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던 지난여름, 팬들에게 그의 노래 ‘HE’는 긴 우울의 날들에 마침표를 찍어줄 한 줄기 빛이었다. 우연 같은 필연, 그가 ‘HE’를 발표한 9월 7일은 그룹 H.O.T.의 데뷔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2달여 지난 11월, 그는 또다시 신곡 ‘럽(SHE)’을 들고 대중 앞에 섰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초 5곡의 신곡을 모두 발표할 예정이었어요. 지난 연말 즈음 녹음도 모두 마친 상태였고요. 그런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계획을 일정 부분 수정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고민 끝에 2곡만 선보이기로 했죠.”
“무대에 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부터 날아온 듯한 기분이 들어요. 팬들은 실제로 무대에 선 우리를 ‘돌아온 오빠들’이라 부르는데, 뮤직비디오에서 그런 기분을 다양한 장치로 이용해 표현하려고 했죠. 도입부에 등장한 자동차 ‘드로이안’도 그중 하나예요. 영화 ‘백 투더 퓨처’에서 타임머신으로 설정된 차종인데, ‘HE’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제가 그 차를 타고 1998년 H.O.T. 곡인 ‘빛’ 뮤직비디오의 트럭과 오토바이 신을 재현한 장면 속으로 달려가죠. 마치 미래에서 온 사람들처럼, 우리는 여전히 변함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2년 전 그룹 H.O.T.는 17년의 공백을 깨고 완전체로 다시 만났다. 2018년의 H.O.T. 단독 콘서트 ‘Forever [High five of Teenagers]’와 2019년의 ‘Forever [High five of Teenagers]’ 무대는 그에게 너무나도 의미가 각별했다. 10만 관객이 자리를 가득 메운 콘서트장의 풍경이 처음은 아니었건만 그때만큼 가슴 뭉클하고 각별했던 때가 또 있을까 싶었다. 오랜 이별의 시간을 인내한 ‘그’들과 ‘그녀’들에게 내려진 보석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열린 그의 솔로 콘서트 무대는 가수 장우혁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서막과도 같은 것이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난 후의 아쉬움은 팬들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있었어요. 표를 구하지 못해 입장하지 못한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요. 그런 모든 아쉬움을 제 개인 콘서트로 보답하고 싶었죠.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올해의 H.O.T. 콘서트는 열리지 못했지만, 지난해 8년 만에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이후로 음악 방송 무대에도 서면서 팬들과 많이 교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대에서만 들을 수 있는 팬들의 함성, 마흔을 훌쩍 넘긴 댄스 가수에게 그것은 단순한 응원의 메시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거나 누군가의 살뜰한 아내, 다정한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역시 가슴 뜨거운 응원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장우혁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운동을 최근 그만뒀다고 고백했다. 오래도록 무대에 서기 위해 축구나 농구 같은, 평소 즐겨 하던 운동과 멀어지기로 결심한 것. 체력을 기르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 위주의 운동은 꾸준히 하되 몸이 상하거나 다칠 수 있는 구기 종목들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 내렸다. 술과 담배는 아예 끊고, 식단은 강박에 가까울 만큼 철저하게 계산된 것들로만 짠다. 지방을 절제하고 단백질과 비타민이 고르게 안배된 균형 잡힌 식단을 고집하지 않으면 무대에서 필요한 파워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무대에 최적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액세서리 하나를 고를 때도, 옷 하나를 장만할 때도 계속된다.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이런 스타일을 보여드려야겠다’ ‘무대에서는 이런 옷과 액세서리를 매치해야겠다’ 늘 생각하면서 지내요. 오토바이를 타고 모터 캠핑을 즐기는 것도 제 나름의 크리에이티브한 시도 가운데 하나고요. 회사에서는 제가 오토바이 타는 걸 싫어하지만, 캠핑과 모터사이클의 만남 자체가 굉장히 새롭고 창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 훌쩍 떠나는 힐링의 시간은 요즘 시대상을 반영하는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니까, 그 안에서 저만의 ‘음악과의 교집합’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오로지 무대에 오르기 위해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을 가려내는 데만 주파수가 맞춰진 듯 외골수적인 모습은 문득 신들린 사람처럼 춤과 노래밖에 모르던 20대 시절의 장우혁을 떠올리게 했다. 그 시절의 그는 우수에 찬 소년 같기도, 어떤 일에 쉽게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 냉정하고 과묵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때는 사실 말을 잘할 줄도 모르고, 잘할 수도 없던 시절이어서 그렇게 보였나 봐요. 캐릭터가 한번 정해지니까 계속 그렇게 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할 말이 있어도 점점 하지 않게 되고, 해야 할 말이 있는 데도 입을 다물게 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처음엔 연예기획사로 시작했었어요. 