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물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뤄지는 성취감과 실패, 기대와 좌절 등에 따라 삶의 질이 나뉘기도 한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일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행복도 결정된다.  

롱보드 전문 유튜버 고효주(37)는 약 9년 전 처음 보드를 접했다. 이전에는 꿈의 직장이라 불리는 IT 기업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에서 일하며 UI(User Interface·사용자가 제품 혹은 서비스와 시각적으로 마주하는 부분) 디자인 업무를 담당했다. 

“회사원에게 슬럼프는 숙명과도 같다”는 말이 있다. 고 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직장 생활 3년 차에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그는 ‘활동적으로 움직이며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집순이에 손뜨개질 같은 정적인 취미만 즐기던 고 씨가 처음으로 몸을 써봐야겠다는 충동을 느낀 순간이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롱보드였다. 고 씨는 바쁜 회사 생활 중에도 시간을 쪼개 일주일에 3번 이상 보딩 연습을 했다. 평소 체력이 약하고 운동신경도 좋지 않아 남들이 3개월이면 마스터할 수 있는 기술도 10개월이 걸렸다. 그는 “크고 작은 부상도 있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며 “보드 위에서는 걱정거리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노력과 연습 끝에 보더로서 이름을 알렸고, 2017년에는 네덜란드 보드 대회에서 비스폰서 부문 결승까지 오르며 주목받았다.

고 씨는 점차 성장하는 보딩 실력을 기록하기 위해 동영상을 찍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2016년 여름, 처음 촬영한 보딩 영상을 SNS에 기록했다. 이 영상으로 고 씨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업로드 하루 만에 페친 공유로 화제가 되며 페이스북에서만 조회수 2000만 회를 기록한 것. 해당 콘텐츠는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퍼지며 더욱 유명해졌다. 당시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서는 “고 씨의 롱보딩 동영상이 SNS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후 고 씨는 전 세계에서 러브 콜을 받기 시작했고, 롱보드에 집중하기 위해 퇴사를 결정하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2017년에는 세계적인 EDM 그룹 얄(Yall)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관심을 받았다. 이와 같은 명성에 힘입어 샤넬, 구찌, 키엘, 랑콤 등 굵직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진행했고, 보드를 타며 세계 여행지를 소개하는 모델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고 씨는 회사를 그만둔 걸 단 한 순간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고. 그는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 일단 밀고 나가는 것이 맞다”며 “내가 중심인 삶을 살다 보면 길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고효주는 국내외 공원과 거리에서 롱보드 타는 모습을 콘텐츠로 제작하는 롱보드 전문 유튜버다.

고효주는 국내외 공원과 거리에서 롱보드 타는 모습을 콘텐츠로 제작하는 롱보드 전문 유튜버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할 정도로 롱보드가 그렇게 좋았나요.

처음에는 그저 취미였어요. 제가 회사에 다닐 때는 지금처럼 주 52시간제 같은 제도가 없었어요. 야근과 주말 출근이 일상이었죠. 당시 제 삶은 오직 회사에만 종속돼 있었어요. 매일 회사와 집을 오가며 일에만 매달려 살았거든요. 또 일로 쌓인 스트레스가 일상으로 이어지면서 집에서도 회사 걱정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문득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20대 후반의 젊음을 회사에 바치고 있는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고 한심하게 느껴졌거든요.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차에 우연히 해외 롱보드 영상을 접했는데, 눈이 번쩍 뜨이더라고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롱보드가 흔한 스포츠는 아니에요. 접근하기 어렵진 않았나요. 

당시 한국에서 롱보드를 타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롱보드라는 단어 자체도 생소한 분위기였고요. 롱보드를 배울 수 있는 전문 기관을 알아봤는데 전혀 없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부딪히기로 마음먹었죠. 관련 커뮤니티에 가입해 보더들이 모이는 날짜와 시간을 알아낸 뒤 무작정 찾아갔어요.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롱보드 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죠. 다들 황당해했지만 제 열정과 패기를 알아봐주시곤 흔쾌히 허락하셨어요. 저는 원래 내향적이고 행동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에요. 직접 보더들을 찾아가고 대화를 요청한 건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죠. 그럼에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무료한 일상을 탈피하고자 하는 간절함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롱보드를 처음 타던 날을 기억하나요.

당연하죠. 처음 보드에 발을 올렸을 때 불안함과 자유로움이 동시에 느껴졌어요. 저는 사실 자전거도 잘 못 타거든요. 손잡이도 없는 기구의 바퀴 위에 발을 올리는 자체가 새롭고 신기하더라고요. 조금씩 바퀴를 굴리며 앞으로 나가게 될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가출하면 이런 느낌일까?’였어요. 너무 스릴 있고 자유로웠거든요. 동시에 ‘넘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요. 

막상 타보니 상상했던 것과 다르진 않았나요.   

생각보다 훨씬 어렵더라고요. 배우면서 많이 넘어졌고 부상도 자주 입었어요. 하나의 스텝을 마스터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렸고요. 보드는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한 스포츠예요.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해도 중심을 잃고 떨어지거든요. 덕분에 보드 위에서는 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전혀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더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일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었으니까요.  

고효주가 즐겨 타는 댄싱 보드. 섬세하고 부드러운 동작을 취할 수 있는 타입으로 테크닉보다는 자연스러운 동작 표현에 탁월하다.

