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고은 시인의 대표 시 ‘그 꽃’을 낭송하는 마흔여섯 남자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 떨림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꽃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 앞에 섰다는 설렘도 묻어났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 이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시를 읊는 게 30년 만에 처음이라는 이 사람. 바로 재계 13위 신세계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용진 부회장이다.
지난 4월 8일 늦은 오후 서울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에 정 부회장이 등장했다. 그가 강연장에 나타난다는 소식은 학생들은 물론 재계와 언론으로부터도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4년 전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후 회사 밖 공개 석상에 서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고전, 읽고 살피고 들여다보라
이날의 행사명은 ‘지식향연’. ‘지식향연’은 신세계그룹이 스펙 쌓기 등 취업 준비에만 매달리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전국 대학을 순회하며 진행하는 콘서트형 강연 프로젝트로, 이날 연세대에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스트라이프 셔츠에 재킷, 노타이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정 부회장은 “기업의 경영자로서 비즈니스와 관련된 공식적인 자리나 임직원 앞에서 연설한 적은 많았지만 회사 밖으로 나와 많은 분들 앞에서 말하는 건 처음이라 긴장되고 흥분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강연 초반 경직된 분위기가 풀리지 않자 “이야기가 재미없다 싶으면 바로 카톡이나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재미없다’고 글을 올리는 거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해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마주한 학생들을 향해 부러움과 걱정의 목소리를 동시에 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음이지만 취업을 앞두고 스펙을 쌓느라 혹은 비싼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캠퍼스에 흩날리는 벚꽃의 낭만을 즐길 여유조차 없는 그들의 현실이 안타까워서였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저도 사회적 리더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저부터라도 ‘열심히’에 집중하던 우리 청년들에게 ‘제대로’ 사는 지표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입니다.”
그는 이날 학생들에게 ‘인문학’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사전적 의미로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영역, 또는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인 인문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학생들 앞에 선 것.
“그동안 어떻게 살면 되느냐에 집중해온 우리가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상대의 겉만 보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까지 읽으려는 게 인문학의 시작입니다.”
스펙 쌓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 사람들과 진심을 담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관심을 돌리라는, ‘조금 더 산’ 인생 선배의 진심 어린 충고였다.
정 부회장은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사고력을 갖추는 세 가지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첫 번째는 ‘고전 읽기’다.
“빠른 것에 익숙해 요약본으로 고전을 습득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레미제라블’을 읽는다면 줄거리에만 집중하지 말고 장 발장이 느꼈던 절박함과 죄책감, 주변 인물들의 감정까지 곱씹어보면서 삶과 인간에 대해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임직원들에게 항상 ‘행복한 인간’ 강조
두 번째는 ‘살피는 것’. 그가 고은 시인의 ‘그 꽃’을 학생들에게 들려준 것도 이 때문이었다. 앞만 보고 가다 보면 놓치는 게 너무 많고, 특히 꽃처럼 귀한 것들이 우리 인생에 널려 있는데 젊을 때 꼭 누려야 할 꽃과 열매를 보지 못한 채 그냥 지나치게 될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세 번째로 ‘들여다볼 것’을 강조하며 그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낭독했다.
‘저게 저절로 붉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그는 작품 소개를 마친 후 “대추의 생김새나 몇 개가 달렸느냐에 집중할 게 아니라 그 안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대추의 고뇌와 외로움, 과정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스펙이 우수한 사람이 우수한 인재’라는 등식이 성립됐지만 지금은 세상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원 면접을 볼 때마다 많은 지원자들이 자신의 주관적 소신을 말하지 않고 똑같은 대답만 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신세계는 앞으로 채용 방식을 많이 바꾸려고 합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통찰력을 갖추고 건강한 주관을 가진 차별화된 인재를 선별할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사회에 대한 관심, 역사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 개방적이고 열린 세계관을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아는 인재를 찾겠다는 설명이다.
정 부회장이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한 것은 사실 이날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그룹의 총수가 된 후 인간의 행복과 진정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주제로 회사 임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오고 있다.
직원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 지난 2010년부터 격월 주기로 저명인사를 초청하는 ‘지식콘서트’를 진행하고 있고, 백화점 문화센터의 인문학 강좌 수도 계속 늘려가고 있다.
신세계그룹 전략기획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지식향연’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권위를 내려놓고 소통하는 리더십은 정 부회장의 최대 장점”이라며 “사내에서도 신입사원들과 회사의 미래를 토론하는 ‘공감토크’를 진행하는 등 직원들과 수시로 격의 없는 만남의 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월 열린 ‘공감토크’에서 정 부회장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고 직원들에게 조언했다. 직원들이 행복해져야 가족과 주변 사람은 물론, 회사의 고객까지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 지난 1월 신세계그룹의 10년 청사진을 제시하는 자리에서도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나서 젊고 역동적인 경영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정 부회장은 당시, 2023년까지 31조4천억원을 투자해 그룹의 먹거리를 만들고 일자리 17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속초에서 열린 신입사원 대상 ‘신세계 퓨쳐 리더스 캠프’에서 정 부회장이 보여준 모습과 발언 또한 화제가 됐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신세계I·C,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 건설, 신세계푸드, 신세계사이먼, 신세계SVN 등 1년 차 사원 1백21명이 참가한 자리에서 그는 신입사원들의 멘토를 자처하며 “행복한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인재”라며 “꾸밈없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주변 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잘못했을 때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주문했다.