이름도 ‘WH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라 ‘WH 엔터테인먼트’ 였고요. 하지만 시장 구조 자체가 대형 기획사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연예기획사라는 고정된 가치만으로 경쟁력을 갖기는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가수의 노래만 소비하는 시대는 지났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저 혼자만의 1인 기획사 형태로 크리에이티브한 다양한 시도들을 해나가고 있어요. 이제는 아티스트들의 크리에이티브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니까, 회사를 통해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모든 창조적인 활동을 해나갈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는 최근 아웃도어 브랜드 스탠리(STANLEY)부터 아비렉스(AVIREX), 뉴에라(NEW ERA), 지샥(G-SHOCK) 등 패션 회사들과 끊임없이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스스로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확인하고, 발전시켜나가고픈 욕심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의상이며 액세서리,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 하나하나까지 직접 챙겨온 그에게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최근에 재미있게 작업한 것 중 하나가 25년 전 제가 입었던 아비렉스의 옷을 그대로 복각하는 일이었어요. 원래 아비렉스가 컬래버레이션을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브랜드인데, 본사에도 자료가 남아 있지 않던 옷을 제가 아직 소장하고 있다니까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제가 입었던 옷을 샘플 삼아 작업이 진행되었고, 결과물도 무척 성공적이었어요.”
그에게 ‘시간’은 모든 창작 활동의 근원이 되는 소중한 자산이다. 요즘에는 그가 입었던 옷, 사용했던 물건, 그리고 기억 속 하나하나가 새로운 창조물로 되살아나고 있다. 몇 해 전 서울 망원동에 문을 연 카페 ‘지능계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능계발은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렸을 때 오락실에 가면 조그맣게 ‘지능계발’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아이들이 오락실 가는 걸 부모님들이 싫어하니까 오락실 주인 나름대로 꾀를 낸 거죠. 게임을 하면 아이들 지능계발에 도움이 된다, 뭐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가 카페 지능계발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아도 금세 알 수 있다. 서울 황학동 어디에선가 골동품을 잔뜩 사들고 돌아다니는 장우혁을 보았다는 글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것부터가 그 증거다. 카페 군데군데 흔적이 남아 있는 인테리어의 용접 부분도 모두 장우혁이 직접 작업한 ‘창작품’이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다 동네에 버려진 기와를 주워오기도 하고, 금성(LG의 전신) 냉장고 하나를 구하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리기도 하면서 그는 시간이 주는 ‘비효율’을 마음껏 만끽했다.
“그런 게 크리에이티브한 거잖아요.”
장우혁이 그토록 재현하고 싶어 한 어린 시절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무렵 댄스 음악과 힙합의 경계를 넘나들던 시기로 정의된다. 그가 ‘Mr.잭슨’이라는 노래로 오마주할 만큼 사랑해 마지않는 마이클 잭슨, 그리고 서태지의 시대이기도 하다. 가수 장우혁에게 그들이 남긴 유산은 현재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마이클 잭슨 이름 석 자만으론 그를 설명할 수 없어요. 예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분이야말로 댄스 음악의 교과서 그 자체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무대 위의 모든 것들, 무대 위의 퍼포먼스는 어떻게 해야 하고 공연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그 모든 걸 새롭게 만들어 보여준 사람이 마이클 잭슨이니까요. 서태지와 아이들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댄스 음악에 접목시킨, 한국식 댄스 음악의 표본 같은 분들이잖아요. 물론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들이 남긴 업적은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1세대 아이돌’로서, 국내 가요계에는 개념조차 없던 ‘아이돌’의 역사를 만들어가던 H.O.T. 역시 후배 가수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교과서다. 그런 점에서 가수 비와 이효리 등 1990년대와 2000년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가수들의 화려한 부활이 더없이 반갑고 고맙다.
“지금의 현상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 생각해요. 굳이 얘기하자면, 댄스 가수로서 국내 아이돌의 역사가 그다지 길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모습이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에도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도 수십 년이 지난 후 저희처럼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주고 싶어요. 좋은 것은 잊히지 않고 언젠가 또다시 사람들에게 소개되는구나, 알게 되는 것처럼요. 제 팬들도 그런 마음에서 더 열심히 응원해주고 있고요.”
