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스틸러들은 대중에게 이름 석 자보다 캐릭터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 ‘스파이’의 야쿠르트 요원부터 ‘소원’의 영석이 엄마,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라 과장과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상속자들’의 명수 엄마까지 라미란(39)은 여러 모습으로 우릴 만났다. 이름을 들으면 “라미란…?” 하다가도 얼굴을 보면 “아, 그 연기 잘하는!”이 나오는.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로 시작해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만 30여 편, 드라마는 10여 편이다. 그전까지는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서 기본기를 다졌다. 그런 그가 제3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아동 성폭력 범죄를 다룬 영화 ‘소원’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이제 이름 뒤 물음표를 떼어낼 때도 됐다.
여우조연상 받고 울먹이며 한 수상 소감이 화제였다. “촬영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이 봐주시길 바란 영화가 ‘소원’이었어요. 지금 이 세상에 소원이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너희의 잘못이 아니다. 힘내’라고 전하고 싶어요.”(청룡영화상 수상소감 중)
‘소원’을 찍으며 늘 마음으로 하던 말이었다. 영화 ‘소원’ 얘기만 나오면 울컥울컥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무뎌질 때도 됐는데…. 소원이가 안됐다, 불쌍하다는 생각을 뛰어넘는 또 다른 감정이 나온다. 작품이 가진 힘이 남다른 것 같다고 느꼈다. 이준익 감독님은 촬영하며 한두 번이면 OK 사인을 낸다. 배우 입장에서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그냥 ‘당신이 여기 엄마로서 있으면 끝나는 거야. 그러면 다른 걸 할 필요가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
최근작(드라마 ‘수상한 가정부’ ‘맏이’ ‘막돼먹은 영애씨’ ‘장옥정, 사랑에 살다’, 영화 ‘스파이’ ‘소원’)만 봐도 한 사람이 연기했는데 같은 인물로 안 보인다. 작품이 다르니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스파이’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로 출연했다고 하는데, 정식 명칭은 야쿠르트 요원이다. 결혼을 안 했을지도 모르는데 자꾸 아줌마라고 해서(웃음). ‘막돼먹은 영애씨’는 작품 포맷도 다르고 다큐드라마라는 타이틀과 만들어진 캐릭터가 있어서 꾸며낼 게 별로 없었다. 배우는 항상 백지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인지라 하다 보면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늘 다르게 가는 게 쉽지는 않다. 보시는 분들이 색다르다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 늘 새로운 걸 원한다. 많은 배우가 전작과 비슷한 캐릭터를 제의받는 경우가 잦다. 일은 오래 했지만 ‘이거다’ 보여줄 만한 역이 없어서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어떤 캐릭터든 감사하게 할 생각이다.
영화 ‘피 끓는 청춘’과 ‘국제시장’으로도 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주연에 대한 갈증은 없나? 갈증… 언젠가 때가 오지 않겠나. 요즘은 주·조연의 격차가 줄어서 작품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니까. 배역이나 분량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정말 재밌는 작품은 잠깐 출연하더라도 하고 싶다. ‘국제시장’은 한 장면을 나와도 하고 싶어서 참여했다. ‘소원’은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읽자마자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폐나 안 끼치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결과도 좋았고 작품상을 받아서 더 많이 울었다.
영화 ‘소원’에 애정이 많았나 보다. 지금의 관객 동원 수도 나쁘지 않지만 수상 소감에서 말한 것처럼 1천만 명은 들길 바랐다. 큰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극복할지 배울 수 있고, 금방 잊히는 사건에 대해 보는 순간만이라도 한 번 더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영화다. 입소문이 나서 더 많은 분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고3 때 진로를 연기 쪽으로 바꿨다고 들었다. 그전까지 연기는 잘난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다 충족시키려면 종합예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늦어 버스 타고 가다 든 생각이다. 정말 몇 분 만에 진로를 바꾼 셈이지.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 5월쯤이었을 거다. 선생님께 엄청 맞았다. 이제 와서 뭐하는 짓이냐고. 무슨 용기인지 몰라도 연극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결과적으로 그 충동적 선택이 많은 팬에게 기쁨을 줬다. 그때 선택을 달리했다면 어땠을까? 다른 데 갔어도 동아리에서 연기했을 것 같다. 돌이켜 보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공연한 기억이 난다. 강원도 살 때 출렁다리 건너 옆 동네에 갔다가 흙더미 위에서 아이가 재롱을 피우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박수치는 장면을 봤다. 나도 해야겠다 싶어 아이들을 모아 대청마루에 커튼 달고 무대를 만들어 각설이 공연을 했다.
