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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펑펑 울었던 첫 팬미팅, 팬들의 꿈을 함께 이뤄주고 싶어요” 

‘성우계 아이돌’ 남도형

이진수 기자

2025. 04. 25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내레이션부터 디즈니 ‘미키 마우스 펀하우스’ 시리즈, 국산 인기 게임 ‘쿠키런: 킹덤’까지 알 만한 작품에는 다 나오는 성우 남도형이 최근 애니메이션 ‘퇴마록’으로 화제다.

“생존하셨습니다.” “탈락입니다.”

지난해 9월 큰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을 즐겨 봤다면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주인공은 성우 남도형(42)이다. 2006년 KBS 공채 32기 성우로 23세에 최연소 입사한 그는 디즈니 3대 ‘미키 마우스’, 게임 ‘쿠키런: 킹덤’(이하 ‘쿠킹덤’)의 마들렌맛 쿠키와 ‘원신’의 타르탈리아, 애니메이션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이하 미라큘러스)의 블랙캣 등 수많은 인기 주조연 캐릭터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게임·애니메이션 마니아라면 한 번쯤 목소리를 접해봤을 정도로 두꺼운 팬층을 지닌 그에게는 ‘성우계 아이돌’이라는 별명도 있다. 실제로 그의 유튜브 채널 ‘남도형의 블루클럽’은 국내 성우 중 가장 많은 54만여 명의 구독자를 자랑한다. 

남도형이 이번에는 오컬트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퇴마록’에서 주인공 사인방 중 하나인 이현암 역할을 맡았다. 원작인 이우혁 작가의 소설 ‘퇴마록’은 1990년대 초 연재 당시 온라인 PC통신을 강타하고 누적 1000만 부 이상 팔렸던 인기 작품이다. 4월 16일 기준 애니메이션 ‘퇴마록’은 누적 관객 수 49만8000명을 돌파하며 화제다. 국산 애니메이션이자 12세 이상 관람가로 성인 잠재 관람객을 노린 작품임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흥행이다. 

남도형 성우가 연기한 ‘퇴마록’의 이현암 캐릭터.

남도형 성우가 연기한 ‘퇴마록’의 이현암 캐릭터.

벅차고 두려웠던 ‘퇴마록’ 더빙

4월 7일 오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란색을 장착한 남도형 성우가 인터뷰를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인터뷰 영상 길이를 묻더니 답변 길이마저 고민해서 말해주는 그에게서 진한 프로의 냄새가 났다. ‘퇴마록’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부터 달라진 그는 “올해로 성우가 된 지 20년인데 성인을 타깃으로 한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에 참여한 건 처음”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퇴마록’은 강력한 힘을 지닌 박윤규 신부와 현승희, 장준후, 이현암 네 주인공이 악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남도형 성우가 연기한 현암은 물귀신에게 여동생을 잃고 원한을 갚고자 전국을 떠돌며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퇴마록’은 원작 팬이 워낙 많은 작품인데, 대본을 처음 받고 어땠나요.

벅참 반, 두려운 반이었어요. 작품이 거의 완성된 상태에서 현암의 목소리를 가장 마지막에 녹음했는데요. 보자마자 감개무량해서 뭐랄까, ‘와, 내가 이런 작품에 참여한다고?’라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죠. 이렇게 큰 작품에서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았으니 작품에 누가 되면 안 된다는 행복한 무게감이 저를 누르더라고요. 

열혈 캐릭터인 현암을 연기할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은요.

저는 이미 원작 소설을 정독한 ‘퇴마록’의 열렬한 팬이에요. 현암의 서사를 다 알고 있어서 이걸 어디까지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다행히 ‘퇴마록’을 제작한 로커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감독님이 “첫 편에서 현암은 여기까지만 보여주자”고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정해주셨죠. 현암이라는 인물에 주목하기보다는 주인공 사인방이 어떻게 만났는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감정을 누르면서도 중요한 순간마다 열혈 맨답게 확 터지는 지점을 살리려고 했어요. 

남도형과 현암은 공통점이 있나요.

저는 퇴마록에, 현암은 퇴마에 진심이라는 점(웃음)? 스포일러일 수 있지만 현암은 여동생을 죽인 수마를 잡고자 열정을 다해 살아가요. 저도 유년 시절부터 ‘퇴마록’을 읽으며 그 세계관을 공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현암의 진심과 제 진심을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요. 외적으로는 공통점이 전혀 없네요. 현암은 잘생겼고, 카리스마도 넘치고, 무력도 높은데 저는 무력이 높지 않습니다. 하하하.

작품 흥행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퇴마록’은 3040세대의 유년 시절을 지탱해준 작품이거든요. 그런 작품이 소설을 넘어서 애니메이션으로, 심지어 극장판으로 나온다? 그것도 상상 이상의 퀄리티로? 안 볼 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사랑을 받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퀄리티에도 자신이 있었어요. 영화 초반에 악마 아스타로트와 박 신부가 싸우는 장면이 있는데 시선을 강탈하거든요.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하게 만들죠. 국내 소설 원작에 한국어 더빙이라는 점도 큰 시너지를 낸 것 같아요.

