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KBS 2TV 예능 프로그램 ‘그녀들의 여유만만’으로 방송에 복귀한 김보민(40) 아나운서.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와 한결 여유로워진 그녀를 보며 7년 전 인터뷰 때가 떠올랐다. 당시 김 아나운서의 남편 김남일(41) 선수는 러시아 구단에서 활약 중이었고, 그녀는 방송 진행과 아들 서우(10)의 육아를 맡아 24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가며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내조도 못 하고 있다”며 남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다. 담담히 웃어 보였지만 남편과 아이에게 적지 않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듯했다.
그러던 2015년 그녀는 남편 김남일 선수의 일본 구단(교토 상가) 이적을 계기로 휴직을 신청하고 가족과 함께 일본행을 택했다. “아이가 아빠를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이 더 가기 전에 가족이 같이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당초 1년 휴직을 계획했지만 그곳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면서 그녀도 공부 욕심이 생겨 연구휴직 2년을 추가로 신청해 일본 아시야대학원 교육학연구과(정치미디어학연구) 석사과정까지 졸업했다.
다시 일하는 기분이 어떠세요.
3월 초에 복직했는데, 일을 다시 해서 힘들지만 좋은 점도 많아요. 아이가 제법 커서 이제 여유가 생겼거든요. 아이가 학교에서 늦게 오니까 손 갈 일이 그다지 없어요. 공부도 별로 시키지 않고 많이 놀리거든요. 요즘에는 남편이 저보다 아이를 더 많이 봐줘요.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던 남편이 지금은 거취를 결정하려고 준비 중이라 집에 있을 때가 많아요.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웃음).
일본에서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이와 더욱 돈독해졌을 것 같아요.
맞아요. 남편이 일본 축구팀에서 선수로 뛰었던 1년간은 가족이 꼭 붙어 있었죠. 셋이 세트로 움직이면서 같이 밥 먹고 장 보는 일상을 결혼 후 처음 경험했어요. 이후 남편이 지도자 과정을 밟느라 외국으로 연수를 다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한국에 있을 때에 비해 함께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어요. 결혼하고 나서 가장 행복한 날들을 보냈던 것 같아요.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듯하지만 들여다보면 다른 부분이 많잖아요. 적응하는 데 어렵지는 않았나요.
일본에는 온돌 문화가 없어서 추웠어요. 또 층간 소음을 엄격하게 규제해서 제가 사는 곳에서는 청소기는 몇 시까지 돌려라, TV를 크게 틀지 말라는 등 세세하게 규칙을 정해놓고 있었어요. 출퇴근길에 이웃과 말하지 말라는 지침을 보곤 좀 놀라기도 했고요. 그렇게 일상적인 부분까지 하나하나 규칙을 정해서 지키고 살아야 한다는 게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배운 점도 많아요. 이를테면 일본인들의 질서 의식 같은 거요. 일본에선 운전할 때 깜빡이를 켜면 다른 운전자들이 양보를 잘해주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살림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심플해졌어요. 일본으로 가면서 살림살이를 많이 줄였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올 때 그나마 있던 짐들도 다 기부하거나 정리했어요.
결혼 후 집안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 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휴직 전에도 친정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주긴 하셨지만 요리와 청소 같은 기본적인 집안일은 제가 했어요. 남편이나 저나 가족의 공간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걸 불편해하거든요. 남에게 요구 사항을 일일이 말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아이가 집밥을 좋아해서 외식보단 집에서 차려 먹는 편인데, 요리도 자주 하다 보니 늘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그녀들의 여유만만’ 촬영장에서 배운 레시피대로 간장게장을 만들어 식탁에 올렸더니 남편이 “좋은 프로그램을 맡았다”며 좋아했어요.
운동선수 아내로서 남편을 내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럼요. 음식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경기 전후론 남편이 예민해지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죠. 사실 저도 생방송 전날에는 잠을 잘 못 잘 정도로 예민한 성격이거든요. 그런데도 남편이 마음 쓸까 봐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동료 아나운서가 “김보민 아나운서의 말을 들어보면 기승전 김남일”이라고 한 적이 있어요. 한 방송에서 김보민 아나운서 본인이 속옷 80세트를 갖고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결혼 11년째인데, 여전히 남편이 그렇게 좋은가요.
속옷 이야기는 겉옷 못지않게 속옷을 잘 갖춰 입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말했던 거예요. 제가 속옷이 좀 많긴 해요(웃음). 취미로 속옷을 모으고, 이런 취미를 거리낌 없이 말하는 엉뚱한 저를 남편이 재미있어하고 좋아해줘서 고맙죠. 저는 집에서도 되도록 예쁜 옷을 입으려고 해요. 남편에게 늘 예쁜 여자이고 싶거든요.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편에게 사랑받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여요.