연출 겸 출연이었던 건가? 그렇다. 중·고등학교 때는 축제 때 오락부장을 맡았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 연기에 대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2005년 ‘친절한 금자씨’가 영화 데뷔작이다. 연극, 뮤지컬 무대에 설 때였는데 아이 낳고 2년을 쉬었다. 임신해서 몸무게가 14kg이나 늘었는데 태어난 아들은 4.2kg이었다. 딱 그만큼만 빠지고 아이 돌 때까지 그 살이 남아 있었다. 감옥처럼 집에만 있다 보니 다시 무대로 돌아가서 한 마디라도 벙끗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를 하고 나니 살 것 같았다. 그 덕에 자신감이 생겨 공연도 다시 시작했다. 공연하며 영화가 들어오면 닥치는 대로 했다.
연기하는 데 도움을 준 멘토가 있었나? 혹독한 선생님이나 멘토가 없다는 게 내겐 굉장한 독이다. 진로를 바꾸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일단 연기학원에 갔다. 독백을 해보래서 했더니 칭찬을 해주는 거다. 그러더니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엄청 잘하는 줄 알았다. 대학에서도 주변 사람들이 후한 점수를 주고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줬다. 아직까지 연기하며 혼나거나 욕먹지는 않았는데, 그게 독이라고 생각한다. 발전이 없는 것 같아서. ‘댄싱퀸’의 윤제균 감독은 나를 늘 후하게 평가해주는 사람이다. 짧은 장면인데도 찍어보고 양을 늘려주곤 해서 감사했다.
영화라는 음식을 만드는데 재료가 좋으니 많이 넣는 느낌일 것 같다. 인생에서 베스트와 워스트를 꼽아본다면. 좋았던 순간은 많았다. 나쁜 순간도 많았고. 하나를 꼽으라면 너무 어렵지만 어떤 작품이 아니라 지금 이 시기가 베스트 같다. 뭔가 의욕적으로 할 수 있고, 배우로서 살아 있는 느낌이라 바쁜 요즘이 행복하고 좋다.
카메라가 꺼지면 어떤 모습인가? 초등학생 아들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엄마로서는 아이를 방목, 거의 방치에 가까운 수준으로 놔둔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한다. 공부에 대해 부담 주는 편은 아니다. 덧셈 뺄셈 하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지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야 하는데 지금이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라고 해서 걱정이다.
아들이 엄마 말을 잘 듣나? 아직은 내 말이 먹힌다. 열 살인데 자기 말로는 사춘기란다. 친정어머니가 아들을 봐주는데, 요즘엔 집에 거의 못 들어갔다. 들어가서도 침대에서 시체놀이 하다 나오니 신경을 거의 못 썼다. 학교 알림장 보고 준비물 챙겨준 게 몇 달 전인 것 같다. 다행인지 아이가 굉장히 쿨해서 ‘왜 안 챙겨줬어’라고 하지 않고 자기도 안 챙겨간다(웃음).
남편이 매니저 출신이라 일하는 아내를 잘 이해할 것 같다. 일하는 건 뭐라고 하지 않고 이해해주고 격려도 많이 해준다. 이번에 시상식 가며 가족에게 말을 안 해서 다들 상 받는 줄 몰랐다. 친구나 지인들이 방송 보고 연락해올 때도 다들 자고 있었다. 다음 날 트로피 보여주면서 아들 옆구리 찔러 축하받고, 다시보기로 보여주면서 ‘엄마가 네 얘기도 했다’고 말해줬다. 남편은 문자로 ‘고생했네’라고 보내줬다.
