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엄정화는 참 예뻤다. 뚜렷한 이목구비, 섹시한 몸매, 웃을 때 찡긋하는 코웃음까지. ‘배반의 장미’ ‘페스티벌’ ‘초대’ ‘몰라’ 등 귀에 쏙쏙 박히는 히트곡에 시원시원한 댄스 메들리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한동안 수련회와 학예회 때마다 가수 엄정화는 여학생들의 워너비로 군림했다.
TV와 스크린에서도 배우 엄정화의 위력은 대단했다.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3)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 ‘싱글즈’(2003), ‘홍반장’(2004), ‘오로라 공주’(2005),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 ‘해운대’(2009), ‘댄싱퀸’(2012), ‘미쓰 와이프’(2015) 등 다수의 출연작을 통해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그녀가 꼭 영화만 고집한 건 아니다. 드라마 ‘아내’(2003), ‘12월의 열대야’(2004) ‘칼잡이 오수정’(2007), ‘결혼 못하는 남자’(2009), ‘당신은 너무합니다’(2017) 등에 다양한 캐릭터로 출연해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가 어느덧 데뷔 27년을 맞았다. 한국 나이로는 52세이지만 세월이 무색할 만큼 엄정화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인생 로망이었던 정원이 있는 빌라에서 반려견 ‘슈퍼’와 함께하며 여유 시간에 킥복싱을 즐기고 SNS로 팬들과 소통하는 등 소소한 일상이 방송을 통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그녀의 일상은 어떤 여자 연예인과도 비교되지 않는 본인만의 색채가 오롯이 묻어나 많은 팬들이 관심을 보였다.
근황이 궁금해지던 찰나, 엄정화는 5년 만에 스크린 복귀 신고를 알렸다. 영화 ‘오케이 마담’에서 재래시장 꽈배기 맛집 사장 미영으로 분해 박성웅, 이상윤, 배정남, 이선빈 등과 코믹 액션을 선보였다.
영화 속에서 엄정화는 음료수 병뚜껑 이벤트에 당첨돼 컴퓨터 수리 전문가인 남편, 사랑스러운 딸과 하와이행 비행기에 올랐다가 납치 사건에 휘말리자 숨겨왔던 실력을 드러내며 테러범 소탕에 나선다. 데뷔 후 첫 액션 연기에 도전한 엄정화는 20대인 이선빈에게 밀리지 않는 액션 실력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영화 개봉을 앞둔 8월 초,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엄정화를 인터뷰했다. 폭우를 뚫고 도착한 엄정화는 긴 장마로 음습해진 공기를 단번에 밝게 바꾸며 인터뷰를 이끌어갔다.
영화를 개봉한 소감이 어떤지 궁금해요.
5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라 많이 긴장됐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봐줄지도 걱정되고, 코믹한 부분이 많은데 공감대가 형성될지도 궁금했고요. 다행히 관객 평이 좋아서 기뻐요. 이 영화가 잘돼서 코로나19로 침체된 영화계에 활력이 돌면 좋겠어요.
스크린 복귀에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가 있을까요.
그동안 좋은 시나리오 찾기가 어려웠어요.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투자가 안 돼서 촬영까지 이어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작품은 좋은데 여배우가 들어가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죠. 배우는 작품 안에서 존재의 이유랄까 그런 게 있어야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요. ‘좋은 작품이 언제 오려나’ 하고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렸어요. ‘오케이 마담’은 코미디 영화라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고, 제목도 사람들에게 ‘오케이’ 사인을 주는 것 같잖아요(웃음). 대본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키득대고 웃을 정도로 재미있어서 참 반가웠어요.
작품이 마음에 들어 캐스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액션 준비를 한 건가요.