정 부회장은 개인적으로도 인문학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미국 브라운대로 유학 가기 전 서울대에 잠깐 재학했던 당시 그의 전공은 서양사학이었다. 어머니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어릴 때부터 “인문학과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은 훌륭한 경영자의 기본”이라고 강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어 단순한 감상 차원이 아니라 직접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클래식에 대한 관심을 그룹 차원의 사회 공헌 활동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문화가 있는 날’ 캠페인에 참여해 10억여원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한 것. 이에 따라 신세계그룹은 4월부터 신세계백화점 전국 6개점의 문화홀에서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클래식 콘서트를 무료로 열고 있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조예 남달라
특히 정 부회장은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 동참하면서 문화 소외 계층과 다문화 가족에게 클래식 공연 감상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더불어 직원들의 문화생활 향유를 위해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일에는 일찍 퇴근할 것을 권한다.
정 부회장은 인생의 지침서 역시 경영·경제학 전문 서적이 아닌 인문학 서적을 꼽는다. 바로 작고한 김태길 전 서울대 교수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책이다. 그는 연세대 강연에서도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인용해 행복의 조건으로 생활의 안정과 건강, 자아의 성장, 원만함, 공동체 안에서의 떳떳한 역할 등을 제시했다.
문학과 역사, 예술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자식 교육관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지금은 미국에 유학 중인 첫째(16)와 둘째(14)가 한국에서 공부하던 당시, 그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틈틈이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박물관과 공연장을 다니곤 했다. 또한 아이들과 역사를 주제로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기를 즐겼다. 어린 시절 이명희 회장에게 배운 대로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아이들이 문학과 역사, 예술에 대한 소양을 갖추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또한 그룹 총수가 아닌 아버지로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쌓은 돈독한 유대 관계는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아이들이 아버지를 필요로 하면 일 년 중 몇 번씩, 바쁜 와중에도 미국으로 곧장 날아간다”며 “그만큼 아이들과 친밀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고은 시인의 대표 시 ‘그 꽃’을 낭송하는 마흔여섯 남자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 떨림에서는 인생에서 가장 꽃 같은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 앞에 섰다는 설렘도 묻어났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 이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시를 읊는 게 30년 만에 처음이라는 이 사람. 바로 재계 13위 신세계그룹을 이끌고 있는 정용진 부회장이다.
지난 4월 8일 늦은 오후 서울 연세대학교 신촌 캠퍼스에 정 부회장이 등장했다. 그가 강연장에 나타난다는 소식은 학생들은 물론 재계와 언론으로부터도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4년 전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후 회사 밖 공개 석상에 서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고전, 읽고 살피고 들여다보라
이날의 행사명은 ‘지식향연’. ‘지식향연’은 신세계그룹이 스펙 쌓기 등 취업 준비에만 매달리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전국 대학을 순회하며 진행하는 콘서트형 강연 프로젝트로, 이날 연세대에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스트라이프 셔츠에 재킷, 노타이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정 부회장은 “기업의 경영자로서 비즈니스와 관련된 공식적인 자리나 임직원 앞에서 연설한 적은 많았지만 회사 밖으로 나와 많은 분들 앞에서 말하는 건 처음이라 긴장되고 흥분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강연 초반 경직된 분위기가 풀리지 않자 “이야기가 재미없다 싶으면 바로 카톡이나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재미없다’고 글을 올리는 거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해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마주한 학생들을 향해 부러움과 걱정의 목소리를 동시에 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젊음이지만 취업을 앞두고 스펙을 쌓느라 혹은 비싼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캠퍼스에 흩날리는 벚꽃의 낭만을 즐길 여유조차 없는 그들의 현실이 안타까워서였다.
“그 부분에 대해선 저도 사회적 리더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저부터라도 ‘열심히’에 집중하던 우리 청년들에게 ‘제대로’ 사는 지표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입니다.”
그는 이날 학생들에게 ‘인문학’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사전적 의미로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 영역, 또는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인 인문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학생들 앞에 선 것.
“그동안 어떻게 살면 되느냐에 집중해온 우리가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에 집중해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상대의 겉만 보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까지 읽으려는 게 인문학의 시작입니다.”
스펙 쌓기에만 집중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 사람들과 진심을 담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데 관심을 돌리라는, ‘조금 더 산’ 인생 선배의 진심 어린 충고였다.
정 부회장은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사고력을 갖추는 세 가지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첫 번째는 ‘고전 읽기’다.
“빠른 것에 익숙해 요약본으로 고전을 습득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레미제라블’을 읽는다면 줄거리에만 집중하지 말고 장 발장이 느꼈던 절박함과 죄책감, 주변 인물들의 감정까지 곱씹어보면서 삶과 인간에 대해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1 신입사원 연수에서 강의하는 모습. 2 2011년 어린이 문화 나눔 행사에 참가한 정용진 부회장. 그는 평소 “행복한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인재”라고 말해 왔다.