 ‘쿠키런: 킹덤’의 마들렌맛 쿠키(위쪽)와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의 블랙캣.

 ‘쿠키런: 킹덤’의 마들렌맛 쿠키(위쪽)와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와 블랙캣’의 블랙캣.

성우계 아이돌? 쑥스럽지만…

남도형 성우는 ‘남도형의 블루클럽’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구독자는 54만여 명으로 국내 성우 중 구독자 수가 가장 많다. 만화 ‘페어리 테일’의 ‘나츠 드래그닐’과 ‘미라큘러스’의 블랙캣 등이 팬덤을 만들어준 대표작이다. 1월에는 주로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MBC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이하 ‘전참시’)에 출연해 성우로서의 일상을 공개하며 인기를 증명하기도 했다.

별명이 ‘성우계 아이돌’이던데요.

너무나 감사한 별명이고, 성우 활동을 하는 데 원동력이 되어주는 별명이죠. 분명한 건 제가 말하고 다닌 별명이 아니라는 겁니다(웃음). 주변 동료분들이 응원 차원에서 격려해주실 때 ‘남도형 파이팅’ 같은 의미로 부르다 붙은 별명이에요. ‘전참시’에 나갔을 때도 자막에 적혀 있어서 빼달라고 요청하려다가 겸허히 받아들이고, 대신 그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열심히 활동하기로 했습니다. 

유튜브는 2019년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요.

닌텐도 스위치 게임 중에 ‘링 피트 어드벤처’라는 작품이 있어요. 운동 게임인데 “왼쪽! 오른쪽! 좋았어~! 한 번 더! 그렇지! 빅토리~!” 등 운동을 하면 목소리가 나오면서 응원을 해줘요. 그런데 운동이 힘들다 보니 이 캐릭터 음성이 사람을 열받게 하거든요. 운동하는 분들에게 행복감과 동시에 불쾌감을 줬죠. 다른 크리에이터분들이 이걸 콘텐츠로 다루는 걸 보고 저도 ‘(목소리) 본인 등판’이라는 콘셉트로 직접 게임하는 영상을 올려봤어요. 그런데 하루 만에 구독자가 1만5000명이 모인 거예요. 그때 ‘유튜버로 활동해볼까?’ 하고 시작했는데 어느덧 54만여 명이 됐네요.

유튜브 채널 이름이 왜 ‘남도형의 블루클럽’인가요. 미용실이 연상되는데요.

제가 파란색을 좋아해서 ‘크레이지 블루(미친 파랑)’라는 별명이 있는데요. 단순히 제가 블루니까 저를 보러 온 분들이 모이니 ‘남도형의 블루클럽’으로 하게 된 거죠. 그야말로 파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죠. ‘블루클럽’ 관계자분들이 혹시 이 인터뷰를 보시면 꼭 한번 연락해주세요. 인사드리고 싶어요. 협업 방송을 하고 싶어서 내심 아련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콘텐츠 기획은 직접 하나요.

90% 이상 제가 기획합니다. 섬네일을 담당해주시는 분이 있지만 구도부터 배치, 자막까지 아이디어를 제가 내고 모든 영상은 세 번 검수해요. 나머지는 팬들과 주위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죠. 진심과 성심을 다해 유튜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 녹음 파일을 폴더별로 정리한 걸 방송에서 봤어요. 콘텐츠도 그렇게 꼼꼼하게 계획하나요.

월말에 다음 달 콘텐츠 라인업을 미리 잡고 한 달 단위로 계획을 세워요. 트렌드에 맞는 콘텐츠도 고민하지만, 성우분들을 초대해 함께 촬영하는 영상도 많다 보니 그분들 일정에 맞춰야 할 때도 많아요. 또 제가 다루는 콘텐츠 중에 게임이 많거든요. 보통 게임은 2~3주 전에 업데이트 일정이 나오니 그걸 참고해 계획을 짜요. 개발자분들께 정보를 듣고 거기에 맞춰 콘텐츠를 준비하기도 하고요. 

성우 동료들도 은근히 채널에 출연하는 걸 기대할 것 같아요. 

동료랑 함께 콘텐츠를 찍고 나서 “고마워. 다음에 또 나와줘” 같은 이야기를 해요. 한 후배가 “다음에 한 번 더 ‘남도형의 블루클럽’에 나올 수 있게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얘기하는데, 고맙더라고요. 제 유튜브 채널이 작품을 열심히 하게 하는 동기를 유발한다니 의미가 컸어요. 그래서 요즘은 성우들에게 더욱 도움을 주는 채널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요.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던 성우 20년

과거 20대 대학생 남도형은 다리를 다쳐 깁스하고 TV 외화를 보고 있었다. 할리우드 배우 브루스 윌리스와 리처드 기어 목소리를 맡은 이정구 성우의 연기에 빠져 성우라는 직업에 처음으로 매력을 느꼈다. 검색을 통해 성우 지망생이 모인 인터넷 카페를 찾아 정모에도 나갔다. 그 자리에서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메르세데스’ 역으로 잘 알려진 박신희 성우를 만났다. “목소리 좋다. 한번 공부해보라”는 그녀의 한마디가 대학생 남도형을 성우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결국 진짜 성우가 돼서 신희 누나 결혼식 사회까지 봤다”고 웃으며 말했다.

