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성큼 다가온 3월 초. 강남 도산사거리 근방에 위치한 치과 병원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이미 시작됐지만 이한나 원장은 흰 가운에 하늘색 담요를 어깨에 걸치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작은 체구에 하얀 얼굴, 나이보다 앳된 인상에 머리는 아무렇게나 뒤로 묶었지만 그조차도 세련돼 보였다. ‘치과계의 이효리’라던 기자들의 표현이 괜한 말은 아니었다.
사실 그가 기자를 반길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들의 결혼 소식이 알려지면서 병원을 찾는 기자도 많았을 터였고, 악성 댓글에도 많이 시달렸으니까. 그래서일까, 기자를 만난 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애써 웃어 보이며 정중히 인터뷰를 거절했다.
“제가 일전에 방송 출연을 한 적은 있었지만 결혼 후 언론에 노출될수록 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성민 씨가 걱정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갑작스럽게 결혼해서 이런저런 오해를 하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물론 좋게 봐주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으니까 남편은 제가 상처받을까봐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막상 그렇게 입을 뗐지만 더는 기자를 물리치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그들의 만남부터 결혼까지의 이야기를 몽땅 들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인터뷰가 끝날 즈음에는 얼굴을 마주한 기자에게 매몰차게 굴 수 없었던 그의 무던한 성품이 느껴졌다.
“제가 사람들에게 상처받을까봐 겁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그것이 성민 씨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봐 그게 걱정일 뿐이죠.”
그의 걱정은 남편을 향한 것이었다. 이제 막 다시 일어서려는 남편에게 힘이 돼주고 싶은 아내의 마음. 가끔은 새 신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가혹한 고민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한 남자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행복한 기운이 물씬 풍겼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의 사랑에 진솔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바이크 타는 남자, 흰 가운 입은 여자
김성민은 3월 11일 tvN ‘현장토크쇼 TAXI’에 출연해 마약 파문 후 지난 2년간 일어난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나쁜 짓이어서 해봤던 것 같다”며 “무조건 내가 다 잘못한 것이다”라던 김성민. 그런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던, 힘을 내라고 용기를 주었던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도 전했다. 무뚝뚝해 보이는 이경규가 면회를 와서는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는 이야기와 출소 후 개그맨 이윤석이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비로 건넨 수표가 알고 보니 1백만원짜리였다는 이야기. 골프채, 카메라, 오토바이 등 돈 되는 물건을 다 팔고 드라마 ‘인어아가씨’로 MBC 연기대상을 받을 때 부상이었던 금까지 팔아야 했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지난해 지인의 도움으로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대형 마트 내에 작은 점포를 열고 나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용기를 조금씩 되찾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연극도 시작하고 뮤지컬 무대에도 설 수 있었다. 지난해 말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에 출연한 것이 ‘인어아가씨’ ‘남자의 자격’에 이어 자신의 인생에서 만난 세 번째 기회라고 생각해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리고 ‘결혼’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조차 알리지 않고 결혼식을 치른 것이 죄송하지만 ‘따뜻한 축하를 받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을 알렸다. 김성민은 이한나 원장과 처음 만난 날을 11월 25일이라고 정확히 기억했다. 골프 모임에 참석했는데 마침 이 원장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그 골프 모임을 후원했다. 급하게 찍어낸 듯한 인쇄물에 ‘미백’이라고 크게 쓰여 있는 것을 보고 그 병원을 찾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한나 원장 또한 그와의 첫 만남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당시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촬영이 한창이던 때. 김성민은 극 중 바이크를 즐겨 타던 남도현처럼 가죽 재킷을 입고 병원을 찾아왔다.
