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는 무당도 다르다.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진학하고 필라테스를 다니며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을 추구한다. 1월 11일 개봉한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의 주인공 권수진(26) 씨 얘기다.
권 씨는 첫돌 무렵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할머니에게 맡겨져 충남 홍성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신병을 앓고 내림굿을 받은 40년 차 무당. 할머니와 함께 산속에서 살던 권 씨는 네 살 무렵 꿈을 통해 누군가의 미래를 점치는 신기를 보였다. 손녀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길 바랐던 할머니는 점사(점괘에 나타난 말) 보는 일을 막았지만 권 씨는 이유 모를 가슴통증을 느꼈고 결국 여섯 살이 되던 해 신내림을 받았다. 이후 SBS ‘진실게임’, KBS ‘성장다큐 꿈’, OBS ‘멜로다큐 가족’ 등에 출연하며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어느덧 20대 중반인 그가 걸어온 시간을 들으려 경기 평택에 위치한 신당을 찾았다.
평택 신당에 할머님도 함께 계시네요.
웬만하면 친할머니와 같이 움직이려고 해요. 언제나 할머니와 함께 있어와서요. 할머니와 제가 살던 홍성의 신당과 이곳을 오가면서 지내요.
꼬마 무당으로 이름을 알린 지 벌써 20년이 돼가요.
어릴 땐 점사 보는 일을 무척 싫어했어요. 제가 너무 우니까 할머니께서 “아이에게 묻지 마시오”라는 표지를 벽에 붙여놓기까지 했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제가 점 보는 걸 막고 싶으셨던 거죠. 그런데 여섯 살 때쯤 제가 한복을 차려입고 할머니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는 “가슴이 답답하니 저 표지를 떼달라”고 한 거예요. 그렇게 신내림을 받았고, 그 이후부터 또래 아이들처럼 놀고 싶을 때 놀고 자고 싶을 때 자는 평범한 생활은 힘들었죠. 학교 다니면서 무업(巫業)을 병행했어요.
청소년기는 어떻게 보냈나요.
주말마다 신당에서 손님을 받은 것만 빼면 보통의 고등학생, 대학생과 비슷한 삶을 살았어요.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땐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요. 그 결과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진학했어요. 대학생이 돼선 남들처럼 수업도 듣고 과제도 하고, 취업 고민도 했죠. 그러다 전업 무당으로 마음을 굳혔지만요(웃음).
그의 하루는 보통의 20대와 조금 다르게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당에 출근해 옥수를 갈고 초와 향을 켠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상담 시간이다. 상담을 모두 마치면 산속 기도터에 오르거나 신당에 남아서 기도를 올린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두고 “24시간 일하는, 워라밸이 어려운 직업”이라고 말했다.
신내림으로 일종의 진로가 정해졌을 것 같은데, 대학에 간 이유는 뭔가요.
꿈이 많았거든요. 아나운서, 광고 기획자 모두 제 장래 희망이었죠. 그래서 언젠간 점을 보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거라는 생각도 컸어요. 영화 속에서처럼 고3 시절 내내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살 거야”라고 다짐했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면 신당과도 멀어지니 무업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 생활도 열심히 했어요. 어쩌다 보니 과 대표도 했고요(웃음).
열정이 넘쳤네요.
대학에서 친구들과 많이 놀고 싶었어요. 동아리도 여러 개 들고, 동기들과 잔디밭에 둘러앉아 수다도 떨고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요. 주말마다 홍성에 가야 했거든요. 신당을 외면하면 이유 없이 몸이 아프고 힘든 일이 생겼어요. 결국 과 대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동기들한테 괜한 오해를 사기도 했죠. 보통 과 대표는 주말에도 단과대학 회의나 과 행사 진행 등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그 시절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어요. ‘운명에 굴복당하는 과정인 건가’ 싶었죠.
주말마다 서울과 홍성을 오가기 힘들었겠어요.
금요일마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기차를 타고 홍성으로 내려갔어요. 일요일에 마지막 손님 상담을 마치면 바로 서울로 올라왔죠. 서울 자취방에 와서는 밀린 일과 과제를 몰아서 했어요.
꿈을 좇아 대학에 갔는데 결국 전업 무당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그렇게 서울과 홍성을 오가는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지금까지 거부한 운명에 최선을 다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잠시 이 일과 멀어졌을 때 많이 힘들기도 했고요. 그제야 저는 남들처럼 직장 생활, 특히 제가 원하는 광고 일은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죠. 광고 일은 주말 근무도 많은데 주말마다 신당을 가야 하니까요. 직장에 개인 사정으로 양해를 구하는 것도 한두 번이죠.
