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경(22) 하면 떠오르는 다섯 글자가 있다. 청순글래머. 청순한 얼굴과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합친 이 말은 이제 신세경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됐다. 2009년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 출연하면서 그는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궁녀 복장을 하고 있을 땐 육감적인 매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연기한 소이는 한글의 성공적인 반포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강단 있고 의협심 강한 여걸(女傑)이다. 드라마가 끝난 후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소이가 있다.
“화선지에 쓰인 한글을 보면 저도 모르게 짠해져요. 연기할 때 감정이 올라와서요. 소이와 닮았냐고요? 닮고 싶죠. 소이처럼 총명하고 지혜로운 여자가 어디 흔한가요?(웃음)”
촬영 현장에서 에너지 얻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즐거움 느껴
이정명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뿌리 깊은 나무’는 역사적 사실에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한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텔링과 배우들의 수준 높은 연기가 어우러져 매회 2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지난 연말 SBS연기대상에서도 가장 많은 상을 쓸어갔다. 신세경은 우수연기상을 받았다. 소이는 어릴 적 한 동네에서 자란 겸사복 강채윤(장혁)과 러브라인을 그리며 세종 이도(한석규)의 한글 창제를 돕다 한글 반포를 앞두고 비장한 최후를 맞는 인물. 시청자들은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한 소이의 죽음을 아쉬워했지만 그는 “이상적인 결말”이라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내용의 흐름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잖아요. 오히려 소이와 강채윤, 무휼(조진웅)까지 충복을 한꺼번에 잃은 세종이 더 가엾죠.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봐주셔서 촬영 내내 행복했어요. 저희 아빠도 저 때문에 의무적으로 보신 게 아니라 진짜 팬이 돼 즐기시더라고요. 이번 작품 덕에 부녀간 정이 한결 돈독해진 것 같아요.”
▼ 처음 대본을 보고 대박을 예감했나요.
“느낌이 좋았지만 이렇게까지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어요. 저는 시청률보다 제가 연기를 잘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작품을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대본이 완벽하고 출연진도 쟁쟁해서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 소이의 어떤 면에 끌린 건가요.
“총명하고 능동적인 모습이요. 상대편에게 잡히면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잖아요. 그만큼 사명감이 투철하고 행동도 거침이 없죠. 흔치 않은 여자 캐릭터여서 다른 작품과 차별성이 있겠다는 기대를 했어요. 한번 본 것을 외워버리는 소이의 천재성도 작품에는 중요한 요소였지만 여장부 같은 성격이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 소이와 비슷한 성격인가요.
“훨씬 밝은 편이에요. 사람들을 좋아해서 촬영장에 가면 에너지를 많이 얻어요. 작품이나 배역이 인기를 얻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현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알아가는 것도 제 삶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뿌리 깊은 나무’의 촬영은 혹한 속에 진행된 데다 무대가 주로 벌판이나 산속이어서 배우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한복을 입은 게 다행이었다.
“한복은 속옷을 껴입어도 표가 나지 않아서 하의를 여덟아홉 장씩, 상의를 대여섯 장씩 껴입었어요. 요즘은 얇고 보온이 잘되는 기능성 내의가 많잖아요. 그런 상태로 저고리를 입으면 어깨가 결리고 겨드랑이가 끼는데 추우니까 어쩔 수 없더군요. 나중엔 어떤 조합으로 입어야 가장 따뜻한지 알 수 있는 경지까지 갔죠. 하하하.”
찬 바람을 맞아 피부가 상했을 법한데 그의 피부는 유리구슬처럼 매끄러워 보였다.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화장발이라며 배시시 웃었다.
“피부 관리라고 해야 깨끗하게 클렌징하고 자기 전에 꼭 세수하는 정도예요. ‘뿌리 깊은 나무’를 찍으면서는 세수를 못하고 잠든 적도 있지만요. 촬영할 때는 몸이든 얼굴이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요. 잠도 부족하고 생활도 불규칙하니까요.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다이어트는 꿈도 못 꿔요. 잘 챙겨 먹어야 견딜 수 있거든요. 못 자고 바람 맞고 하니 피부 트러블도 피할 수 없어요. 피부는 잘 자고 잘 먹고 운동하고 그럴 때 가장 편안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 같아요.”
▼ 다이어트는 안 하나요.
“필요할 땐 식사량을 조절하지만 다이어트에 집착하진 않아요. 예쁘고 날씬한 것도 중요하지만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연기가 우선이죠. 겉모습에 예민해지다 보면 연기에 몰입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문근영 친구로 출연한 ‘어린 신부’가 배우 계기
미모와 연기력을 두루 겸비해, 차세대 톱스타감이라는 평을 듣는 신세경.