“썩은 치아도 하나 없고 워낙 건강해서 치료할 게 없더라고요. 스케일링 같은 간단한 치료만 했어요. 고대에는 치아 건강만으로 노예 등급을 따졌다던데, 그렇게 치면 성민 씨는 최상급이라며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치료비를 안 받겠다고 했더니 밥을 사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성민 씨에게 저희 병원을 소개해준 사람이 저와는 오랜 인연이 있던 친구라서 같이 밥 한번 먹자고 했죠. 그때까지만 해도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가끔 연예인들이 찾아오면 곧잘 식사를 하곤 했거든요.”
김성민은 ‘TAXI’에서 이한나 원장과 처음 식사를 하게 된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르지 않는 게 싫어서 밥을 사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이한나 원장도 몇몇 연예인들과 그러했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약속 자리에 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인연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법. 식사 후 간단하게 이어진 술자리에서 이한나 원장은 김성민에게 다른 연예인들과의 만남에서 느끼지 못한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자신의 감정이 단순히 ‘아, 친구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정도인 줄로만 알았단다.
“막상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참 좋은 사람이구나 싶더라고요. 나름대로 상처가 많은데도 자신에게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는 오히려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솔직히 호감을 느꼈지만 그것이 연인이되거나 결혼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죠. 그렇게 식사를 한 뒤 자연스럽게 연락을 주고받게 됐어요.”
강남에 위치한 이한나 원장의 병원. 오랜기간 병원을 운영해 오면서 욕심내지 않고 치료에 전념하는 것만큼 병원 운영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는 진리를 배웠단다.
‘이 정도 나이면 선수가 아니라 감독이다’던 김성민의 말처럼 이한나 원장은 지금 생각해보면 김성민이 고수였던 것 같다고 웃는다. 서로 데면데면하던 환자와 의사가 연인으로 발전하기까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풋풋하고 아름다운 두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치과 의사와 연예인의 만남이라 의외라고 했더니 그는 “직업을 떠나 한 여자일 뿐이다”라며 수줍게 웃었다.
“지금 물어보니까 성민 씨는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애인 사이라고 말하기엔 어색하고, 그렇다고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시점에서 어느 날 평소 자주 가던 한의원에 다녀왔다며 전화를 걸어 왔더라고요. 그 한의원 원장님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년에는 결혼을 할 거다’라고 했대요. 그 순간 ‘왜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지?’라는 생각도 들고 ‘나는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럼 저는 어떡해요?’라고 물었죠. 성민 씨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원장님이랑 하나 보죠’ 하더라고요.”
그것은 서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랑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는 남들처럼 연극도 보고 뮤지컬도 관람하며 데이트를 했다. 김성민은 드라마 촬영에 뮤지컬 연습까지 2년 만에 찾아온 분주함 속에서 하루에 두세 시간밖에 못 자도 짬을 내 그를 만났다.
“하루는 성민 씨가 자정이 넘은 시간에 촬영이 끝나 집으로 가는 길인데, 잠시 술친구를 해줄 수 없느냐고 하더라고요. 한두 잔만 같이 마셔주면 된대요. 이미 화장도 지우고 잘 준비를 마친 상태라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모자 눌러쓰고 나오래요(웃음). 술을 몇 잔 주고받았는데, ‘평생 이렇게 술친구 해줄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나중에 ‘나는 제대로 프러포즈도 못 받았다’고 했더니 그때 그게 프러포즈였대요(웃음).”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 혼인신고는 1월에
그다음은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양가 어머니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주었다. 만난 지 석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강남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지인 40여 명만 참석한 가운데 치른 작은 결혼식. 예단, 예물, 혼수, 웨딩 촬영 같은 절차를 생략하고 드레스에 턱시도 입고 식만 올렸다.
“결혼식을 준비할 당시에는 성민 씨가 초대할 사람이 많을 테니 요란하지는 않아도 보통의 결혼식은 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예식장을 알아봤죠. 그런데 성민 씨가 무리하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아예 생략할까도 했는데, 우리가 정말 행복할 수 있는 결혼식을 하자고 했어요. 막상 작은 결혼식을 해보니까 너무 좋았어요. 참석한 사람들 모두의 마음이 느껴졌거든요. 하객 한 사람 한 사람 건배도 하고 인사도 나누면서 진짜 파티 같은 결혼식을 했어요.”