권 씨의 이 같은 젊은 날의 고군분투는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에 고스란히 담겼다. 평일엔 대학생, 주말엔 무녀로 사는 이중생활부터 무속인이란 운명 대신 광고 기획자를 꿈꾸는 변화무쌍한 심리를 모두 그린다. 이 영화를 연출한 박혁지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긴 시간을 들여 영화를 완성했다. 평범한 학생과 비범한 무녀(巫女)를 넘나드는 주인공 ‘수진’의 모습을 담기 위해 남다른 노력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권 씨의 일상과 무속일은 쉽게 구분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영화에선 권 씨와 할머니의 아찔한 갈등도 그대로 드러난다.
촬영이 7년이나 걸렸다고요.
원래는 2년만 촬영할 생각이었어요. 2015년에 시작했으니 2017년에 끝날 예정이었죠. 감독님 제안도 “연출이 필요 없고 2년 동안 계절마다 한 번씩, 총 여덟 번 오겠다”고 해서 승낙한 거예요. 영화를 찍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니 감독님은 새내기 모습을 담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동기들에게도 사정을 말하지 못했던 터라 촬영에 대한 부담이 컸죠. 결국 이런저런 힘든 일이 겹쳐 2016년 6월에 촬영을 중단했어요. 1학년 1학기가 끝난 직후였죠.
그래도 무사히 영화 한 편이 완성됐네요.
촬영을 멈추고 3년이 지나자 진로에 대한 생각이 정리됐어요. 전업 무당이 되기로 결심한 거죠. 할머니와 상의 끝에 감독님께 전화했어요. “제 파일 아직 남아 있나요?” 하면서(웃음). 감독님이 “그걸 어떻게 버려” 하시더라고요. 그 길로 다시 촬영을 시작했죠.
이쯤 되니 감독님이 영화 제작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네요.
‘진실게임’을 보고 지금의 제 모습이 궁금했대요. 그 아이는 어떻게 컸을까, 지금도 그 일을 할까 싶어 찾아오셨다고 해요. 마침 당시 저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컸고요. 감독님은 무속인이기 전에 1명의 평범한 청춘인 제 모습을 담고 싶어 했어요.
촬영에 응하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처음엔 점을 보고 굿을 하는 전문적인 무당의 면모가 드러났으면 했어요. 완성된 영화를 보니 그런 장면은 거의 없더라고요. 총 5분 정도(웃음)? 처음엔 “영화가 뭐 이래요!” 하며 감독님께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개봉하고 나서 사람들의 반응을 본 다음에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정확히 말하면, 영화를 두고 “점집 홍보 아니냐”는 댓글이 올라오니 더 그렇더라고요. 차라리 편견을 바꾸려면 이 영화처럼 저 자신과 할머니, 그리고 사회에서 겪은 갈등을 보여주는 게 대중과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과적으로 감독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함께 대학을 다닌 동기들은 잘 지내나요.
광고 회사, 대기업, 방송국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요. 가끔은 ‘내 모습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죠. 그럴 때면 대리 만족하는 셈 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해요.
그런데도 욕심나는 게 있나요.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영화 제목인 ‘시간을 꿈꾸는 소녀’엔 제가 꿈꾸는 평범함의 의미도 들어 있어요. 보통 무당이라고 하면 가정불화나 사업 실패 등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할머니의 도움으로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온전하게 가정도 꾸리고 싶어요(웃음).
주어진 운명을 씩씩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분명히 운명은 있지만 조금씩은 바꿀 수 있어요. 저도 운명을 아예 거스르진 못해도 최대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해요. 중장비 관련 자격증 취득에 도전한다거나 중국어를 배우는 등의 색다른 취미를 가지려고 하죠. 사실 무당은 워라밸이 쉽지 않은 직업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아야 해요.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04호 서울새남굿 이수자 시험에 초집중하고 있어요. 지난해 말에 전수자까지 따서 3년 뒤에는 이수자 시험을 볼 수 있어요.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요.
어릴 땐 저를 둘러싼 편견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제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요. 그래서 힘든 이들로부터 번 돈을 그들에게 다시 베풀고 싶어요. 어릴 때 책을 좋아했는데 시골 도서관엔 책이 많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도서⸳산간 지역에 도서관을 세우고 싶은데, 그게 힘들다면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책이라도 잔뜩 기부하고 싶어요.