신세경은 초등학교 2학년이던 1998년 서태지의 5집 수록곡 ‘take5’의 포스터 모델로 연예계에 첫발을 들였다. 서태지 마니아들은 당시 그녀를 ‘서태지의 여인’이라 부르며 뜨거운 관심을 보였고 팬 카페까지 만들었다.
▼ 서태지씨와는 원래 아는 사이였나요.
“엄마의 지인 중에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는 분이 저를 모델로 추천하셨어요. 극비리에 진행된 프로젝트였고 그때는 너무 어려서 서태지씨가 누군지도 모르고 사진만 찍었죠. 그분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중에 열 살 위인 사촌언니에게 듣고 알았어요. 언니 학창 시절에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하더라고요.”
▼ 포스터 사진에 울고 있던데 왜 울었나요.
“울라고 해서 울었어요. 하하하.”
▼ 금방 눈물이 나던가요.
“촬영이 힘들었겠죠. 슬픈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하루 종일 울었던 것 같아요. 끝나고 나서 엄마가 맛있는 걸 사주셨어요.”
그가 배우를 꿈꾸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한참 뒤인 2004년, 영화 ‘어린신부’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연기 데뷔작인 이 작품이 개봉 2주 만에 2백만 관객이 드는 등 흥행에 성공하자 문근영의 친구로 출연한 그에게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당시 중학생이던 그는 현 소속사인 ‘나무액터스’에 몸담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지금 소속사에 연기자로 등록돼 있었어요. 오디션을 준비하며 속성으로 연기 지도를 받았는데 가수 지망생이 연습생 생활을 하듯 긴 세월에 걸쳐 꾸준히 트레이닝을 받진 못했어요. 학생 시절에는 학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했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더 충실했거든요.”
▼ 공부를 잘했겠네요.
“중학교 때까지는 꽤 잘했어요. 평균 90점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죠. 전교 10등 안에 든 적도 있고요. 특히 언어 영역을 잘했어요. 국어와 영어 성적은 늘 좋았고 한자도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그때는 많이 알았어요. 수학이 문제였죠. 수학은 억지로 해도 실력이 잘 늘지 않더라고요. 로그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포기했어요. 하하하. 적성에 안 맞으니 공부를 해도 힘만 들고 성과가 없더라고요. 대신 좋아하는 과목은 열심히 했어요. 그때가 좋았죠.”
신세경은 2004년 대하드라마 ‘토지’를 찍고, 2006년엔 영화 ‘신데렐라’에 출연해 호러 퀸의 계보를 이을 기대주라는 찬사를 받지만 이후에는 학업에만 전념했다. 2009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가자 그해 연거푸 두 작품에 출연하며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오른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천명공주 아역으로 얼굴을 알린 후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순진한 가사도우미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것.
“그 당시에는 매일 바쁜 일정에 치여 살았어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거나 길이 나 있는 대로만 갔죠. 근데 지금은 이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여유가 생겼어요. 그게 폭발적인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든 인기가 식은 것이든 상관없어요. 대중의 관심이나 사랑은 롤러코스터처럼 왔다 갔다 하고 영원하지 않잖아요. 당장 사랑받는 데 연연하는 것보다 어제보다 오늘 더 발전하는 연기자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청순글래머’라는 애칭은 마음에 드나요.
“좋은데요. 칭찬이잖아요. 한 가지 이미지에 매몰될 수도 있지만 당장 걱정하지는 않아요. 앞으로 만나는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요. 국한된 이미지를 깨느냐, 못 깨느냐는 제 몫이죠.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후부터 그 이미지로 분에 넘치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매번 좋은 작품과 훌륭한 선배님을 만났기 때문에 늘 감사해요. 저한테는 항상 행운이 따르는 것 같아요.”
집에서 그는 귀한 외동딸이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좀 더 편한 길을 가기를 바랐을 법한테 부모님은 늘 그의 뜻을 존중해줬다고 한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배려해준 부모님에게 감사하면서도 죄송할 때가 많다”며 “몸이 고단하고 힘들 때는 집에 돌아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다”고 했다.
“투정 부릴 사람이 엄마밖에 없거든요. 돌아서자마자 매번 후회해요. 너무 죄송하니까요. 심지어 어떤 때는 말을 꺼내자마자 미안한 생각이 드는데도 멈춰지지가 않아요. 정말 몹쓸 짓이죠. 엄마는 제겐 가장 크고 든든한 버팀목인데….”
▼ 어머니와 대화를 자주 하나요.
“엄마는 대화를 많이 하고 싶어 하세요. 딸이 밖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시겠죠. 그런데 촬영하다 지쳐서 집에 들어가면 그냥 쓰러져 잘 때가 많아요. 엄마 아빠는 제가 힘들 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걸 안타까워하시는데 실은 그 반대예요. 늘 묵묵히 절 믿고 다독여주시는 자체가 저한테는 큰 힘이 돼요. 어차피 이 직업은 혼자서 이겨내고 버텨내지 않으면 안 돼요.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죠.”