임직원들에게 항상 ‘행복한 인간’ 강조
정용진 부회장은 평소 고전을 즐겨 읽으며 임직원들에게도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 번째로 ‘들여다볼 것’을 강조하며 그는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낭독했다.
‘저게 저절로 붉어 질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그는 작품 소개를 마친 후 “대추의 생김새나 몇 개가 달렸느냐에 집중할 게 아니라 그 안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대추의 고뇌와 외로움, 과정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스펙이 우수한 사람이 우수한 인재’라는 등식이 성립됐지만 지금은 세상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사실 사원 면접을 볼 때마다 많은 지원자들이 자신의 주관적 소신을 말하지 않고 똑같은 대답만 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신세계는 앞으로 채용 방식을 많이 바꾸려고 합니다. 인문학적 소양을 통해 통찰력을 갖추고 건강한 주관을 가진 차별화된 인재를 선별할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사회에 대한 관심, 역사와 문화에 대한 호기심, 개방적이고 열린 세계관을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아는 인재를 찾겠다는 설명이다.
정 부회장이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한 것은 사실 이날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그룹의 총수가 된 후 인간의 행복과 진정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주제로 회사 임직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오고 있다.
직원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기 위해 지난 2010년부터 격월 주기로 저명인사를 초청하는 ‘지식콘서트’를 진행하고 있고, 백화점 문화센터의 인문학 강좌 수도 계속 늘려가고 있다.
신세계그룹 전략기획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지식향연’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권위를 내려놓고 소통하는 리더십은 정 부회장의 최대 장점”이라며 “사내에서도 신입사원들과 회사의 미래를 토론하는 ‘공감토크’를 진행하는 등 직원들과 수시로 격의 없는 만남의 자리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월 열린 ‘공감토크’에서 정 부회장은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먼저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고 직원들에게 조언했다. 직원들이 행복해져야 가족과 주변 사람은 물론, 회사의 고객까지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 지난 1월 신세계그룹의 10년 청사진을 제시하는 자리에서도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나서 젊고 역동적인 경영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정 부회장은 당시, 2023년까지 31조4천억원을 투자해 그룹의 먹거리를 만들고 일자리 17만 개를 창출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속초에서 열린 신입사원 대상 ‘신세계 퓨쳐 리더스 캠프’에서 정 부회장이 보여준 모습과 발언 또한 화제가 됐다.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 신세계I·C, 신세계인터내셔날, 신세계 건설, 신세계푸드, 신세계사이먼, 신세계SVN 등 1년 차 사원 1백21명이 참가한 자리에서 그는 신입사원들의 멘토를 자처하며 “행복한 사람이 가장 이상적인 인재”라며 “꾸밈없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주변 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잘못했을 때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주문했다.
정 부회장은 개인적으로도 인문학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미국 브라운대로 유학 가기 전 서울대에 잠깐 재학했던 당시 그의 전공은 서양사학이었다. 어머니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어릴 때부터 “인문학과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은 훌륭한 경영자의 기본”이라고 강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어 단순한 감상 차원이 아니라 직접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클래식에 대한 관심을 그룹 차원의 사회 공헌 활동으로 확대하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문화가 있는 날’ 캠페인에 참여해 10억여원의 예산을 지원하기로 한 것. 이에 따라 신세계그룹은 4월부터 신세계백화점 전국 6개점의 문화홀에서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클래식 콘서트를 무료로 열고 있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조예 남달라
특히 정 부회장은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 동참하면서 문화 소외 계층과 다문화 가족에게 클래식 공연 감상 우선권을 주기로 했다. 더불어 직원들의 문화생활 향유를 위해 문화가 있는 날 행사일에는 일찍 퇴근할 것을 권한다.
정 부회장은 인생의 지침서 역시 경영·경제학 전문 서적이 아닌 인문학 서적을 꼽는다. 바로 작고한 김태길 전 서울대 교수의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책이다. 그는 연세대 강연에서도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인용해 행복의 조건으로 생활의 안정과 건강, 자아의 성장, 원만함, 공동체 안에서의 떳떳한 역할 등을 제시했다.
문학과 역사, 예술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자식 교육관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지금은 미국에 유학 중인 첫째(16)와 둘째(14)가 한국에서 공부하던 당시, 그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틈틈이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박물관과 공연장을 다니곤 했다. 또한 아이들과 역사를 주제로 눈높이를 맞춰 대화하기를 즐겼다. 어린 시절 이명희 회장에게 배운 대로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아이들이 문학과 역사, 예술에 대한 소양을 갖추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또한 그룹 총수가 아닌 아버지로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쌓은 돈독한 유대 관계는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룹 관계자는 “아이들이 아버지를 필요로 하면 일 년 중 몇 번씩, 바쁜 와중에도 미국으로 곧장 날아간다”며 “그만큼 아이들과 친밀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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