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클로젯’이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를 뚫고,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2월 5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같은 날 개봉한 DC 영화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까지 보기 좋게 따돌린 것이다. 1등 공신은 뭐니 뭐니 해도 김남길(40)과 하정우, 투톱 배우의 열연이다. 김남길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잃은 상원(하정우)을 찾아온 의문의 남자 경훈 역을 맡았다.
경훈은 평소 죽어도 ‘무서운 영화’는 보지 못한다던 김남길이 굳이 미스터리(라지만 공포에 가까운) 영화의 출연 섭외에 기꺼이 응한 첫 번째 이유다. 적당히 깐족대고 적당히 진지한, 하지만 직업의식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한 경훈은 직업만 바뀌었을 뿐 굳이 남의 옷을 빌려 입지 않아도 충분히 표현 가능할 만큼 배우 김남길을 쏙 빼닮았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순간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는 유머 코드와 훅 빠져들 만큼 진지한 연기에 대한 생각들이 줄타기를 하듯 묘하게 사람을 홀렸다. 도대체 저 머릿속에 뭐가 들었을까, 배우 김남길 말고 인간 김남길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남자다.
그는 “촬영 내내 억지로 연기하지 않아도 될 만큼 편했다”고 했다. “공포물이라는데 코미디 영화를 찍는 느낌이 들 만큼 재미있고 유쾌했다”고도 했다. 그만큼 하정우와 호흡이 척척 잘 맞았다는 뜻이다. 하정우와는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일부러 오버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의 뻔한 연기는 하지 말자고 사전에 입을 맞췄다. 공포스러운 장면도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진짜 이야기인 ‘드라마’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감정의 완급 조절, 이것이야말로 두 배우가 특출 나게 잘하는 것 아니던가.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링할 때까지만 해도 ‘이게 공포 영화 맞나’ 싶더라고요. 극장에서 완성된 작품을 보고서야 음악과 분위기, 특수 효과 등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영화적 장치들이 가미되었다는 걸 알았죠. 영화음악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조금 아쉬운 점도 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오버해서 연기해도 괜찮았겠다 싶더라고요. 현장에선 너무 코믹하게 흘러버릴까 봐 감정 조절하는 데 신경을 썼거든요.”
서글서글 능청스러운 하정우의 연기 스타일은 김남길과 기대 이상의 ‘케미’를 이뤘다. 오히려 너무 잘 맞아서 오버하거나 진지한 장면을 가볍게 치고 넘어가버리지 않을까, 수위 조절을 해야 하는 것이 두 사람에게 남겨진 숙제였다.
아쉬움은 미래의 작품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언젠가는 하정우와 끝장나게 웃긴, 둘의 실제 모습을 10000% 보여줄 수 있는 코믹 영화 같은 것도 찍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번 영화에서 장르 특성상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던 둘의 케미를 팡팡 터트려볼 수 있으려나.
‘클로젯’은 그가 출연한 여러 작품 중에서도 특히 부상이 적었던, ‘안전한’ 작품이기도 했다. 평소 ‘액션 하나하나에도 인물의 감정이 실린다’는 나름의 연기 철학과 명분 때문에 위험한 액션 신까지도 가급적 직접 소화해내려 욕심을 부린 탓에 그는 유독 부상이 많은 배우로 유명하다.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아는 것)도 중요한데 저는 연기는 부족하고 열정은 과하다 보니 몸 연기라도 잘해야지,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액션 배우들 대부분이 대역 전문가들이라 액션은 저보다 훨씬 잘하지만 연기하는 배우가 갖고 있는 감정까지 이어가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진짜 잘하는 건 다치지 않고 몸을 잘 사리는 거더라고요.”