결혼반지도 맞추지 않기로 단단히 약속했는데, 정작 김성민이 결혼식 직전 반지를 내밀며 깜짝 프러포즈를 했단다. 결혼식이 시작되는 줄 알고 입장하는데, 난데없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무릎을 꿇고 ‘나랑 결혼해줄래?’라고 하던 남자.
이 원장에게 혹시나 두렵지는 않았느냐고 물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봤을 때, 결혼을 하기에는 불안한 부분이 많았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에게서 달달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게 참 신기해요. 겉으로 봤을 때는 그런 것들이 걱정될 법도 한데, 그런데도 다 좋았어요. 특히 어머님이 너무 좋아요. 누님 두 분이 계시는데, 누님들도 다 좋아요. 결혼을 했으니 ‘억지로라도 좋아해야지’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마음이 가고 좋아지는 거예요. 자꾸 시어머니를 ‘엄마, 엄마’ 하며 부르게 되고, 그게 너무 신기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잠시 말을 멈춘 그의 눈가는 행복과 감동으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김성민은 올해 나이 마흔한 살, 이한나 원장은 그보다 네 살이 더 많다. 그런데도 최근에 한 남자를 만나고 결혼하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신기하고 행복할 뿐이라고 했다. 사랑에 나이 제한은 없겠지만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을 때가 오듯이, 더는 ‘운명 같은 사랑’을 믿지 않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 시기를 이미 훌쩍 넘겼다고 생각했을 때 ‘모든 것은 아무래도 좋아’라고 느껴지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일 것이다. 어지간히 급했는지 두 사람은 결혼식을 하기도 전인 1월에 일찌감치 혼인신고까지 마쳤단다.
“가장 신기한 것은 제가 지치지 않는다는 거예요(웃음). 치과 일이라는 것이 의외로 중노동이라 퇴근하면 녹초가 되거든요. 그래서 집안일을 거의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결혼 후에는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아침을 만들고 퇴근하면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게 그렇게 신날 수가 없어요. 매끼 색다른 음식을 준비해주고 싶고, 또 식사할 때마다 칭찬해주니까 힘도 나고요. 물론 신혼이니까 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웃음) 저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면 이렇게 행복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껴요.”
생화를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꽃을 사다 꽃병에 꽂았을 때, 남편이 꽃을 보고 좋아할 생각에 기분부터 좋아지는 아내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에 따라 신접살림은 전망 좋은 고층 아파트를 골랐다. 아내가 정성껏 차린 식탁에 앉아 ‘나는 호텔에 사는 것 같다’며 껄껄 웃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잘생겼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웃음). 소년처럼 맑은 모습이 좋았는데, 더 좋았던 것은 으스대지 않으면서도 비굴해 보이지도 않는다는 거였죠. 그게 가장 큰 매력이었어요. 겉보기보다 생각이 깊은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장난기 많고 가벼운 느낌과 신중한 태도가 공존하거든요. 결혼하고 나서 최근 들어 종종 ‘아, 이 사람이 참 잘생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해요. 보면 볼수록 잘생겼어요(웃음).”
‘남자의 자격’ 출연 당시 그의 별명은 ‘김봉창’이었다. 대뜸 엉뚱한 말을 하곤 했던 그의 유쾌한 성격에서 비롯된 수식어였다. 그 재미있는 남자와 사는 여자는 ‘TV를 옆에 끼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정말 재미있어요. 저는 ‘남자의 자격’을 못 봤는데, 주변에서는 그렇게 재미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곁에서 지켜보면 그 사람이 가진 ‘끼’라는 것은 일부러 쥐어짜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서 배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도 덩달아 리액션을 해주고 싶은데, 그런 점에서는 정말 젬병이에요. 재미있는 말을 들어도 한참 지나서야 ‘아, 그런 거야?’ 하며 웃곤 하거든요. 이제는 성민 씨가 저를 개발시켜야 한다고 말하곤 해요(웃음).”