“H.O.T. 시절엔 해외 팬들이 우리 노래를 좋아해주면 의심부터 했던 거 같아요. 지금처럼 해외 활동을 왕성하게 해나가는 걸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시기다 보니 언어 장벽을 너무 크게만 느껴서 ‘누가 한국말로 된 노래를 알아봐주기나 하겠어?’ 생각했던 것도 같고요. 그런 벽을 허물어가는 세대가 지금의 아이돌인 것 같아요. 그때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한국의 가수들이 세계 무대를 누비며 몇 주 동안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는 일이 생길 거라고요.”
그도 알고 있다. 그와 동료들이 일궈둔 피땀 어린 시간의 결과물이 없었다면 척박하기만 했던 국내 가요계에 댄스 가수들이 뿌리를 내리고 너도나도 해외에서 사랑받는 오늘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거란 걸 모르지 않는다. 후배들 역시 그런 그의 시간들을 너무나도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단 한 팀의 보이 그룹이 아닌 넷 혹은 다섯 혹은 그 이상의 가수들이 빌보드에 나란히 랭크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그런 날이 곧 올 거라 믿는다.
그의 미래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후배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에 자양분이 되어주었던 그가 또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사진 홍태식
“계획대로라면 올해 초 5곡의 신곡을 모두 발표할 예정이었어요. 지난 연말 즈음 녹음도 모두 마친 상태였고요. 그런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계획을 일정 부분 수정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고민 끝에 2곡만 선보이기로 했죠.”
HE와 SHE의 우연
그렇게 결정된 올해의 신곡 ‘HE’와 ‘SHE’는 각각 사랑의 끝에 선 남자와 사랑의 시작점에 선 여자의 이야기다. 그와 그녀, 어쩌면 묘하게 연결된 듯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두 노래의 원제는 ‘HE(부제 : Don’t wanna be alone)’와 ‘럽(부제 : SHE)’이다. 각기 다른 느낌이라 생각했던 두 노래는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묘한 연결성을 발견하게 되어 각각에 부제를 덧붙이기로 했다고 한다.“무대에 서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부터 날아온 듯한 기분이 들어요. 팬들은 실제로 무대에 선 우리를 ‘돌아온 오빠들’이라 부르는데, 뮤직비디오에서 그런 기분을 다양한 장치로 이용해 표현하려고 했죠. 도입부에 등장한 자동차 ‘드로이안’도 그중 하나예요. 영화 ‘백 투더 퓨처’에서 타임머신으로 설정된 차종인데, ‘HE’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제가 그 차를 타고 1998년 H.O.T. 곡인 ‘빛’ 뮤직비디오의 트럭과 오토바이 신을 재현한 장면 속으로 달려가죠. 마치 미래에서 온 사람들처럼, 우리는 여전히 변함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2년 전 그룹 H.O.T.는 17년의 공백을 깨고 완전체로 다시 만났다. 2018년의 H.O.T. 단독 콘서트 ‘Forever [High five of Teenagers]’와 2019년의 ‘Forever [High five of Teenagers]’ 무대는 그에게 너무나도 의미가 각별했다. 10만 관객이 자리를 가득 메운 콘서트장의 풍경이 처음은 아니었건만 그때만큼 가슴 뭉클하고 각별했던 때가 또 있을까 싶었다. 오랜 이별의 시간을 인내한 ‘그’들과 ‘그녀’들에게 내려진 보석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열린 그의 솔로 콘서트 무대는 가수 장우혁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서막과도 같은 것이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난 후의 아쉬움은 팬들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있었어요. 표를 구하지 못해 입장하지 못한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요. 그런 모든 아쉬움을 제 개인 콘서트로 보답하고 싶었죠.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올해의 H.O.T. 콘서트는 열리지 못했지만, 지난해 8년 만에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이후로 음악 방송 무대에도 서면서 팬들과 많이 교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대에서만 들을 수 있는 팬들의 함성, 마흔을 훌쩍 넘긴 댄스 가수에게 그것은 단순한 응원의 메시지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거나 누군가의 살뜰한 아내, 다정한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역시 가슴 뜨거운 응원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장우혁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운동을 최근 그만뒀다고 고백했다. 