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원에서 아이들을 씻겨놓으면 얼굴이 그렇게 말갛고 뽀얄 수가 없어요. 또 아이들과 손을 잡고 산책을 나가면 정말 좋아해요. 목욕하고 산책하는 사소한 일이지만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 부러울 게 없더라고요. ‘아! 좋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죠(웃음).”
순간 예쁜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김경란(35) 아나운서의 얼굴은 행복으로 가득 찼다. 슬픈 이야기도 아니건만 코끝이 찡하다. 지난 8월 ‘김경란 아나운서, 봉사 활동 전념 위해 퇴사 결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접했을 때, ‘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가 봉사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프로그램 촬영을 위해 대지진으로 시름하던 중남미 아이티를 방문했을 때라고 한다.
최근 들어 많은 유명인들이 빈민국으로 봉사활동을 자주 떠난다. 척박한 땅에서 고통받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보면 봉사에 참여한 사람도 울고, 시청자도 운다. 그러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모두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 가난한 이들의 고통은 또 잊고 산다. 하지만 김경란 아나운서는 달랐다. 아이티 방문 이후 그는 인생의 큰 흐름을 바꿨다.
2001년에 KBS 입사 이래 ‘9시 뉴스’ ‘뉴스광장’ ‘뉴스라인’ 등의 앵커로 활약하는 동시에 ‘스펀지’ ‘사랑의 리퀘스트’ ‘생생정보통’ 진행자로 많은 사랑을 받은 김경란 아나운서. 그가 사퇴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가슴 벅찬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다.
행복 찾아 떠난 용기 있는 선택
“누가 제 새끼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잡는 거예요. 내려다보니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한 조그마한 아이였어요. 처음에는 그렇게 부끄러워하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두 팔에 대롱대롱 매달리며 즐거워하죠. 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면 그 나라도 튼튼하게 지킬 수 있겠구나. 더 나아가 지구도 평화롭게 만들 수 있겠구나.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한 아이의 절박한 눈빛이 행복한 웃음으로 바뀔 때 희망과 미래를 봤던 것 같아요.”
한 개인이 지구의 평화를 이뤄낼 수는 없지만 전쟁과 자연재해, 기아에 허덕이는 한 아이의 행복은 찾아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작은 행복의 불씨가 있어야만 훗날의 세계 평화도 가능하지 않은가. 김경란 아나운서는 아이티를 다녀온 뒤 한시도 그들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작은 행동 하나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찼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동과 행복을 느꼈다.
“아이티에 다녀온 뒤 ‘만약 일주일 후 죽는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보람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라는 자문을 계속 했어요. 대답은 ‘아니다’였죠. 지금까지 후회가 인간이 느끼는 가장 슬픈 감정이라 생각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후회할 일이 참 많았더라고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했을 때는 전혀 후회가 남지 않는다는 걸 새삼 깨달았어요. 지나가는 할머니의 무거운 짐을 들어드리거나, 길을 몰라 헤매던 외국인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것일 때도 말이죠. 영아원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요. 대단한 일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나로 인해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게 나 자신에게도 온전한 기쁨으로 다가왔어요.”
현재 아동복지단체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그는 휴가 때면 어김없이 해외 봉사활동을 했다. 그동안 그가 다녀온 곳은 캄보디아와 스리랑카. 자신의 현실에 맞춰 최선을 다해 봉사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다.
“매일, 매주 진행해야 하는 방송이 있으니까 봉사활동을 위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누군가에게 제 자리를 맡기고 갈 때도 있었지만 결국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거라 마음이 편치 않았죠. 직장인으로서 회사에 얽매인 게 많다 보니 마음은 있지만 봉사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했어요.”
결국 그는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봉사에 전념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사표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KBS 아나운서 타이틀을 얻고자 노력했던 순간들, 12년간 방송을 통해 맛본 감동의 순간들을 하루아침에 외면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그전까지 프리랜서로 전향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그는 수많은 이유들로 자신을 회사원으로 묶어뒀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 가지, ‘봉사하는 삶’이 그의 고민에 마침표를 찍었다.
“아나운서가 되기 전에는 아나운서가 되는 게 꿈이었고, 아나운서가 된 뒤에는 꿈을 이뤘으니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앞만 보고 10년을 달려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꿈이 멈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새로운 꿈을 꿔야하나 고민하던 순간 봉사라는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고, 오랜만에 다시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어요. 그 자체가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결국 더 늦기 전에 가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2년의 고민이 무색할 만큼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세상 밖으로 걸어나왔다. 회사를 그만둬서 가장 좋은 점은 직장 상사와 동료들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놓고 봉사활동 현장에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누군가 만들어놓은 자리에 있었다면, 이제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더욱 보람을 느낀다.
“회사에 사표를 내기 얼마 전 ‘양준혁야구재단’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식구들과 함께 전남 강진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태풍으로 반파된 집을 철거하고, 비닐하우스를 다시 세우면서 주민들에게 힘을 보탰죠. 봉사활동을 떠나는 차 안에서 ‘돌아오면 팔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하자’ 하고 결심했었는데,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까 정말 손끝 하나 움직일 힘이 없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하던지 저절로 웃음이 나왔죠.”