사랑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계속 부채질하는 거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정말 잘 보여야 할 사람은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결혼 후 악플에 시달린 적이 있는데, 남편이 “당신은 좋은 사람이야. 나는 너 없이 살 수 없어”라고 위로하고 격려해준 덕분에 잘 견딜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는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특히 더 애틋한 마음이 있어요.
서우는 엄마가 일을 다시 시작한 것에 대해 서운해하지는 않나요.
아들이 “엄마와 같이 있고 싶어”라고 말하면 일을 그만둘 것 같은데, 제가 방송에 나오는 걸 너무 좋아해요. 얼마 전 퀴즈 프로그램 ‘1대 100’에 출연해서 가족사진을 공개했는데, 아이가 방송에 우리 가족사진이 나왔다며 엄청 좋아했어요. 그날 ‘1대 100’에 저 외에도 대세 크리에이터인 대도서관이 출연했는데,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저와 남편 이름이 대도서관보다 높게 나오니까 아이가 놀라더라고요.
그간 진행한 방송 중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나요.
‘도전! 골든벨’(이하 ‘골든벨’)요.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친구들을 사회 곳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저마다 ‘골든벨’의 기억을 소중하게 갖고 살아가는 걸 보면서 보람을 느껴요. 한번은 문제아로 찍혀 대학 진학도 포기한 학생이 ‘골든벨’ 녹화 현장에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느낀 바가 있어 대학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얼마 전엔 KBS 아나운서들이 전국의 학교를 방문해 우리말 사용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청소년 언어 문화 개선 프로젝트 ‘찾아가는 바른 우리말 선생님’ 강의차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 다녀왔는데, 아이들이 “김보민 아나운서 선생님 말대로 앞으로는 바른 말을 쓰겠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서우 또래 아이들이라 그런지 더 귀엽고 기특하게 느껴졌고, 제 일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어요.
엄마가 되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도 바뀐 듯해요.
예전에는 방송을 위한 방송을 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돼!’ 하고 선을 긋기도 했죠. 그런데 이제는 정말 다른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고 내 마음속의 말을 하고 싶기도 해요. 프로그램을 많이 하기보다는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고 싶고, 이왕이면 제가 진행하는 방송을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요.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메이크업 김은진(김청경 헤어 페이스) 헤어 이선(김청경 헤어 페이스)
그러던 2015년 그녀는 남편 김남일 선수의 일본 구단(교토 상가) 이적을 계기로 휴직을 신청하고 가족과 함께 일본행을 택했다. “아이가 아빠를 어려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간이 더 가기 전에 가족이 같이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당초 1년 휴직을 계획했지만 그곳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면서 그녀도 공부 욕심이 생겨 연구휴직 2년을 추가로 신청해 일본 아시야대학원 교육학연구과(정치미디어학연구) 석사과정까지 졸업했다.
다시 일하는 기분이 어떠세요.
3월 초에 복직했는데, 일을 다시 해서 힘들지만 좋은 점도 많아요. 아이가 제법 커서 이제 여유가 생겼거든요. 아이가 학교에서 늦게 오니까 손 갈 일이 그다지 없어요. 공부도 별로 시키지 않고 많이 놀리거든요. 요즘에는 남편이 저보다 아이를 더 많이 봐줘요. 한국 축구 국가 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던 남편이 지금은 거취를 결정하려고 준비 중이라 집에 있을 때가 많아요.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웃음).
일본에서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이와 더욱 돈독해졌을 것 같아요.
맞아요. 남편이 일본 축구팀에서 선수로 뛰었던 1년간은 가족이 꼭 붙어 있었죠. 셋이 세트로 움직이면서 같이 밥 먹고 장 보는 일상을 결혼 후 처음 경험했어요. 이후 남편이 지도자 과정을 밟느라 외국으로 연수를 다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한국에 있을 때에 비해 함께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어요. 결혼하고 나서 가장 행복한 날들을 보냈던 것 같아요.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듯하지만 들여다보면 다른 부분이 많잖아요. 적응하는 데 어렵지는 않았나요.