물론 치고받고 싸우는 액션 신이 없었다고 마냥 쉽고 편했던 것만은 아니다. 북을 치거나 부적을 태우는 등 퇴마를 위해 소품을 사용하는 건 단순히 ‘친다’ ‘태운다’의 의미가 아닌 그 하나하나에 담긴 정서까지 표현해야 비로소 연기의 완결을 이루는 것이기에 액션 연기와는 또 다른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액션 신 하나, 손에 쥔 소품 하나하나에까지 감정과 디테일을 담으려는 고단한 노력은 그의 연기가 온전히 땅에 발을 디디고 설 수 있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그저 껄렁껄렁 사기꾼 기질 농후해 보이는 평소 모습과는 달리 철저하게 검증된 과학적 지식과 첨단 장비를 동원해 퇴마 의식을 펼치는 신식 퇴마사 경훈처럼, 그의 연기 또한 우리가 단편적으로 만나왔던 유쾌하고 솔직한 본모습 뒤에 숨겨졌던 수많은 노력과 열정의 결과물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때로 우리가 상상하던 배우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는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해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했어요.”
이번 영화의 퇴마 신은 배우 김남길이 몇 달간이나 고심한 끝에 완성한 ‘주문’을 통해 완결된다. 언뜻 ‘아무 말 대잔치’여도 상관없을 것 같은 그 언어들을 오롯이 퇴마사 경훈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동서양의 퇴마 의식을 망라해가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중간에 괜찮겠다 싶은 주문을 발견해 한 달간이나 연습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힌두교에서 나온 엄청나게 잔인한 주문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우리 영화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만두고는 부랴부랴 자료를 다시 뒤지기 시작했죠. 결과적으로 영화에 나온 주문은 한국의 토속신앙에 기반한, 토테미즘적인 주문들을 적절히 섞어놓은 거고요.”
김남길에게 연기란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사용하는 물건에 담긴 의미,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역사와 배경까지 주워 담는 일이다. 그렇게 감정이 스미지 않고서는 역시나 연기라는 건 남의 옷을 훔쳐 입은 듯 불편하고, 위험하다.
“거울 앞에서 한 번도 ‘난 역시 잘생겼어. 잘생겼군!’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보다 잘생긴 분들은 정말 많잖아요. (정)우성이 형 같은 사람은 남자인 제가 봐도 정말 부러운걸요. 근데 또 그 형은 본인이 잘생긴 걸 너무 잘 알아요. 그래서 더 멋있는 거 같아요. 형을 처음 뵀을 때 눈이 딱 마주쳤는데 형이 씩 웃으면서 그러는 거예요. ‘잘생겼지? 장난 아니지?’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더 부럽더라고요.”
어쨌거나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연기를 할 때마다 부딪히는 새로운 벽을 또 한 번 힘겹게 넘어섰다. 스스로 ‘연기가 부족하다’ ‘더 잘해야 한다’ 욕심을 부렸지만 그는 지난해 드라마 ‘열혈사제’로 SBS 연기대상 대상을 비롯해 서울드라마어워즈 한류드라마 남자연기상, 한국방송대상 연기자상, 아시아콘텐츠어워즈 남자배우상,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까지 상이란 상을 모조리 휩쓴 연기파 배우다.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것은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의 비담 역을 통해서지만 그 전에도 드라마 ‘학교1’ ‘굳세어라 금순아’ ‘굿바이 솔로’ ‘꽃피는 봄이 오면’을 비롯해 영화 ‘하류인생’ ‘내 청춘에게 고함’ ‘강철중:공공의 적 1-1’ ‘미인도’ 등에 크고 작은 역으로 출연해 차곡차곡 연기 경력을 쌓았다. 매력적인 보이스와 잘생긴 마스크, 탄탄한 연기력에 비해 오히려 빛을 늦게 본 케이스라고 평가하는 것이 맞겠다.
그 긴 시간 꽤 많은 작품에서 열연을 펼쳤지만 유독 상복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에 서운했을 법도 한데 그는 그저 “과분하다” 말했다.