파란색을 좋아해 평소 패션은 물론이고 지난해 출간한 에세이집 ‘인생은 파랑’도 제목부터 표지까지 파랗게 물들인 남도형. 파란색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묻자 “딱히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남도형은 “이유가 없는 게 좋다. 이유가 없어서 영원히 좋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삶의 모토도 이와 비슷하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할 때 목적이나 이유를 갖기보다는 그냥 즐기자는 것. 그는 “파란색을 좋아하는 마음에서 그런 생각이 파생된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남도형이 생각하는 ‘나만의 레전드’ 대사는 뭔가요.

“빅토리~!”도 있고 “빛의 가호”도 있고 “안녕? 마이 레이디”도 있는데, 유튜브 채널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안녕? 블루베리”가 레전드 대사예요. 유튜브 영상 편집자님이 “(인사말을) 한번 넣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부담 없이 툭 던진 말이었는데, 중간에 바꾸려고 해도 그 자연스러운 툭 던지는 느낌이 안 나더라고요. 유튜브를 하는 한 영원히 못 바꿀 것 같아요.

다양한 캐릭터 중 가장 남도형과 비슷한 인물과 다른 인물은 누구인가요.

가장 비슷한 것도, 가장 비슷하지 않은 것도 ‘미라큘러스’에 나오는 ‘블랙캣’이에요. 블랙캣은 ‘아드리앙 아그레스트’라는 고등학생 친구가 변신했을 때 캐릭터인데요. 대부분 블랙캣이랑 제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저는 내성적이고 생각이 많아요. 오히려 변신 전 캐릭터인 아드리앙이 저랑 더 비슷하죠. 얘기하면서 공감하는 걸 좋아하고, 자상한 편이기도 하고, 쉽게 상처받기도 해요. 그런데 블랙캣이 운명처럼 저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됐어요.

성우가 되고 나서 후회한 적도 있나요.

한 번도 없어요. 첫 직업이어서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어요. 이전에 어떤 일을 했다면 비교 대상이 있을 텐데 없기도 하고요. ‘내가 이런 일을 해보면 어떨까?’ 상상한 적은 있어요.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에 취직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현지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일해보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은 있죠. 성우 생활을 하면서는 후회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감탄하고 감격해서 운 적이 많았죠.

최근에 새롭게 몰두한 역할이나 준비 중인 역할이 있나요.

기존에 맡았던 캐릭터가 새로운 시리즈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쿠킹덤’의 마들렌맛 쿠키가 또 다른 시리즈에 등장하는 거죠. 지금까지는 기존 작품 안에서만 캐릭터를 연기했지 그 캐릭터로 다른 시리즈에 출연해본 적은 거의 없거든요. 같은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보여줘야 하니까 기대되면서도 걱정이 앞서요. 그리고 애니메이션 ‘퇴마록’ 2편이 꼭 나와야 합니다. 현암의 영혼 파트너 ‘월향’을 만나야 하거든요. 지금부터 2편에서 등장할 현암의 연기를 준비하려고요(웃음).

성우 생활 중 기억에 남는 ‘파란(blue)’ 순간이 궁금해요.

유튜브 구독자 30만 명 기념 팬 미팅이 기억에 남아요. 그날 500명의 블루베리(팬덤명)가 관객석을 가득 채워주셨고, 티켓도 1분 30초 만에 매진됐어요. 아주 큰 사랑을 받았죠. 유튜버 남도형이라는 이름을 걸고 구독자를 직접 만난 첫 자리라 펑펑 운 게 영상으로도 남아 있는데요. 눈물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니라 블루베리가 저를 울게 해요. 그날의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최초, 최연소,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인간 남도형’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성우들이 조금 더 편한 길을 가도록 교두보이자 가교가 되고 싶어요. 성우 스터디나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도 하고 있는데요. 저랑 함께 공부해서 성우가 된 분들이 6명쯤 있어요. 물론 여러 선배와 함께 노력한 결과겠지만, 저와의 인연으로 성우가 된 분들이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했어요. 그때 느꼈던 성취감과 행복감이 어마어마했죠. 제가 성우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갈팡질팡한 부분이 많았는데 지금은 시대도 바뀌었고, 콘텐츠도 다양해졌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선배님들도 많아졌잖아요. 앞으로 저를 보고 성우를 꿈꾸는 이들이 있다면 그 꿈을 이루는 데 제가 조금이라도 일조하고 싶어요. 

#남도형 #성우계아이돌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사진출처 미라큘러스 공식 X(@BeMiraculousLB) 캡처 쇼박스 쿠키런: 킹덤 게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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