일본에는 온돌 문화가 없어서 추웠어요. 또 층간 소음을 엄격하게 규제해서 제가 사는 곳에서는 청소기는 몇 시까지 돌려라, TV를 크게 틀지 말라는 등 세세하게 규칙을 정해놓고 있었어요. 출퇴근길에 이웃과 말하지 말라는 지침을 보곤 좀 놀라기도 했고요. 그렇게 일상적인 부분까지 하나하나 규칙을 정해서 지키고 살아야 한다는 게 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배운 점도 많아요. 이를테면 일본인들의 질서 의식 같은 거요. 일본에선 운전할 때 깜빡이를 켜면 다른 운전자들이 양보를 잘해주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살림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심플해졌어요. 일본으로 가면서 살림살이를 많이 줄였는데 크게 불편하지 않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올 때 그나마 있던 짐들도 다 기부하거나 정리했어요.
결혼 후 집안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긴 적이 없다고 들었어요.
휴직 전에도 친정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주긴 하셨지만 요리와 청소 같은 기본적인 집안일은 제가 했어요. 남편이나 저나 가족의 공간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걸 불편해하거든요. 남에게 요구 사항을 일일이 말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아이가 집밥을 좋아해서 외식보단 집에서 차려 먹는 편인데, 요리도 자주 하다 보니 늘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그녀들의 여유만만’ 촬영장에서 배운 레시피대로 간장게장을 만들어 식탁에 올렸더니 남편이 “좋은 프로그램을 맡았다”며 좋아했어요.
운동선수 아내로서 남편을 내조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럼요. 음식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경기 전후론 남편이 예민해지기 때문에 늘 조심스럽죠. 사실 저도 생방송 전날에는 잠을 잘 못 잘 정도로 예민한 성격이거든요. 그런데도 남편이 마음 쓸까 봐 그런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동료 아나운서가 “김보민 아나운서의 말을 들어보면 기승전 김남일”이라고 한 적이 있어요. 한 방송에서 김보민 아나운서 본인이 속옷 80세트를 갖고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결혼 11년째인데, 여전히 남편이 그렇게 좋은가요.
속옷 이야기는 겉옷 못지않게 속옷을 잘 갖춰 입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에서 말했던 거예요. 제가 속옷이 좀 많긴 해요(웃음). 취미로 속옷을 모으고, 이런 취미를 거리낌 없이 말하는 엉뚱한 저를 남편이 재미있어하고 좋아해줘서 고맙죠. 저는 집에서도 되도록 예쁜 옷을 입으려고 해요. 남편에게 늘 예쁜 여자이고 싶거든요.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편에게 사랑받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요.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여요.
사랑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계속 부채질하는 거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정말 잘 보여야 할 사람은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결혼 후 악플에 시달린 적이 있는데, 남편이 “당신은 좋은 사람이야. 나는 너 없이 살 수 없어”라고 위로하고 격려해준 덕분에 잘 견딜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는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특히 더 애틋한 마음이 있어요.
서우는 엄마가 일을 다시 시작한 것에 대해 서운해하지는 않나요.
아들이 “엄마와 같이 있고 싶어”라고 말하면 일을 그만둘 것 같은데, 제가 방송에 나오는 걸 너무 좋아해요. 얼마 전 퀴즈 프로그램 ‘1대 100’에 출연해서 가족사진을 공개했는데, 아이가 방송에 우리 가족사진이 나왔다며 엄청 좋아했어요. 그날 ‘1대 100’에 저 외에도 대세 크리에이터인 대도서관이 출연했는데,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저와 남편 이름이 대도서관보다 높게 나오니까 아이가 놀라더라고요.
그간 진행한 방송 중 특별히 애착을 갖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나요.
‘도전! 골든벨’(이하 ‘골든벨’)요.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친구들을 사회 곳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저마다 ‘골든벨’의 기억을 소중하게 갖고 살아가는 걸 보면서 보람을 느껴요. 한번은 문제아로 찍혀 대학 진학도 포기한 학생이 ‘골든벨’ 녹화 현장에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고 느낀 바가 있어 대학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얼마 전엔 KBS 아나운서들이 전국의 학교를 방문해 우리말 사용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청소년 언어 문화 개선 프로젝트 ‘찾아가는 바른 우리말 선생님’ 강의차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 다녀왔는데, 아이들이 “김보민 아나운서 선생님 말대로 앞으로는 바른 말을 쓰겠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서우 또래 아이들이라 그런지 더 귀엽고 기특하게 느껴졌고, 제 일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어요.
엄마가 되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도 바뀐 듯해요.
예전에는 방송을 위한 방송을 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방송에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돼!’ 하고 선을 긋기도 했죠. 그런데 이제는 정말 다른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고 내 마음속의 말을 하고 싶기도 해요. 프로그램을 많이 하기보다는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고 싶고, 이왕이면 제가 진행하는 방송을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요.
사진 지호영 기자 디자인 김영화
메이크업 김은진(김청경 헤어 페이스) 헤어 이선(김청경 헤어 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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