오래도록 무대에 서기 위해 축구나 농구 같은, 평소 즐겨 하던 운동과 멀어지기로 결심한 것. 체력을 기르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 위주의 운동은 꾸준히 하되 몸이 상하거나 다칠 수 있는 구기 종목들은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 내렸다. 술과 담배는 아예 끊고, 식단은 강박에 가까울 만큼 철저하게 계산된 것들로만 짠다. 지방을 절제하고 단백질과 비타민이 고르게 안배된 균형 잡힌 식단을 고집하지 않으면 무대에서 필요한 파워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무대에 최적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액세서리 하나를 고를 때도, 옷 하나를 장만할 때도 계속된다.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 ‘이런 스타일을 보여드려야겠다’ ‘무대에서는 이런 옷과 액세서리를 매치해야겠다’ 늘 생각하면서 지내요. 오토바이를 타고 모터 캠핑을 즐기는 것도 제 나름의 크리에이티브한 시도 가운데 하나고요. 회사에서는 제가 오토바이 타는 걸 싫어하지만, 캠핑과 모터사이클의 만남 자체가 굉장히 새롭고 창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혼자 훌쩍 떠나는 힐링의 시간은 요즘 시대상을 반영하는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니까, 그 안에서 저만의 ‘음악과의 교집합’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오로지 무대에 오르기 위해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을 가려내는 데만 주파수가 맞춰진 듯 외골수적인 모습은 문득 신들린 사람처럼 춤과 노래밖에 모르던 20대 시절의 장우혁을 떠올리게 했다. 그 시절의 그는 우수에 찬 소년 같기도, 어떤 일에 쉽게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 냉정하고 과묵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때는 사실 말을 잘할 줄도 모르고, 잘할 수도 없던 시절이어서 그렇게 보였나 봐요. 캐릭터가 한번 정해지니까 계속 그렇게 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할 말이 있어도 점점 하지 않게 되고, 해야 할 말이 있는 데도 입을 다물게 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장우혁의 CREATIVE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사람은 장우혁, 나 한 사람밖에 없다’는 사실은 H.O.T. 해체 이후 깨달았다. 그건 중요한 변화 중 하나였다. 토니안, 이재원과 결성한 남성 3인조 프로젝트 그룹 JTL의 활동 이후 그가 본격적인 솔로 가수로서의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크리에이티브 컴퍼니 ‘WH 크리에이티브’를 설립한 것도 어쩌면 조금 더 ‘장우혁다운 모습’으로 팬들과 만날 때가 되었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을 것이다.“처음엔 연예기획사로 시작했었어요. 이름도 ‘WH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라 ‘WH 엔터테인먼트’ 였고요. 하지만 시장 구조 자체가 대형 기획사 위주로 흘러가다 보니 연예기획사라는 고정된 가치만으로 경쟁력을 갖기는 어렵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가수의 노래만 소비하는 시대는 지났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저 혼자만의 1인 기획사 형태로 크리에이티브한 다양한 시도들을 해나가고 있어요. 이제는 아티스트들의 크리에이티브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니까, 회사를 통해 제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모든 창조적인 활동을 해나갈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는 최근 아웃도어 브랜드 스탠리(STANLEY)부터 아비렉스(AVIREX), 뉴에라(NEW ERA), 지샥(G-SHOCK) 등 패션 회사들과 끊임없이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스스로 아티스트로서의 역량을 확인하고, 발전시켜나가고픈 욕심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의상이며 액세서리, 무대 위에서의 퍼포먼스 하나하나까지 직접 챙겨온 그에게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최근에 재미있게 작업한 것 중 하나가 25년 전 제가 입었던 아비렉스의 옷을 그대로 복각하는 일이었어요. 원래 아비렉스가 컬래버레이션을 잘 하지 않기로 유명한 브랜드인데, 본사에도 자료가 남아 있지 않던 옷을 제가 아직 소장하고 있다니까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제가 입었던 옷을 샘플 삼아 작업이 진행되었고, 결과물도 무척 성공적이었어요.”
