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시작된 ‘나는 SOLO(나는 솔로)’ 19기 모태 솔로 특집은 단 한 커플도 배출하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촬영이 끝나고 MC들이 모두 아쉬워하던 찰나 블랙아웃 된 화면 너머로 ‘상철’과 ‘옥순’이 다시 등장했다. 두 손 꼭 잡고 나타난 두 사람은 촬영 종료 후 현실 커플로 거듭났으며 내년 하반기에 결혼을 계획 중이라는 깜짝 소식을 전했다. 연애는커녕 썸 한번 타지 않고 30대를 맞이했던 두 사람이 이제는 모태 솔로 탈출과 동시에 결혼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니. 그야말로 현실판 ‘어른이’를 위한 동화가 따로 없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촬영 초반에는 각자 다른 이성과 시그널이 있었다. 5박 6일간의 촬영 중 3일 차가 돼서야 단둘이 대화를 나눴다고. 그때야 서로가 눈에 들어왔고 부랴부랴 데이트를 이어갔지만 3일 만에 마음을 확신하기에는 무리였을까. 최종 선택 당시 상철은 옥순을 택했지만 옥순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다. 상철은 어깨를 들썩여가며 흐느꼈고 그 모습을 보는 옥순도 함께 눈물을 쏟았다. 오죽하면 “둘이 사귀기도 전에 헤어졌냐”는 농담이 나왔다.
하지만 촬영 종료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철이 옥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12일간 매일같이 전화로 대화를 나눈 둘은 끝내 서로의 첫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나는 솔로’ 19기 상철과 옥순이 아니라 김희준, 박우연으로서 사랑에 빠진 것이다. 두 사람이 사귄 지 169일 되던 날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만났다. 인터뷰 시작 전까지도 꼭 붙어 있던 둘은 카메라가 돌면서 겨우(!) 거리를 두고 앉았다. “서로가 언제 가장 예쁘고 잘생겨 보이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지금이요” “항상 볼 때마다 잘생겼어요”라고 말했다. ‘이 인터뷰,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인터뷰는 편의상 상철, 옥순으로 기재한다.
나는 ‘솔로’? 이제는 아냐
‘나는 SOLO’ 최종 선택 장면. 옥순 씨는 “‘하지 않겠습니다’는 말을 하자마자 후회했다”고 말한다.
옥순 | 주변에서 나가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길기도 했고, 사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잖아요. ‘나는 솔로’에 나가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죠.
상철 | 일단 모태 솔로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요(웃음). 방송을 보다가 모태 솔로 특집 지원자를 뽑는다는 자막을 보고 신청했어요. 이메일로 지원서를 보낸 후에 제작진에서 인터뷰하자고 연락이 왔고, 이후 출연이 확정됐죠.
출연이 결정됐을 때, 걱정은 없었나요.
옥순 |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컸어요. 주변 친구들이나 동생은 꼭 나가보라며 응원했지만 아무래도 부모님께서는 걱정이 많으셨죠.
상철 | 저는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것보다 모태 솔로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욕먹지 않게 솔직하게 하자고 생각했죠. 현장에서 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거라고 믿었어요.
전문 방송인이 아니다 보니 촬영하면서 긴장됐을 것 같은데요.
옥순 | 처음에는 카메라가 너무 많아서 살짝 긴장됐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까 금세 자연스러워졌어요. 생각보다 너무 안 떨려서 놀랐어요.
상철 |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래도 방송인데 연기겠지’라고 생각할 부분도 있다고 봐요. 그런데 다들 카메라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라서 오히려 카메라 의식을 못 해요. 촬영 2~3시간만 지나도 마이크 정도만 인지가 되지 카메라가 있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촬영을 해보니까 아마 다른 출연자분들이 방송에서 보인 모습도 ‘찐’이지 않을까 싶어요. 솔직한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이에요.
잠을 적게 재우고 술을 계속 마시게 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상철 | 제작진이 일부러 그런 상황을 연출하지는 않아요. 술도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안 마시고 싶으면 안 마셔도 되고요. 다만 본모습이랑 다르게 방송에서 편집돼 나왔다는 말에 충분히 이해 가는 면도 있어요. 12명이 출연하다 보니 인터뷰를 많이 하는 날도 있고 적게 하는 날도 있고, 편집이 가미되기도 하니까 각자가 느끼기에는 억울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두 분은 방송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보니 어땠나요.
상철 | 저한테 실망을 많이 했어요. 남들이 봤을 때, 좋지 않게 보일 법한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제3자의 시선에서 보니까 찾을 수 있는 단점도 많았고요.
옥순 |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내가 이런 행동을 했네’ 하면서 놀란 부분이 있었어요. 그간 보지 못했던 저의 새로운 모습과 고쳐야 할 점도 많이 보였고요. 반성을 많이 했어요.
