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전지현(34)은 이제 대중이 미처 상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이끄는 스타가 됐다. 그녀를 바라보는 대중의 기대치가 날로 높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매번 ‘그 이상’을 해내는 영리한 배우도 됐다. 이러한 평가가 가능한 건, 2012년 결혼 후 그녀가 출연한 영화 ‘도둑들’과 ‘베를린’,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까지 예상을 뛰어넘는 성공을 거듭해서다.
올해도 어김이 없다. 전지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제작 케이퍼필름)은 8월 15일 누적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했다. 7월 22일 개봉한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거둔 성과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목숨 걸고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군의 삶을 처절하게 그려낸 이 영화가 마침 광복 70주년을 맞는 날, 대단한 흥행 기록을 세운 점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엔 의미가 크다.
늘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다
‘암살’ 흥행의 일등공신으로 전지현을 빼놓을 수 없다. 엄혹했던 1930년대, 무장투쟁에 나선 여성 저격수의 모습을 단호하면서도 때론 처연하게 그려낼 수 있는 여배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전지현은 더욱 돋보인다. ‘암살’의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그녀는 “겁 없이 달려들었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제가 좋아하는 작품을 선택해요. 작품이 잘되지 않던 20대에도 언제나 자신 있게, 하고 싶은 걸 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도드라진 성과가 나오는 건 아마도 저와 대중이 원하는 지점이 딱 맞아떨어져서인 것 같아요. 눈높이가 맞았다고 해야 하나. 지금 맞춰진 이 눈높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제가 좋아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후회가 없죠(웃음).”
영화나 드라마, CF에서 마주치는 전지현은 쉽게 다가서기 어려울 것 같은 ‘아우라’를 풍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인색하지 않고 거침없이 자기 비하도 한다. 그래서 친근하다. 흥행에 실패한 과거를 되짚으려 하지 않는 대다수의 배우와 달리 그녀는 스스럼이 없다. “내가 잘되지 않으려고 선택한 작품들이었겠느냐”고 되묻는 식이다.
특히 자신을 드러낼 때는 어떤 방식으로든 꾸미려고 애쓰는 게 여배우들의 일반적인 습성이지만, 전지현은 정확히 그 반대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수식 없이 답한다. 어쩌면 ‘당차다’는 설명이 가장 어울리는 배우인지도 모르겠다. 전지현은 제작비 1백80억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암살’에, ‘도둑들’로 이미 한 번 흥행 성공을 함께했던 최동훈 감독과 다시 손잡고 도전한 이유를 두고도 여러 의미를 부여하는 대신 “누군들 욕심이 안 나겠느냐”고 ‘쿨’하게 답했다.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역할도 멋지잖아요. 주인공이고, 또 연출자는 최동훈 감독님이에요. 욕심이 안 날 수 있겠어요? 욕심이 났죠. 그런데 막상 독립군 저격수 역할을 연기하다 보니 초반에는 도무지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극에서 보여줘야 할 수많은 감정을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1930년대를 겪지 않은 저로서는 그 시대를 산 사람의 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없었어요.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독립군…,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언제나 프로다울 것 같은 그녀이지만 최근에는 “내 자신이 간혹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있다”고도 털어놓았다. 화려한 패션 화보의 주인공, 분야를 넘나드는 여러 브랜드 광고의 모델로 활약하는 그녀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운 뜻밖의 발언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제가 가진 것들을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포즈를 취하면서도 ‘좀 부끄럽다’ 싶은 때가 있죠. 그런 감정을 느낄 때면 스스로 놀라요. 벌써 연기자로 살아온 시간이 10년을 훌쩍 넘겼잖아요. 이제 와 부끄럽다고 느끼는 건, 사치가 아닐까 싶어요. 제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주어진 일을 당연하게 잘해내야 할 때니까요.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더 거침없이 하려고 해요.”
임신 숨기고 영화 홍보 일정 소화
전지현은 “근심 걱정이 없어야 일이 잘 풀리는 편”이라고 했다.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하는 일마다 성공했으니 결혼생활의 안정감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도운 셈이다. 전지현은 2012년 4월 동갑내기 친구인 최준혁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최씨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외손자이자 유명 디자이너 이정우의 둘째 아들로, 외국계 은행에 다니고 있다.