슬럼프 극복 방법이 궁금하다.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하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날을 세우면 힘든 것 같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매사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원래 성격도 둥근 편인가 보다. 둥글기도 하고, 합리화를 잘한다. 안 좋은 게 있어도 ‘이래서 이랬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저렇게 살라 그래’ 하고 내버려둔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것도 그렇고, 몇 년 새 캠핑에 취미를 붙여 가서 넋 놓고 있는 걸 좋아한다. 낚시는 성격이 급해서 힘들더라. 주로 아들과 둘이 캠핑을 가는데, 요새는 엄마들 따라다니지 않으려고 한다.
워너비는 누군가? 일하는 선배와 선생님들이 모두 워너비다. 이순재, 윤여정 선생님처럼 나이 들어 오래 연기하는 모습도 멋지고, 김수미 선생님처럼 그 나이까지 에너지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연기 외에 배워보고 싶은 게 있나? 많다. 스포츠댄스를 잠깐 배웠는데 재밌어서 더 배우고 싶다. 요리나 그림, 공예도 배우고 싶고 인테리어도 배우고 싶다. 가구도 만들어보고 싶고, 바도 차려보고 싶고, 장사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겁이 많아서. 맨손으로 뭔가 하는 걸 좋아한다. 얼마 전에 만난 기자는 내게 ‘제목 카피를 잘 뽑는다’고 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뭐가 좋을까? 음…, 오늘의 테마는 포근함과 따뜻함? 영화 ‘소원’ 관련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요란하지 않은, 겸허하고 따뜻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니트를 입은 것이다(웃음).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잡지를 즐겨 보는데, 독자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요즘 영화가 관객 1천만 명을 넘기는 게 중장년층이 많이 봐서 그렇다고 하더라. 그런 문화 활동도 활발히 했으면 좋겠다. 자식,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시대는 지났으니, 자신의 삶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여보기 바란다. 다이어트 너무 하지 말고 건강을 챙겼으면 좋겠다.
■ 장소협찬·충정각(02-313-0424)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로 시작해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만 30여 편, 드라마는 10여 편이다. 그전까지는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서 기본기를 다졌다. 그런 그가 제3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아동 성폭력 범죄를 다룬 영화 ‘소원’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이제 이름 뒤 물음표를 떼어낼 때도 됐다.
여우조연상 받고 울먹이며 한 수상 소감이 화제였다. “촬영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이 봐주시길 바란 영화가 ‘소원’이었어요. 지금 이 세상에 소원이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너희의 잘못이 아니다. 힘내’라고 전하고 싶어요.”(청룡영화상 수상소감 중)
‘소원’을 찍으며 늘 마음으로 하던 말이었다. 영화 ‘소원’ 얘기만 나오면 울컥울컥한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무뎌질 때도 됐는데…. 소원이가 안됐다, 불쌍하다는 생각을 뛰어넘는 또 다른 감정이 나온다. 작품이 가진 힘이 남다른 것 같다고 느꼈다. 이준익 감독님은 촬영하며 한두 번이면 OK 사인을 낸다. 배우 입장에서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그냥 ‘당신이 여기 엄마로서 있으면 끝나는 거야. 그러면 다른 걸 할 필요가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
최근작(드라마 ‘수상한 가정부’ ‘맏이’ ‘막돼먹은 영애씨’ ‘장옥정, 사랑에 살다’, 영화 ‘스파이’ ‘소원’)만 봐도 한 사람이 연기했는데 같은 인물로 안 보인다. 작품이 다르니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스파이’에서 야쿠르트 아줌마로 출연했다고 하는데, 정식 명칭은 야쿠르트 요원이다. 결혼을 안 했을지도 모르는데 자꾸 아줌마라고 해서(웃음). ‘막돼먹은 영애씨’는 작품 포맷도 다르고 다큐드라마라는 타이틀과 만들어진 캐릭터가 있어서 꾸며낼 게 별로 없었다. 배우는 항상 백지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인지라 하다 보면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늘 다르게 가는 게 쉽지는 않다. 보시는 분들이 색다르다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나? 늘 새로운 걸 원한다. 많은 배우가 전작과 비슷한 캐릭터를 제의받는 경우가 잦다. 일은 오래 했지만 ‘이거다’ 보여줄 만한 역이 없어서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어떤 캐릭터든 감사하게 할 생각이다.