그에게 ‘시간’은 모든 창작 활동의 근원이 되는 소중한 자산이다. 요즘에는 그가 입었던 옷, 사용했던 물건, 그리고 기억 속 하나하나가 새로운 창조물로 되살아나고 있다. 몇 해 전 서울 망원동에 문을 연 카페 ‘지능계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능계발은 그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어렸을 때 오락실에 가면 조그맣게 ‘지능계발’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아이들이 오락실 가는 걸 부모님들이 싫어하니까 오락실 주인 나름대로 꾀를 낸 거죠. 게임을 하면 아이들 지능계발에 도움이 된다, 뭐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가 카페 지능계발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아도 금세 알 수 있다. 서울 황학동 어디에선가 골동품을 잔뜩 사들고 돌아다니는 장우혁을 보았다는 글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것부터가 그 증거다. 카페 군데군데 흔적이 남아 있는 인테리어의 용접 부분도 모두 장우혁이 직접 작업한 ‘창작품’이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다 동네에 버려진 기와를 주워오기도 하고, 금성(LG의 전신) 냉장고 하나를 구하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리기도 하면서 그는 시간이 주는 ‘비효율’을 마음껏 만끽했다.
“그런 게 크리에이티브한 거잖아요.”
장우혁이 그토록 재현하고 싶어 한 어린 시절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무렵 댄스 음악과 힙합의 경계를 넘나들던 시기로 정의된다. 그가 ‘Mr.잭슨’이라는 노래로 오마주할 만큼 사랑해 마지않는 마이클 잭슨, 그리고 서태지의 시대이기도 하다. 가수 장우혁에게 그들이 남긴 유산은 현재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다.
“마이클 잭슨 이름 석 자만으론 그를 설명할 수 없어요. 예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분이야말로 댄스 음악의 교과서 그 자체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무대 위의 모든 것들, 무대 위의 퍼포먼스는 어떻게 해야 하고 공연은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그 모든 걸 새롭게 만들어 보여준 사람이 마이클 잭슨이니까요. 서태지와 아이들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댄스 음악에 접목시킨, 한국식 댄스 음악의 표본 같은 분들이잖아요. 물론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들이 남긴 업적은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1세대 아이돌’로서, 국내 가요계에는 개념조차 없던 ‘아이돌’의 역사를 만들어가던 H.O.T. 역시 후배 가수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교과서다. 그런 점에서 가수 비와 이효리 등 1990년대와 2000년대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가수들의 화려한 부활이 더없이 반갑고 고맙다.
“지금의 현상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 생각해요. 굳이 얘기하자면, 댄스 가수로서 국내 아이돌의 역사가 그다지 길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우리의 모습이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에도 전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도 수십 년이 지난 후 저희처럼 과거형이 아닌 현재 진행형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주고 싶어요. 좋은 것은 잊히지 않고 언젠가 또다시 사람들에게 소개되는구나, 알게 되는 것처럼요. 제 팬들도 그런 마음에서 더 열심히 응원해주고 있고요.”
“후배들에게 더 많이 배우고 있어요”
같은 맥락에서, 최근의 국내 아이돌들이 보여주는 글로벌한 성과는 그에게 더없이 멋진 교과서가 되고 있다. 콘서트 때마다 잠실 주 경기장을 꽉 채우고도 남을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룬 최고의 아이돌이었다고, 국내 아이돌의 역사를 만들어간 주인공이라고 젠체하기에는 후배 가수들의 성과가 너무 크고 훌륭하기 때문이다.“H.O.T. 시절엔 해외 팬들이 우리 노래를 좋아해주면 의심부터 했던 거 같아요. 지금처럼 해외 활동을 왕성하게 해나가는 걸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시기다 보니 언어 장벽을 너무 크게만 느껴서 ‘누가 한국말로 된 노래를 알아봐주기나 하겠어?’ 생각했던 것도 같고요. 그런 벽을 허물어가는 세대가 지금의 아이돌인 것 같아요. 그때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한국의 가수들이 세계 무대를 누비며 몇 주 동안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는 일이 생길 거라고요.”
그도 알고 있다. 그와 동료들이 일궈둔 피땀 어린 시간의 결과물이 없었다면 척박하기만 했던 국내 가요계에 댄스 가수들이 뿌리를 내리고 너도나도 해외에서 사랑받는 오늘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거란 걸 모르지 않는다. 후배들 역시 그런 그의 시간들을 너무나도 고마워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작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단 한 팀의 보이 그룹이 아닌 넷 혹은 다섯 혹은 그 이상의 가수들이 빌보드에 나란히 랭크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그런 날이 곧 올 거라 믿는다.
그의 미래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후배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에 자양분이 되어주었던 그가 또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사진 홍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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