“다들 그렇겠지만 특별히 어느 작품이라고 ‘기필코 더 잘되어야지’ 생각하고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늘 나름의 책임감과 철학을 갖고 연기하려 했고, 지난해의 성과는 아마도 그 시간 속에서 무언가가 쌓여 응집되어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예전엔 그도 멋있고 있어 보이는 것에 심취했었다. 작품을 고를 때면 작가주의적 성향을 눈여겨보기도 하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나 캐릭터에 잔뜩 몰입하기도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들의 강렬한 이미지에 반해 뒤를 좇으려 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연기가 무르익을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힘을 잔뜩 주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영화관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나 TV 앞에서 느긋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에게 ‘내 이야기’보다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한때 수식어처럼 따라붙었던 ‘옴 파탈’ ‘나쁜 남자’의 이미지를 조금은 내려놓고 때로는 편안한 동네 형, 또 언젠가는 동네 아저씨 같은 역할로 다가가고 싶다. 지금의 새로운 도전들은 그 경계를 잘 여미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영화 ‘클로젯’에서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그런 내면의 깊이다. 어떤 인물도 24시간 내내 아픔에만 몰입되거나 코믹한 모습만 보이며 살 수는 없다. 눈앞에서 어머니를 잃은 충격과 슬픔이 그가 연기한 경훈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바라던 성공을 거둔 듯하다. 경훈은 충분히 사기꾼 같으면서도 진중했고, 자기 일에 대단한 책임감과 프라이드가 있으면서도 웃겼다. 배우 김남길, 아니 남자 김남길이 그런 것처럼.
경훈은 평소 죽어도 ‘무서운 영화’는 보지 못한다던 김남길이 굳이 미스터리(라지만 공포에 가까운) 영화의 출연 섭외에 기꺼이 응한 첫 번째 이유다. 적당히 깐족대고 적당히 진지한, 하지만 직업의식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한 경훈은 직업만 바뀌었을 뿐 굳이 남의 옷을 빌려 입지 않아도 충분히 표현 가능할 만큼 배우 김남길을 쏙 빼닮았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순간순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는 유머 코드와 훅 빠져들 만큼 진지한 연기에 대한 생각들이 줄타기를 하듯 묘하게 사람을 홀렸다. 도대체 저 머릿속에 뭐가 들었을까, 배우 김남길 말고 인간 김남길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남자다.
자칫 코믹으로 흐를 뻔한 하정우와의 연기 호흡
김남길은 영화 ‘클로젯’에서 호흡을 맞춘 하정우와 다음에는 코믹 작품에서 만나고 싶다고.
“촬영 현장에서 모니터링할 때까지만 해도 ‘이게 공포 영화 맞나’ 싶더라고요. 극장에서 완성된 작품을 보고서야 음악과 분위기, 특수 효과 등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영화적 장치들이 가미되었다는 걸 알았죠. 영화음악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조금 아쉬운 점도 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오버해서 연기해도 괜찮았겠다 싶더라고요. 현장에선 너무 코믹하게 흘러버릴까 봐 감정 조절하는 데 신경을 썼거든요.”
서글서글 능청스러운 하정우의 연기 스타일은 김남길과 기대 이상의 ‘케미’를 이뤘다. 오히려 너무 잘 맞아서 오버하거나 진지한 장면을 가볍게 치고 넘어가버리지 않을까, 수위 조절을 해야 하는 것이 두 사람에게 남겨진 숙제였다.
아쉬움은 미래의 작품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언젠가는 하정우와 끝장나게 웃긴, 둘의 실제 모습을 10000% 보여줄 수 있는 코믹 영화 같은 것도 찍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번 영화에서 장르 특성상 미처 다 보여주지 못했던 둘의 케미를 팡팡 터트려볼 수 있으려나.
