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빅마마 소울’ 신연아(39) 옆에는 언제나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프랑스인 남편 알렉산드로 보스키(35, 이하 알렉스) 씨가 있다. 이들은 한 달간의 짧은 만남, 1년 반의 ‘롱디(Long Distant) 데이트’, 2년간의 동거 끝에 2006년 정식으로 부부가 됐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사랑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보통의 연인들이 결혼 후 어느 정도의 의무감을 안고 서로를 대하는 것과 달리 이들 부부에게 있어 인생의 화두는 여전히 사랑이다.
두 사람은 2001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만났다.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한 뒤 코러스 보컬로 활동하던 신연아는 스물일곱 늦은 나이에 자신만의 음악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프랑스 재즈 전문 음악학교 CIM으로 유학을 떠났고, 알렉스 씨 또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뒤늦게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 두 사람은 1년간 얼굴도 모르고 지내다 2학년 때 화성학 수업에서 처음 서로의 존재를 알았다.
“남편이 어느 날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지 않냐’는 뉘앙스로 ‘괜찮아?’라고 물었어요. 동양인은 저 혼자밖에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저를 무시해서 하는 말인 줄 알고 퉁명스럽게 ‘괜찮아’라고 대답했죠. 그러고 나서 몇 달 뒤 제가 한국에 갔다 오느라 한번 수업을 빠지는 바람에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잘 못한 적이 있는데, 남편이 며칠 뒤 공연을 감상하는 수업 중에 제 어깨를 톡톡 치더니 ‘지난번에 선생님이 물어봤을 때 대답 못하던데, 괜찮니?’라고 또 묻는 거예요. 그러면서 순진한 표정으로 ‘내가 도와줄게, 같이 공부할래?’ 하고 묻더니 주말에 자기네 집으로 오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나한테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건가’ 의심이 들었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해서 마음 놓고 놀러 갔어요. 그런데 그날 저 말고도 다른 친구들이 여럿 모여 있더라고요(웃음).”
단둘이 남자 “셸 위 댄스” 떨리는 손으로 사랑 고백
여자는 혼자 착각했다 싶었지만, 역시나 남자의 속마음은 달랐다. 네 번째로 남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슬금슬금 다른 친구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그와 단둘이 남게 됐다. 남자는 조용한 음악을 켠 뒤 배시시 웃으며 여자에게 춤을 추자고 권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여자는 춤을 못 춘다며 거절했지만, 이내 파르르 떨고 있는 남자의 손을 보고 미안한 마음에 음악에 몸을 맡겼다.
“정말 순수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 친구들을 대하는 태도를 봐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란 게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이미 그때 기획사로부터 ‘빅마마’ 제의를 받은 터라 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어요.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는 건 무모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남편한테도 이런 사정을 얘기했더니 한국으로 돌아가도 상관없다며 기다리겠다고 하는 거예요. 저 역시 음반 계약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 일이 잘 안 되면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고요. 결국 만난 지 한 달 만에 생이별을 했죠.”
알렉스 씨에게 잠깐의 이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랑을 더욱 키워가고 싶은 마음만 있었을 뿐 장거리 연애에 대한 두려움은 처음부터 없었다. 그에게 신연아의 어떤 면에 마음을 빼앗겼는지 묻자 “처음부터 이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외모는 물론이고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모습이 매력적이었어요. 수업 때 보면 늘 집중하고 있고, 도도한 듯 보여도 마음은 왠지 따뜻한 사람처럼 보였어요. 아내와 집이 같은 방향이었는데 지하철을 함께 타고 오다가 이런저런 제 얘기를 늘어놓으니까 아내가 한심하다는 듯 몇 살이냐고 묻더군요. 스물네 살이라고 했더니 ‘젊네’라고 하는 거예요. 기분이 살짝 상했지만 저 역시 너는 몇 살이냐고 물었죠. 아내가 스물여덟이라고 하기에 ‘너도 젊네’라고 응수했어요(웃음).”
사랑에 눈이 멀어 돌진하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처음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었다. 신연아는 한국에 들어오기 전 집 안 정리를 하느라 지독한 몸살감기에 걸린 적이 있는데, 옆에서 간호해주려는 알렉스 씨를 뿌리치고 한국에서 같이 온 언니네 집으로 가겠다고 해서 그를 눈물짓게 만들기도 했다.
“한국으로 들어오기 얼마 전 오빠가 파리로 여행을 왔어요. 남편이 왜 자기를 오빠한테 소개시켜주지 않느냐며 많이 서운해하더라고요. 3일밖에 머물지 않아서 따로 만날 시간이 없다고 둘러댔지만 솔직히 우리가 연인 사이로 발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오빠한테 인사시키기는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그때도 남편은 제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래서 제가 한국으로 가버렸을 때도 조바심 내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준 것 같아요.”
따뜻하고 편안한 눈빛이 주는 감동
신연아가 한국에 들어온 뒤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변함이 없었다. 신연아는 소속사와 3년 반 계약을 하고 ‘빅마마’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고, 알렉스 씨 또한 평소와 같이 학업에 열중했다. 그러는 와중에 두 사람은 날마다 전화 통화로 사랑을 속삭였다. 하지만 시차가 크다 보니 통화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새벽까지 기다렸다 전화를 받아야 했고, 프랑스에서는 한국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 약속까지 취소하고 집으로 들어와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1년 반 정도 롱디 커플로 지내던 두 사람은 남자가 한국으로 오면서 비로소 연애다운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루는 너무 보고 싶고 힘들어서 반 농담으로 남편에게 ‘한국에서 살래?’ 하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왜 여태 그 생각을 못했지? 생각해볼게’ 하고는 전화를 끊더라고요. 그리고 그 다음 날 바로 ‘부모님한테 얘기했으니 다음 달 한국에 오겠다’고 하는 거예요. 순간 당황했죠. 설마 한국에 온다고 할 줄은 몰랐거든요(웃음). 정말 한 달 뒤 남편이 한국으로 왔고 자연스럽게 동거에 들어갔어요.”