고효주가 즐겨 타는 댄싱 보드. 섬세하고 부드러운 동작을 취할 수 있는 타입으로 테크닉보다는 자연스러운 동작 표현에 탁월하다.

“롱보드는 걱정과 근심 탈출구예요”

롱보드를 콘텐츠로 만들어봐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초반에는 제가 롱보드 타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동영상을 찍었어요. 영상을 통해 제 모습을 파악하고 자세 등을 수정해나갔죠.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SNS에 콘텐츠를 모아뒀고요.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업무 시간에 동료들이 메시지를 보내는 거예요. 평소 친분이 없던 분들까지 대화를 신청하며 “이거 효주 님 영상 아닌가요?”라고 물어보셨어요. 깜짝 놀라 확인해보니 제가 SNS에 올린 영상이더라고요. 해외 뉴스 채널에서 시작해 국내까지 퍼지면서 동료들에게 공유된 거죠. 바로 제 SNS에 들어가서 봤더니 전날보다 조회수가 엄청 증가했더라고요. 팔로어도 계속 늘고 있었고요. 당시에는 그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소장용으로 올렸던 영상을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시는 게 얼떨떨했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해요.  

퇴사를 결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경제적인 부분도 걱정됐을 테니까요.

콘텐츠가 화제가 되자 많은 러브 콜을 받았어요. 하지만 회사 일을 병행하면서 전문 콘텐츠를 제작하긴 쉽지 않아 대부분 거절했죠. 그러다 해외에서 작업 제안을 받았는데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롱보드를 타며 해외의 한 지역을 소개하는 기획이었거든요. 여행을 좋아하는 제가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콘텐츠였죠. 그 프로젝트를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과감하게 사표를 냈어요. 경제적인 문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진짜 하고 싶은 걸 찾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으니까요.

많은 사람이 롱보드 위의 효주 님을 보고 “한 마리 나비 같다”고 표현하죠.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우아한 몸짓은 연출된 건가요. 

연출은 거의 없어요. 보드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가끔은 안무를 짜기도 하지만 보드를 타다 보면 그대로 움직이지 못해요. 안무를 의식하면 중심이 흐트러지고 집중력도 낮아지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저는 안나 마리아라는 여성 라이더의 댄싱 영상을 보고 보드를 시작했어요. 춤을 추듯 즐기는 안나의 모습이 정말 자유로워 보였거든요.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각 잡히고 연출된 안무는 꺼려지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롱보드를 타고 있나요.  

댄싱 보드요. 롱보드는 댄싱, 드리프트(슬라이딩), 크루징, 다운힐 등이 있어요. 저는 이 중에서 댄싱 보드를 타요. 테크닉보다는 자연스러운 표현에 유용한 타입으로, 보드 위를 오가며 스텝을 밟는 동작이 주를 이뤄요. 그렇기에 더욱 섬세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며 매력을 어필해야 하죠. 이를 위해 음악, 장소, 패션까지 신경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콘텐츠는 직접 제작하나요.

기획부터 음악 및 장소 선정, 영상 편집 등 콘텐츠 제작의 모든 과정을 직접 하고 있어요. 촬영은 남편이 담당하고요. 이 중 가장 어려운 건 기획이에요. 매번 새로운 걸 보여드리려면 기획 단계부터 차별성이 있어야 하거든요. 초반에는 새로움에 대한 압박감이 심했지만 지금은 많이 내려놓게 된 것 같아요. 신선한 영감을 찾으려고 애쓰기보다는 일상에서 접하는 것들을 롱보드에 결합하고 있거든요. TV를 보거나 길거리를 걸으면서 눈이 가는 한 장면에 롱보드를 대입시키는 거죠. 이와 같은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콘텐츠 제작에 최대한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으니까요.

고효주는 기획, 음악, 장소 선정, 패션 등 콘텐츠 제작을 위한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고효주는 기획, 음악, 장소 선정, 패션 등 콘텐츠 제작을 위한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보더들을 위한 전문 연습장 갖춰졌으면”

스스로 어떤 부분이 콘텐츠의 강점이라고 생각하나요. 

자연스러움 아닐까요. 많은 분이 제가 롱보드를 타는 모습이 여유롭고 편안해 보인다고 하세요. 롱보드를 쉽게 타는 것 같다고요. 하지만 저는 표정 관리를 잘하고 있을 뿐이에요(웃음). 중심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집중하고 있거든요. 

좋아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조언 부탁드려요.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되 플랜 B는 항상 갖추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간절히 원했던 것도 일이 되면 싫증 나기 마련이거든요. ‘이 일을 그만두면 어떤 걸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계획을 세워두면 좋을 것 같아요. 또 기회는 외부에서만 오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하는 과정에서도 찾아갈 수 있어요. 제가 퇴사를 결정한 것도 롱보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됐잖아요.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차근히 준비해나간다면 반드시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믿어요. 

롱보드가 더욱 대중화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미국에서 열리는 ‘고프로 마운틴 게임’과 같은 롱보드 대회가 국내에서도 많이 개최됐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선 대회를 열거나 크루들이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생겨나야 하고요. 국내에서는 주로 한강 공원에서 보드 연습을 하는데, 가끔 시가지의 공터를 찾으면 관리인들에게 제지를 당하거든요. 보더들이 연습할 장소를 찾아 전전긍긍하지 않도록 공식적인 연습 장소가 갖춰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롱보드 #고효주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사진제공 고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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