▼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비법을 찾은 건가요.
“바쁘게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풀어지는데 강도가 좀 세다 싶을 땐 뭘 먹어요.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 실컷 수다 떨면서 맛난 걸 먹다 보면 안 풀리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어요.”
공개 연애 끝 결별 “늘 마음 쓰이고 미안했다”
지난해 ‘뿌리 깊은 나무’에 출연하기 전 그는 ‘푸른 소금’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그와 배우 송강호가 각기 사격 선수 출신 여자 킬러와 전직 조폭으로 나오는 액션멜로영화다. 신세경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한 이 작품은 아쉽게도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새 작품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시작한 ‘뿌리 깊은 나무’의 성공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그는 ‘뿌리 깊은 나무’를 “일생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복권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은 건 ‘푸른 소금’이다. 이 작품을 찍을 때가 그에겐 과도기였다고 한다.
“제가 뭐 하는 줄도 모르고 스케줄을 소화했던 시기와 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된 지금의 중간 지점이라고 할까요. 힘든 점도 많았고 연기에 대한 한계를 발견하기도 해서 혼자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저 자신과 한참 싸웠어요. 슬럼프였죠. 송강호 선배님 덕분에 그나마 부족한 점이 많이 가려진 것 같아요. 선배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호흡이라든지 어미, 정말 작은 부분 하나까지 허투루 표현하지 않으세요. 철저하고 섬세하게 고민해서 연기하는 거더라고요. 그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고 많이 배웠어요. 그 작품이 저한테 의미가 있는 이유는 제 스스로 한계를 느껴 답답했고 배우가 된 걸 후회할 만큼 힘들었지만 촬영이 끝날 때쯤에는 제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과 의미를 찾았기 때문이에요.”
슬럼프가 온 것이 꼭 연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지난해 여름 결별의 아픔도 맛봤다. 2010년 가을 아이돌 그룹 샤이니 멤버 김종현과 공개 연애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남녀에서 친구 사이로 돌아간 것이다. 사랑과 이별이 연기자에게 필요한 경험이라고들 하지만 어린 그에겐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 공개 연애를 한 것이 후회되나요.
“심정적으로는 다분히 그렇죠. 그 친구가 일반인이었으면 상관없는데 팬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고 저도 그게 늘 마음이 쓰이고 미안했어요. 지금은 그 친구가 잘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 다음에도 공개 연애를 할 것 같나요.
“모르겠어요. 지금은 연애를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전력질주로 달리다 보면 멈추려 해도 관성 때문에 계속 가듯이 일만 생각하며 숨 가쁘게 달리고 있거든요. 가끔은 저 자신을 위해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은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게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 어떤 남성상을 좋아하나요.
“성실하고 예의바른 사람, 말에서 매력이 느껴지는 사람이 좋아요. 예전에는 목소리 좋은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했는데 목소리가 아니라 말투나 말의 내용에 끌리더라고요. 말에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이 담겨 있으니까요.”
▼ 혼자 외롭게 자라서 자식 욕심이 많을 것 같아요.
“가족을 통해 좋은 에너지를 얻어서 그런지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요. 사실 저의 종착역도 엄마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스물일곱이나 스물여덟 살에 결혼해서 네 명 정도는 낳고 싶은데 막연한 생각일 뿐이에요. 이래 놓고 엄청 늦게 결혼할지도 몰라요(웃음).
▼ 배우가 안 됐으면 뭘 하고 있을까요.
“대학에 다니고 있지 않을까요. 1학년 1학기 마치고 휴학했거든요. 다른 직업은 생각해본 게 없어서 그것 말고는 떠오르지가 않아요. 공부는 어떻게든 마쳐야겠지만 지금은 촬영장에서 배우는 것도 학교 수업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기와 학업을 병행하면 둘 다 잘할 수 없을 테니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있을 때 다녀야죠.”
‘뿌리 깊은 나무’는 끝났지만 그는 여전히 바쁘다. 3월부터 방영하는 드라마 ‘패션왕’에 캐스팅돼 지난 연말부터 대본 연습에 들어갔다. ‘패션왕’은 젊은이들의 도전과 성공, 사랑과 욕망을 그린 작품으로 유아인과 그가 남녀 주인공으로 나온다. 여기서도 그는 “가난하고 똑똑한 캐릭터를 맡았다”며 “상황이나 에피소드보다 등장인물 간에 미묘한 감정이 극의 흐름을 결정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임진년 새해 그가 이루고픈 소망은 무엇일까.
“제가 하는 작품이 다 사랑받기를 바라고 저도 연기를 잘했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하는 것만으론 모자라고 저 스스로 발전하는 그런 한 해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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