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바라본 와인 라벨 속 춤. 전 세계 와인과 그에 얽힌 춤 이야기를 연재한다.
매년 가을밤 수백 명의 탱고인이 모여 밤새 춤을 추는 ‘순천 빅 밀롱가 에스뜨레자스(Suncheon Big Milonga Estrellas)’가 올해로 열아홉 번째를 맞는다. ‘밀롱가’는 탱고의 한 장르이자 춤을 추는 장소를 의미하고, ‘에스뜨레자스’는 별이라는 뜻이다. 이 행사에 수백 명이 모여 밤새 탱고를 추며 선선한 가을밤을 열정적으로 물들였다. 탱고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필자 역시 탱고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그저 알 수 없는 끌림이라고 해둘 수밖에.
와인 라벨을 하나둘 수집하던 중에 탱고가 그려진 라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와인인 ‘클라로스쿠로 말벡(Claroscuro Malbec) 2018’이다. 아르헨티나는 와인 생산량이 세계 5위를 자랑하며, 1인당 와인 소비량도 연간 40∼50병으로 세계 6∼7위 수준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와인은 주로 자국에서 소비돼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게만 느껴진다.
클라로스쿠로 말벡 2018의 포도 품종은 말벡으로 안데스산맥 동쪽에 있는 마을 멘도사(Mendoza)에서 재배되며, 멘도사에서도 가장 높은 곳인 고도 850∼1100m에 위치한 우코 밸리에서 생산된다. 아르헨티나의 말벡은 프랑스 말벡과 달리 껍질이 얇고 타닌이 적다. 남미의 더위를 품고 있어 열대 과일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클라로스쿠로 말벡 2018의 라벨에는 열정적으로 탱고를 추는 남녀가 그려져 있다. 체중을 남성에게 실은 채 온몸을 의지하듯 춤을 추는 여성은 시선을 남성에게로 고정하고 있다. 남성 역시 다가오는 상대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육감적으로 드러난 여성의 다리는 남성과 한 몸인 양 걸쳐져 있고, 춤추듯이 나부끼는 여성의 머리카락은 누가 이 춤을 리드하는지 여실히 드러나게 한다. 여성의 한쪽 발끝 아래에는 ‘열정적인 탱고(tango passional)’와 ‘클라로스쿠로’가 손 글씨로 적혀 있다. 이 라벨은 헤르미날 루브라노(Germinal Lubrano· 1918~2012)의 작품이다. 그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 화가이며 탱고를 화폭에 옮겨 담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탱고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남미에서 유입된 흑인 노예들의 토속적인 춤에 인디오의 야생적인 리듬, 스페인 이주민의 전통적인 리듬이 섞여 만들어진 ‘하바네라(Habanera)’ 춤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하바네라는 19세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출입하는 뱃사람들을 통해 아르헨티나로 옮겨갔고, 목동(가우초)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처녀의 집 뜰에서 연정을 호소하며 추었던 2박자 무곡 ‘밀롱가(milonga)’로 발전했다. 밀롱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 라 보카(La Boca) 지역 하층민들 사이에서 유행한 흑인 리듬 ‘칸돔베(candombe)’의 영향을 받아, 1870년대 말 템포가 빠르고 멜로디가 강한 아르헨티나풍의 새로운 춤 탱고(tango)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대학에서 교양 수업으로 탱고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기본 10가지 스텝 중 높낮이의 변화로 회전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케브라다(quebrada)’를 알려준 적이 있다. 당시 케브라다의 기원이 칸돔베라는 것을 일러주며 나 스스로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아르헨티나 말바(MALBA) 미술관에서 라틴아메리카의 후기 인상파 화가인 페드로 피가리(Pedro Figari·1861~1938)의 작품 ‘칸돔베’(1921)를 직접 만난 적이 있어서 더 강렬한 경험이었다.
탱고의 발상지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 보카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원색으로 화려하게 칠해진 낡은 목조 건물이 눈에 띄었는데, 몇 페소만 지불하면 관광객이 현지인들과 탱고를 출 기회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때 한 남성과 탱고를 춘 기억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한편 1858년 문 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카페 토르토니’와 1967년 문 연, 홍콩 영화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1997) 촬영지인 바(Bar) ‘수르’ 모두 벽면이 탱고 그림으로 빼곡하다. 오페라 극장을 개조해서 만든 아름다운 서점 ‘엘 아테네오(El Ateneo)’에서도 탱고를 그린 수없이 많은 미술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발 닿는 곳곳 탱고의 자취가 진하게 묻어 있었다.
