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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싱글 대디’ 김성수의 인생 2막

글·김유림 기자 | 사진·이상윤 MBC 제공

2015. 02. 13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아닥쳤다. 연이은 사업 실패와 이혼, 전처의 죽음까지. 하지만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을 때 딸 혜빈이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토토가’로 재기의 신호탄을 쏜 김성수에게 2012년 전처 죽음 후 가려져 있던 시간들에 대해 들었다.

‘싱글 대디’ 김성수의 인생 2막
MBC ‘무한도전-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이하 ‘토토가’)열풍에 힘입어 199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들이 새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룹 ‘쿨’의 김성수(47)도 ‘토토가’ 무대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가슴 뭉클한 추억을 안겨줬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춤이 예전만큼 날렵하지 못하고 호흡도 가빠 보였지만 그는 이재훈, (미국에서 산후 조리 중인 유리를 대신해 출연한) ‘쥬얼리’ 김예원과 함께 20년 전으로 돌아가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오랜만의 활동이 더욱 반갑게 다가오는 건 그가 겪은 지난날의 부침 때문이다.

‘토토가’에 앞서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한동안 방송을 떠나 있던 김성수가 외동딸 혜빈이(10)를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2010년 아내와의 이혼으로 다섯 살 때부터 아빠와 떨어져 살던 혜빈이는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 이후에도 외갓집에서 생활해야 했다. 방송에서는 1년 전부터 함께 살고 있는 부녀의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상과 재기를 다지는 김성수의 모습이 그려져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았다.

지난 1월 초 KBS ‘비타민’ 촬영장에서 만난 김성수는 8시간이나 이어진 녹화에도 지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토토가’ 이후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라디오 출연 섭외가 이어지면서 오랜만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물 들어왔을 때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토토가’를 준비하면서도 혹시나 방송이 무산될까 봐 날마다 가슴을 졸였다고 한다.

“(정)준하가 느닷없이 전화해서는 ‘형, 어떻게 지내?’ 하기에 농담 삼아 ‘‘무한도전’ 나가려고 준비 중이지’ 했는데, 그게 방송에 그대로 나갔어요(웃음). 그날부터 녹화하는 날까지 정말 시간이 안 가더라고요. 빨리 무대에 서고 싶어서 잠도 잘 오지 않을 정도였죠. 막상 무대에 서자 심장이 멎는 것처럼 가슴이 벅차고, 환호하는 관객들을 보면서 옛날 기억들이 필름처럼 빠르게 스쳐갔어요. 그날 얼마나 열심히 뛰었던지 무릎에 염증이 생겨서 한동안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했어요. 한창 활동할 때도 이런 적이 없는데, 나이는 못 속이겠더라고요(웃음).”

‘무한도전’ 녹화 후 이어진 뒤풀이 자리에서는 ‘토토가’ 출연진 전원이 열정적인 밤을 보냈다고 한다. 식당 하나를 통째로 빌려 새벽까지 자신들의 노래를 틀고 춤추며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성수는 “오랜만에 만나 서로 너무 반가웠다. 다들 그동안 꽉 막혀 있던 가슴속 응어리를 씻어낼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도전한 식당 성공으로 딸과의 보금자리 마련

‘싱글 대디’ 김성수의 인생 2막
‘토토가’ 출연을 앞두고 연습은 많이 필요 없었다. 자전거 타기와 마찬가지로 몸에 춤과 랩이 배어 있어 노래가 흘러나오자 자동으로 몸이 움직였다고 한다. 녹화 당일 객석에 앉아 있는 딸의 모습을 보고 더욱 흥이 났다는 김성수는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혜빈이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더욱 기뻤다”고 말한다. 아빠의 열정적인 모습에 신이 난 건 혜빈이도 마찬가지. 더욱이 녹화가 끝난 후 유재석을 비롯해 ‘무한도전’ 멤버들이 혜빈이와 같이 사진도 찍어주고 ‘무한도전’ 달력에 사인도 여러 장 해줘 더욱 고마웠다고 한다.