‘클로젯’은 그가 출연한 여러 작품 중에서도 특히 부상이 적었던, ‘안전한’ 작품이기도 했다. 평소 ‘액션 하나하나에도 인물의 감정이 실린다’는 나름의 연기 철학과 명분 때문에 위험한 액션 신까지도 가급적 직접 소화해내려 욕심을 부린 탓에 그는 유독 부상이 많은 배우로 유명하다.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질 줄 아는 것)도 중요한데 저는 연기는 부족하고 열정은 과하다 보니 몸 연기라도 잘해야지, 그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액션 배우들 대부분이 대역 전문가들이라 액션은 저보다 훨씬 잘하지만 연기하는 배우가 갖고 있는 감정까지 이어가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진짜 잘하는 건 다치지 않고 몸을 잘 사리는 거더라고요.”
물론 치고받고 싸우는 액션 신이 없었다고 마냥 쉽고 편했던 것만은 아니다. 북을 치거나 부적을 태우는 등 퇴마를 위해 소품을 사용하는 건 단순히 ‘친다’ ‘태운다’의 의미가 아닌 그 하나하나에 담긴 정서까지 표현해야 비로소 연기의 완결을 이루는 것이기에 액션 연기와는 또 다른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액션 신 하나, 손에 쥔 소품 하나하나에까지 감정과 디테일을 담으려는 고단한 노력은 그의 연기가 온전히 땅에 발을 디디고 설 수 있게 만드는 힘이기도 하다. 그저 껄렁껄렁 사기꾼 기질 농후해 보이는 평소 모습과는 달리 철저하게 검증된 과학적 지식과 첨단 장비를 동원해 퇴마 의식을 펼치는 신식 퇴마사 경훈처럼, 그의 연기 또한 우리가 단편적으로 만나왔던 유쾌하고 솔직한 본모습 뒤에 숨겨졌던 수많은 노력과 열정의 결과물로 완성된 것이다. 그러한 노력은 때로 우리가 상상하던 배우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는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해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듭했어요.”
이번 영화의 퇴마 신은 배우 김남길이 몇 달간이나 고심한 끝에 완성한 ‘주문’을 통해 완결된다. 언뜻 ‘아무 말 대잔치’여도 상관없을 것 같은 그 언어들을 오롯이 퇴마사 경훈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동서양의 퇴마 의식을 망라해가며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중간에 괜찮겠다 싶은 주문을 발견해 한 달간이나 연습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힌두교에서 나온 엄청나게 잔인한 주문이더라고요. 아무래도 우리 영화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만두고는 부랴부랴 자료를 다시 뒤지기 시작했죠. 결과적으로 영화에 나온 주문은 한국의 토속신앙에 기반한, 토테미즘적인 주문들을 적절히 섞어놓은 거고요.”
김남길에게 연기란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이 사용하는 물건에 담긴 의미, 그가 사용하는 언어의 역사와 배경까지 주워 담는 일이다. 그렇게 감정이 스미지 않고서는 역시나 연기라는 건 남의 옷을 훔쳐 입은 듯 불편하고, 위험하다.
‘멋있게’는 위험하다
같은 맥락에서, 위험한 건 또 있다. 카메라 앞에서 예쁘게, 멋있게 보이려고 드는 거다. 그에게 가장 멋있고 예쁜 연기자는 자기 캐릭터를 잘 표현하는 사람이다. 허세보다는 편안함과 자연스러움, 그에겐 늘 그런 것들에 대한 갈증이 있다. 그래서인지 자신을 향한 ‘잘생겼다’ ‘멋있다’는 칭찬은 여전히 어색하고, 그러면서도 연기 못한다는 얘기는 죽어도 듣기 싫다.“거울 앞에서 한 번도 ‘난 역시 잘생겼어. 잘생겼군!’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저보다 잘생긴 분들은 정말 많잖아요. (정)우성이 형 같은 사람은 남자인 제가 봐도 정말 부러운걸요. 근데 또 그 형은 본인이 잘생긴 걸 너무 잘 알아요. 그래서 더 멋있는 거 같아요. 형을 처음 뵀을 때 눈이 딱 마주쳤는데 형이 씩 웃으면서 그러는 거예요. ‘잘생겼지? 장난 아니지?’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더 부럽더라고요.”