짧은 촬영 기간 내에 감정적으로 깊게 얽힙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드는 건가요.
상철 | 5박 6일 동안 출연진 12명끼리만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금세 친해져요. 또 여러 상황 속에서 감정이 불안정하다 보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의지가 많이 되면서 정이 빨리 들고요. 그만큼 촬영하는 동안에는 서로 진심으로 대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희 기수는 촬영이 끝난 후 연락도 자주 하고, 자주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토요일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갈 사람’이라고 단체 메시지 방에 글을 올리면 시간 되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식으로요.
방송에서 보면 모두가 사이좋을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상철 | 솔로 나라 안에서의 감정은 진짜였을 겁니다. 다만 서로 솔직하게 최선을 다했던 만큼 방송이 끝나고 나니 오히려 쿨하게 풀린 것도 있어요. 제가 모르는 다른 출연자들 간의 일들도 있었을 테지만 서로 이야기해서 잘 풀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상철·옥순이 아닌 희준·우연으로
서로의 첫인상은 어땠나요.옥순 | 처음에는 사실 한 사람, 한 사람 알아가기 바쁘니까 첫인상은 잘 떠오르지 않아요. 그런데 대화를 해보니까 성격이 워낙 좋아서 ‘절대 모태 솔로일 수가 없겠는데’ 하는 의심이 들긴 했죠(웃음).
상철 | 처음 봤을 때도 ‘옥순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옥순’은 선이 굵은 미인분들이 많이 받는 이름이잖아요. 저도 속으로 ‘모태 솔로라는 게 거짓말이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실제로 두 분 모두 모태 솔로가 아닐 거라는 시청자 반응이 많았습니다.
상철 | 저는 진짜 모태 솔로였어요. 살을 뺀 지도 오래되지 않았고요. 살아오면서 중간중간 살이 빠진 시기가 있기는 했지만 되게 짧았거든요. 또 20대 때는 친구들이랑 같이 놀고 게임하는 게 더 좋았어요. 매일 같이 노는 친구들이 있다 보니까 여자 친구를 사귈 필요성도 못 느꼈고요. 다만 친구들이 소개팅을 해준 적이 있는데, 소개팅을 다녀올 때마다 ‘이런 행동은 고쳐야 한다’는 식의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그러면서 눈치도 길렀고 이성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알게 됐어요.
옥순 | 저도 사실 연애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못 느꼈었어요. 놀러 가고 싶거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가고 싶으면 친구나 가족과 함께하면 되니까요. 남자 친구가 없어도 잘 살아가는데 굳이 연애를 해야 하나 싶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주변에서 하나둘씩 결혼하기 시작하면서 같이 놀 친구가 없어졌고, 허전함이 커지면서 나도 누군가와 평생 있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어요.
방송 중 서로한테 처음으로 마음이 움직인 순간이 있다면요.
옥순 | 3일 차 캠핑 데이트에서 확실히 변화가 있었어요. 처음으로 둘이서 대화를 나눴는데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말이 잘 통했고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상철 | 방송에는 다 안 나왔지만 다른 분들은 밤 12시가 돼서 촬영이 끝나고 돌아갔는데 저희는 12시 30분까지 계속 얘기를 했거든요. 오죽하면 광수 형이 안 오냐면서 찾으러 왔어요(웃음).
최종 선택 후 두 분의 눈물이 화제였습니다. 그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상철 |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먼저 들었어요. ‘또 실패했구나’ 하는. 처음부터 옥순이와 시간을 보냈다면 달라졌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또 옥순이랑 시간을 보낸 3일 동안 내가 더 잘했다면, 성숙했다면, 또 만약 내가 연애 경험이 있었다면 더 잘해줬을 텐데 하는 생각만 계속 들었어요. 모든 선택이 끝나고 다 같이 모였는데 옥순이 얼굴을 보니까 그동안 실수했던 것들이 머리에 스쳐 지나가면서 부끄럽고 그냥 막 눈물이 나더라고요.
옥순 | 저희가 촬영 막바지쯤에서야 대화를 본격적으로 나눴는데요. 3일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확신을 얻기란 쉽지 않았어요. 연애를 안 해봤으니까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헷갈렸고요. 일단은 촬영 끝나고 밖에 나가서 더 알아보자는 마음이 커서 선택하지 않았어요. 사실 선택을 하고 나가서 만나봐도 되는 거였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선택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후회가 되는 거예요. 스스로 막 ‘나 왜 이러지?’ 하면서요. 그렇게 후회하고 있는데 상철 님이 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제 마음을 단단히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촬영 종료 후 집 가는 길에 상철 님께서 옥순 님께 전화를 걸었다고요.