남편의 애교 많은 성격과 재치 있는 언변이 아내를 즐겁게 해주지만 그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제가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었는데, 성민 씨 앞에서는 조금만 힘들거나 아파도 투정을 부리게 되더라고요. 이 사람에게만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도 될 것 같고, 이 사람 또한 나의 모든 것을 다 끌어안아 감싸줄 거라는 믿음이 있거든요. 그런데 성민 씨는 자신이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아요. 어쩌다가 제가 눈치라도 채면 괜찮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안심시키려고 노력하죠. 그래도 표정이나 말투로 어떤 상황인지 금방 알 수 있어요. 제게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상황에 맞게 맞춰주려고 하죠.”
나이는 어리지만 전혀 어리다고 느껴지지 않는 듬직한 남편이라고 했다. 화장이나 옷차림까지 센스 있게 챙겨주고 때론 여자 친구처럼 수다도 함께 떨어주는 자상한 남편이다.
결혼한 날 처음 들어본 ‘사랑해’란 말
만난 지 3개월 만에 웨딩마치를 울린 김성민·이한나 부부. 전문 사진작가가 아닌 스마트 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예쁘게 나온 사진이 없다고 했다.
“결혼 후 성민 씨의 생활 패턴도 많이 변했어요. 밤 늦게 자는 버릇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10시만 돼도 졸려서 눈을 껌벅거리고 아침엔 6시에 일어나서 저와 함께 집을 나서죠. 저는 병원으로, 성민 씨는 운동하러 가거든요. 얼굴도 많이 부드러워지고 밝아졌어요.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도 많이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마음에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으면 얼굴에 드러나는 건가 봐요.”
결혼하기 전에는 한 번도 ‘사랑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던 남자였다. 사랑한다는 말이 쑥스러워 ‘ㅅ ㄹ ㅎ ㅇ’라고 먼저 문자를 보내봤지만 ‘사랑한다’는 대답 대신 ‘행복하다’는 말만 돌아왔단다. ‘예쁘다’ ‘귀엽다’는 말은 곰살궂게 잘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해 서운했는데, 신혼 첫날밤에 갑작스럽게 ‘사랑한다’는 말을 가슴 설레게 건넨 멋진 남자였다.
“주변 사람들이 성민 씨를 참 좋아해요. 옆에서 지켜보면 그럴 만한 이유가 느껴지거든요. 좋아해주는 이유가 있구나, 사랑받는 이유가 있구나 하고요. 보면 볼수록 멋있는 사람이에요. 사랑받을 매력이 충분한 사람이죠.”
한 남자를 사랑하는 한 여자의 두근거리는 마음이 전해져, 덩달아 가슴이 콩닥거렸다. 불륜을 저지르는 파렴치한 남편 역이나 ‘김봉창’의 이미지에 젖어 있던 기자에게도 김성민이라는 남자가 새삼 다르게 느껴졌을 정도니까.
녹음기를 끄고,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이한나 원장은 인터뷰 내내 가장 하고 싶었을 마지막 말을 건넸다.
“누구보다 그때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 해요. 다시는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나를 위해서라도 그러지 못할 거예요. 성민 씨는 나 혼자 사랑하기에는 아까운 남자예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는 차 한잔 하러 놀러 오라고 했다. 아니면 와인이라도 한 잔 하자고 했다. 집으로 놀러 오라고, 자기네 사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고, 다름 아닌 기자를 초대하고 있었다.
그 말이 빈말로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 약속이 쉽게 성사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김성민이 대중 앞에서 예전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을 때, 그의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을 때, 기자는 와인 한 병 사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의 집 문을 두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부부가 완벽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까. 그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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