아르헨티나 탱고는 반도네온의 선율에 녹아들어 서로의 몸을 밀착하고 호흡과 체온을 나누며 추는 열정적인 춤이다. 육감적으로 자기 몸을 움직이며 상대가 몸으로 표현하는 말에 귀 기울여 하나가 돼야 완성되는 춤이다. 4개의 발로 추는 춤이지만, 결국은 두 사람이 하나의 실루엣으로 겹쳐지며 하나의 심장으로 추는 춤인 것이다.
많은 이가 탱고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찾는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클라로스쿠로의 와인 라벨에 그려진 남녀처럼 서로 ‘밀당’하듯이 와인과 탱고에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탱고 음악으로는 지금 머릿속에 맴도는 ‘포에마(Poema)’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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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찬주
클라로스쿠로 말벡 와인
와인 라벨을 하나둘 수집하던 중에 탱고가 그려진 라벨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와인인 ‘클라로스쿠로 말벡(Claroscuro Malbec) 2018’이다. 아르헨티나는 와인 생산량이 세계 5위를 자랑하며, 1인당 와인 소비량도 연간 40∼50병으로 세계 6∼7위 수준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와인은 주로 자국에서 소비돼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게만 느껴진다.
클라로스쿠로 말벡 2018의 포도 품종은 말벡으로 안데스산맥 동쪽에 있는 마을 멘도사(Mendoza)에서 재배되며, 멘도사에서도 가장 높은 곳인 고도 850∼1100m에 위치한 우코 밸리에서 생산된다. 아르헨티나의 말벡은 프랑스 말벡과 달리 껍질이 얇고 타닌이 적다. 남미의 더위를 품고 있어 열대 과일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라벨 화가 제르미날 루브라노.
탱고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 남미에서 유입된 흑인 노예들의 토속적인 춤에 인디오의 야생적인 리듬, 스페인 이주민의 전통적인 리듬이 섞여 만들어진 ‘하바네라(Habanera)’ 춤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하바네라는 19세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출입하는 뱃사람들을 통해 아르헨티나로 옮겨갔고, 목동(가우초)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처녀의 집 뜰에서 연정을 호소하며 추었던 2박자 무곡 ‘밀롱가(milonga)’로 발전했다. 밀롱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 라 보카(La Boca) 지역 하층민들 사이에서 유행한 흑인 리듬 ‘칸돔베(candombe)’의 영향을 받아, 1870년대 말 템포가 빠르고 멜로디가 강한 아르헨티나풍의 새로운 춤 탱고(tango)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대학에서 교양 수업으로 탱고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기본 10가지 스텝 중 높낮이의 변화로 회전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케브라다(quebrada)’를 알려준 적이 있다. 당시 케브라다의 기원이 칸돔베라는 것을 일러주며 나 스스로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아르헨티나 말바(MALBA) 미술관에서 라틴아메리카의 후기 인상파 화가인 페드로 피가리(Pedro Figari·1861~1938)의 작품 ‘칸돔베’(1921)를 직접 만난 적이 있어서 더 강렬한 경험이었다.
탱고의 발상지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 보카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원색으로 화려하게 칠해진 낡은 목조 건물이 눈에 띄었는데, 몇 페소만 지불하면 관광객이 현지인들과 탱고를 출 기회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때 한 남성과 탱고를 춘 기억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한편 1858년 문 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카페 토르토니’와 1967년 문 연, 홍콩 영화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1997) 촬영지인 바(Bar) ‘수르’ 모두 벽면이 탱고 그림으로 빼곡하다. 오페라 극장을 개조해서 만든 아름다운 서점 ‘엘 아테네오(El Ateneo)’에서도 탱고를 그린 수없이 많은 미술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발 닿는 곳곳 탱고의 자취가 진하게 묻어 있었다.
아르헨티나 탱고는 반도네온의 선율에 녹아들어 서로의 몸을 밀착하고 호흡과 체온을 나누며 추는 열정적인 춤이다. 육감적으로 자기 몸을 움직이며 상대가 몸으로 표현하는 말에 귀 기울여 하나가 돼야 완성되는 춤이다. 4개의 발로 추는 춤이지만, 결국은 두 사람이 하나의 실루엣으로 겹쳐지며 하나의 심장으로 추는 춤인 것이다.
많은 이가 탱고를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찾는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클라로스쿠로의 와인 라벨에 그려진 남녀처럼 서로 ‘밀당’하듯이 와인과 탱고에 젖어보는 것은 어떨까. 탱고 음악으로는 지금 머릿속에 맴도는 ‘포에마(Poema)’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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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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