결혼 직후 개봉한 ‘도둑들’은 1천2백90만 관객을 모으며 그녀를 흥행 배우로 도약하게 만들었다. 2013년 출연한 영화 ‘베를린’ 역시 7백60만 관객을 극장에 불러들여 흥행에 성공한 것은 물론 전지현에게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호평을 안겼다. 2013년 말 방영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성공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드라마는 그녀를 또다시 톱스타로 자리매김하게 하고, 중국에서 주춤했던 한류 열풍마저 부활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최근 전지현을 두고 ‘결혼하길 가장 잘한 스타’라는 평가가 이어지는 이유다.
“결혼과 동시에 근심 걱정이 없어졌느냐”고 묻자 전지현은 큰 소리로 웃더니 “그런 뜻으로도 연결되긴 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 일할 때도 정신없이 바쁘지만 일이 없을 때 신기하게도 더 바빠요. 하하하. 챙길 것들이 많아서 그렇죠. 결혼하고 나니까 확실히 안정돼요.”
여행과 운동은 이들 부부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공동의 취미이자 관심사다. 남편 최씨가 ‘주 5일 근무’를 하는 회사원이기에 두 사람은 늘 최씨의 휴가 기간에 맞춰 동반 여행 계획을 잡는다. 지난해에는 주말과 공휴일이 연결되면서 뜻밖의 ‘황금연휴’를 맞아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축구를 좋아하는 남편과 프리메라리가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또 얼마 전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한적한 공원에서 두 사람이 ‘셀카봉’을 들고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 모습이 팬들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전지현은 최근 임신 소식을 알려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이전까지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조금도 표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임신 4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여배우들은 보통 임신 초기 일어날지 모르는 건강상의 문제를 우려해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그 사실을 감추는데, 전지현은 임신 10주 차에 사실을 고백했다.
고대하던 임신이고, 그래서 더 신중하고 싶어하던 그녀가 그 상황을 마음 놓고 즐길 수 없었던 건 영화 ‘암살’ 개봉이 임박해서였다. 임신 초기,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병원을 찾는 일이 생기자 주치의는 그녀에게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고 권고했다. 의사의 말을 무시하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예정된 공식 일정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암살’ 개봉 직전까지 70여 개 매체와의 인터뷰가 잡혀 있었고, 영화를 상영하는 각 지역 극장을 찾아 무대 인사도 해야 했다.
전지현의 측근들은 영화 홍보 일정을 최대한 줄이고 몸을 먼저 챙기자고 권유했다. 고민에 빠진 전지현은 영화 개봉을 앞둔 7월 초, 일부 제작진과 함께 ‘암살’의 기술시사회에 참석해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완성된 영화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자리인 기술시사회에 출연 배우로는 유일하게 참석한 것.
당시 시사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전지현은 영화에 누구보다 공감했고 상당한 자부심까지 얻었다. 최근 출연한 작품이 연달아 성공했지만 그동안 미처 털어내지 못했던 연기 갈증도 ‘암살’을 통해 말끔히 씻어낸 듯 보였다고 한다.
기술시사회 참석 직후 전지현은 주위의 만류에도 임신 사실을 숨기고 예정된 영화 홍보 일정을 소화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끝까지 걱정하는 측근에게는 “내게 ‘암살’은 아주 큰 의미”라며 “내가 직접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는 말로 설득했다. 그렇게 전지현은 ‘암살’ 개봉 전날까지 자신의 임신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자칫 개인적인 상황이 영화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암살’에 참여한 대다수의 제작진도 그 사실을 끝내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그녀는 치밀하게 비밀을 유지했다.
미국 시장을 향한 열망 식지 않아
전지현의 임신은 연예계를 넘어 광고계에서도 화제다. 명실상부한 국내 원 톱 CF 모델로 통하는 스타이기에, 임신이 모델 활동에 어떤 여파를 미칠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예상을 깨고, 그녀를 대하는 광고계의 움직임은 파격 그 자체다.
전지현은 현재 맡고 있는 여러 브랜드 광고 모델을 변함없이 이어간다. 화장품은 물론 구찌 등 해외 명품 브랜드, 맥주 광고까지 그대로 잇는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로서 그녀의 가치를 평가하는 광고업계의 뜨거운 시선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전지현을 모델로 기용한 브랜드 제품 가운데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맥주다. 전지현은 지난해 4월 롯데주류의 ‘클라우드’ 론칭과 동시에 모델로 발탁됐다. 남성 스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맥주 광고 모델을 여배우가 맡은 건 이례적이었지만 전지현은 기대 이상의 파급력을 발휘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올 초 1년 연장 계약까지 했다.