저 혼자 캐스팅된 상황에서 놀면 뭐 하나 싶어 액션 스쿨에 등록했어요. 설령 제작이 무산돼도 액션 연기를 배워둬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첫 촬영일까지 시간이 빠듯해서 마음이 급하기도 했고요. 뭔가 어설픈 액션을 보여주는 건 못 견딜 것 같았어요. 처음 액션 스쿨을 갔던 날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액션에 대한 로망이 늘 있었거든요. 액션 배우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있었고, 그 사이로 정두홍 무술 감독님이 제게 다가오면서 “우선 뛰고 오시죠”라고 말했죠(웃음). 그때부터 하드 트레이닝이 시작됐어요. 매일 액션 스쿨에 도착하면 1시간씩 뛰고 시작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이게 나아지는 순간이 올까’ 싶을 정도로 힘들다가도 액션 연습할 때는 또 굉장히 즐거웠어요.
비행기라는 좁은 공간에서 액션 연기하기 힘들었겠어요.
처음부터 비행기 내 복도 폭 정도로 좁은 공간을 만들어놓고 연습을 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다만 실제 촬영에 들어가고 보니 비행기 좌석 팔걸이부터 음료 카트까지 딱딱하고 차가운 부분들이 많아 거기서 오는 공포가 있었어요. 촬영 초반에는 ‘내가 뭘 연습했지’ 싶을 정도로 두려웠는데 무술 팀과 서로 믿고 보완해가면서 촬영해 잘 나온 것 같아요.
댄스 가수 출신이라는 점이 액션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나요.
전혀요. 자꾸 춤출 때 몸에 익었던 동작들이 나와서 고민이 컸어요. 발차기를 하는데 춤추는 것처럼 보여서 정말 답답했죠. 연습할 때 영상으로 하나하나 찍으면서 그런 부분들을 빼려고 애썼어요.
매 작품마다 사랑스러운 매력이 돋보였는데 이번 영화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댄싱퀸’ ‘미쓰 와이프’ 같은 전작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걱정을 좀 했어요. 상대역인 박성웅 씨와 ‘닭살 부부’로 등장하는데, 그런 애교나 애정 표현이 닭살이라거나 보기 싫게 비치면 어쩌나 우려되기도 했고요. 촬영장에서도 오버하는 건 아닌지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죠. 제가 사람들을 웃기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요(웃음). 그게 너무 과할까 봐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하는지 항상 고민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적절하게 나온 것 같아요.
남편으로 등장한 박성웅 씨와는 합이 잘 맞았나요.
캐스팅 소식을 듣고 어떤 성격일지 궁금했어요. 이미지만 보면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감이 없지 않았죠(웃음). 첫 촬영 때 성웅 씨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면서 ‘나 역시도 어떤 사람을 고정된 이미지에 맞춰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배우는 어떤 역할을 맡든 그 속에 들어가서 녹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데, 제가 박성웅 씨를 잘못 본 것 같아 반성했어요.
박성웅 씨를 포함해 전작들에서 부부를 연기한 황정민, 송승헌 씨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상대는 누구인가요.
세 분 모두 상대 배우를 잘 챙겨주고 배려하는 타입이에요. 황정민 씨는 털털한 성격인데 츤데레 모드로 챙겨주는 편이고, 송승헌 씨는 특유의 젠틀함과 따스함으로 배려해주죠. 박성웅 씨는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면서 아재 개그를 하는데 촬영장에서 많은 배우들이 힘을 얻었죠.
부부 연기를 하면 결혼 생각은 들지 않나요.
영화 속 석환(박성웅)과 같은 남편이라면 함께해도 좋을 것 같아요. 대답은 여기까지. 그 이상은 노코멘트 할게요(웃음).
최근에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이효리, 제시, 화사 등과 ‘환불원정대(센 캐릭터 때문에 어떤 매장에서도 쉽게 환불을 받을 수 있을것 같아 붙여진 이름)’ 결성 논의가 됐는데 후배들과 함께할 의사가 있나요.
