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눈빛이 그렇게 많이 바뀌었나요?”
서울 안암동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3월 22일 열린 ‘열정락서’ 특강 현장. 강사로 선 가수 션(40·본명 노승환)은 사회를 맡은 개그맨 안상태가 “결혼한 후 눈빛이 달라졌다”고 소개하자 해사하게 웃었다.
“예전의 눈빛을 보고 싶나요? 음악 주세요. 모두 손 머리 위로!”
그는 지누션 활동 당시 히트곡인 ‘말해줘’와 ‘전화번호’를 부르며 특강의 문을 열었다. 그간 방송에서 아내 정혜영(39)과 ‘행복한 부부의 정석’이 뭔지 온몸으로 보여왔던 터라 오랜만의 활력 넘치는 라이브 무대가 반가웠다. 분위기를 후끈 달군 그는 포스터에 쓰인 ‘션이라 쓰고 사랑이라 읽는다’라는 문구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저랑 박찬호 선수랑 21년 친구예요. 박 선수 큰딸 애린이랑 우리 딸 하음이도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죠. 어느 날 유치원 끝나고 하음이가 엄마한테 ‘애린이 아빠는 탁구 선수래요’ 하는 거예요. 박찬호 선수가 탁구 선수라니 너무 웃기잖아요. 그래서 셋째 하율이한테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야’ 물었더니 저를 딱 올려다보며 ‘아빠는 아저씨잖아’라고 하더라고요. 션이라고 쓰고 아저씨라고 불러요(웃음).”
박찬호와 막역한 사이인 션은 실제로 그의 결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박찬호가 지금의 아내인 박리혜 씨에게 프러포즈할 당시 박씨가 “당신의 친구 세 명을 보여달라”고 했던 것. 그 세 명의 친구 중 한 명이 션이었다. 박찬호는 션과 야구 선수 유지현, 홍원기를 소개했다고. 친구들이 예비 신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박찬호는 결혼에 성공해 지금까지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매일 ‘사랑해, 축복해’라고 해보세요”
션·정혜영 부부는 금슬 좋은 것은 물론이고 통 큰 기부로 연예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아이도 4명(하음, 하랑, 하율, 하엘)이라 애국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큰딸 하음이가 태어난 뒤로 매일 제가 ‘사랑해, 축복해’라고 얘기해줬어요. 20개월 뒤 둘째가 태어났는데 4개월쯤 됐을까, 하음이가 누워 있는 하랑이에게 손을 뻗어서 ‘사랑해, 축복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받은 사랑과 축복을 동생에게 전해주기 시작한 거예요. 보통은 나 혼자 이 세상에서 잘되기를 꿈꾸지 않나요. 많이들 그렇게 살아요. 그래서 열심히 살죠. 저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이 잘되는 게 아니라, 제 아이들 덕에 세상이 잘되면 좋겠어요. 그 시작이 매일 ‘사랑해, 축복해’라고 말해주는 거였죠. 큰 걸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기보다 오늘 만난 사람, 오늘 해야 할 작은 일을 행할 때 세상은 바뀌기 시작해요.”
이 같은 말은 션·정혜영 부부의 일관된 기부 행보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 “2004년 10월 8일,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랑 결혼했어요”라는 말로 객석의 부러움 섞인 야유를 받은 그는 결혼식 영상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정말 행복해 보이죠. 당연하잖아요.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행복한 결혼식이 흔치 않더라고요. 식장 들어가기 전까지 싸우는 연인이 많대요. 정말 사랑해서 결혼을 약속했을 텐데 왜 그랬을까요. 저는 혼수와 예단, 축의금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니까 체면을 세우려고 빚까지 져서 혼수와 예단을 준비해요. 이런 걸 안 하는 대신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답하겠다고 하면 부모님도 자신의 체면을 잠시 내려놓고 자녀의 행복을 빌어주지 않을까 싶네요.”
외국에서 자라 선물 문화에 익숙했던 션은 이전부터도 결혼식에 축의금을 내는 대신 되도록 선물을 했다고. 자신의 결혼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축의금을 받지 않았다.
“저희가 맘먹었다면 한몫 크게 챙겼을 거예요. 일단 연예인이에요. 그리고 장르가 (가수와 배우로) 다르잖아요(웃음). 연예계 모든 사람을 초대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죠. 축의금을 받아서 기부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부부에게 결혼식이란 두 사람이 두 가지 인생을 살아가다 하나가 돼서 한곳을 바라보며 하나의 인생을 산다는 의미가 있죠.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식을 만들고 싶어서 혼수와 예단, 축의금을 포기했어요. 대신 가장 중요한 걸 얻었죠. 행복 말이에요.”
1 푸르메재단 어린이재활병원 건립기금 모금 행사에 참석한 션. 2 중증 장애를 가진 김민찬 군과 함께. 3 푸르메재단에 어린이재활병원 건립기금을 쾌척한 션·정혜영 부부. 제일 오른쪽은 강지원 푸르메재단 대표.
아내와 매일 1만원씩 모아 기부 돌 때 아이가 잡은 건 ‘이웃의 손’
그는 신혼의 단꿈에 젖은 아내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매일 1만원씩 기부하자는 것. 결혼 1주년 때 1년간 모은 돈 3백65만원을 ‘밥퍼’에 기부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그에게 “작은 걸 드리지만 큰 행복을 안고 돌아온다”고 말했다.
