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발라드 계보에서 조성모(35)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90년대 말 ‘투 헤븐’을 시작으로 ‘가시나무’ ‘아시나요’ ‘다음 사람에게는’ 등 숱한 히트곡을 낸 가요계 마지막 밀리언셀러 음반의 주인공이었다. 그때는 TV, 라디오만 틀면 여기저기서 그의 애절하면서도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인기는 순식간에 사그라들었고 어느 순간 그는 ‘이러다 영영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5년의 침체기를 견뎌온 조성모는 2년 전 결혼을 기점으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고 고백한다. 무엇이 그를 변하게 했을까. 2월 초 뮤지컬 ‘광화문 연가’에 출연하는 그에게 지난날의 시련, 행복한 결혼 생활을 들었다. ‘광화문 연가’는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첫사랑에 대한 아픔, 우정, 추억을 그린 작품으로, 이영훈 곡 ‘난 아직 모르잖아요’ ‘붉은 노을’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깊은 밤을 날아서’ ‘옛사랑’ 등 이문세가 불렀던 주옥같은 히트곡들을 감상할 수 있다.
▼ 뮤지컬 출연은 이번이 처음인데 연습은 어땠나요.
“2009년에 뮤지컬 ‘모차르트!’를 준비했지만 다리 부상 때문에 끝내 무산됐어요. KBS ‘출발 드림팀 시즌2’ 촬영 중 발목이 골절돼 3차 수술을 받아야 했거든요. 연출진은 공연 시작하기 3주 전까지 기다려주셨지만 서 있지도 못하겠더라고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죠. 이번에 다시 뮤지컬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감사해요.”
뭔가 시작해보려는 시점에서 부상을 당해 더 아쉬웠을 것 같아요. 당시 상태가 심각했다고 들었어요.
“지금 이렇게 걸어 다니는 게 기적이다 싶을 정도였어요. 다리뼈가 다 부서졌죠. 엉덩이뼈를 끊어다가 다시 이어붙인 거예요. 병원에서는 평생 다리를 절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고, 한편 아무런 후유증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 뮤지컬 ‘광화문 연가’에 나오는 노래들은 평소에도 즐겨 들었나요.
“어려서부터 누나, 형들을 따라 듣곤 했어요. 워낙 명곡들이라 커서도 들을 기회가 많았죠. ‘깊은 밤을 날아서’는 초등학교 때 동요처럼 따라 부르며 좋아했던 노래라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했고요. 어릴 때는 예쁘고 순수한 노래인 줄만 알았는데, 이번 뮤지컬 연습을 하면서 심란한 사연이 있는 곡이란 걸 처음 알았어요(웃음). 민중 가요로 오해를 받아 금지곡이 될 뻔했더라고요. 이영훈 선생님의 노래를 쭉 들어보면 한 편의 문학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사나 선율이 정말 아름답고 노래 연습 하면서도 매 순간 감동받아요.”
▼ 노래뿐 아니라 연기도 해야 하는데, 어렵지 않나요.
“가수도 연기가 필요한 직업인 것 같아요. 아무런 감정 없이 덤덤하게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되거든요. 콘서트 할 때면 늘 뮤지컬 배우처럼 하자는 마음가짐으로 무대에 올라요. 눈빛, 입 모양, 표정 등 신경 써야 할 게 많죠. 더욱이 ‘광화문 연가’에서는 가요를 부르는 거라 많이 어색하지 않아요.”
긴 공백기 지나며 진짜 음악을 알다
남몰래 해온 음악 공부도 많은 도움이 됐다. 2년 군 복무 기간까지 포함해 5년 가까이 활동을 중단했던 그는 그동안 지인들과의 만남도 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 사이 앨범을 발표하긴 했지만 결과는 참패. 신곡으로 딱 두 달 활동한 뒤 그는 기약 없는 잠복기에 들어갔다. 대신 그 시간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 무엇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잠시 음악을 포기할까 하는 약한 마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에겐 음악이 전부였다. 그때부터 음악 이론부터 악기 연주까지 닥치는 대로 배웠다.
▼ 공백이 길었지만 얻은 게 많네요.
“데뷔하고 10년 동안 늘 떠밀려서 살았던 것 같아요. 앨범도 미리 계약된 대로 약속된 시간에 내야 하고, 또 그걸 가지고 TV 활동이며, 콘서트, 행사 등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했죠. 그러다 갑자기 공백기가 찾아오니까 비로소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데뷔하자마자 1등을 하고 스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시작해서인지, 늘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음악 그 자체에 충실해야 했는데, 오로지 인기나 앨범 판매 순위로 주위 분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더는 인기를 얻지 못하게 되자 그만큼 심리적 부담이 컸어요. 나중에는 ‘가수로서 생명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마저 들었죠. 벼랑 끝에 몰리니까 뭔가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내가 다시 구원받을 수 있는 건 음악이라는 걸 깨달았고, 새삼 음악 공부를 시작했어요. 뮤지컬 연습 첫날 감독님이 ‘피아노, 기타 칠 줄 알아?’라고 하기에 그 자리에서 연주를 했더니 매우 흡족해하셨어요(웃음).”
