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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복제 논란에 시달리면서도 매번 조금씩 다른 변주로 흥행 불패 신화를 이어온 김은숙 작가가 올겨울 또 하나의 신데렐라 로맨스를 들고 나왔다. 이번엔 교복을 입은 신데렐라다.
김은숙 작가는 자타가 공인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제다. 특히 신데렐라 로맨스는 그녀의 최고 장기다. 국민 드라마로 불렸던 SBS ‘파리의 연인’은 까다롭고 도도한 재벌 2세 남주인공과 가난하지만 씩씩하고 긍정적인 여주인공이라는 신데렐라 로맨스 남녀 주인공 캐릭터의 전형을 마련했다. 캔디와 신데렐라의 조합인 ‘캔디렐라’라는 신조어도 이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로 30대 이상 어른들의 연애를 그려온 김은숙에게 하이틴 로맨스 ‘상속자들’은 첫 도전이다. 분명 신선한 점인데도 방영 초에는 그리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부유층 명문고를 배경으로 한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점에서 KBS ‘꽃보다 남자’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속자들’과 ‘꽃보다 남자’는 주연 이민호, F4 같은 꽃미남 군단, 왕따 및 학교 폭력 소재 등 세부적인 면에서도 많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상속자들’의 개성은 오히려 ‘꽃보다 남자’와의 비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두 작품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신데렐라 여주인공 캐릭터에 있다.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구혜선)가 밝고 씩씩하고 긍정적인 캔디렐라의 정석적 캐릭터라면, ‘상속자들’의 차은상(박신혜)은 ‘캔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우울하기 짝이 없는 여주인공이다. 말 못하는 가사 도우미 어머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많은 빚, 방 한 칸도 없이 주인집 쪽방에 얹혀사는 신세…. 어쩌면 드라마 사상 가장 궁상맞고 처절한 신데렐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상의 삶은 “우린 왜 답도 없이 이러고 살아”라는 대사처럼 한 줄기 빛도 없이 깜깜하기만 하다.
사실 은상의 이러한 캐릭터는 김은숙의 신데렐라 로맨스가 지닌 독특한 특징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바로 계급의식의 노골적 표출이다. 수많은 신데렐라 로맨스가 그 핵심인 신분 상승의 욕망을 사랑의 진정성으로 은폐할 때, 김은숙은 그 은폐된 계급의 문제를 종종 전면에 배치한다. 단적인 예가 SBS ‘시크릿 가든’이다. 이 작품의 남주인공 김주원(현빈)은 사랑에 빠진 후에는 계급을 비롯한 모든 장벽이 눈에 보이지 않는 듯 행동하는 보통의 재벌 후계자들과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계급 인식을 보여준다. 길라임(하지원)을 진정으로 사랑하면서도 결혼은 불가능하니 숨겨진 여자로 살라는 말을 대놓고 할 정도다.
‘상속자들’은 아예 ‘카스트 제도’처럼 계급 차별이 뚜렷한 사회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학교라는 배경 안에 압축돼 있기에 더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부모의 재력과 권력에 따라 서열이 결정되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경영 상속자·주식 상속자·명예 상속자처럼 계급을 나누고, 은상과 같은 가난 상속자들은 ‘불가촉 천민’처럼 취급받는다. ‘꽃보다 남자’에서 금잔디는 F4에게 반항했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지만, ‘상속자들’의 은상은 가난한 사회배려자 전형 학생이라는 이유로 왕따 위기에 처한다. 학교의 주인인 제국그룹 자제 김탄(이민호)은 은상에게 왕따를 피하려면 자신 곁에 있으라고 이야기한다.
요컨대 ‘상속자들’은 신분 상승의 욕망 이전에 절박한 생존의 문제가 된 신데렐라 판타지에 관한 작품이다. 학원물이라는 형식은 그것을 더 강조하는 장치다. ‘내일은 그저 오늘보다 10원어치 더 나은 삶이길’ 바라며 생계에 급급한 은상의 처절한 현실은 그녀가 무력한 미성년자이기에 더 두드러진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으로 더욱 강조된 현실의 벽은 역설적으로 더 강력한 신데렐라 판타지로 이어진다.
즉, 더는 신데렐라 로맨스로도 감출 수 없이 공고해진 계급사회에서 ‘상속자들’은 그 현실을 노골적으로 전면화함으로써 한층 강력해진 판타지를 완성하는 것이다. ‘나쁜 꿈은 걸러주고 좋은 꿈만 꾸게 해준다’는 드림캐처는, 그래서 그 자체로 신데렐라 로맨스 장르에 대한 은유로 남는다.
김선영 씨는…
‘텐아시아’ ‘경향신문’ ‘한겨레21’ 등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 하고 있으며,
MBC· KBS·S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글·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 사진·SBS 제공
자기 복제 논란에 시달리면서도 매번 조금씩 다른 변주로 흥행 불패 신화를 이어온 김은숙 작가가 올겨울 또 하나의 신데렐라 로맨스를 들고 나왔다. 이번엔 교복을 입은 신데렐라다.
