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최고의 드라마를 꼽으라면 단연 ‘별에서 온 그대’(이하 별그대)와 ‘정도전’이다. 여성들이 천송이와 도민준의 러브 스토리에 열광했다면 남성들의 술자리에는 위화도회군과 왕자의 난이 안주로 올랐다. ‘별그대’ 방송 다음 날 천송이 패션이 인터넷 인기 검색어에 올랐고, ‘정도전’ 방송 이튿날엔 이숙번, 이인임 같은 역사적 인물이 검색어 리스트를 장악했다. 이성계와 정도전이 한양 천도를 자축하며 질펀한 연회를 연 장면에 사이키 음악을 입힌 ‘한양나이트’ 같은 패러디물이 등장하고 디시인사이드에 갤러리가 만들어진 걸 보면 이 드라마가 중장년층을 넘어 젊은이들에게도 인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별그대’의 인기가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 대륙을 장악했다면 ‘정도전’은 휴전선 저쪽 북한 주민들이 챙겨 본다는 보도가 있었다. 심지어 북한 당국은 체제에 반하는 역성혁명을 다룬 이 드라마의 유통을 철저히 차단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시청자들이 공부하면서 시청, 방영 때마다 인터넷 검색어 보며 전율 느껴
‘정도전’은 왕 혹은 영웅 중심의 기존 사극과 달리 역사 속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비운의 혁명가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삼아, 백성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 마음먹고 대업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까지 그의 삶을 따라가며 좋은 정치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끈질기게 보여줬다. 여말선초의 혼란스러웠던 상황, 삶과 정치에 관한 정수가 담긴 명대사는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게끔 했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정통 사극의 부활 같은 화려한 수식어 외에도 유동근·조재현 같은 베테랑 배우들이 “내 인생 최고의 드라마”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 작가의 몸값도 함께 치솟고, 인터뷰 요청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기출문제 모범답안 같은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그래서 “쓸 때마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메뚜기도 한 철”이라며 선선히 기자와 마주 앉은 정현민(44) 작가가 드라마의 성공 비결로 ‘초심’을 이야기했을 때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었다.
▼ 준비 기간까지 하면 1년 넘게 붙들고 있던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시험이 끝난 수험생 기분일 것 같은데, 물론 점수도 좋고. 소감이 어떤가?
지금으로선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대하사극이 KBS 간판 프로젝트라 제작비가 엄청 많이(회당 2억원) 들어간다. 그런 수치상의 부담은 각오한 것이지만, 1~2회가 나가고 나서 시청자들로부터 반응이 확 오는데 갑자기 두려워지더라. 참 겁 없이 덤볐구나 싶었다. 비유하자면 만만해 보이는 산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참 길이 험했다고 할까. 마치 뒤에서 누군가 도와준 덕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비결을 꼽자면.
처음 드라마를 만들 때 동갑내기인 강병택 PD와 KBS 대하드라마를 살려보자, 기본에 충실한 고품격 리얼 정치 사극을 만들자고 얘기했고, 끝까지 초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정통 사극에 대한 목마름, 기대감이 있던 시청자들이 그런 점을 좋게 봐주셨다. 강 PD와 또 한 가지 얘기했던 게 젊은 층도 함께 볼 수 있는 사극을 만들자는 거였다. 그래서 전개도 빠르게 하고, 트렌디한 요소도 곳곳에 넣었다. 드라마 방영되는 시간에 관련 단어들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로 계속 올라오는 걸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어떤 날은 10위까지 검색어 중 8개가 우리 드라마와 관련된 단어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그런 친구들이 공부하면서 드라마를 봤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시청을 권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고증이 철저했다는 얘긴데, 바꿔 말하면 작가가 그만큼 고생했다는 얘기 아닌가?
원래 잘 모르는 건 쓰지 못하는 성격이다. 겉멋 들어서 러시아 혁명사를 공부한 적은 있지만 고등학교 이후로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한 적은 없다. 그 덕분에 편견 없이 정도전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국회도서관에서 여말선초와 관련된 책과 논문을 빌리고 복사해서 참고했다. 보조 작가들이 연표를 만들어 주요 사건을 꼼꼼히 챙기고 인물별 연표도 따로 만들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었다. 대본을 집필할 때 쭉쭉 대사를 치고 나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대사 조금 쓰다 논문 보고 이게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느라 매회 리포트 쓰는 기분이었다.