#무속인 #MZ세대 #시간을꿈꾸는소녀 #여성동아
권 씨는 첫돌 무렵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할머니에게 맡겨져 충남 홍성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신병을 앓고 내림굿을 받은 40년 차 무당. 할머니와 함께 산속에서 살던 권 씨는 네 살 무렵 꿈을 통해 누군가의 미래를 점치는 신기를 보였다. 손녀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길 바랐던 할머니는 점사(점괘에 나타난 말) 보는 일을 막았지만 권 씨는 이유 모를 가슴통증을 느꼈고 결국 여섯 살이 되던 해 신내림을 받았다. 이후 SBS ‘진실게임’, KBS ‘성장다큐 꿈’, OBS ‘멜로다큐 가족’ 등에 출연하며 대중에 얼굴을 알렸다. 어느덧 20대 중반인 그가 걸어온 시간을 들으려 경기 평택에 위치한 신당을 찾았다.
과 대표와 무당을 오간 이중생활
친할머니(왼쪽)와 함께 한 권수진 씨의 어릴 적 모습.
웬만하면 친할머니와 같이 움직이려고 해요. 언제나 할머니와 함께 있어와서요. 할머니와 제가 살던 홍성의 신당과 이곳을 오가면서 지내요.
꼬마 무당으로 이름을 알린 지 벌써 20년이 돼가요.
어릴 땐 점사 보는 일을 무척 싫어했어요. 제가 너무 우니까 할머니께서 “아이에게 묻지 마시오”라는 표지를 벽에 붙여놓기까지 했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제가 점 보는 걸 막고 싶으셨던 거죠. 그런데 여섯 살 때쯤 제가 한복을 차려입고 할머니 앞에 무릎 꿇고 앉아서는 “가슴이 답답하니 저 표지를 떼달라”고 한 거예요. 그렇게 신내림을 받았고, 그 이후부터 또래 아이들처럼 놀고 싶을 때 놀고 자고 싶을 때 자는 평범한 생활은 힘들었죠. 학교 다니면서 무업(巫業)을 병행했어요.
청소년기는 어떻게 보냈나요.
주말마다 신당에서 손님을 받은 것만 빼면 보통의 고등학생, 대학생과 비슷한 삶을 살았어요.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땐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요. 그 결과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에 진학했어요. 대학생이 돼선 남들처럼 수업도 듣고 과제도 하고, 취업 고민도 했죠. 그러다 전업 무당으로 마음을 굳혔지만요(웃음).
그의 하루는 보통의 20대와 조금 다르게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당에 출근해 옥수를 갈고 초와 향을 켠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상담 시간이다. 상담을 모두 마치면 산속 기도터에 오르거나 신당에 남아서 기도를 올린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두고 “24시간 일하는, 워라밸이 어려운 직업”이라고 말했다.
신내림으로 일종의 진로가 정해졌을 것 같은데, 대학에 간 이유는 뭔가요.
꿈이 많았거든요. 아나운서, 광고 기획자 모두 제 장래 희망이었죠. 그래서 언젠간 점을 보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거라는 생각도 컸어요. 영화 속에서처럼 고3 시절 내내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살 거야”라고 다짐했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면 신당과도 멀어지니 무업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 생활도 열심히 했어요. 어쩌다 보니 과 대표도 했고요(웃음).
열정이 넘쳤네요.
대학에서 친구들과 많이 놀고 싶었어요. 동아리도 여러 개 들고, 동기들과 잔디밭에 둘러앉아 수다도 떨고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어요. 주말마다 홍성에 가야 했거든요. 신당을 외면하면 이유 없이 몸이 아프고 힘든 일이 생겼어요. 결국 과 대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해 동기들한테 괜한 오해를 사기도 했죠. 보통 과 대표는 주말에도 단과대학 회의나 과 행사 진행 등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그 시절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어요. ‘운명에 굴복당하는 과정인 건가’ 싶었죠.
주말마다 서울과 홍성을 오가기 힘들었겠어요.
금요일마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기차를 타고 홍성으로 내려갔어요. 일요일에 마지막 손님 상담을 마치면 바로 서울로 올라왔죠. 서울 자취방에 와서는 밀린 일과 과제를 몰아서 했어요.
꿈을 좇아 대학에 갔는데 결국 전업 무당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뭔가요.
그렇게 서울과 홍성을 오가는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지금까지 거부한 운명에 최선을 다해보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잠시 이 일과 멀어졌을 때 많이 힘들기도 했고요. 그제야 저는 남들처럼 직장 생활, 특히 제가 원하는 광고 일은 현실적으로 하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죠. 광고 일은 주말 근무도 많은데 주말마다 신당을 가야 하니까요. 직장에 개인 사정으로 양해를 구하는 것도 한두 번이죠.