일부에서는 ‘임산부의 맥주 광고’를 놓고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전지현 측도 이런 우려를 의식해 광고 재계약 제안을 받았을 때 ‘임신 계획’을 먼저 알렸다. 하지만 재계약에 적극적으로 나선 건 오히려 광고주다. 그동안 광고 모델인 여성 스타에게 유독 엄격하게 적용됐던 이미지 관리와 사적인 영역 등 여러 제약이 전지현을 기점으로 확연히 개선되고 있는 점에서 연예계의 반응도 고무적이다.
뿐만 아니라 전지현은 화장품업계 1위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의 ‘헤라’와도 2017년까지 함께한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화장품 브랜드가 여성 모델을 대하는 ‘달라진’ 태도를 엿보게 한다. 이를 두고 광고계에서는 과거 외적인 아름다움에만 집착했던 일부 화장품 브랜드가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를 적극 흡수하면서 임신한 톱스타를 모델로 활용하는 과감한 행보를 택한 것으로 분석한다. ‘결혼’이나 ‘임신’ 등 개인적인 조건과 상황이 더 이상 여성 모델의 활동을 제약하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지현과 이들 브랜드가 상징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전지현이 만든 이 같은 ‘선례’는 향후 광고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광고 모델로 활약하는 미혼의 여성 톱스타가 여럿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전지현의 사례로 얻게 될 ‘이득’도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예비 엄마 배우’가 된 전지현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내년 출산 이후 더욱 활발한 연기 활동을 꿈꾸는 그녀의 계획 가운데 하나는 할리우드 진출. 앞서 2009년 프랑스와 홍콩 합작 영화 ‘블러드’와 중미 합작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 등으로 할리우드 진출을 모색해왔던 그녀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국내 활동에 주력했지만 여전히 ‘더 큰 시장’을 향한 관심과 열망은 식지 않았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켓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자로서 좋은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건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보다는 연기자가 어떤 시장을 갖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배우와 그를 필요로 하는 시장은 뗄 수 없는 관계죠. 그런 면에서 저는 할리우드 진출도 꿈꾸고 있어요.”
■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케이퍼필름 제공
■ 디자인 · 최진이 기자
올해도 어김이 없다. 전지현이 주연을 맡은 영화 ‘암살’(감독 최동훈·제작 케이퍼필름)은 8월 15일 누적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했다. 7월 22일 개봉한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거둔 성과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목숨 걸고 항일운동을 펼친 독립군의 삶을 처절하게 그려낸 이 영화가 마침 광복 70주년을 맞는 날, 대단한 흥행 기록을 세운 점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엔 의미가 크다.
늘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다
‘암살’ 흥행의 일등공신으로 전지현을 빼놓을 수 없다. 엄혹했던 1930년대, 무장투쟁에 나선 여성 저격수의 모습을 단호하면서도 때론 처연하게 그려낼 수 있는 여배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전지현은 더욱 돋보인다. ‘암살’의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그녀는 “겁 없이 달려들었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제가 좋아하는 작품을 선택해요. 작품이 잘되지 않던 20대에도 언제나 자신 있게, 하고 싶은 걸 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도드라진 성과가 나오는 건 아마도 저와 대중이 원하는 지점이 딱 맞아떨어져서인 것 같아요. 눈높이가 맞았다고 해야 하나. 지금 맞춰진 이 눈높이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제가 좋아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후회가 없죠(웃음).”
영화나 드라마, CF에서 마주치는 전지현은 쉽게 다가서기 어려울 것 같은 ‘아우라’를 풍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인색하지 않고 거침없이 자기 비하도 한다. 그래서 친근하다. 흥행에 실패한 과거를 되짚으려 하지 않는 대다수의 배우와 달리 그녀는 스스럼이 없다. “내가 잘되지 않으려고 선택한 작품들이었겠느냐”고 되묻는 식이다.