2005년 ‘무한도전’ 초창기 멤버로 잠시 활동했던 김성수는 “녹화가 끝나고 재석이에게 ‘‘무한도전’ 다시 하면 안 되겠니?’ 했더니 단호하게 ‘안 되겠다’고 하더라”며 허허 웃었다.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무한도전’에서 하차한 뒤 그는 한동안 ‘무한도전’을 보지 않았을 정도로 그 때의 선택을 후회했다. 유재석이 “형, 조금만 참아. 좋은 일 있을 거야”라며 만류했지만 당시 슬럼프에 빠져 있던 그로서는 어떤 조언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김성수는 “총각 때는 즐기면서 하던 일이 2004년 결혼하고 가정이 생긴 뒤로는 책임감 때문인지 어느 순간부터 부담으로 다가왔다. 더 재미있게 해야지, 잘해야지 하는 욕심이 중압감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즈음 그는 쿨 해체(2005년 해체되고 3년 뒤 재결성됐다) 후 홀로서기의 일환으로 트로트 가수로 변신했지만 인기를 끌지 못했다. 철저한 준비 과정 없이 시작한 사업이 연달아 실패하면서 가정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끝내 그는 이혼과 전처의 죽음이란 큰 시련 앞에서 깊은 절망에 빠져들고 말았다. 가장 괴로웠던 건 2012년 엄마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딸에게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것. 당시 사업 실패로 오피스텔에서 지내던 그는 아이를 외가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한쪽이 아리다”는 그다. 김성수의 딸에 대한 애정은 혜빈이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각별했다. 실제로 그는 과거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서운해해도 어쩔 수 없다. 혜빈이가 내 인생의 전부다. 촬영 때문에 일주일 동안 집을 비운 적이 있는데, 숙소에서 아이가 보고 싶어 펑펑 운 적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우연히 영화 ‘127시간’을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한 청년이 거대한 바위에 팔이 낀 채 조난돼 닷새 만에 자기 팔을 자르고 생존한 실화를 다룬 영화인데, 그걸 보는 순간 ‘나도 이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스스로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고통을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혜빈이를 위해,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 빨리 훌훌 털어내고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지인과 함께 식당을 열었는데,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어요. 1년 전 집도 마련해 혜빈이와 함께 살기 시작했고요. 가족이 함께 사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저와 혜빈이에게는 지금의 일상이 더없는 행복이에요.”

‘싱글 대디’ 김성수의 인생 2막

1 ‘토토가’ 무대에서 유리 대신 ‘쿨’ 공연에 동참해준 ‘쥬얼리’ 예원과 함께. 2 3 김성수가 인생의 전부라 여기는 딸 혜빈이는 또래보다 키도 크고 성격도 밝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어떤 일도 열심히, 즐겁게 해낼 자신 생겨

현재 그는 지인과 함께 경기도 용인에서 게장 전문점 ‘해변의 꽃게’를 운영 중이다. 게장을 ‘무한 리필’해주는 식당인데 이곳에서 그는 꽃게 손질부터 서빙, 카운터 보기 등 온갖 일을 도맡아한다.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방송 스케줄이 있을 때를 빼고는 식당을 비우는 날이 거의 없다. 이렇듯 열심히 달려온 덕에 체인점이 전국에 12개나 생겼다. ‘토토가’로 방송 컴백도 이뤄지면서 몇 년 만에 그는 가슴속에 ‘희망’이란 단어를 품게 됐다고 말한다.

