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이면 전국 작가 지망생들의 심박수는 빨라진다. 이들의 로망인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환호의 주인공들이 탄생했다. 그중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집시, 달을 굽다’로 당선한 설은영(34) 작가는 유독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다. 그가 소설 ‘황금비늘’ ‘괴물’ ‘장외인간’ 등으로 유명한 이외수 선생의 며느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설은영 작가는 당선 소감에서 이외수 선생을 “내가 목격한 예술가 중 가장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시아버지”라고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이메일을 통해 설 작가와 인터뷰를 시도했다.
언젠가 작가가 될 줄 알았다는 당당한 신인
1월1일자 조선일보에 신춘문예 당선작과 함께 실린 설은영 작가의 짤막한 당선소감 중 “학교에 가기도 전부터 막연히 나는 작가가 될 줄 알았다”는 부분이 꽤 인상적이다. 그가 얼마나 작가가 되길 소망했는지가 느껴지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자체가 그저 황홀했다고 말했다. 성인이 된 후에도 몸은 일터에 있을지언정 작가에 대한 열망은 버릴 수 없었다고. 드디어 2011년, 그는 “문학에 죄스러운 날”을 뒤로 한 채 등단의 기쁨을 누렸다.
▼ 정식 등단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당선 통보를 받았을 때 심경과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누구였나요?
작품 접수 마지막 날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당선 소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지요. 접수기한을 하루 앞두고 프린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남편이 밤을 꼬박 새며 손을 봤지만 결국 고치지 못했어요. 급한 대로 집 근처 문구점으로 뛰어가 신춘문예에 응모해야 하니 한 번만 봐달라고 사정했죠. 점원도 처음에는 선뜻 자리를 빌려줬지만 시간이 지체되자 난감해 하더라고요. 더 이상 안 된다고 말할 때까지 끈질기게 고친 뒤 등기로 부치고 돌아오는데도 아쉬움이 남아 발걸음이 무거웠어요.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던 차에 당선 통보 전화를 받았고, 그 순간 신기하게도 문구점 직원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렇게 수선을 피우던 사람이 해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죠.
▼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은 “등단이 생각보다 늦게 이루어졌다”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상당히 기뻐하셨어요. 본격적으로 글을 쓰지도, 아주 포기하지도 못한 시간이 길었는데 지켜보신 부모님도 마음고생을 하셨거든요.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하셔도 젊은 날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거절했고 그런 상태로 꽤 오랫동안 힘겨워했어요. 물론 이제는 체력이 고갈되고 더는 방법이 없으니 시댁이나 친정에서 주시는 도움을 눈 감고 그냥 받아요. 양가 부모님께 늘 죄송한 마음뿐이죠.
▼ 아주 오래전부터 작가가 꿈이었다면 이번이 첫 도전은 아닐 것 같습니다. 몇 번의 도전과 노력 끝에 당선되신 건가요?
등단은 첫 도전이었어요. 하지만 매년 신춘문예가 있을 때마다 ‘나는 여태 소설가가 못 되고 뭘 하고 있나’ 자책하며 응모자와 같은 심정으로 열병을 앓았어요. 그렇게 꿈만 꿀 때는 고통스러웠는데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그동안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는 않았구나 싶어요.
▼ 당선 후 인터뷰에서 “신춘문예 접수 마감을 불과 보름 앞두고 갑자기 등단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당선작인 ‘집시, 달을 굽다’를 보름 만에 완성했다는 의미인가요?
여러 신춘문예에 응모하려고 작품을 세 개 정도 썼고 과거의 습작도 손을 봤어요. 유일하게 당선된 이 작품은 십 년 전쯤 써놨다가 묵혀둔 거예요. 읽을 때마다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해 써놓고도 정이 가지 않았어요. 미운 자식이 가장 효도한다더니 진짜 그런가 봐요. 비율로 보자면 개인적인 경험이 절반 정도 녹아 있어요. 학사 졸업을 하기까지 전공을 선택하는 데 방황한 시간이 길었거든요. 국문학, 시나리오, 인류학 세 분야를 놓고 갈등하며 모두 시도를 했어요. 그중 시나리오를 공부할 때는 개인적인 사정상 고시원과 반지하방을 전전했는데 처음으로 그런 고생을 해봐서인지 고통이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견디다 못해 고시원을 뛰쳐나오면서 이를 토대로 한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그게 바로 이번 소설 ‘집시, 달을 굽다’의 주인공 은호의 이야기예요.
▼ 심사평에서 “인간 내면에 도사린 삶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감과 세속적인 리얼리티를 적절히 결합하고 있다”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주제는 무엇인가요?