그럼요. 효리가 방송에서 스치듯 4명이서 그룹을 하면 좋겠다고 했을 땐 실제로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환불원정대’라는 이름까지 붙어서 계속 SNS에 공유되더라고요. 자기 전에 생각해보니 진짜로 하게 되면 재미있겠더라고요. 솔로로만 활동했기 때문에 그룹을 결성하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효리 SNS에 댓글로 “효리 잘한다”라고 얘기 한거예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관심 가져주시고 청원 아닌 청원까지 해주실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환불원정대 멤버들과는 실제로 만나보셨나요.
얼마 전, 제작진들과 아주 캐주얼하고 가볍게 다 같이 만났어요. 오랜만에 효리 얼굴 보니까 너무 반가웠고 제시, 화사 등 좋아하는 후배들을 만나서 좋았어요. 다들 너무 여리고 예쁘더라고요. 솔직히 제시나 화사는 TV에서만 봐서인지 마치 연예인을 보는 듯했죠(웃음). 그리고 효리는 저와 세대 차이가 있긴 하지만 활동했던 시기가 겹쳐서 동지애가 느껴져요. 그런 동료가 지금까지 건재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참 좋고요.
실제 성격은 사랑스럽고 여성스러운데 센 언니 캐릭터가 부담되지 않나요.
효리가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환불해달라는 말을 못 해서 바꾸러 안 간다고(웃음). 저도 그래요. 무대 위에서는 센 캐릭터지만 다들 속을 들여다보면 여려요. 사람은 다 그런 것 같아요.
데뷔 후 27년 동안 영화계와 가요계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팬들이 데뷔한 지 1만 일이 지났다고 해서 놀랐어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전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연기하고 노래하는 일을 너무 좋아하는데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매 순간 감사해요. 한 번도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매번 주어진 작업을 즐겁게 해왔고, 그때마다 어떤 괴로움보다 기쁨이 더 컸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결같은 모습인데 자기 관리 노하우가 궁금해요.
모르겠어요. 어딜 가나 제가 맏언니고, 가요계에서는 특히 그렇죠. 예전에 활동했던 영상들 보면 참 어리고 예쁘더라고요. 그때는 항상 스스로 부족하게 느껴지고, 나이 들어 보이고, 나이의 끝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어요. 20대 댄스 가수에서 30대로 넘어갈 때는 “이제 발라드 가수를 해야해”라는 말에 위기를 느꼈고, 연기할 때도 ‘배우로서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런 상황을 이제 후배들은 안 겪었으면 좋겠어요. 여자 후배들이 나이에 갇혀서 꿈을 펼치지 못하는 일은 더 이상 생기지 않길 바라요.
여유로워질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해요.
예전에는 정말 ‘이 일이 끝나면 어떻게 살지’ 걱정하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못살게 굴었어요. 지금은 현재의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좋아서 하루하루를 즐기게 됐어요. ‘나이는 의미 없이 먹는 것일 뿐 하루하루를 즐겨야지’라고 다짐하고, 시간을 잘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캐스팅이나 기회도 즐기면서 기다리게 됐어요.
후배들의 롤 모델이기도 한데, 그런 데서 오는 책임감도 클 듯합니다.
저 역시 꿈꾸며 나아가고 있어요. 김희애 선배 등 여러 선배님들이 앞서 가주시면 감사하고, 또래 여배우들이 꾸준히 활동하는 걸 보면 너무 힘이 돼요. 그런 부분에서 저 역시 세상의 편견을 깨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생애 첫 액션 연기에 도전한 것처럼, 앞으로 배우로서 어떤 도전을 하고 싶은가요.