“우리는 단지 하루에 1만원씩 드린 것뿐인데 그 돈으로는 누리지 못할 행복을 얻었어요. 3백65만원이면 ‘밥퍼’에서 노숙자 1천5백여 명이 두 끼 식사를 하고도 남는 돈이죠. 2008년 10월 8일은 결혼 4주년이었어요. 정말 상세하게도 기억하죠? (웃음) 하루에 1만원씩 4년간 모으면 1천4백60만원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1천4백61만원이에요. 4년마다 윤달이 한 번 있거든요. 아내에게 ‘혜영아, 우리 정말 행복했으니까 이웃에게 1천4백61만원을 드릴까?’ 하면 어제의 행복이 깨질 수도 있겠죠. 처음부터 그렇게 큰돈으로 시작했다면 우리 부부의 나눔은 시작조차 못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하루 1만원씩 매일 그 일을 행했더니 결혼 4주년에 큰돈이 생겼죠. 40주년에는 1억4천만원이 생겨요. 이 같은 나눔을 죽을 때까지 계속할 거예요.”
지구상의 5천만 명 중 평생 1억원 이상을 이웃을 위해 쓰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결혼 7주년이 지났는데 좋은 일이 많았다”고 했다.
“가장 좋은 건 아이가 4명이라는 거죠. 하음이, 하랑이, 하율이, 하엘이. 첫째 하음이는 보통 아이들만큼 웃고 울었어요(웃음). 둘째 하랑이는 날 때부터 카리스마를 갖고 태어났어요. 웃지를 않아요. 제대로 가르친 적은 없는데 ‘힙합’ 스타일이에요. 보통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숱도 없고 눈썹도 없어서 눈 코 입은 있어도 어색하게 마련인데, 하랑이는 머리숱이 많아서 두피가 안 보일 정도였어요. 근데 얼굴을 보고는 더 놀랐죠. 초등학생의 얼굴인 거예요. 정말 잘생겼어요. 엄마를 닮았거든요.”
그는 아내와 “힘들더라도 (가사 도우미를 고용하지 않고) 둘이서 아이를 키워보자”고 약속했다고. 최근에는 아이가 많아지며 가사 도우미를 고용했지만, 첫째 하음이는 온전히 두 부부의 힘으로 키웠다. 강연을 다닐 때면 하음이를 옆자리에 태우고 이동했다.
“둘이 직접 키우니까 그만큼 돈을 절약할 수 있잖아요. 그 비용을 큰딸 하음이 이름으로 저축했어요. 돌잔치 비용까지 합치니까 2천만원이더라고요. 그 돈으로 심장병을 앓는 어린아이와 인공 귀가 필요한 아이를 수술시켜줬어요. 아이 돌이 지나고 친한 분들이 약간 삐친 투로 물어보시더라고요. 혼자만 돌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줄 알고요. 사실 아무도 초대 안 하고 가족끼리만 조촐하게 했어요. 돌잔치 하면 궁금한 게 있잖아요. ‘돌잡이로 뭘 잡았어’라고 물으시기에 ‘우리 하음이는 이웃의 손을 잡았습니다’라고 말해드렸어요. 둘째, 셋째도 마찬가지였죠.”
내 집 마련 꿈 접고 4백4명의 아빠로
이들 부부는 하음, 하랑이를 낳고 내 집 마련의 꿈은 잠시 미뤄둔 채 필리핀 아이들 1백 명의 후원을 시작했다. 그렇게 1백2명의 부모가 됐다. 션은 “아내가 1백 명을 낳을 자신은 없었던 모양”이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3년 전 부부 동반 CF를 찍은 이들 부부는 또 다른 1백 명의 아이를 후원하기로 했다. 이렇게 2백2명의 부모가 된 그들. 부부가 후원하는 아이 중 6명은 아이티에 산다. 2010년 아이티 지진 직후 한 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 마음을 졸였던 션은 아이가 살아 있다는 소식에 그를 만나러 아이티로 향했다.
“‘재앙이 진행 중’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아이티가 그런 곳이었죠. 살아남은 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이 아이들에게 작은 희망을 던져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1백 명의 아이티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기 시작했어요. 셋째 하율이까지, 그렇게 3백3명의 아빠가 됐죠.”
2010년에는 1백 명의 북한 아이들도 품었다. 그렇게 4백3명의 아빠가 된 션은 막내 하엘이 태어나며 4백4명의 아빠로 살아가고 있다. 장애 아동을 위한 병원을 짓겠다는 원대한 꿈도 가지고 있다. 션은 1월 KBS2 ‘이야기쇼! 두드림’ 녹화 현장에서 방청객에게 “기부하는 기쁨을 누리거나, 개인적 용도로 쓰시라”며 1만원씩 나눠주기도 했다. 1만원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4백4명의 아빠 션, 그의 열정은 가족과 이웃이었다.
“재활병원을 짓기 위해서는 3백20억원이 필요해요. 하루 1만원씩 1년 3백65만원의 마음을 가진 이들 1만 명만 동참하면 3백65억원이 모이죠. 2014년 완공 예정인데 병원이 지어지면 아이들을 데리고 지나가면서 ‘얘들아, 아빠 엄마와 1만 개의 마음이 모여서 지어진 병원이야’라고 말해줄 거예요. 그리고 ‘너희도 이렇게 하렴’이라고 덧붙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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