영화 ‘피 끓는 청춘’과 ‘국제시장’으로도 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주연에 대한 갈증은 없나? 갈증… 언젠가 때가 오지 않겠나. 요즘은 주·조연의 격차가 줄어서 작품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니까. 배역이나 분량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정말 재밌는 작품은 잠깐 출연하더라도 하고 싶다. ‘국제시장’은 한 장면을 나와도 하고 싶어서 참여했다. ‘소원’은 분량이 많지 않았지만 읽자마자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폐나 안 끼치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결과도 좋았고 작품상을 받아서 더 많이 울었다.
영화 ‘소원’에 애정이 많았나 보다. 지금의 관객 동원 수도 나쁘지 않지만 수상 소감에서 말한 것처럼 1천만 명은 들길 바랐다. 큰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극복할지 배울 수 있고, 금방 잊히는 사건에 대해 보는 순간만이라도 한 번 더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영화다. 입소문이 나서 더 많은 분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고3 때 진로를 연기 쪽으로 바꿨다고 들었다. 그전까지 연기는 잘난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다 충족시키려면 종합예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 늦어 버스 타고 가다 든 생각이다. 정말 몇 분 만에 진로를 바꾼 셈이지. 그때가 고등학교 3학년 5월쯤이었을 거다. 선생님께 엄청 맞았다. 이제 와서 뭐하는 짓이냐고. 무슨 용기인지 몰라도 연극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결과적으로 그 충동적 선택이 많은 팬에게 기쁨을 줬다. 그때 선택을 달리했다면 어땠을까? 다른 데 갔어도 동아리에서 연기했을 것 같다. 돌이켜 보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공연한 기억이 난다. 강원도 살 때 출렁다리 건너 옆 동네에 갔다가 흙더미 위에서 아이가 재롱을 피우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박수치는 장면을 봤다. 나도 해야겠다 싶어 아이들을 모아 대청마루에 커튼 달고 무대를 만들어 각설이 공연을 했다.
연출 겸 출연이었던 건가? 그렇다. 중·고등학교 때는 축제 때 오락부장을 맡았다. 아마 나도 모르는 사이 연기에 대한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2005년 ‘친절한 금자씨’가 영화 데뷔작이다. 연극, 뮤지컬 무대에 설 때였는데 아이 낳고 2년을 쉬었다. 임신해서 몸무게가 14kg이나 늘었는데 태어난 아들은 4.2kg이었다. 딱 그만큼만 빠지고 아이 돌 때까지 그 살이 남아 있었다. 감옥처럼 집에만 있다 보니 다시 무대로 돌아가서 한 마디라도 벙끗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오히려 영화를 하고 나니 살 것 같았다. 그 덕에 자신감이 생겨 공연도 다시 시작했다. 공연하며 영화가 들어오면 닥치는 대로 했다.
연기하는 데 도움을 준 멘토가 있었나? 혹독한 선생님이나 멘토가 없다는 게 내겐 굉장한 독이다. 진로를 바꾸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 일단 연기학원에 갔다. 독백을 해보래서 했더니 칭찬을 해주는 거다. 그러더니 다른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엄청 잘하는 줄 알았다. 대학에서도 주변 사람들이 후한 점수를 주고 엉덩이를 토닥토닥 해줬다. 아직까지 연기하며 혼나거나 욕먹지는 않았는데, 그게 독이라고 생각한다. 발전이 없는 것 같아서. ‘댄싱퀸’의 윤제균 감독은 나를 늘 후하게 평가해주는 사람이다. 짧은 장면인데도 찍어보고 양을 늘려주곤 해서 감사했다.