김은숙 작가는 자타가 공인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제다. 특히 신데렐라 로맨스는 그녀의 최고 장기다. 국민 드라마로 불렸던 SBS ‘파리의 연인’은 까다롭고 도도한 재벌 2세 남주인공과 가난하지만 씩씩하고 긍정적인 여주인공이라는 신데렐라 로맨스 남녀 주인공 캐릭터의 전형을 마련했다. 캔디와 신데렐라의 조합인 ‘캔디렐라’라는 신조어도 이 작품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로 30대 이상 어른들의 연애를 그려온 김은숙에게 하이틴 로맨스 ‘상속자들’은 첫 도전이다. 분명 신선한 점인데도 방영 초에는 그리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부유층 명문고를 배경으로 한 신데렐라 이야기라는 점에서 KBS ‘꽃보다 남자’와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속자들’과 ‘꽃보다 남자’는 주연 이민호, F4 같은 꽃미남 군단, 왕따 및 학교 폭력 소재 등 세부적인 면에서도 많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상속자들’의 개성은 오히려 ‘꽃보다 남자’와의 비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두 작품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신데렐라 여주인공 캐릭터에 있다.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구혜선)가 밝고 씩씩하고 긍정적인 캔디렐라의 정석적 캐릭터라면, ‘상속자들’의 차은상(박신혜)은 ‘캔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우울하기 짝이 없는 여주인공이다. 말 못하는 가사 도우미 어머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많은 빚, 방 한 칸도 없이 주인집 쪽방에 얹혀사는 신세…. 어쩌면 드라마 사상 가장 궁상맞고 처절한 신데렐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상의 삶은 “우린 왜 답도 없이 이러고 살아”라는 대사처럼 한 줄기 빛도 없이 깜깜하기만 하다.
사실 은상의 이러한 캐릭터는 김은숙의 신데렐라 로맨스가 지닌 독특한 특징에서 기인한다. 그것은 바로 계급의식의 노골적 표출이다. 수많은 신데렐라 로맨스가 그 핵심인 신분 상승의 욕망을 사랑의 진정성으로 은폐할 때, 김은숙은 그 은폐된 계급의 문제를 종종 전면에 배치한다. 단적인 예가 SBS ‘시크릿 가든’이다. 이 작품의 남주인공 김주원(현빈)은 사랑에 빠진 후에는 계급을 비롯한 모든 장벽이 눈에 보이지 않는 듯 행동하는 보통의 재벌 후계자들과 달리, 지극히 현실적인 계급 인식을 보여준다. 길라임(하지원)을 진정으로 사랑하면서도 결혼은 불가능하니 숨겨진 여자로 살라는 말을 대놓고 할 정도다.
‘상속자들’은 아예 ‘카스트 제도’처럼 계급 차별이 뚜렷한 사회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학교라는 배경 안에 압축돼 있기에 더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부모의 재력과 권력에 따라 서열이 결정되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경영 상속자·주식 상속자·명예 상속자처럼 계급을 나누고, 은상과 같은 가난 상속자들은 ‘불가촉 천민’처럼 취급받는다. ‘꽃보다 남자’에서 금잔디는 F4에게 반항했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지만, ‘상속자들’의 은상은 가난한 사회배려자 전형 학생이라는 이유로 왕따 위기에 처한다. 학교의 주인인 제국그룹 자제 김탄(이민호)은 은상에게 왕따를 피하려면 자신 곁에 있으라고 이야기한다.
요컨대 ‘상속자들’은 신분 상승의 욕망 이전에 절박한 생존의 문제가 된 신데렐라 판타지에 관한 작품이다. 학원물이라는 형식은 그것을 더 강조하는 장치다. ‘내일은 그저 오늘보다 10원어치 더 나은 삶이길’ 바라며 생계에 급급한 은상의 처절한 현실은 그녀가 무력한 미성년자이기에 더 두드러진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으로 더욱 강조된 현실의 벽은 역설적으로 더 강력한 신데렐라 판타지로 이어진다.
즉, 더는 신데렐라 로맨스로도 감출 수 없이 공고해진 계급사회에서 ‘상속자들’은 그 현실을 노골적으로 전면화함으로써 한층 강력해진 판타지를 완성하는 것이다. ‘나쁜 꿈은 걸러주고 좋은 꿈만 꾸게 해준다’는 드림캐처는, 그래서 그 자체로 신데렐라 로맨스 장르에 대한 은유로 남는다.
김선영 씨는…
‘텐아시아’ ‘경향신문’ ‘한겨레21’ 등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 하고 있으며,
MBC· KBS·S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글·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 사진·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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