▼ 역대급 캐스팅도 성공 비결로 꼽힌다.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유동근 선생님이 이성계 역에 관심 있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엔 믿지 못했다. 대하드라마가 일단 그분들 몸값을 못 맞춰드리고, 액션 장면도 많아서 위험하다. 나중에 얘길 들으니 고 김재형 감독님이 ‘용의 눈물’(1996~98년)을 할 때 “나중에 네가 이성계를 한번 해보라”고 말씀하셨다는데, 그걸 마음에 담아두셨던 모양이다(유동근은 ‘용의 눈물’에서 태종 이방원 역을 맡았다). 현장 스태프 얘길 들어보면 대본을 수십 번 읽어 오신다고 한다. 연기면 연기, 노력이면 노력, 최고의 배우다.
▼ 조재현 씨는 시놉시스를 읽고 나서 강병택 PD에게 본인이 할 테니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말라고 했다던데?
시놉시스가 꽤 두꺼웠는데, 그날 다 읽고 감정을 못 이겨 맥주 한잔 하고 새벽에 PD에게 전화했다고 하더라.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모두 흔쾌히 하겠다고 해주신 덕분에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화려한 캐스팅이 됐다.
▼ 박영규 씨가 이인임을 연기하는 걸 작가가 반대했다는 소문도 있다.
진지하게 반대했던 건 아니고 강 PD로부터 박영규 선생님이 이인임은 꼭 자신이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달이 아빠잖아. 이게 되게 심각한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웃으면 어떻게 해?”라고 물었더니 ‘해신’과 ‘다모’를 한번 보라고 하더라. ‘해신’을 찾아보니 진지한 연기도 잘하시더라. 내가 그전까지 드라마를 많이 보지 못해 박영규 선생님이 어떤 연기자인지 잘 몰랐던 거다.
▼ 이지란 역을 맡은 선동혁 씨가 이숙번의 이름을 듣고 “이숙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장면도 많이 화제가 됐다. 선동혁 씨가 ‘용의 눈물’에서 이숙번 역을 맡았던 게 연상됐기 때문이다.
선동혁 선생님이 말에서 세 번이나 떨어진 것을 비롯해 고생을 많이 하셨음에도 마지막까지 굉장히 성실하게 임해주셨다. 그래서 역이 정리돼가는 시점에 선물처럼 준비한 대사다. 그 대사를 쓰고 나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제 마음이다. 하고 싶으신 대로 표현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런 장면이 나왔다. 고맙게도 시청자들이 그걸 알아주시더라.
마흔에 드라마 작가로 전업, 다양한 경험이 성공 비결
드라마 ‘정도전’은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는 용기에서 시작됐다. 정현민 작가는 부산기계공고 졸업 후 경남 창원의 한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노조에서 노보를 만들다 기자가 되고 싶어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엔 노동전문 매체 기자로 활동하다 국회로 들어가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으로 10년간 일했다. 그 일이 매너리즘에 빠질 즈음 여의도 국회의사당 길 건너 금산빌딩에 있는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이 눈에 들어왔다. 물리적 거리는 횡단보도 하나지만, 마음의 거리는 현실과 이상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던 그곳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정도전이 마지막 회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며 “삼한의 백성들이여, 이제 다시 꿈을 꾸자…그대들에게 명하노라. 두려움을 떨쳐라. 냉소와 절망, 나태와 무기력을 혁파하고 저마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진정한 대업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어깨에 드리워진 삶의 무게 때문에 혹자는 아플 수도 없는 나이라고 말하는 마흔에 꿈에 도전한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 남편이 안정적인 직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선뜻 찬성하는 아내는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아내의 반응은 어땠나?