조만간 그는 아프리카 남수단으로 봉사활동을 떠날 예정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는 그는 봉사에 전념하면서 매일 들뜬 마음으로 아침을 맞는다고 한다.
“제가 경험한 행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이렇게 했더니 행복하더라’ 하고요. 봉사활동을 하러 가더라도 시간 쓰고 돈 들이는 걸로 끝내고 싶진 않아요. 봉사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전달하고 싶어요. ‘사랑의 리퀘스트’가 단돈 천원으로 기적을 만들어내듯, 저의 작은 실천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이 된다면 또 다른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따뜻한 마음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시작이 어렵죠. 그럼에도 많은 이들에게 ‘조금만 움직여주세요’ 하고 말하고 싶어요.”
뉴스와 예능 넘나든 전천후 아나운서
그의 퇴사 소식이 전해질 즈음, 방송가에서는 그가 아예 방송을 그만두고 봉사활동에만 매진할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는 인생의 중요 순위가 바뀌었을 뿐 방송에 대한 애정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1위도 방송, 2위도 방송이었다면 이제는 봉사를 앞지를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가 방송을 통해 얻는 삶의 의미는 여전히 크다.
“‘뮤직뱅크’ 빼고 다 출연했다고 말할 만큼 그동안 많은 프로그램을 했어요. 그때마다 느끼는 게 어느 방송이든 의미 없는 건 없다는 거죠. 특히 ‘뉴스 9’를 진행할 때 큰 보람을 느꼈어요. 저희 할머니가 10년째 병상에서 거동을 못하시는데, 매일 저녁 TV에서 손녀 얼굴을 보시고 또 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신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또 KBS만 간신히 나오는 난시청 지역 주민들은 ‘뉴스 9’가 세상을 바라보는 유일한 창구일 거예요. 날마다 그분들 앞에서 직접 소식을 전한다는 마음으로 뉴스를 진행했어요.”
김경란 아나운서는 보기 드문 경력을 가졌다. 뉴스와 예능, 교양, DJ가 모두 가능한 전천후 아나운서다. 특히 뉴스와 예능 사이의 벽이 높다 보니 예능 아나운서가 뉴스를 진행하거나, 뉴스 앵커가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김경란 아나운서는 ‘쇼 파워 비디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밤 11시 ‘뉴스라인’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쇼 파워 비디오’에서는 여고생 분장을 하고 코믹 연기를 하다가 ‘뉴스라인’에서는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뉴스를 전했다. 그리고 뉴스의 꽃이라 불리는 밤 9시 ‘뉴스 9’까지 진행했으니 뉴스 앵커의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7년부터 2년간 ‘뉴스 9’을 진행하다 다시 돌아온 곳이 ‘스펀지’였다. 예능에서 뉴스로, 또 뉴스에서 예능으로 두 번의 높은 벽을 넘나드는 동안 때론 혼란도 겪고 때론 많은 고민도 있었지만 결국 자신의 색을 제대로 내는,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아나운서가 됐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찾아올 인연 기다려
공교롭게도 프리 선언 후 김경란 아나운서의 첫 공식 활동은 화장품 ‘아이소이’ CF 모델이다. ‘봉사한다더니, CF 모델?’이라며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그는 이번 일로 얻은 수익금을 나눔을 실천하는 데 사용했다. 모델료 대신 받은 홍보대사 활동비로 남수단 방문 기념 선물을 사는 데 유용하게 썼다고. 아이소이 회사 또한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 실제로 아이소이 나눔세트 판매 금액의 10%가 김경란 아나운서의 이름으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된다.
“처음 화장품 CF 모델을 제안받고 ‘정말 제가 해도 되는 거예요?’ 하고 물었을 정도로 당황했어요(웃음). 화장품 광고는 보통 미모가 출중한 여배우들이 하잖아요. 저는 그동안 아나운서로 다소 경직된 삶을 살았고, ‘열린음악회’를 진행하기 위해 처음 귀를 뚫었을 정도로 외모에 큰 관심이 없었거든요. 오히려 화장품 이미지에는 자연스러운 얼굴이 어울린다고 해서 선뜻 하긴 했는데, 촬영 당일 정말 메이크업을 안 해주시더라고요(웃음). 피부 톤을 정리하고 아이라이너만 그린 채 사진 촬영에 들어가서 제가 봐도 너무 어색했어요.”
그에게 결혼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하라는 부모의 채근은 없는지 궁금해하자 그는 “오히려 이제는 말하기 조심스러워하시는 것 같다”며 웃었다.
“결혼이란 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 저는 아직 그런 인연을 못 만난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결혼 상대로 특별히 고집하는 조건은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외모도 따지고 식성도 잘 맞기를 바라는 등 사소한 것까지 나름의 기준이 있었지만, 이제는 가치관이 맞고 대화하면서 즐거운 사람이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그러면서 그는 “나눔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짜릿할 것 같다”며 웃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김경란 아나운서가 말했던 ‘내 생에 절대 후회하지 않았던 일’을 떠올려보았다. 역시나 잊고 있던 행복이 다시금 밀려들었다. 자신을 설레게 하는 일을 찾아 용기 있게 길을 나선 김경란 아나운서. 그가 만들어낼 행복 바이러스에 많은 이들이 감염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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