7년의 기록 영화로 탄생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한 장면.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포스터.
원래는 2년만 촬영할 생각이었어요. 2015년에 시작했으니 2017년에 끝날 예정이었죠. 감독님 제안도 “연출이 필요 없고 2년 동안 계절마다 한 번씩, 총 여덟 번 오겠다”고 해서 승낙한 거예요. 영화를 찍다 제가 대학에 입학하니 감독님은 새내기 모습을 담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동기들에게도 사정을 말하지 못했던 터라 촬영에 대한 부담이 컸죠. 결국 이런저런 힘든 일이 겹쳐 2016년 6월에 촬영을 중단했어요. 1학년 1학기가 끝난 직후였죠.
그래도 무사히 영화 한 편이 완성됐네요.
촬영을 멈추고 3년이 지나자 진로에 대한 생각이 정리됐어요. 전업 무당이 되기로 결심한 거죠. 할머니와 상의 끝에 감독님께 전화했어요. “제 파일 아직 남아 있나요?” 하면서(웃음). 감독님이 “그걸 어떻게 버려” 하시더라고요. 그 길로 다시 촬영을 시작했죠.
이쯤 되니 감독님이 영화 제작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네요.
‘진실게임’을 보고 지금의 제 모습이 궁금했대요. 그 아이는 어떻게 컸을까, 지금도 그 일을 할까 싶어 찾아오셨다고 해요. 마침 당시 저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컸고요. 감독님은 무속인이기 전에 1명의 평범한 청춘인 제 모습을 담고 싶어 했어요.
촬영에 응하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나요.
처음엔 점을 보고 굿을 하는 전문적인 무당의 면모가 드러났으면 했어요. 완성된 영화를 보니 그런 장면은 거의 없더라고요. 총 5분 정도(웃음)? 처음엔 “영화가 뭐 이래요!” 하며 감독님께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개봉하고 나서 사람들의 반응을 본 다음에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정확히 말하면, 영화를 두고 “점집 홍보 아니냐”는 댓글이 올라오니 더 그렇더라고요. 차라리 편견을 바꾸려면 이 영화처럼 저 자신과 할머니, 그리고 사회에서 겪은 갈등을 보여주는 게 대중과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과적으로 감독님께 감사하고 있어요.
평범함을 꿈꾸는 소녀
영화는 신기가 느껴진다는 한 손님을 상담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권 씨는 그를 두고“신을 받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손님이 자리를 뜨자 한참을 고민한다. 그리고 그는 “나도, 저 사람도 이것 말고 답이 없을까” 싶었다며 그 장면의 뒷이야기를 밝혔다.함께 대학을 다닌 동기들은 잘 지내나요.
광고 회사, 대기업, 방송국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요. 가끔은 ‘내 모습이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죠. 그럴 때면 대리 만족하는 셈 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해요.
그런데도 욕심나는 게 있나요.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영화 제목인 ‘시간을 꿈꾸는 소녀’엔 제가 꿈꾸는 평범함의 의미도 들어 있어요. 보통 무당이라고 하면 가정불화나 사업 실패 등을 겪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할머니의 도움으로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온전하게 가정도 꾸리고 싶어요(웃음).
주어진 운명을 씩씩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분명히 운명은 있지만 조금씩은 바꿀 수 있어요. 저도 운명을 아예 거스르진 못해도 최대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려고 노력해요. 중장비 관련 자격증 취득에 도전한다거나 중국어를 배우는 등의 색다른 취미를 가지려고 하죠. 사실 무당은 워라밸이 쉽지 않은 직업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아야 해요.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04호 서울새남굿 이수자 시험에 초집중하고 있어요. 지난해 말에 전수자까지 따서 3년 뒤에는 이수자 시험을 볼 수 있어요.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뭔가요.
어릴 땐 저를 둘러싼 편견에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지금은 제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요. 그래서 힘든 이들로부터 번 돈을 그들에게 다시 베풀고 싶어요. 어릴 때 책을 좋아했는데 시골 도서관엔 책이 많지 않았어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도서⸳산간 지역에 도서관을 세우고 싶은데, 그게 힘들다면 소외된 아이들을 위해 책이라도 잔뜩 기부하고 싶어요.
#무속인 #MZ세대 #시간을꿈꾸는소녀 #여성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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