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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I 첫 한국계 수장, 제롬 김 사무총장

글 · 김명희 기자 | 사진 · 조영철 기자 이상윤

2015. 05. 19

제롬 김 박사는 예일대 의대 출신의 백신 개발 전문가이자 에이즈 연구 권위자이며, 또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기도 하다. 한국에 본부를 둔 최초의 비영리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IVI)의 리더에 꼭 맞는 역량과 전문성 및 경험, 스토리를 지닌 인물이다.

IVI 첫 한국계 수장, 제롬 김 사무총장
아직 햇볕 뜨겁지 않은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제롬 김(56 · 한국 이름 김한식) 국제백신연구소(IVI) 신임 사무총장의 얼굴은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었다. 3월 1일 공식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인 지난 2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로 달려가 콜레라 백신 접종 과정을 지휘하고 돌아온 덕분이다.

“연구실에서 개발된 백신이 현장에서 적용되는 걸 지켜보는 건 커다란 행복이었습니다. IVI의 일원으로서 자부심도 갖게 됐죠. IVI는 개발도상국의 건강 증진을 위해 새로운 백신을 연구, 개발, 보급하는 독창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입니다. 저가의 콜레라 백신은 전 세계 비영리 기관이 이룩한 백신 개발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어요.”

하와이에서 태어난 제롬 김 사무총장은 예일대 의대를 졸업했으며 미국 국립군의관의대 교수를 역임했다. 지난해에는 백신 산업 단체인 백신네이션(Vaccine Nation)이 선정하는 ‘백신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또한 일제강점기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던 애국지사 김현구(1889~1967) 선생의 손자이기도 하다. 고 김 선생은 ‘신한민보’의 주필로 미주 지역 한인들의 민족정신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 활동을 펼치는 한편, 윤봉길 · 이봉창 의사의 의거를 지원해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조부가 독립운동을 위해 나섰던 길을 되짚어 한국으로 온 제롬 김 박사는 “조부의 삶이 IVI 사무총장으로서 나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알렉산드라(16)와 아나스타샤(13) 두 딸에게도 이런 가족의 역사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노년에 하와이의 캔 공장 경비원으로 일하시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자서전을 쓰셨어요. 한국 역사에서는 작은 부분일지 모르지만, 저희 가족에겐 그분의 의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죠. 할아버지께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것처럼 저 역시 백신 개발자로서 IVI를 통해 한국의 백신과 생명과학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조부는 미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IVI 첫 한국계 수장, 제롬 김 사무총장

제롬 김 사무총장은 지난 2월 에티오피아를 방문, IVI의 콜레라 백신 접종을 지휘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초기 이민자들이 그렇듯, 그의 조부모와 부모는 교육열이 높았다. 할머니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대학까지 진학했고 자녀들도 모두 대학에 보냈다. 나라 잃은 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힘을 기르는 방법밖에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풍은 손자대로 이어져 제롬 김(예일대 의대) 박사를 비롯한 남동생(코넬대 · 프린스턴대), 여동생(예일대 로스쿨) 역시 모두 아이비리그를 졸업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가 실직을 하는 바람에 주유소, 레스토랑, 병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병행해야 했는데, 이런 절박한 환경은 공부에 더욱 매진하는 계기가 돼 그는 대학 학부를 3년 만에 졸업했다. 그때그때 기분에 좌우되지 않고 긴 안목으로, 능동적으로 삶을 풀어가도록 하기 위해 그는 자녀들에게 2가지를 강조한다.

“아이들에게도 항상 최선을 다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동양식의 엄격한 자녀 교육법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예일대 로스쿨 에이미 추아 교수의 책 ‘타이거 마더’에 빗대) ‘타이거 파더’라는 별명이 붙었어요(웃음).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은 정신과 신체의 균형입니다. 적어도 한 가지쯤은 매우 잘하는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흔히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죠. 저는 학창 시절 유도를 했고, 아이들은 체조를 하고 있어요. 두 딸 모두 주 대회 입상 메달을 갖고 있죠.”

미국 국립군의관의대 교수 시절, 그는 미군 HIV 연구 프로그램의 수석 부책임자 겸 분자 바이러스학 및 병리학 실험실장으로 활동하며, HIV 백신이 감염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할 수 있음을 최초로 보여준 임상 실험과 후속 연구를 이끌었다. 에이즈 퇴치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인 그에게 인류가 에이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이 올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0~30년 전, 지금쯤 우리가 에이즈 백신을 갖게 될 거라고 내다봤지만 아직 그 순간은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오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서아프리카 지역에서 시작돼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으며 1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에볼라 바이러스는 감염성 질환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보여준다. 또한 이들 지역에 가장 먼저 도움의 손길을 뻗친 건 ‘국경없는의사회’ ‘사마리아인의 지갑’ 같은,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단체였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IVI가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질환은 아니지만, 그는 바이러스 질환에 대한 대처와 관련해 여기서 몇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에볼라(바이러스)는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던 질환입니다. 처음부터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졌더라면 지금쯤 우리는 치료에 유효한 백신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에볼라 사후 대책에 엄청난 자금이 투입됐는데, 초기에 적절한 대응이 이뤄졌더라면 훨씬 더 적은 돈으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겁니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며칠 만에 미국까지 도달했습니다. 물류와 교통의 발달에 따라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엄청나게 커진 만큼 여기에 대응하는 국제적인 공조도 더욱 긴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제롬 김 사무총장은 이제 국제백신연구소의 수장으로서 새로운 시험대에 섰다. 그는 IVI의 기초 연구 역량을 더욱 키우고, 국가, 기업, 개인 후원자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또 국제기구, 세계 보건 기관, 세계 유수의 대학, IVI 설립 협정 회원국, 주요 후원 기관들을 포괄하는 IVI의 국제적 네트워크와 한국 간의 협력 확대도 강조했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백신 과학기술과 바이오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넘어져가는 조국을 다시 세우고자 했던 할아버지와, 질병으로 신음하는 이들의 고통을 덜고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한국에 다시 뿌리를 내린 제롬 김 사무총장. 신념이 있는 삶이란 이런 게 아닐까.

국제백신연구소&후원 방법


IVI 첫 한국계 수장, 제롬 김 사무총장
아직도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우리나라와 선진국에서 오래전에 사라진 콜레라와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으로 인해 수많은 어린이들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IVI는 이러한 ‘잊혀진(Neglected) 질병’ 치료에 필요한 백신을 개발해 개발도상국들에 보급하고 있습니다. 최근 말라위에서는 큰 홍수로 인해 콜레라가 발생했으며 IVI는 위기에 처한 이들 주민 10여만 명에게 IVI가 개발한 안전하고 효과적인 경구 콜레라 백신을 접종 중입니다. 여러분의 후원금은 지구촌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건강을 개선하는 데 소중히 사용될 것입니다. IVI에 대한 후원은 IVI 기부 릴레이 프로그램인 기빙백(GIVING VAC) 캠페인, 기념일 후원, 병원 후원, IVI 멀리건 백신 등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후원 문의 IVI 한국후원회(02-881-1303 www.ivisupport.or.kr)


디자인 · 유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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