부족한 글인데도 칭찬을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글의 주제는 간단해요. 은호라는 오늘날 청춘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무료하며 불안하지만 어떻게든 즐겁게 버텨보자는 걸 말하고 싶었죠. 인간에게 주어지는 고통은 형태만 다를 뿐 무게는 비슷하다고 보는데 그걸 어떻게 버티느냐가 관건인 것 같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외수 열성팬에서 며느리가 되끼까지
설은영 작가는 시아버지로 모시기 전부터 이외수 선생을 문학적 스승으로 삼았을 만큼 열성 팬이었다. 팬카페에서 활동 하다 영화 ‘다찌마와 리’ ‘호우시절’ 등을 만든 이한얼 영화감독을 만나 결혼했다. 이런 인연으로 시아버지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받았을 법도 하지만 설은영 작가는 “전혀 그럴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대신 매일 문장 연구를 하는 시아버지를 지켜보며 자극을 받은 것이 유일한 공부이자 수업이었다고. 그는 등단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소설가인 시아버지와 영화감독인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시아버지에게 신춘문예에 응모한 사실을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다고 했는데 결과를 알려 드렸을 때 반응은 어떠셨나요?
신춘문예 공고가 나면서 마음이 급해지자 곁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제 일을 덜어줬고, 생애 처음으로 나만을 위한 시간이 생겨 밤낮으로 글만 썼어요. 상황이 그렇다보니 아버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어요. 이번에 당선 소식을 알려드리자 “그래도 명색이 소설가인데 며느리 작품의 제목조차 모르고 있었다”며 서운해 하셨죠. 시간이 촉박해서 그리 됐다고 변명했지만 사실 시간이 넉넉했더라도 보여드리지 않았을 거예요. 오로지 제 힘으로 등단하고 싶었거든요.
▼ 이외수 선생님에 대해 “내가 목격한 예술가 중 가장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시아버지”라고 표현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대중에게 친근한 소설가이긴 하지만 시아버지로서 이외수 선생은 어떤 분일지 궁금합니다.
고등학생 때 처음 아버님 소설을 읽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존재하는구나 싶었죠. 그대로 이외수 작가의 팬이 됐고 구할 수 있는 작품은 다 찾아 읽었어요. 인연이 닿아 가족이 되고 보니 아버님은 제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기인이세요. 시댁에 가면 저는 마치 우주에서 파견된 과학자처럼 아버님을 관찰하죠. 뭔가 연구하고 몰두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한동안 관찰일지까지 썼을 정도였어요. 아버님은 화가의 꿈을 접고 펜을 잡으시면서 ‘젊을 때는 자신을 가둘 수 있을 때까지 혹독하게 가둘 것. 그리고 늙어서는 자신을 마음껏 풀어줄 것’이라고 결심하셨대요. 그걸 지금까지 스스로 실험하고 있는 셈이시죠. 모르는 사람들은 이외수 작가가 한가하게 인터넷이나 하는 줄 알겠지만 아버님은 매일 문장 공부를 하느라 바쁘세요. 하나의 수식을 얻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고 수면시간, 식사시간을 쪼개서 기타 활동을 하시죠. 정말 기인이라고밖에는 표현을 하지 못 하겠어요.
▼ 이외수 선생이 며느리의 작품 활동에 직접 도움을 준 적이 없다고 하지만 일반 사람들의 짧은 생각으로는 ‘그래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됐겠지’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작품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다기보다는 당선작을 완성하는 데 따로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네요. 그동안 제대로 써놓은 것이 없어 도움을 요청한 적은 없어요. 시나리오는 드문드문 써왔지만 소설을 쓴 적은 없으니 제 꿈이 소설가란 것도 모르셨을 거예요. 가족끼리 모여도 공개적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는 잘 하지 않잖아요. 이제는 저도 최소한의 자격이 생겼으니 궁금한 건 마음껏 여쭤볼 생각이에요.
▼ 이외수 선생의 팬이었던 계기로 남편을 만났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과정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1999년도쯤 아버님 홈페이지의 채팅방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어요. 문투가 거칠다보니 다들 절 남자로 착각했고, 남편도 한참 뒤 오프라인에서 보고 제가 여자란 걸 알았죠. 전 또래 남자를 어리게 생각하는 편이라 동갑인 남편을 보고도 남편감은커녕 동생으로만 여겼죠. 인상도 순해서 가벼운 사람쯤으로 여겼는데 알고 보니 끈질긴 면도 있고 사회생활도 잘하더라고요. 그 부분에 끌려서 연애를 시작했고, 결국 2005년 결혼식을 올렸죠.
남편 이한얼 감독은 기사에 들어갈 설은영 작가의 사진을 직접 찍어 제공했다.