사실 내가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의 정규직이었다면 그런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대단히 고용이 불안한 직업이다. 국회의원도 임기가 4년인데 보좌관은 말해 뭐하겠나. 아내에게 “2년만 해보고 안 되면 다시 국회로 돌아갈 테니 그동안만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했다. 의외로 아내는 기한을 두지 말고 하고 싶은 만큼 해보라고 하더라. 그때 참 고마웠다. 실제로는 드라마 교육원에 다니면서 바로 극본 공모에 당선되고 일이 들어왔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쪼들렸던 기간은 거의 없다. 2012년 KBS ‘TV소설-사랑아 사랑아’를 하면서부터는 보좌관 수입을 넘어섰다. 요즘은 아내가 많이 얼떨떨해한다. TV에 나오고 이런 인터뷰도 하는 남편이 어색한 모양이다.
▼ 마흔 살에 작가 수업을 시작해 그해 극본 공모전에 당선됐다. 원래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나?
초등학교 때 아동문학가가 꿈이었다. 30대 초반에 노동 관련 콩트를 쓴 적이 있는데 그게 2003년 전태일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분이 심사평에 ‘본격 소설을 기대한다’고 써놓으셨기에 ‘기대된다니 한번 써볼까’ 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써봤지만 한 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어떤 드라마 작가가 보좌관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쓰겠다며 취재 요청을 해오셨다.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해서 내 나름대로 친절하게 설명해드렸더니 “이야기에 힘이 있다”며 작가 공부를 해보라고 하셔서 시작은 했지만, 그때만 해도 작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보좌관 일과 병행하느라 빠지는 날도 많았고, 거기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MT 두 번 조직화한 것, 그리고 뒤풀이에 빼놓지 않고 참석한 거다. 물론 공모전 때는 과로로 대상포진에 걸릴 정도로 열심히 했다.
▼ 교육원 1년 차가 공모전에 당선되는 건 법대 1학년생이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하던데, 남들보다 일찍 당선된 비결이 있었나?
당시 응모작이 ‘서경시 체육회 구조조정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작품이었는데, 소위 학원에서 가르치는 것과 다른 신선함이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남들과 다른 경험을 했고, 그것을 풀어내는 약간의 글재주가 있었던 게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적인 부분은 성룡 영화와 만화 ‘H2’의 작가 아다치 미츠루에게 빚을 졌다. 성룡 영화는 거짓말 안 보태고 3백 번 넘게 본 것도 있다. 요즘도 기분이 우울하면 ‘프로젝트A’ 속편을 돌려본다. 그런 것들이 내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 드라마 속 여말선초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현재 우리의 모습을 오버랩시키는 이들이 많다. 작가가 현실 정치에서 실망한 부분을 투영한 게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지금이 고려 말과 비슷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지금이 그때만큼 어지러운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부의 양극화라든지, 정치와 민생이 괴리되는 부분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 민본주의를 외치는 정도전에게서 노동운동을 한 작가의 모습이 보이는데.
부산기계공고 졸업 후 1987년 6월 공장에 취업했는데, 출근 첫날부터 어용노조 반대 투쟁을 했다. 그때는 작업복 입은 사람은 다 데모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거창하게 노동운동을 했다고는 할 수 없고 그냥 열심히 따라다녔다. 대학 가서 ‘데모는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졸업할 때 마침 외환위기가 와서 취업할 데가 없었다. 딱 한 군데 오라는 곳이 있었는데 또 데모하는 곳이었다. 그 후 2000년 노동계 비례대표 의원 보좌관으로 국회에 들어갔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 보좌관도 지냈다. 시작할 땐 왼쪽이었는데 살다 보니 점점 오른쪽으로 가게 되더라. 재미있는 건 오른쪽으로 갈수록 월급봉투도 두꺼워진다는 거다. 몸은 오른쪽으로 가는데, 생각은 가운데로 수렴돼서 지금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
▼ 드라마 캐릭터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 이인임이었다. 기존 간신의 이미지에서 한발 나아가 때론 정적까지 껴안는 아주 현실적이고 노련한 정치인으로 그려졌다. 혹시 실제 정치인을 모델로 한 건가?