“집 장만을 하면서 가장 먼저 혜빈이 방을 꾸며줬어요. 열 살이라 웬만한 건 혼자 알아서 하지만, 아침마다 머리 묶어주는 게 제일 어려워요(웃음). 반찬 솜씨가 없으니 기껏 해야 달걀프라이, 김 같은 마른반찬만 내놓지만 아침은 꼭 먹이려고 하고요. 학교에서 방과 후 수업을 하고 피아노 학원에 갔다가 친구 집에서 잠깐 놀고, 집에 오면 혼자 숙제하고 씻고 잠자리에 들어요. 근처에 누나네가 살고 있어서 도움도 많이 받고요. 처음 혜빈이와 살기 시작했을 때는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 힘이 들었는데 어느 순간 아이 스스로 패턴을 찾아가더라고요. 아직은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나이인데도, 그런 내색하지 않고 혼자 알아서 잘해내는 아이가 대견하고 고마워요.”

평소 혜빈이는 그에게 엄마 얘기를 일절 하지 않는다. 이유는 “아빠가 힘들어할까 봐”. 얼마 전 아이의 이런 속내를 처음 알게 된 김성수는 혜빈이의 마음속 상처를 생각하며 속으로 많은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럼에도 혜빈이는 워낙 성격이 밝고 붙임성이 좋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운동회 때 김성수가 전교생 앞에서 공연을 펼친 뒤로 혜빈이도 학교 내 유명 인사로 떠올랐다. 김성수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학교 행사 참여에 적극적이다.

“제 인생의 초점은 오로지 아이에게 맞춰져 있어요. 제가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준 원동력도, 저를 살린 사람도 혜빈이니까요. 예전에는 사업을 해도 남에게 다 맡겨놓은 채 저는 뒷짐만 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아니면 혜빈이는 어떡하나’하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억척같이 일했어요. 하루 종일 서 있어서 다리에 쥐가 날 정도였죠. 그랬더니 일이 잘 풀리더라고요. 앞으로도 혜빈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다 열심히 할 거예요.”

‘싱글 대디’ 김성수의 인생 2막
잘나가던 시절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효도 공연이나 각종 지방 행사도 불러만 주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흔쾌히 임하고 있다. 일에 몰두하다 보니 대인기피증과 우울증도 서서히 사라졌다. 한창 절망감에 매몰돼 있을 때는 날마다 집에서 혼자 소주를 마셨지만,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불가피할 때만 술자리를 갖는다고 한다. 담배도 끊으라는 혜빈이의 잔소리 때문에 금연도 생각 중이다.

“아직 제 눈에는 아기 같은데, 어느새 많이 컸더라고요. 조금만 지나면 제가 딸 걱정하는 것보다 딸이 제 걱정하는 날이 더 많을 것 같아요(웃음). 앞으로 사춘기도 올 텐데, 그때 아이 마음을 잘 보듬어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해요. 사춘기를 수월하게 넘기려면 지금부터 아이와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어요. 다행히 요즘 들어 혜빈이가 자기의 속마음을 겉으로 조금씩 드러내요. 친구 같은 아빠, 엄마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해 많이 노력해야죠.”

그렇다고 아이를 마냥 싸고돌지만은 않는다고 한다. 아이가 약속을 어기거나 거짓말을 했을 때는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엄하게 혼도 낸다. 김성수는 “아이를 혼낸 뒤 어떻게 달래는 게 가장 좋은 건지 모르겠다. 위엄 있는 아빠가 돼야 하는데, 앞으로 갈 길이 멀다”며 멋쩍은 듯 웃었다.

새로운 기회 앞에서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마인드 컨트롤이다.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은 나 스스로 거둬야 하지 않겠냐”는 그의 말대로 김성수는 예전에 비해 정신력이 많이 강해졌음을 스스로 느낀다.

“이제는 어떤 일도 열심히, 즐겁게 해낼 자신이 있어요. 예전부터 연기에 대한 막연한 꿈이 있었는데, 이제 나이도 있고 그간 부침도 있었던 만큼 힘들었던 지난날을 발판 삼아 연기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얼마 전부터 연기 공부를 시작했는데 지금 당장 어떤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디자인·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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