오래오래 배우로 사는 게 목표예요. 비슷한 나이에도 계속 활동하는 할리우드나 프랑스 배우들을 보면 자극이 돼요. 윤여정 선배님처럼 나이 들어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고요. 저도 지금 제 나이는 처음 사는 거니까 계속 도전해보는 거죠.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할 수 있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사진제공 영화사 올 사나이픽처스
TV와 스크린에서도 배우 엄정화의 위력은 대단했다. 영화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3)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 ‘싱글즈’(2003), ‘홍반장’(2004), ‘오로라 공주’(2005),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2007), ‘해운대’(2009), ‘댄싱퀸’(2012), ‘미쓰 와이프’(2015) 등 다수의 출연작을 통해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았다. 그녀가 꼭 영화만 고집한 건 아니다. 드라마 ‘아내’(2003), ‘12월의 열대야’(2004) ‘칼잡이 오수정’(2007), ‘결혼 못하는 남자’(2009), ‘당신은 너무합니다’(2017) 등에 다양한 캐릭터로 출연해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가 어느덧 데뷔 27년을 맞았다. 한국 나이로는 52세이지만 세월이 무색할 만큼 엄정화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인생 로망이었던 정원이 있는 빌라에서 반려견 ‘슈퍼’와 함께하며 여유 시간에 킥복싱을 즐기고 SNS로 팬들과 소통하는 등 소소한 일상이 방송을 통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그녀의 일상은 어떤 여자 연예인과도 비교되지 않는 본인만의 색채가 오롯이 묻어나 많은 팬들이 관심을 보였다.
근황이 궁금해지던 찰나, 엄정화는 5년 만에 스크린 복귀 신고를 알렸다. 영화 ‘오케이 마담’에서 재래시장 꽈배기 맛집 사장 미영으로 분해 박성웅, 이상윤, 배정남, 이선빈 등과 코믹 액션을 선보였다.
영화 속에서 엄정화는 음료수 병뚜껑 이벤트에 당첨돼 컴퓨터 수리 전문가인 남편, 사랑스러운 딸과 하와이행 비행기에 올랐다가 납치 사건에 휘말리자 숨겨왔던 실력을 드러내며 테러범 소탕에 나선다. 데뷔 후 첫 액션 연기에 도전한 엄정화는 20대인 이선빈에게 밀리지 않는 액션 실력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영화 개봉을 앞둔 8월 초,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엄정화를 인터뷰했다. 폭우를 뚫고 도착한 엄정화는 긴 장마로 음습해진 공기를 단번에 밝게 바꾸며 인터뷰를 이끌어갔다.
5년 만에 출연한 영화 ‘오케이 마담’에서 생애 첫 액션 연기를 선보인 엄정화.
5년 만에 선보이는 영화라 많이 긴장됐어요. 관객들이 어떻게 봐줄지도 걱정되고, 코믹한 부분이 많은데 공감대가 형성될지도 궁금했고요. 다행히 관객 평이 좋아서 기뻐요. 이 영화가 잘돼서 코로나19로 침체된 영화계에 활력이 돌면 좋겠어요.
스크린 복귀에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가 있을까요.
그동안 좋은 시나리오 찾기가 어려웠어요.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투자가 안 돼서 촬영까지 이어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고, 작품은 좋은데 여배우가 들어가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죠. 배우는 작품 안에서 존재의 이유랄까 그런 게 있어야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요. ‘좋은 작품이 언제 오려나’ 하고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렸어요. ‘오케이 마담’은 코미디 영화라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고, 제목도 사람들에게 ‘오케이’ 사인을 주는 것 같잖아요(웃음). 대본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키득대고 웃을 정도로 재미있어서 참 반가웠어요.
작품이 마음에 들어 캐스팅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액션 준비를 한 건가요.