이인임이 나쁜 인물인 건 분명하지만 실제 사료들을 보면 친화력이 있었다고 나온다. 특정 정치인을 모델로 한 건 아니고, 다선 중진 의원들의 모습에서 집단적으로 빌려왔다. 정치 구력이 오래될수록 친절하고, 화를 낼 상황도 웃어넘기고… 노련하다. 그분들을 실제로 뵈면 ‘여기까지 거저 온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극 중 정도전이 정몽주에게 “대의의 반대편에는 불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대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보통 사람은 서로 주장이 엇갈릴 때 자기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그런 식으로 하면 지금처럼 되는 거다. 이인임은 수구 부패 세력이지만 적어도 상대를 인정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려고 했다. 누군가 인터넷에 ‘혁명은 정도전처럼, 정치는 이인임처럼, 인생은 하륜처럼’이라고 썼더라. 정치인들은 시청자들이 왜 이인임이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드라마가 인기 있었던 만큼 실제로 작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정치인이 있을 것 같은데.
아는 사람들을 통해 그런 연락이 왔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안 만났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 정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별로 없다.
▼ 마지막 회에서 이성계가 왕좌를 노리는 이방원에게 “그 자리에 앉으면 모두가 적으로 보일 뿐”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인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거기에 집착할까?
사람들이 권력에 집착하는 이유는 유한하고 욕심만큼 주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 대기업 사장도 지내고 대학 총장도 한 어느 국회의원에게 어떤 게 가장 좋으냐고 물었더니 국회의원이라고 했다고 하더라. 지금은 예전에 비해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지고 특권이 많이 사라져서 요즘 국회의원들이 들으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기 이전에 헌법기관으로서 여전히 권력의 본질은 남아 있다. 사실 권력이 나쁜 건 아니다. 정당의 목적 자체가 권력을 잡기 위한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왜 그것을 잡으려고 하는지, 그것을 잡은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다. 권력 그 자체가 목표가 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 국회가 권력이 오가는 곳이라면 방송은 자본이 오가는 곳인데, 두 군데에 모두 몸담아본 소감은?
아직 방송계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지만 짧게 경험해 본 바로는 정치는 온정적이고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방송은 냉정하고 철저하게 결과로 평가받는다. 정치는 안면이 중요한데, 여기선 안면이 통하지 않는다. 특히 작가와 주연배우는. PD가 실력도 없는 작가를 친하다고 영입하거나, 술 많이 사는 배우에게 주인공 역할을 줄 수는 없다.
▼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하다.
일단 두세 달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 ‘사랑아 사랑아’를 집필할 때는 좀이 쑤셨지만 ‘가장 정신’으로 버텼는데, ‘정도전’ 때는 적응이 돼서 할 만했다. 그래도 재충전의 시간은 필요하다. 가을쯤 준비를 시작하면 내년 하반기엔 새로운 작품으로 시청자들을 찾아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시청자들이 공부하면서 시청, 방영 때마다 인터넷 검색어 보며 전율 느껴
‘정도전’은 왕 혹은 영웅 중심의 기존 사극과 달리 역사 속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비운의 혁명가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삼아, 백성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 마음먹고 대업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까지 그의 삶을 따라가며 좋은 정치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끈질기게 보여줬다. 여말선초의 혼란스러웠던 상황, 삶과 정치에 관한 정수가 담긴 명대사는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돌아보게끔 했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정통 사극의 부활 같은 화려한 수식어 외에도 유동근·조재현 같은 베테랑 배우들이 “내 인생 최고의 드라마”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보통 이런 경우 작가의 몸값도 함께 치솟고, 인터뷰 요청엔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기출문제 모범답안 같은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그래서 “쓸 때마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메뚜기도 한 철”이라며 선선히 기자와 마주 앉은 정현민(44) 작가가 드라마의 성공 비결로 ‘초심’을 이야기했을 때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었다.
▼ 준비 기간까지 하면 1년 넘게 붙들고 있던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시험이 끝난 수험생 기분일 것 같은데, 물론 점수도 좋고. 소감이 어떤가?
지금으로선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대하사극이 KBS 간판 프로젝트라 제작비가 엄청 많이(회당 2억원) 들어간다. 그런 수치상의 부담은 각오한 것이지만, 1~2회가 나가고 나서 시청자들로부터 반응이 확 오는데 갑자기 두려워지더라. 참 겁 없이 덤볐구나 싶었다. 비유하자면 만만해 보이는 산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참 길이 험했다고 할까. 마치 뒤에서 누군가 도와준 덕분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비결을 꼽자면.