영화라는 음식을 만드는데 재료가 좋으니 많이 넣는 느낌일 것 같다. 인생에서 베스트와 워스트를 꼽아본다면. 좋았던 순간은 많았다. 나쁜 순간도 많았고. 하나를 꼽으라면 너무 어렵지만 어떤 작품이 아니라 지금 이 시기가 베스트 같다. 뭔가 의욕적으로 할 수 있고, 배우로서 살아 있는 느낌이라 바쁜 요즘이 행복하고 좋다.
카메라가 꺼지면 어떤 모습인가? 초등학생 아들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엄마로서는 아이를 방목, 거의 방치에 가까운 수준으로 놔둔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하고 싶으면 하라고 한다. 공부에 대해 부담 주는 편은 아니다. 덧셈 뺄셈 하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지 생각하는 힘을 길러줘야 하는데 지금이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라고 해서 걱정이다.
아들이 엄마 말을 잘 듣나? 아직은 내 말이 먹힌다. 열 살인데 자기 말로는 사춘기란다. 친정어머니가 아들을 봐주는데, 요즘엔 집에 거의 못 들어갔다. 들어가서도 침대에서 시체놀이 하다 나오니 신경을 거의 못 썼다. 학교 알림장 보고 준비물 챙겨준 게 몇 달 전인 것 같다. 다행인지 아이가 굉장히 쿨해서 ‘왜 안 챙겨줬어’라고 하지 않고 자기도 안 챙겨간다(웃음).
남편이 매니저 출신이라 일하는 아내를 잘 이해할 것 같다. 일하는 건 뭐라고 하지 않고 이해해주고 격려도 많이 해준다. 이번에 시상식 가며 가족에게 말을 안 해서 다들 상 받는 줄 몰랐다. 친구나 지인들이 방송 보고 연락해올 때도 다들 자고 있었다. 다음 날 트로피 보여주면서 아들 옆구리 찔러 축하받고, 다시보기로 보여주면서 ‘엄마가 네 얘기도 했다’고 말해줬다. 남편은 문자로 ‘고생했네’라고 보내줬다.
슬럼프 극복 방법이 궁금하다. 스트레스 해소는 어떻게 하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날을 세우면 힘든 것 같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매사 좋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원래 성격도 둥근 편인가 보다. 둥글기도 하고, 합리화를 잘한다. 안 좋은 게 있어도 ‘이래서 이랬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저렇게 살라 그래’ 하고 내버려둔다. 그래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것도 그렇고, 몇 년 새 캠핑에 취미를 붙여 가서 넋 놓고 있는 걸 좋아한다. 낚시는 성격이 급해서 힘들더라. 주로 아들과 둘이 캠핑을 가는데, 요새는 엄마들 따라다니지 않으려고 한다.
워너비는 누군가? 일하는 선배와 선생님들이 모두 워너비다. 이순재, 윤여정 선생님처럼 나이 들어 오래 연기하는 모습도 멋지고, 김수미 선생님처럼 그 나이까지 에너지를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연기 외에 배워보고 싶은 게 있나? 많다. 스포츠댄스를 잠깐 배웠는데 재밌어서 더 배우고 싶다. 요리나 그림, 공예도 배우고 싶고 인테리어도 배우고 싶다. 가구도 만들어보고 싶고, 바도 차려보고 싶고, 장사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건 많은데 겁이 많아서. 맨손으로 뭔가 하는 걸 좋아한다. 얼마 전에 만난 기자는 내게 ‘제목 카피를 잘 뽑는다’고 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뭐가 좋을까? 음…, 오늘의 테마는 포근함과 따뜻함? 영화 ‘소원’ 관련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요란하지 않은, 겸허하고 따뜻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런 의미에서 니트를 입은 것이다(웃음).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잡지를 즐겨 보는데, 독자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요즘 영화가 관객 1천만 명을 넘기는 게 중장년층이 많이 봐서 그렇다고 하더라. 그런 문화 활동도 활발히 했으면 좋겠다. 자식, 남편만 바라보고 사는 시대는 지났으니, 자신의 삶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여보기 바란다. 다이어트 너무 하지 말고 건강을 챙겼으면 좋겠다.
■ 장소협찬·충정각(02-313-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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