특히 자신을 드러낼 때는 어떤 방식으로든 꾸미려고 애쓰는 게 여배우들의 일반적인 습성이지만, 전지현은 정확히 그 반대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수식 없이 답한다. 어쩌면 ‘당차다’는 설명이 가장 어울리는 배우인지도 모르겠다. 전지현은 제작비 1백80억원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암살’에, ‘도둑들’로 이미 한 번 흥행 성공을 함께했던 최동훈 감독과 다시 손잡고 도전한 이유를 두고도 여러 의미를 부여하는 대신 “누군들 욕심이 안 나겠느냐”고 ‘쿨’하게 답했다.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역할도 멋지잖아요. 주인공이고, 또 연출자는 최동훈 감독님이에요. 욕심이 안 날 수 있겠어요? 욕심이 났죠. 그런데 막상 독립군 저격수 역할을 연기하다 보니 초반에는 도무지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극에서 보여줘야 할 수많은 감정을 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1930년대를 겪지 않은 저로서는 그 시대를 산 사람의 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없었어요.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독립군…,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언제나 프로다울 것 같은 그녀이지만 최근에는 “내 자신이 간혹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있다”고도 털어놓았다. 화려한 패션 화보의 주인공, 분야를 넘나드는 여러 브랜드 광고의 모델로 활약하는 그녀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운 뜻밖의 발언이었다.
“카메라 앞에서 제가 가진 것들을 표현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포즈를 취하면서도 ‘좀 부끄럽다’ 싶은 때가 있죠. 그런 감정을 느낄 때면 스스로 놀라요. 벌써 연기자로 살아온 시간이 10년을 훌쩍 넘겼잖아요. 이제 와 부끄럽다고 느끼는 건, 사치가 아닐까 싶어요. 제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주어진 일을 당연하게 잘해내야 할 때니까요. 그래서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더 거침없이 하려고 해요.”
임신 숨기고 영화 홍보 일정 소화
전지현은 “근심 걱정이 없어야 일이 잘 풀리는 편”이라고 했다.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그녀는 결혼과 동시에 하는 일마다 성공했으니 결혼생활의 안정감이 작품에 몰입할 수 있게 도운 셈이다. 전지현은 2012년 4월 동갑내기 친구인 최준혁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최씨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의 외손자이자 유명 디자이너 이정우의 둘째 아들로, 외국계 은행에 다니고 있다.
결혼 직후 개봉한 ‘도둑들’은 1천2백90만 관객을 모으며 그녀를 흥행 배우로 도약하게 만들었다. 2013년 출연한 영화 ‘베를린’ 역시 7백60만 관객을 극장에 불러들여 흥행에 성공한 것은 물론 전지현에게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호평을 안겼다. 2013년 말 방영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성공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드라마는 그녀를 또다시 톱스타로 자리매김하게 하고, 중국에서 주춤했던 한류 열풍마저 부활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최근 전지현을 두고 ‘결혼하길 가장 잘한 스타’라는 평가가 이어지는 이유다.
“결혼과 동시에 근심 걱정이 없어졌느냐”고 묻자 전지현은 큰 소리로 웃더니 “그런 뜻으로도 연결되긴 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 일할 때도 정신없이 바쁘지만 일이 없을 때 신기하게도 더 바빠요. 하하하. 챙길 것들이 많아서 그렇죠. 결혼하고 나니까 확실히 안정돼요.”
여행과 운동은 이들 부부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공동의 취미이자 관심사다. 남편 최씨가 ‘주 5일 근무’를 하는 회사원이기에 두 사람은 늘 최씨의 휴가 기간에 맞춰 동반 여행 계획을 잡는다. 지난해에는 주말과 공휴일이 연결되면서 뜻밖의 ‘황금연휴’를 맞아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축구를 좋아하는 남편과 프리메라리가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또 얼마 전에는 이탈리아 로마의 한적한 공원에서 두 사람이 ‘셀카봉’을 들고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 모습이 팬들에 의해 공개되기도 했다.
전지현은 최근 임신 소식을 알려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이전까지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조금도 표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임신 4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여배우들은 보통 임신 초기 일어날지 모르는 건강상의 문제를 우려해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그 사실을 감추는데, 전지현은 임신 10주 차에 사실을 고백했다.
고대하던 임신이고, 그래서 더 신중하고 싶어하던 그녀가 그 상황을 마음 놓고 즐길 수 없었던 건 영화 ‘암살’ 개봉이 임박해서였다. 임신 초기,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병원을 찾는 일이 생기자 주치의는 그녀에게 무조건 안정을 취하라고 권고했다. 의사의 말을 무시하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예정된 공식 일정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암살’ 개봉 직전까지 70여 개 매체와의 인터뷰가 잡혀 있었고, 영화를 상영하는 각 지역 극장을 찾아 무대 인사도 해야 했다.