처음 드라마를 만들 때 동갑내기인 강병택 PD와 KBS 대하드라마를 살려보자, 기본에 충실한 고품격 리얼 정치 사극을 만들자고 얘기했고, 끝까지 초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정통 사극에 대한 목마름, 기대감이 있던 시청자들이 그런 점을 좋게 봐주셨다. 강 PD와 또 한 가지 얘기했던 게 젊은 층도 함께 볼 수 있는 사극을 만들자는 거였다. 그래서 전개도 빠르게 하고, 트렌디한 요소도 곳곳에 넣었다. 드라마 방영되는 시간에 관련 단어들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로 계속 올라오는 걸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어떤 날은 10위까지 검색어 중 8개가 우리 드라마와 관련된 단어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그런 친구들이 공부하면서 드라마를 봤다고 생각하니 뿌듯하다.
▼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시청을 권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고증이 철저했다는 얘긴데, 바꿔 말하면 작가가 그만큼 고생했다는 얘기 아닌가?
원래 잘 모르는 건 쓰지 못하는 성격이다. 겉멋 들어서 러시아 혁명사를 공부한 적은 있지만 고등학교 이후로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한 적은 없다. 그 덕분에 편견 없이 정도전에 접근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준비를 해야 했다. 국회도서관에서 여말선초와 관련된 책과 논문을 빌리고 복사해서 참고했다. 보조 작가들이 연표를 만들어 주요 사건을 꼼꼼히 챙기고 인물별 연표도 따로 만들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었다. 대본을 집필할 때 쭉쭉 대사를 치고 나가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대사 조금 쓰다 논문 보고 이게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하느라 매회 리포트 쓰는 기분이었다.
▼ 역대급 캐스팅도 성공 비결로 꼽힌다.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유동근 선생님이 이성계 역에 관심 있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엔 믿지 못했다. 대하드라마가 일단 그분들 몸값을 못 맞춰드리고, 액션 장면도 많아서 위험하다. 나중에 얘길 들으니 고 김재형 감독님이 ‘용의 눈물’(1996~98년)을 할 때 “나중에 네가 이성계를 한번 해보라”고 말씀하셨다는데, 그걸 마음에 담아두셨던 모양이다(유동근은 ‘용의 눈물’에서 태종 이방원 역을 맡았다). 현장 스태프 얘길 들어보면 대본을 수십 번 읽어 오신다고 한다. 연기면 연기, 노력이면 노력, 최고의 배우다.
▼ 조재현 씨는 시놉시스를 읽고 나서 강병택 PD에게 본인이 할 테니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말라고 했다던데?
시놉시스가 꽤 두꺼웠는데, 그날 다 읽고 감정을 못 이겨 맥주 한잔 하고 새벽에 PD에게 전화했다고 하더라.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던 분들이 모두 흔쾌히 하겠다고 해주신 덕분에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화려한 캐스팅이 됐다.
▼ 박영규 씨가 이인임을 연기하는 걸 작가가 반대했다는 소문도 있다.
진지하게 반대했던 건 아니고 강 PD로부터 박영규 선생님이 이인임은 꼭 자신이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달이 아빠잖아. 이게 되게 심각한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웃으면 어떻게 해?”라고 물었더니 ‘해신’과 ‘다모’를 한번 보라고 하더라. ‘해신’을 찾아보니 진지한 연기도 잘하시더라. 내가 그전까지 드라마를 많이 보지 못해 박영규 선생님이 어떤 연기자인지 잘 몰랐던 거다.
▼ 이지란 역을 맡은 선동혁 씨가 이숙번의 이름을 듣고 “이숙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장면도 많이 화제가 됐다. 선동혁 씨가 ‘용의 눈물’에서 이숙번 역을 맡았던 게 연상됐기 때문이다.
선동혁 선생님이 말에서 세 번이나 떨어진 것을 비롯해 고생을 많이 하셨음에도 마지막까지 굉장히 성실하게 임해주셨다. 그래서 역이 정리돼가는 시점에 선물처럼 준비한 대사다. 그 대사를 쓰고 나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 “제 마음이다. 하고 싶으신 대로 표현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런 장면이 나왔다. 고맙게도 시청자들이 그걸 알아주시더라.
