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의 수많은 ‘최초’ 타이틀 뒤에는 위기의 순간마다 빛난 그의 리더십이 있다.
“경제학 교과서를 넘어 현실에 관심을 가지라”
옐런은 1946년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교사, 아버지는 의사였다. 아버지는 가족이 사는 집 1층에 병원을 차리고 부두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진료했다. 어린 옐런이 보고 자란 건 이들 노동자의 고단한 삶이기도 했다.
그는 명문 브라운대학교 등을 거쳐 1971년 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해 예일대에서 배출된 경제학 박사는 24명이었는데, 이 중 옐런이 유일한 여성이었다. 이후 학자로서 행정가로서 종횡무진하는 삶이 펼쳐진다. 빌 클린턴 정부의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1997~1999),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CEO(2004~2010) 등을 거쳐 2014년에는 오바마 행정부의 15대 연방준비제도(미국의 중앙은행) 의장 자리에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연임에 성공하지 못하고 2018년 연준 의장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은 그를 초대 재무장관으로 지명한다. 오바마 정부 당시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이 그를 재영입, 경제 수장으로 명예 회복을 시켜준 셈이다.
이 과정에서 ‘최초’라는 수식어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미 역사상 첫 여성 경제자문회의 의장, 연준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의장, 재무부 232년 역사상 첫 여성 장관이라는 지위에 오르면서 숱하게 유리천장을 부쉈다.
최근 그의 행보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한 번은 우크라이나, 또 한 번은 워싱턴에서다. 2023년 2월 27일, 옐런은 참혹한 전쟁이 1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찾았다. 경제 수장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키이우를 찾은 지 불과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바이든이 그랬듯 옐런의 방문 역시 극비리에 이뤄졌다. 재무부는 옐런이 ‘일상 업무 중’이라고 공지하면서 언론의 시선을 피했고 키이우 일정이 모두 끝나자 방문 사실을 전격 공개했다. 미 군용기와 야간 기차 등을 타고 키이우로 향하던 그 시간에도 시내에는 공습경보가 울렸다고 한다. 옐런은 황금 돔으로 유명한 성미카엘 성당 앞에서 우크라이나 희생자들에게 헌화하고 “얼마가 걸리든 우리(미국)는 우크라이나와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이 자신의 뒤를 이어 재무장관을 급파한 것은 전쟁 지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 바이든 정부는 엄청난 재원과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냈고 공화당 일각에서는 볼멘 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의식한 듯 옐런의 발언은 더 확고해 보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난 그는 “우크라이나의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라며 “이번 키이우 방문에서는 경제, 예산 지원을 위한 긴밀한 파트너십에 초점을 두고 싶다”고 말했다. 시미할 총리에게는 “(효과적인 전쟁을 위해) 교육, 의료, 긴급 대응 같은 필수 공공서비스가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격인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현장에’ 남기고 온 것이다.
최근 미국 은행들의 파산 소식에 가장 바빠진 사람 또한 옐런 장관이다. 3월 10일 유동성 부족과 지급불능 위기로 이틀 만에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세계 경제를 뒤흔들 조짐을 보이자 재무부를 비롯해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는 예금보험 한도를 넘는 금액도 전액 보증하겠다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옐런 장관은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회장과 협의를 거쳐 위기에 빠진 또 다른 은행(퍼스트리퍼블릭)에 민간 자본을 넣는 방안을 논의했고, 11개 대형 은행의 300억 달러(약 40조 원) 지원 결정을 이끌어냈다. SVB 사태 이후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옐런은 “우리 은행 시스템은 건전하다고 재확인한다”고 안심시키며, 감독 및 규제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다시 살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옐런 장관은 한국을 방문해 여성 경제인들과 간담회를 가진 바 있다. 그의 메시지는 2가지. “경제학 교과서를 넘어 현실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과 유리천장을 뚫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라”는 것이었다.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약 30명의 여성 직원과 만난 그는 “1990년대 당시 국제회의에 참석했을 때는 (수장들의 자리에) 여성이 많지 않았다… 여성의 수가 아직도 많지 않지만 잠재력을 가진 젊은 여성들이 이런 자리를 모두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고 격려했다.
업무량이 많았을 텐데 중간에 그만두고 싶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는 “가족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UC 버클리 교수로 재직할 때 백악관으로부터 ‘연준을 위해 일할 생각이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고 이에 대해 남편은 ‘걱정하지 말라’며 당시 6학년 아들을 돌봤다”고 전했다. 옐런의 남편은 ‘정보 비대칭 이론(정보가 공평하게 전달되지 않았을 때 빚어지는 경제 왜곡 현상)’으로 200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 애컬로프 교수다.
옐런 장관은 “세상에 관심을 가지라”고도 조언했다. 연구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정할지 묻는 한 직원의 질문에 옐런은 “난 언제나 실업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답하기도 했다. 대공황 여파가 남아 있던,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1946)에 태어난 그는 자연스레 실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실제 행정을 경험하면서도 인플레이션보다는 실업에 더 집중했다고 한다.
수많은 ‘최초’ 타이틀에는 이유가 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지난해 7월 한국을 찾았을 당시 한국은행 여성 경제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미중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요즘 옐런 장관은 2023년 1월 중국 류허 부총리를 만나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류허를 만난 옐런은 중국 측에 대(對)러시아 제재 준수를 촉구하면서 “대러 제재 관련 규정과 그것을 어겼을 때 당할 심각한 결과를 중국 정부와 그 관할에 있는 기업·은행에 분명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파키스탄과 스리랑카, 잠비아 등 일부 개발도상국이 부채 문제로 휘청거리자 최대 채권국인 중국이 채무를 경감해야 한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최초’라는 수식어만 선점하고 성과가 없었다면 그는 지금까지 세계 경제인들의 시선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옐런은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은 다양한 수식어의 무게를 안다. 바이든 정부 마지막까지 또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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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시스 사진제공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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