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예인의 이혼 소식보다 ‘트로트의 대가’ 나훈아(65·본명 최홍기)의 이혼 소송이 화제다. 사건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들딸과 함께 30년 가까이 미국에서 생활해온 아내 정수경(51) 씨가 극비리에 귀국해 나훈아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했다.
정씨는 1976년 음반 ‘여군 일등병’을 발표해 잠시 가수로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1985년 나훈아와 결혼하면서 가수 활동을 접었다. 그에 앞선 1983년 나훈아는 정씨의 임신으로 아빠가 됐다는 사실을 밝혀 한바탕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나훈아는 1973년 배우 고은아의 사촌 이숙희 씨와 결혼했으나 2년 만에 결별했고, 1976년 배우 김지미와 두 번째 결혼을 했지만 6년 만에 이혼했다. 그리고 1년 뒤 정수경 씨와 사실혼 관계에 들어갔다.
아들에 이어 딸까지 낳은 정수경 씨는 결혼 후 몇 년 안 돼 자녀교육을 이유로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떠났고 그때부터 나훈아와는 가끔 보는 사이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정씨는 여태껏 언론에 한 번도 노출되지 않았을 만큼 나훈아 못지않게 베일에 가려진 삶을 살았다. 그랬던 그가 결혼생활 28년 만에 갑자기 이혼을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정씨의 법률대리인 측에 의하면 나훈아는 2007년 자신의 루머 해명을 위한 기자회견 이후 현재까지 가족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가족을 찾은 건 기자회견을 하고 며칠 뒤. 당시 그는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고 괴로우니 앞으로 연락하지 마라. 할 얘기가 있으면 여동생에게 하라”는 말만 남기고 행적을 감췄다고 한다. 여동생은 오랫동안 나훈아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누이를 통해서도 연락이 안 되긴 마찬가지. 정씨는 수십 차례 시누이에게 전화를 걸어 나훈아의 행방을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도 오빠가 어디에서 뭐하는지 모른다”였다고. 오랜 세월 지속된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을 더는 용납할 수 없었던 정씨는 결국 남편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길을 택했다.
협의이혼 신청 후 부동산 저당권·가등기 설정
나훈아 정수경은 각각 대형 로펌이 아닌 개인 변호사를 고용했다. 왼쪽은 나훈아 측 법률사무소, 오른쪽은 정수경 측 변호사 사무실.
한편 이혼을 먼저 제기한 측은 정씨가 아닌 나훈아인 것으로 밝혀졌다. 나훈아가 지난해 5월 경기도 여주법원에 협의이혼의사확인서를 제출했고, 정수경 씨는 미국 영사관을 통해 촉탁서를 받았다고 한다. 4년 가까이 연락 한 번 없던 남편이 갑자기 협의이혼의사확인신청서를 보내오자 정수경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정수경 측 김 모 변호사는 “이미 5년 전, 나훈아 씨가 마지막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이별 수준의 얘기를 하고 떠났는데, 그게 현실로 다가오니 정씨로선 배신감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수경 씨 얘기에 의하면 그동안 나훈아의 아내로 살면서 힘든 점이 많았다고 한다. 나훈아 씨가 기자회견을 열었을 만큼 그동안 세간에 떠도는 소문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정씨의 마음은 어땠을지 누구나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나훈아 씨가 갑자기 연락을 두절하고 가장의 역할을 유기한 게 결정적인 이혼 사유지만, 그게 아니어도 몇십 년 동안 쌓이고 쌓인 게 뒤늦게 폭발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씨는 남편의 협의이혼 신청에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고 그와 무관하게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나훈아는 협의이혼 신청이 형식적인 일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진짜 이혼 의사가 있었던 게 아니라, 이혼을 하면 자녀들의 시민권(혹은 영주권) 취득이나 미국에서 대출 관련 문제를 해결할 때 좀 더 유리한 조건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취한 행동이라는 것. 그러면서 그는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인 건 나훈아가 협의이혼을 제기했을 시점에 그가 소유한 부동산 등기에 서류상의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개인들에게 저당권을 설정하고 가등기도 해놓은 것. 이와 관련해 한 법률 관계자는 “실제로 채무 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재판 과정에서 금융거래 내역을 제출할 것이다. 하지만 법률적인 상식과 오랜 경험에 비춰봤을 때 보통 이혼 소송 전 재산분할을 피하기 위한 안전장치로 이런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이혼 소송의 가장 큰 쟁점은 재산분할이다. 정수경 씨는 나훈아를 상대로 5:5의 재산분할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훈아의 재산 규모는 얼마나 될까. 그는 서울 한남동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를 비롯해 경기도 양평에 작업실 명목의 토지와 주택, 전원주택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 한남동 아파트 현 시세는 25억원, 양평 작업실은 21억원, 또 다른 양평 전원주택 부지는 12억원가량인데, 아파트와 양평 작업실에는 금융권과 지인에게 22억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
나훈아의 행적이 묘연한 가운데 취재진은 그가 이사 간 것으로 알려진 양평 작업실을 찾았다. 강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 건물은 지상 2층 규모의 카페를 개조한 것으로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건물 옆 넓은 대지에는 키 작은 정원수들이 빼곡히 심어져 있는데, 이 역시 나훈아 소유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에게 확인한 결과 건물의 전체 부지는 1983m²(6백 평) 규모라고 한다.