마흔에 드라마 작가로 전업, 다양한 경험이 성공 비결
드라마 ‘정도전’은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는 용기에서 시작됐다. 정현민 작가는 부산기계공고 졸업 후 경남 창원의 한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노조에서 노보를 만들다 기자가 되고 싶어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엔 노동전문 매체 기자로 활동하다 국회로 들어가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으로 10년간 일했다. 그 일이 매너리즘에 빠질 즈음 여의도 국회의사당 길 건너 금산빌딩에 있는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이 눈에 들어왔다. 물리적 거리는 횡단보도 하나지만, 마음의 거리는 현실과 이상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던 그곳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정도전이 마지막 회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며 “삼한의 백성들이여, 이제 다시 꿈을 꾸자…그대들에게 명하노라. 두려움을 떨쳐라. 냉소와 절망, 나태와 무기력을 혁파하고 저마다 가슴에 불가능한 꿈을 품어라. 그것이 바로 그대들의 진정한 대업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어깨에 드리워진 삶의 무게 때문에 혹자는 아플 수도 없는 나이라고 말하는 마흔에 꿈에 도전한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 남편이 안정적인 직업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선뜻 찬성하는 아내는 많지 않을 것 같은데, 아내의 반응은 어땠나?
사실 내가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의 정규직이었다면 그런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대단히 고용이 불안한 직업이다. 국회의원도 임기가 4년인데 보좌관은 말해 뭐하겠나. 아내에게 “2년만 해보고 안 되면 다시 국회로 돌아갈 테니 그동안만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했다. 의외로 아내는 기한을 두지 말고 하고 싶은 만큼 해보라고 하더라. 그때 참 고마웠다. 실제로는 드라마 교육원에 다니면서 바로 극본 공모에 당선되고 일이 들어왔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쪼들렸던 기간은 거의 없다. 2012년 KBS ‘TV소설-사랑아 사랑아’를 하면서부터는 보좌관 수입을 넘어섰다. 요즘은 아내가 많이 얼떨떨해한다. TV에 나오고 이런 인터뷰도 하는 남편이 어색한 모양이다.
▼ 마흔 살에 작가 수업을 시작해 그해 극본 공모전에 당선됐다. 원래 글쓰기에 재능이 있었나?
초등학교 때 아동문학가가 꿈이었다. 30대 초반에 노동 관련 콩트를 쓴 적이 있는데 그게 2003년 전태일문학상 최종심에 올랐다. 당시 심사를 맡았던 분이 심사평에 ‘본격 소설을 기대한다’고 써놓으셨기에 ‘기대된다니 한번 써볼까’ 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써봤지만 한 장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어떤 드라마 작가가 보좌관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쓰겠다며 취재 요청을 해오셨다.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해서 내 나름대로 친절하게 설명해드렸더니 “이야기에 힘이 있다”며 작가 공부를 해보라고 하셔서 시작은 했지만, 그때만 해도 작가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보좌관 일과 병행하느라 빠지는 날도 많았고, 거기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MT 두 번 조직화한 것, 그리고 뒤풀이에 빼놓지 않고 참석한 거다. 물론 공모전 때는 과로로 대상포진에 걸릴 정도로 열심히 했다.
▼ 교육원 1년 차가 공모전에 당선되는 건 법대 1학년생이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하던데, 남들보다 일찍 당선된 비결이 있었나?
당시 응모작이 ‘서경시 체육회 구조조정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작품이었는데, 소위 학원에서 가르치는 것과 다른 신선함이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남들과 다른 경험을 했고, 그것을 풀어내는 약간의 글재주가 있었던 게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적인 부분은 성룡 영화와 만화 ‘H2’의 작가 아다치 미츠루에게 빚을 졌다. 성룡 영화는 거짓말 안 보태고 3백 번 넘게 본 것도 있다. 요즘도 기분이 우울하면 ‘프로젝트A’ 속편을 돌려본다. 그런 것들이 내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다.
국회의원 보좌관에서 역사 드라마 작가로 변신한 정현민 작가. 그가 집필한 ‘정도전’은 마치 현실 정치판을 옮겨놓은 듯하다는 평을 얻었다.
지금이 고려 말과 비슷하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지금이 그때만큼 어지러운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부의 양극화라든지, 정치와 민생이 괴리되는 부분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 민본주의를 외치는 정도전에게서 노동운동을 한 작가의 모습이 보이는데.