조선일보에 실린 설은영 작가의 단편소설 ‘집시, 달을 굽다’를 보며 기뻐하는 시아버지 이외수 선생.
▼ 이번 등단 소식에 가장 기뻐했을 사람은 남편 이한얼 감독이 아닐까요?
전봇대를 붙들고 울었다기에 엄청 웃었어요. 남편은 “갖고 싶은 것 다 사주겠다”고 큰소리칠 만큼 기뻐했어요. 여태 바빠서 신혼여행도 못 갔는데 상금 받으면 양가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남편과 며칠이라도 여행을 가고 싶어요.
▼ 두 분 다 예술계통에서 일을 하는 터라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는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서로 창작의 고통과 이면의 초라함을 잘 알고 있다는 게 힘이 돼요. 크게 싸워도 서로의 창작세계는 절대 건드리지 않죠. 작업은 각자 하지만 도움을 청할 때면 일을 거들기도 해요. 남편이 영화를 찍을 때 제가 시나리오 작업을 돕기도 했어요. 저는 혼자 작업하는 걸 좋아해서 특별히 도움을 청하진 않아요. 다만 글을 쓸 때면 불량주부로 살 수밖에 없어서 남편이 이해해주는 편이죠. 앞으로 외조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마음 놓고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작정 쓴 시간들이 등단의 원동력
신춘문예 당선자 정도면 태어날 때부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꾸준히 쓰지 않으면 재능이 있다한들 빛을 보기 힘들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글이라는 높은 벽 앞에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좌절하기를 반복한다. 설 작가도 첫 신춘문예 도전에서 성공하는 기쁨을 누렸지만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세월이 필요했고 수많은 작품을 쓰고 고쳤다. 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며 “깊이 생각하고 열심히 쓰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 유년시절부터 써온 습작이 많다고 하는데 어떤 작품들인지요.
작품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어릴 때는 유독 동시를 많이 썼는데 어른 흉내를 잔뜩 낸 것들이라 지금 보면 별 매력이 없어요. 학창시절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일이 작품 창작에 도움이 됐죠. 재미로 보낸 사연이 어느 날 덜컥 뽑혀 상품을 받은 뒤로는 더 열심히 써서 보냈어요. 이름을 바꿔가며 ‘유희열의 음악도시’에 사연을 보냈는데 절반 정도는 당첨될 정도로 괜찮게 썼던 것 같아요.
▼ 방송작가와 기자로 활동하신 적이 있지요? 모두 소설가가 되는 과정이었나요?
돈은 벌어야겠는데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글쓰기뿐이니 무작정 방송작가를 택했어요. 작가과정을 수료하기도 전에 유명프로그램에 발탁됐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됐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서 힘들었어요. 제 기획력이나 필력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거든요. 그 프로그램에서 도망치듯 나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재미는 있었지만 체력이 달려서 도저히 오래 버티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때 친구가 기자직을 추천해서 시험을 본 뒤 중앙일보에서 계약직 기자로 3년 정도 일했어요. 건강이나 환경 관련 기사를 주로 쓰면서 스트레스 없이 일할 수 있었고 생활도 점차 안정됐죠. 돌아보면 이 모든 과정이 등단의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 당선 소감에 “한참 동안 문학의 언저리를 방황했다”고 밝혔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방송작가, 기자로 일하면서도 등단의 꿈을 포기하지 못해 열병을 앓았어요.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삶이 안정될수록 우울함이 밀려왔거든요. 죽도록 글이 쓰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 꽤 답답했어요. 남들은 돈도 벌면서 작품 창작도 한다던데 저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는 사람이라 그게 불가능했죠. 때문에 사회적인 경력을 쌓는 일부터 시작했는데 돌아보면 잘한 선택이었어요. 작품 창작의 길을 먼저 갔다고 한들 현실적인 문제가 신경 쓰여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을 것 같거든요.
▼ 그렇다면 앞으로 현실적인 문제와 창작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생각인가요?
등단도 했으니 지금까지 해온 다른 일들은 서서히 정리해야죠. 계속 단편을 쓰면서 구상 중인 장편을 진행하려고요. 등단 후 단편 청탁이 몇 개 들어왔고, 조선일보에도 칼럼을 연재하기로 했거든요. 이런 식으로 글을 쓰다가 3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집필 시간을 가질 생각이에요. 이제 다른 일에 얽매이지 않고 글만 쓸 수 있어서 상당히 기대하고 있어요.
▼ 마지막으로 설 작가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성실하게 제 할 일하며 건강하게 살다가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 소원은 저처럼 예민하고 나약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는 거예요. 젊은 날 제게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랬듯 앞으로 저 또한 글로써 남을 돕는 존재가 된다면 행복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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