신연아의 부모 역시 알렉스 씨를 반갑게 맞아줬다. 알렉스 씨는 신연아가 한국으로 돌아온 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 달 동안 신연아의 집에 머문 적이 있는데, 비록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신연아의 어머니와 정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미 그때부터 알렉스 씨의 착한 심성에 반한 신연아의 어머니는 두 사람의 사랑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먼 곳으로 떠나온 알렉스 씨는 처음에는 서울 강남의 한 바에서 웨이터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 덕에 워킹 비자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이후 알렉스 씨는 어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점차 생활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한국에 온 지 2년 만인 2006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함께 살면서 남편의 진가를 더욱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남편이 남들처럼 번듯한 직업이 없다 해도, 가진 게 많지 않다 해도 그런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주변에서 ‘외국인 남편은 어떤 점이 다르냐’고 많이 물어보시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눈빛이 감동적’이라고 얘기해줘요. 말하지 않아도 사랑이 느껴질 만큼 저를 보는 눈빛이 참 따뜻하고 편안하거든요. 또 한번은 남편이 진지한 표정으로 ‘언젠가 당신에게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오면 반드시 나에게 말해달라’고 부탁을 하더라고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내가 그 사람처럼 되도록 노력해볼게’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이 무척 감동적이었어요(웃음).”
알렉스 씨에게 사랑은 일상의 불편함도 뛰어넘게 하는 힘을 갖게 했다. 처음 한국에 와서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며칠 동안 치킨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고,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터놓고 얘기할 상대도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낯선 타국 생활을 걱정하는 신연아에게 언제나 웃는 얼굴로 “한국에서 사는 게 아니라 당신과 함께 사는 거니까 괜찮아”라고 말했다. 또 간혹 신연아가 토라져 있으면 영화 ‘러브 액추얼리’에 나오는 장면처럼 스케치북을 넘기며 사랑을 고백하고,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은 뒤 촛불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한다.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 순수한 사랑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한 사람과 평생 사랑하는 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든요. 사랑은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이기에 그 사랑을 끝까지 유지하고 싶어요.”
‘영원한 사랑’에 대한 로망
언제나 ‘현재진행형’ 사랑을 하고 있는 신연아·알렉스 부부.
신연아 역시 남편을 만난 뒤 사랑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맹목적인 사랑과 현실적인 사랑 중 무엇이 정답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남편을 통해 사랑의 참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그는 “예전에 ‘한 사람과 평생 사랑하는 게 가능할까?’라고 생각했지만 남편과 살아보니 ‘이 사람이 아니면 누구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물론 동거 초반에는 사고방식의 차이로 작은 다툼도 있었다.
“한번은 아침에 일이 있어서 일찍 나가야 했는데, 아침밥을 차려줘야겠다는 생각에 남편이 좋아하는 된장국을 끓였어요. 예전에 엄마가 마가린을 넣고 끓이는 걸 본 적이 있어 저도 그렇게 해보려다 순간 착각하고 치즈를 넣어버렸죠. 역시나 맛이 이상했던지 남편이 한 숟가락을 뜨고 그만 먹는 거예요. 바쁜 시간을 쪼개서 국을 끓였는데 안 먹는다고 하니까 짜증이 나서 남편한테 따졌더니 ‘나는 아침밥 차려달라고 안 했어. 앞으로도 바쁠 때는 일부러 안 해도 돼’라고 하질 않겠어요. 그러면서 집안일이나 식사준비는 시간이 되는 사람이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너를 위해’라는 말로 상대방을 오히려 힘들게 할 때가 많은데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알렉스 씨 역시 한국인들의 사랑법에서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결혼 후 부부간의 사랑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지는 것을 들었다.
“뜨겁게 연애하고 결혼한 사람들도 아이가 태어나면 배우자는 뒷전이고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아요. 평생 함께할 사람은 자식이 아닌 배우자인데도 말이죠. 부모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친구나 연인, 배우자는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사람들이에요. 그렇다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죠. 시간이 흐를수록 부부간의 사랑이 깊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늘하게 식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결혼 6년차인 이들 부부 역시 요즘 2세를 기다리고 있다. 3년 전 유산을 한 뒤 아이가 쉽게 생기지 않아 걱정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조바심 내지 않고 운명에 맡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알렉스 씨는 “아이가 생기면 정말 행복하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없다”며 미소를 지었다.
부부의 또 다른 목표는 언젠가 두 사람이 함께 음악을 하는 것이다. 알렉스 씨는 현재 경기도 용인외고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여전하다고 한다. 신연아 역시 지난해 ‘빅마마’ 해체 후 ‘빅마마 소울’로 새로운 음악 인생을 열고 있는 단계. 두 사람은 내년 초쯤 작게나마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인터뷰 내내 프랑스어로 속삭이는 두 사람의 대화는 마치 샹송처럼 로맨틱하고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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