코디네이터 노릇을 자처해 인터뷰 장소에 함께 등장한 조성모 아내 구민지씨. 남편 옷을 직접 입혀주는 등 살뜰한 모습을 보였다.
▼ 가수 조성모의 인생에서 지난 5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글쎄요. 딱 이거다 하고 정리하기는 힘들어요. 한편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동안 제가 너무 순탄하게 가수 활동을 했던 것 같아요. 누구나 한두 번 침체기를 겪는다고 하는데 저는 느지막이 온 거죠. 솔직히 처음에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는 게 정말 힘든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물론 그 사이 마음 아팠던 일도 있어요.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는 정말 혼란스럽더라고요. 하지만 결혼 후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이제 혼자가 아니니까요. 제가 지켜야 하고 나보다 더 소중한 사람이 생기니까 자연스레 마음을 넓게 쓰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아니면 말고’ 식이었다면 지금은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려고 노력해요. 이제야 철이 드나 봐요.”
▼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평가하나요.
“발라드 가수들은 대체로 예민해요(웃음). 제가 봐도 저는 까칠한 면이 분명 있어요. 예를 들면 어떤 분들은 관객 한두 명만 있어도 공연한다고 하는데, 저는 절대 그렇게는 못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그럴 수도 있는 상황을 겪어봤잖아요(웃음).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죠. 다시 목을 가다듬기 시작했고, 언제 무대에 서더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했죠. 어느 날 노래 연습을 하는데, 아내가 ‘혼자 듣기 아깝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많이 미안하고 안타까웠어요. 제가 한창 인기가 있었을 때 아내는 옆에 없었거든요. 하지만 아내의 그 말이 제게 큰 위안이 됐고, 다시 용기를 내는 기폭제가 됐어요.”
까칠하고 예민한 성격, 결혼 후 무던해져
이날 인터뷰 장소에 조성모의 아내 구민지씨(32)가 등장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촬영용 옷과 소품들을 한아름 안고 있어서 코디네이터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그의 아내였다. 반가워하는 기자에게 구민지씨는 “코디네이터가 따로 없어서 잠깐 일을 도와주는 것”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현재 대학원에서 의상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구씨는 이번 인터뷰를 위해 며칠 고심해 남편에게 어울리는 옷을 골랐다고 고백했다. 협찬 의상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아서 직접 발품 팔며 옷과 소품을 구입했다고. 양말까지 색깔별로 신경 써서 준비해온 구씨는 전문 코디네이터 못지않게 솜씨 있게 일을 처리했다. 조만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사코 인터뷰는 거절했지만 먼발치에서 남편의 얘기를 들으며 미소 짓기도 하고, 때론 남편과 함께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보이는 등 인터뷰 내내 자리를 지켰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는 어수선해진 카페의 테이블을 옮기는 등 뒷마무리까지 직접 했다.
▼ 아내가 옷을 고르고 입혀주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며칠 동안 혼자서 신경을 많이 쓰더라고요. 전공 분야기도 하고, 어릴 때 잠깐 연기자로 활동을 해서 이쪽 일에 감이 있는 것 같아요. 평소에도 아내가 옷을 다 맞춰주니까 결혼하고 난 뒤 세련돼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웃음). 요즘처럼 마음이 가볍고 잔잔한 행복을 느끼기는 처음이에요.”
▼ 결혼하자마자 소속사와 법정 분쟁에 휘말렸는데, 마음고생이 심하지 않았나요.
“소송 문제는 다행히 원만하게 해결됐어요(조성모는 지난해 초 전 소속사로부터 전속계약 위반을 이유로 3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 받았다). 알고 봤더니 작은 오해에서 시작됐더라고요. 나중에 합의점을 찾았을 때는 서로 소송까지 할 이유가 없었다는 걸 알고 너무 허무했어요(웃음). 진작 만나서 대화로 풀면 될 문제였는데 서로 오해하고 미워하는 마음만 쌓여서 일을 크게 만든 거였죠. 어쨌든 이번 일을 겪으면서 깨달은 게 소송은 잘잘못을 떠나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거예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실히 깨달았어요. 억울하고 힘든 상황에 놓이니까 이런 제 자신도 미워지고 상대도 미워지고 둘 다 용서가 안 되더군요. 성격도 날카로워지고 이러다 폐인 되기 십상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모르는 분들은 결혼하자마자 안 좋은 일이 생기니까 부부 사이에도 문제가 생겼을 거라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오히려 저희는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더 사이가 단단해졌어요. 물론 마음고생은 했죠. 30년 동안 꿈꿔왔던 신혼 생활에 대한 환상이 있는데, 그런 로맨스를 마음껏 누릴 상황이 못 됐으니까요. 아내한테 정말 미안했어요. 그런데 아내는 저보다 더 대범하고 현명하더군요. 부부라는 한 배를 탄 이상 어떤 시련도 함께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흔히 시련 후에 더욱 강해진다고 하는데,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저 자신도 그 시간을 통해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새삼 배웠던 것 같아요.”