저 혼자 캐스팅된 상황에서 놀면 뭐 하나 싶어 액션 스쿨에 등록했어요. 설령 제작이 무산돼도 액션 연기를 배워둬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또 첫 촬영일까지 시간이 빠듯해서 마음이 급하기도 했고요. 뭔가 어설픈 액션을 보여주는 건 못 견딜 것 같았어요. 처음 액션 스쿨을 갔던 날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액션에 대한 로망이 늘 있었거든요. 액션 배우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열정적으로 준비하고 있었고, 그 사이로 정두홍 무술 감독님이 제게 다가오면서 “우선 뛰고 오시죠”라고 말했죠(웃음). 그때부터 하드 트레이닝이 시작됐어요. 매일 액션 스쿨에 도착하면 1시간씩 뛰고 시작했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이게 나아지는 순간이 올까’ 싶을 정도로 힘들다가도 액션 연습할 때는 또 굉장히 즐거웠어요.
비행기라는 좁은 공간에서 액션 연기하기 힘들었겠어요.
처음부터 비행기 내 복도 폭 정도로 좁은 공간을 만들어놓고 연습을 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다만 실제 촬영에 들어가고 보니 비행기 좌석 팔걸이부터 음료 카트까지 딱딱하고 차가운 부분들이 많아 거기서 오는 공포가 있었어요. 촬영 초반에는 ‘내가 뭘 연습했지’ 싶을 정도로 두려웠는데 무술 팀과 서로 믿고 보완해가면서 촬영해 잘 나온 것 같아요.
댄스 가수 출신이라는 점이 액션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나요.
전혀요. 자꾸 춤출 때 몸에 익었던 동작들이 나와서 고민이 컸어요. 발차기를 하는데 춤추는 것처럼 보여서 정말 답답했죠. 연습할 때 영상으로 하나하나 찍으면서 그런 부분들을 빼려고 애썼어요.
매 작품마다 사랑스러운 매력이 돋보였는데 이번 영화도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댄싱퀸’ ‘미쓰 와이프’ 같은 전작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걱정을 좀 했어요. 상대역인 박성웅 씨와 ‘닭살 부부’로 등장하는데, 그런 애교나 애정 표현이 닭살이라거나 보기 싫게 비치면 어쩌나 우려되기도 했고요. 촬영장에서도 오버하는 건 아닌지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죠. 제가 사람들을 웃기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요(웃음). 그게 너무 과할까 봐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하는지 항상 고민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적절하게 나온 것 같아요.
남편으로 등장한 박성웅 씨와는 합이 잘 맞았나요.
캐스팅 소식을 듣고 어떤 성격일지 궁금했어요. 이미지만 보면 선뜻 다가가기 어려운 감이 없지 않았죠(웃음). 첫 촬영 때 성웅 씨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면서 ‘나 역시도 어떤 사람을 고정된 이미지에 맞춰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배우는 어떤 역할을 맡든 그 속에 들어가서 녹을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데, 제가 박성웅 씨를 잘못 본 것 같아 반성했어요.
박성웅 씨를 포함해 전작들에서 부부를 연기한 황정민, 송승헌 씨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상대는 누구인가요.
세 분 모두 상대 배우를 잘 챙겨주고 배려하는 타입이에요. 황정민 씨는 털털한 성격인데 츤데레 모드로 챙겨주는 편이고, 송승헌 씨는 특유의 젠틀함과 따스함으로 배려해주죠. 박성웅 씨는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면서 아재 개그를 하는데 촬영장에서 많은 배우들이 힘을 얻었죠.
부부 연기를 하면 결혼 생각은 들지 않나요.
영화 속 석환(박성웅)과 같은 남편이라면 함께해도 좋을 것 같아요. 대답은 여기까지. 그 이상은 노코멘트 할게요(웃음).
최근에 MBC 예능 ‘놀면 뭐하니?’에서 이효리, 제시, 화사 등과 ‘환불원정대(센 캐릭터 때문에 어떤 매장에서도 쉽게 환불을 받을 수 있을것 같아 붙여진 이름)’ 결성 논의가 됐는데 후배들과 함께할 의사가 있나요.