부산기계공고 졸업 후 1987년 6월 공장에 취업했는데, 출근 첫날부터 어용노조 반대 투쟁을 했다. 그때는 작업복 입은 사람은 다 데모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거창하게 노동운동을 했다고는 할 수 없고 그냥 열심히 따라다녔다. 대학 가서 ‘데모는 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졸업할 때 마침 외환위기가 와서 취업할 데가 없었다. 딱 한 군데 오라는 곳이 있었는데 또 데모하는 곳이었다. 그 후 2000년 노동계 비례대표 의원 보좌관으로 국회에 들어갔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의원 보좌관도 지냈다. 시작할 땐 왼쪽이었는데 살다 보니 점점 오른쪽으로 가게 되더라. 재미있는 건 오른쪽으로 갈수록 월급봉투도 두꺼워진다는 거다. 몸은 오른쪽으로 가는데, 생각은 가운데로 수렴돼서 지금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
▼ 드라마 캐릭터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 이인임이었다. 기존 간신의 이미지에서 한발 나아가 때론 정적까지 껴안는 아주 현실적이고 노련한 정치인으로 그려졌다. 혹시 실제 정치인을 모델로 한 건가?
이인임이 나쁜 인물인 건 분명하지만 실제 사료들을 보면 친화력이 있었다고 나온다. 특정 정치인을 모델로 한 건 아니고, 다선 중진 의원들의 모습에서 집단적으로 빌려왔다. 정치 구력이 오래될수록 친절하고, 화를 낼 상황도 웃어넘기고… 노련하다. 그분들을 실제로 뵈면 ‘여기까지 거저 온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극 중 정도전이 정몽주에게 “대의의 반대편에는 불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대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보통 사람은 서로 주장이 엇갈릴 때 자기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그런 식으로 하면 지금처럼 되는 거다. 이인임은 수구 부패 세력이지만 적어도 상대를 인정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려고 했다. 누군가 인터넷에 ‘혁명은 정도전처럼, 정치는 이인임처럼, 인생은 하륜처럼’이라고 썼더라. 정치인들은 시청자들이 왜 이인임이라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드라마가 인기 있었던 만큼 실제로 작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정치인이 있을 것 같은데.
아는 사람들을 통해 그런 연락이 왔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안 만났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 정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별로 없다.
▼ 마지막 회에서 이성계가 왕좌를 노리는 이방원에게 “그 자리에 앉으면 모두가 적으로 보일 뿐”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부자지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인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거기에 집착할까?
사람들이 권력에 집착하는 이유는 유한하고 욕심만큼 주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 대기업 사장도 지내고 대학 총장도 한 어느 국회의원에게 어떤 게 가장 좋으냐고 물었더니 국회의원이라고 했다고 하더라. 지금은 예전에 비해 서비스 정신이 투철해지고 특권이 많이 사라져서 요즘 국회의원들이 들으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기 이전에 헌법기관으로서 여전히 권력의 본질은 남아 있다. 사실 권력이 나쁜 건 아니다. 정당의 목적 자체가 권력을 잡기 위한 것 아닌가. 중요한 것은 왜 그것을 잡으려고 하는지, 그것을 잡은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다. 권력 그 자체가 목표가 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 국회가 권력이 오가는 곳이라면 방송은 자본이 오가는 곳인데, 두 군데에 모두 몸담아본 소감은?
아직 방송계에 대해 이야기할 정도는 아니지만 짧게 경험해 본 바로는 정치는 온정적이고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방송은 냉정하고 철저하게 결과로 평가받는다. 정치는 안면이 중요한데, 여기선 안면이 통하지 않는다. 특히 작가와 주연배우는. PD가 실력도 없는 작가를 친하다고 영입하거나, 술 많이 사는 배우에게 주인공 역할을 줄 수는 없다.
▼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하다.
일단 두세 달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다. ‘사랑아 사랑아’를 집필할 때는 좀이 쑤셨지만 ‘가장 정신’으로 버텼는데, ‘정도전’ 때는 적응이 돼서 할 만했다. 그래도 재충전의 시간은 필요하다. 가을쯤 준비를 시작하면 내년 하반기엔 새로운 작품으로 시청자들을 찾아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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