전지현의 측근들은 영화 홍보 일정을 최대한 줄이고 몸을 먼저 챙기자고 권유했다. 고민에 빠진 전지현은 영화 개봉을 앞둔 7월 초, 일부 제작진과 함께 ‘암살’의 기술시사회에 참석해 영화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완성된 영화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자리인 기술시사회에 출연 배우로는 유일하게 참석한 것.
당시 시사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전지현은 영화에 누구보다 공감했고 상당한 자부심까지 얻었다. 최근 출연한 작품이 연달아 성공했지만 그동안 미처 털어내지 못했던 연기 갈증도 ‘암살’을 통해 말끔히 씻어낸 듯 보였다고 한다.
기술시사회 참석 직후 전지현은 주위의 만류에도 임신 사실을 숨기고 예정된 영화 홍보 일정을 소화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끝까지 걱정하는 측근에게는 “내게 ‘암살’은 아주 큰 의미”라며 “내가 직접 인터뷰를 통해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는 말로 설득했다. 그렇게 전지현은 ‘암살’ 개봉 전날까지 자신의 임신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자칫 개인적인 상황이 영화보다 더 주목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였다. ‘암살’에 참여한 대다수의 제작진도 그 사실을 끝내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그녀는 치밀하게 비밀을 유지했다.
미국 시장을 향한 열망 식지 않아
전지현의 임신은 연예계를 넘어 광고계에서도 화제다. 명실상부한 국내 원 톱 CF 모델로 통하는 스타이기에, 임신이 모델 활동에 어떤 여파를 미칠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예상을 깨고, 그녀를 대하는 광고계의 움직임은 파격 그 자체다.
전지현은 현재 맡고 있는 여러 브랜드 광고 모델을 변함없이 이어간다. 화장품은 물론 구찌 등 해외 명품 브랜드, 맥주 광고까지 그대로 잇는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로서 그녀의 가치를 평가하는 광고업계의 뜨거운 시선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전지현을 모델로 기용한 브랜드 제품 가운데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맥주다. 전지현은 지난해 4월 롯데주류의 ‘클라우드’ 론칭과 동시에 모델로 발탁됐다. 남성 스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맥주 광고 모델을 여배우가 맡은 건 이례적이었지만 전지현은 기대 이상의 파급력을 발휘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올 초 1년 연장 계약까지 했다.
일부에서는 ‘임산부의 맥주 광고’를 놓고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전지현 측도 이런 우려를 의식해 광고 재계약 제안을 받았을 때 ‘임신 계획’을 먼저 알렸다. 하지만 재계약에 적극적으로 나선 건 오히려 광고주다. 그동안 광고 모델인 여성 스타에게 유독 엄격하게 적용됐던 이미지 관리와 사적인 영역 등 여러 제약이 전지현을 기점으로 확연히 개선되고 있는 점에서 연예계의 반응도 고무적이다.
뿐만 아니라 전지현은 화장품업계 1위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의 ‘헤라’와도 2017년까지 함께한다. 여성성을 강조하는 화장품 브랜드가 여성 모델을 대하는 ‘달라진’ 태도를 엿보게 한다. 이를 두고 광고계에서는 과거 외적인 아름다움에만 집착했던 일부 화장품 브랜드가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를 적극 흡수하면서 임신한 톱스타를 모델로 활용하는 과감한 행보를 택한 것으로 분석한다. ‘결혼’이나 ‘임신’ 등 개인적인 조건과 상황이 더 이상 여성 모델의 활동을 제약하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전지현과 이들 브랜드가 상징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전지현이 만든 이 같은 ‘선례’는 향후 광고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현재 광고 모델로 활약하는 미혼의 여성 톱스타가 여럿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전지현의 사례로 얻게 될 ‘이득’도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예비 엄마 배우’가 된 전지현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내년 출산 이후 더욱 활발한 연기 활동을 꿈꾸는 그녀의 계획 가운데 하나는 할리우드 진출. 앞서 2009년 프랑스와 홍콩 합작 영화 ‘블러드’와 중미 합작 영화 ‘설화와 비밀의 부채’ 등으로 할리우드 진출을 모색해왔던 그녀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국내 활동에 주력했지만 여전히 ‘더 큰 시장’을 향한 관심과 열망은 식지 않았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켓이라고 생각해요. 연기자로서 좋은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는 건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보다는 연기자가 어떤 시장을 갖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배우와 그를 필요로 하는 시장은 뗄 수 없는 관계죠. 그런 면에서 저는 할리우드 진출도 꿈꾸고 있어요.”
■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케이퍼필름 제공
■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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