▼ 남편의 눈에 비친 아내는 어떤 사람인가요.
“한마디로 털털해요. 오히려 제가 분위기 잡는 거 좋아해 레스토랑 가서 맛있는 거 먹자고 하면, 아내는 간단히 칼국수나 먹자고 해요(웃음). 또 일희일비하지 않아요. 결정적으로 아내의 무던한 성격을 닮고 싶다고 느꼈던 계기가 있어요. 2년 전 새 앨범을 발표했을 때 반응이 정말 별로였거든요. 며칠 잠을 못 자고 괴로워하니까 보다 못한 아내가 한마디하더라고요. ‘가수라서 그런가? 정말 인내심이 없네. 연기자는 한 작품 하려고 2~3년도 기다리는데 한 번 잘 안 된 거 가지고 뭘 그렇게 상심해?’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났어요. 그동안 저는 모든 것에 불만족이었더라고요.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늘 전전긍긍했죠. 그날 이후 마음가짐이 확 달라졌어요. 결혼하고 예전에 비해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고 편안해진 건 다 아내 덕분이에요.”
▼ 두 분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하네요.
“군 복무를 마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음악 하는 형들 모임에서 만났어요. 우연찮게 아내가 모임에 합류했는데 한눈에 반했죠(웃음).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제가 그날 모임 이후 바로 ‘폭풍처럼 반했다. 너에게 폭주하고 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대요(웃음). 그 문자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더라고요. 결혼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다리 부상을 당했을 때예요. 나중에 장모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당시 장모님이 아내한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더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데리고 살아야지, 나 아니면 누가 데리고 살겠어’라고 했대요. 그 얘기를 듣고 많이 감동했고, 운명의 짝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미소년에서 어른으로 돌아오다
그로부터 1년 뒤 조성모는 결혼식을 올리기 불과 일주일 전 깜짝 결혼 발표를 했다. 자신의 미니홈피에 구민지씨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을 올리며 결혼 소식을 알렸는데, 팬들의 축하 세례 속에서 상처받는 일도 있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구씨와 관련된 좋지 않은 소문이 올라온 것. 급속도로 루머가 확산되자 조성모는 결국 결혼식 당일 기자회견에서 “최근 터져 나온 소문은 절대 사실이 아니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유명한 한 남자를 만나서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 결혼 전 인터넷 악플 때문에 상처를 받았을 것 같아요.
“잘못된 걸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은 강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상처를 받거나 고민하진 않았어요. 연예계 생활이 어느덧 15년이나 됐고, 이제는 생각 없이 내뱉는 사람들의 말도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내공이 생겼어요. 인터넷을 유심히 보지도 않지만, 저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도 워낙 사건 사고가 많았기 때문에 그때의 경험들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웃음).”
▼ 결혼식 내내 신부보다 신랑이 더 많이 울었다는데, 이유가 뭔가요.
“조금 민망하지만 아내가 신부 입장을 하는데 정말 아름다웠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이제 내 아내구나 하고 생각하니까 실감이 안 나고 감정이 복받쳐 오르더라고요. 3년간 비밀 연애를 하면서 너무 조심스럽게 만났기 때문에 늘 미안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만인 앞에서 사랑을 맹세하고 부부가 된다고 하니까 감격스러웠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총각이 아니구나’ 하는 아쉬운 마음도 살짝 들었고요. 하하.”
▼ 2세 계획은 세웠나요.
“올해 안에 생겼으면 하는 바람은 있는데… 아, 아닌가 보네요(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아내의 표정을 살피더니 조성모가 손으로 X표를 만들어 보이며 “아니야?” 하고 묻고는 이내 말을 바꿨다). 저도 이제 ‘광화문 연가’를 시작으로 바빠질 것 같고, 아내도 대학원 졸업 후 디자인 사업을 시작할 생각이라서 아이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웃음).”
▼ ‘미소년’의 이미지에서 이제는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앞으로 음악 활동에서 뭔가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더욱 치열하게 음악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노력을 안 하면 버티기 힘들죠. 최근 음악 공부를 다시 하면서 작곡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마침 ‘광화문 연가’ 팸플릿 첫 장에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창조한다는 기쁨으로 음악을 하게 하소서’란 이영훈 선생님의 말씀이 적혀 있어요. 딱 저를 위한 글이라는 생각에 작업실 방 문에 붙여놨어요. 요즘 들어 조금씩 음악을 만드는 작업에 재미가 붙어요. 당장 앨범을 낼 계획은 없지만 앞으로는 저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런 점에서 이번 ‘광화문 연가’가 가수로서의 제 인생에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돼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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