상철 | 최종 선택할 때, 저는 옥순이 저를 선택하지 않아도 나가서 무조건 연락할 생각이었어요.
옥순 | 저는 선택을 안 한 입장이니까 집 가면서 ‘이대로 끝이구나’ ‘내가 왜 그랬지’ 하면서 엄청 울고 있었어요. 그때 전화가 왔어요. 통화하면서도 계속 후회와 미안함이 뒤섞여서 가는 내내 울었어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둘이 매일 전화하고, 거의 사귀는 것처럼 지내다가 12일 뒤에 오빠가 사귀자고 했죠.
사귀기로 한 첫날 두 분의 마음은 어땠나요.
상철 |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그동안 연애를 못 했나 보다 싶어 벅차면서도, 그만큼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옥순 | 사귀기로 했는데 연애를 안 해봤으니까 ‘사귀는 게 어떻게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나도 드디어 연애를 하는 건가’ ‘이게 꿈은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사귀어보니, 사귄다는 건 어떤 거던가요.
옥순 | 초반에는 그냥 여자 친구들 만나는 것처럼 같이 밥 먹고 노는 게 끝인가 생각했어요.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밥 먹고 카페 가고 하는 것보다는 그저 둘이 같이 있는 시간 자체가 좋더라고요. 힘들 때나 좋을 때, 같이 감정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좋아요. 이런 게 연애고 사랑이라는 것을 느껴요.
상철 | 저도 똑같아요.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좋고요. 사실은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도 아까워요. 장거리 연애다 보니 금, 토, 일 데이트를 하는데, 금요일 같은 경우에는 퇴근하고 만나야 하니까 밤 10시에도 봐요. 하루 1~2시간밖에 못 만나는데도 어떻게든 얼굴을 봐야 직성이 풀려요. 매일 통화하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솔로 마을 밖 서로의 모습은 어떤가요.
상철 | 생각보다 더 착해요. 버스에는 좌석이 몇 개 없고, 노약자석이 앞쪽에 있으니까 사람이 없을 때는 그냥 앉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데 옥순이는 노약자석은 비워둬야 하는 자리라며 항상 비워둬요. 어제 아침에도 그랬고요.
옥순 | (오빠가) 방송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다 보니까 장난기 있는 모습만 봤는데, 나와서 만나니까 진중할 때는 또 되게 진중하더라고요. 상대방 기분에 잘 맞춰서 배려해주고요. ‘이런 모습도 있네’ 싶은 순간들을 새롭게 많이 마주해서 사람이 점점 더 좋아 보여요.
상철과 옥순 모두 마지막 촬영날 눈물을 쏟았다.
상철 | 작년 크리스마스에 같이 대전 여행 갔던 게 기억나요. 사람이 엄청 많았는데 우연(옥순)이랑 손을 딱 잡고 있는데 정말 영화처럼 사람들 소리가 그냥 ‘웅성웅성’으로만 들리고 온 신경이 우연이한테 집중되더라고요. 세상에 둘만 있다는 느낌을 살면서 처음 느껴봤어요. 아직도 그때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요.
옥순 | TV에서 주변이 시끄러운데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둘만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그럴까’ 궁금했는데 진짜 그렇더라고요. 저도 그런 감정을 처음 느껴봐서 ‘이게 뭐지?’ 하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나요.
두 분이 싸운 적도 있나요.
상철 | 없어요. 살짝 삐친 적은 있어도 서로서로 눈치 보고, 분위기를 읽어서 바로 “내가 잘못했어”라고 말하니까 싸움으로 크게 안 번져요.
내년 하반기에 결혼을 계획 중입니다. 어떻게 결혼에 확신을 얻었나요.
옥순 | 점점 헤어지는 게 아쉽고 계속 붙어 있고 싶어서요. 계속 보고 싶고, 봐도 봐도 모든 게 다 예뻐 보여요. 재미있는 게 있으면 같이 하고 싶고, 맛있는 게 있으면 같이 먹고 싶고요. 결혼하면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잖아요.
상철 | 제 관점에서 저는 단점도 많고,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도 우연이는 저를 있는 그대로 봐준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겨울에 식장을 알아보기 시작해서 내년 여름이나 가을쯤 식을 올리고 싶은데요. 일단은 첫 연애니까 1년은 연애하면서 재미있게 놀려고요(웃음).
아기 이름을 벌써 지었다고요.
옥순 | 제 이름이 ‘우연’이고 오빠 이름이 ‘희준’이라 저희 이름에서 따서 지었어요. 딸이면 ‘희연’이고 아들이면 ‘연준’ 같은 느낌으로 몇 가지 지어놨어요(웃음).
#나는솔로 #옥상커플 #상철옥순 #여성동아
사진 이상윤
사진출처 SBS Plus ‘나는 SOLO(나는 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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