어쨌거나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연기를 할 때마다 부딪히는 새로운 벽을 또 한 번 힘겹게 넘어섰다. 스스로 ‘연기가 부족하다’ ‘더 잘해야 한다’ 욕심을 부렸지만 그는 지난해 드라마 ‘열혈사제’로 SBS 연기대상 대상을 비롯해 서울드라마어워즈 한류드라마 남자연기상, 한국방송대상 연기자상, 아시아콘텐츠어워즈 남자배우상,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까지 상이란 상을 모조리 휩쓴 연기파 배우다.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것은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의 비담 역을 통해서지만 그 전에도 드라마 ‘학교1’ ‘굳세어라 금순아’ ‘굿바이 솔로’ ‘꽃피는 봄이 오면’을 비롯해 영화 ‘하류인생’ ‘내 청춘에게 고함’ ‘강철중:공공의 적 1-1’ ‘미인도’ 등에 크고 작은 역으로 출연해 차곡차곡 연기 경력을 쌓았다. 매력적인 보이스와 잘생긴 마스크, 탄탄한 연기력에 비해 오히려 빛을 늦게 본 케이스라고 평가하는 것이 맞겠다.
그 긴 시간 꽤 많은 작품에서 열연을 펼쳤지만 유독 상복과는 인연이 없었던 것에 서운했을 법도 한데 그는 그저 “과분하다” 말했다.
“다들 그렇겠지만 특별히 어느 작품이라고 ‘기필코 더 잘되어야지’ 생각하고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늘 나름의 책임감과 철학을 갖고 연기하려 했고, 지난해의 성과는 아마도 그 시간 속에서 무언가가 쌓여 응집되어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예전엔 그도 멋있고 있어 보이는 것에 심취했었다. 작품을 고를 때면 작가주의적 성향을 눈여겨보기도 하고, 영화가 주는 메시지나 캐릭터에 잔뜩 몰입하기도 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들의 강렬한 이미지에 반해 뒤를 좇으려 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연기가 무르익을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힘을 잔뜩 주지 않아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영화관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영화를 보는 관객이나 TV 앞에서 느긋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에게 ‘내 이야기’보다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한때 수식어처럼 따라붙었던 ‘옴 파탈’ ‘나쁜 남자’의 이미지를 조금은 내려놓고 때로는 편안한 동네 형, 또 언젠가는 동네 아저씨 같은 역할로 다가가고 싶다. 지금의 새로운 도전들은 그 경계를 잘 여미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나쁜 남자보다는 편안한 남자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늘 제가 가진 장점이 무얼까에 대해 생각해왔어요. 스타성을 갖고 있는 배우들도 있지만 저는 보여줄 게 연기밖에 없으니까 그런 것에 대한 부담이 컸었죠. 이번에 잘해내야 다음번에 또 기회가 오니까 지난번보단 이번에 더 잘하고 싶고, 이번보단 다음에 더 잘하고 싶고 그랬죠.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스스로의 연기에 대한 책임감 같은 걸로 바뀐 듯합니다. 그래서 저한텐 흥행 성적보다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연기하는 게 중요해요. 그게 바로 ‘성공’이에요. 그래도 ‘똑같다’는 말은 진짜 듣기 싫어요. 물론 한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스펙트럼에 분명 한계가 있겠지만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비슷한 것 같아도 세월에 따라 깊이가 달라지는 거라고요.”영화 ‘클로젯’에서 그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도 그런 내면의 깊이다. 어떤 인물도 24시간 내내 아픔에만 몰입되거나 코믹한 모습만 보이며 살 수는 없다. 눈앞에서 어머니를 잃은 충격과 슬픔이 그가 연기한 경훈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바라던 성공을 거둔 듯하다. 경훈은 충분히 사기꾼 같으면서도 진중했고, 자기 일에 대단한 책임감과 프라이드가 있으면서도 웃겼다. 배우 김남길, 아니 남자 김남길이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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