이혼 소송 후 양평 전원주택은 공사 중단
현재 나훈아가 이곳에 살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집이 방치돼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당에 외제차 한 대가 주차돼 있고, 현관문 틈에 수취인이 최홍기(나훈아의 본명)로 된 우편물도 꽂혀 있었다. 넓은 부지의 정원수도 잘 가꿔진 상태였다. 하지만 몇 차례 초인종을 눌러도 안에서는 어떤 응답도 없었다. 나훈아의 작업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나훈아 씨의 집은 대로변에 있어서 주민들이 오며 가며 자주 살펴보는데, 최근 들어 나훈아 씨를 봤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가끔 차가 주차돼 있긴 하지만 나훈아 씨 차는 아니고 관리인쯤으로 보이는 사람의 차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해도 나훈아가 종종 목격됐다고 한다. 한 음식점 주인은 “지난해 여름 오픈 스포츠카를 타고 가는 나훈아 씨를 본 적이 있다. 흰 수염이 덥수룩하고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단번에 나훈아 씨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양평에 오고 처음에는 지인들과도 많이 어울리는 것 같았다. 나훈아 씨가 자주 가는 막국숫집이 있는데 방송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과도 몇 번 찾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나훈아가 지난해 구매한 것으로 알려진 전원주택 부지는 작업실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인근에는 전원주택뿐 아니라 펜션이 여러 채 들어서 있고, 숲 속에 파묻혀 있어 아늑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집터만 닦여 있을 뿐, 건물은 세워져 있지 않았다. 하얀색 대문과 그 뒤에 있는 파란색 대문 둘 다 굳게 잠겨 있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부지 매입 후 기존에 있던 목조 주택을 허물고 터를 높이는 등 기초공사를 진행했지만 최근 이혼 소송 중인 게 알려지면서 공사를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 나훈아의 양평 작업실. 마당에 외제차 한 대가 주차돼 있었지만 끝내 인기척은 없었다. 현관 문 사이에는 각종 우편물이 꽂혀 있었다. 2 지난해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양평 전원주택 부지.현재 터만 닦아놓은 채 공사는 중단됐다.
오랫동안 하와이에서 두 자녀와 함께 생활한 정수경 씨는 얼마 전 미국 보스턴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딸은 결혼 후 분가했으며 현재 아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은 명문대 출신의 ‘엄친아’로 알려져 있고, 두 자녀 모두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씨의 법률대리인 측은 “정수경 씨는 평생 가정주부로 지내왔기 때문에 따로 가진 재산은 없다. 그래도 자식들이 다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서 생활이 궁핍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정씨의 차림은 수수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해서인지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었다고. 한 번에 누구인지 알아보기는 힘들었지만 최근 인터넷에 공개된 젊은 시절 사진 그대로 마른 체구라고 한다. 정씨는 친정 언니도 미국에 살고 있어 그동안 한국을 방문한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훈아 6월 재판에 모습 보일 수도
한편 5월 15일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에서는 이혼과 관련해 세 번째 공판이 열렸다. 세상에 소송 사실이 알려진 뒤 처음 열린 공판인 만큼 언론의 취재 열기는 뜨거웠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30여 분 동안 진행된 변론에는 양측 소송대리인만 참석했다. 이날 처음으로 나훈아 측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두문불출하는 나훈아 못지않게 굳게 입을 닫고 있던 김 모 변호사는 이날 나훈아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아무래도 변호인이니 직접 연락은 하고 있다. 하지만 의뢰인의 개인사를 노출할 수 없다”며 방어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이어 향후 나훈아가 직접 재판에 참석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묻자 “재판 날짜가 잡혔고, 상황에 따라 나올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신비주의’ 나훈아. 언제쯤 칩거 생활을 접고 가수 본연의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설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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