그럼요. 효리가 방송에서 스치듯 4명이서 그룹을 하면 좋겠다고 했을 땐 실제로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환불원정대’라는 이름까지 붙어서 계속 SNS에 공유되더라고요. 자기 전에 생각해보니 진짜로 하게 되면 재미있겠더라고요. 솔로로만 활동했기 때문에 그룹을 결성하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효리 SNS에 댓글로 “효리 잘한다”라고 얘기 한거예요. 많은 분들이 이렇게 관심 가져주시고 청원 아닌 청원까지 해주실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환불원정대 멤버들과는 실제로 만나보셨나요.
얼마 전, 제작진들과 아주 캐주얼하고 가볍게 다 같이 만났어요. 오랜만에 효리 얼굴 보니까 너무 반가웠고 제시, 화사 등 좋아하는 후배들을 만나서 좋았어요. 다들 너무 여리고 예쁘더라고요. 솔직히 제시나 화사는 TV에서만 봐서인지 마치 연예인을 보는 듯했죠(웃음). 그리고 효리는 저와 세대 차이가 있긴 하지만 활동했던 시기가 겹쳐서 동지애가 느껴져요. 그런 동료가 지금까지 건재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것도 참 좋고요.
실제 성격은 사랑스럽고 여성스러운데 센 언니 캐릭터가 부담되지 않나요.
효리가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환불해달라는 말을 못 해서 바꾸러 안 간다고(웃음). 저도 그래요. 무대 위에서는 센 캐릭터지만 다들 속을 들여다보면 여려요. 사람은 다 그런 것 같아요.
데뷔 후 27년 동안 영화계와 가요계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팬들이 데뷔한 지 1만 일이 지났다고 해서 놀랐어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전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연기하고 노래하는 일을 너무 좋아하는데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매 순간 감사해요. 한 번도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매번 주어진 작업을 즐겁게 해왔고, 그때마다 어떤 괴로움보다 기쁨이 더 컸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결같은 모습인데 자기 관리 노하우가 궁금해요.
모르겠어요. 어딜 가나 제가 맏언니고, 가요계에서는 특히 그렇죠. 예전에 활동했던 영상들 보면 참 어리고 예쁘더라고요. 그때는 항상 스스로 부족하게 느껴지고, 나이 들어 보이고, 나이의 끝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어요. 20대 댄스 가수에서 30대로 넘어갈 때는 “이제 발라드 가수를 해야해”라는 말에 위기를 느꼈고, 연기할 때도 ‘배우로서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죠. 그런 상황을 이제 후배들은 안 겪었으면 좋겠어요. 여자 후배들이 나이에 갇혀서 꿈을 펼치지 못하는 일은 더 이상 생기지 않길 바라요.
여유로워질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해요.
예전에는 정말 ‘이 일이 끝나면 어떻게 살지’ 걱정하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못살게 굴었어요. 지금은 현재의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좋아서 하루하루를 즐기게 됐어요. ‘나이는 의미 없이 먹는 것일 뿐 하루하루를 즐겨야지’라고 다짐하고, 시간을 잘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캐스팅이나 기회도 즐기면서 기다리게 됐어요.
후배들의 롤 모델이기도 한데, 그런 데서 오는 책임감도 클 듯합니다.
저 역시 꿈꾸며 나아가고 있어요. 김희애 선배 등 여러 선배님들이 앞서 가주시면 감사하고, 또래 여배우들이 꾸준히 활동하는 걸 보면 너무 힘이 돼요. 그런 부분에서 저 역시 세상의 편견을 깨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생애 첫 액션 연기에 도전한 것처럼, 앞으로 배우로서 어떤 도전을 하고 싶은가요.
오래오래 배우로 사는 게 목표예요. 비슷한 나이에도 계속 활동하는 할리우드나 프랑스 배우들을 보면 자극이 돼요. 윤여정 선배님처럼 나이 들어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고요. 저도 지금 제 나이는 처음 사는 거니까 계속 도전해보는 거죠.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변할 수 있는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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