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하객 앞에서 영원히 변치 않겠다고 사랑의 맹세를 했다. 한 지붕 아래서 살을 비비고 산 지 1년·2년·3년…,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 적인지 아군인지 헷갈린다. 가족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미운 짓을 하기 시작하면 세상에 ‘웬수’가 따로 없다. 이대로 참고 살까, 아니면 갈라서서 새 인생을 시작해볼까, 많은 부부가 오늘도 고민한다.
결혼생활에 왕도는 없을까 하는 의문을 안고 김영희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을 만났다. 15년간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이혼 사례를 접해온 그는 2년 전부터 경기도 분당에 부부 컨설팅 사무실을 열고 위기의 부부들에게 ‘화해의 기술’을 전하고 있다.
섹스리스 ·의부증·외도…30~40대 부부 불화 원인은 성문제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두툼하게 쌓인 서류 더미가 눈에 띈다. 상담 자료들이다. 갈등을 겪는 부부가 많다는 얘기다. 책상 한쪽에는 흰색 티슈곽이 눈에 들어온다. 상담소 문을 두드리는 사람 수만큼이나 눈물 콧물 뺄 사연도 많다. 김 위원은 “요즘 30~40대 부부의 성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이혼의 트렌드도 조금씩 바뀌어요. 몇 년 전에는 황혼이혼이 눈에 띄게 늘어 화제가 됐는데 요즘엔 섹스리스(sexless)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외도·의부증·의처증이 모두 여기서 비롯되는 문제들이죠. 상담소를 찾은 부부 대부분이 이혼을 고민합니다. 하지만 이혼하면 행복해질까요? 이혼 커플 중 다수가 경제적인 이유와 자녀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고, 80%가 이혼을 후회합니다. 게다가 재혼 실패율이 70~80%가 넘는 것을 보면, 이혼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죠.”
김 위원은 무조건 이혼을 말리지는 않는다. 대신 “지금 닥친 위기가 순간으로 끝날 것인지 영원히 풀리지 않을 족쇄인지를 판단하라”고 조언한다.
“폭력 등 심각한 사유가 있을 때는 이혼을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외의 문제라면 자신이 정말 결혼생활에 충실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어요. 문제점을 깨닫는다면 고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깨달음 속에 희망이 있어요.”
CASE_ 1 결혼 7년차 섹스리스 부부
A씨 부부는 여섯 살, 네 살 아이를 둔 결혼 7년 차 맞벌이 부부다. 아내가 육아와 집안일을 병행하다 보니 살림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남편인 A씨는 이런 상황이 못마땅한데 아내는 둘째를 낳은 후 피곤하다는 이유로 부부관계까지 완강하게 거부했다.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좋겠지만 형편상 불가능하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A씨. 그는 자위를 하거나 안마시술소에서 성욕을 해결했고 그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여성이 아이를 낳고 옆에 끼고 키우는 2~3년간, 부부관계에 적신호가 오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몸이 너무 지친 상태라 남편을 거부하는 경우가 잦아지죠. 이때 남편이 스킨십도 없이 억지로 관계를 가질 경우, 아내는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 반대로 아내가 완강히 거부하면 남편도 상처를 받습니다. 동물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래요. 그러면서 외도를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죠.”
김 위원은 특히 맞벌이 부부에게 간곡히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서, 커리어를 위해서 맞벌이를 하더라도 무엇을 우선순위로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
“하나를 얻기 위해서 아홉을 버리는 것은 밑지는 장사죠.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에만 몰두해서 배우자나 가족을 외롭게 한다면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김 위원은 안방에서 아이들을 끼고 자는 A씨 부부에게 아이들을 따로 재우고 둘만의 시간을 많이 가지라고 주문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자는 게 정서상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릴 적 엄마 아빠가 다정하게 사랑을 나누는 걸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결혼을 하면 좋은 남편·아내가 될 수 있어요.”
둘만의 시간이 늘자 부부는 점차 서로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둘만의 여행을 권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지치고 생기 없던 아내의 얼굴이 후 복숭아처럼 발그레해졌다. 집안 살림도 윤기가 돌기 시작했다.
CASE_ 2 유명교수의 의부증 아내
유명 대학교수 B씨는 아내의 의부증에 시달렸다. 5년 전 부부동반 모임에 B씨의 조교가 동석을 했는데 한 노교수가 “B교수와 조교는 환상의 듀엣이야. 손발이 척척 맞아”라고 한 것이 화근이 됐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조교의 신상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B씨는 별생각 없이 “미혼인데 예쁘고 능력도 있어서 남자들한테 인기가 많다”고 답했다. 아내는 그날 이후 사무실과 휴대전화로 수없이 전화를 걸어 남편의 소재를 확인했다. 남편과 조교가 함께 자리를 비우는 날엔 심하게 부부싸움을 했다. 하루는 아내가 학교로 조교를 찾아와 “당장 그만둬라. 그렇지 않으면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불륜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상담소를 찾아오는 분 절반 정도가 의처증 의부증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부정한 행위로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죠. 누가 봐도 아닌 게 확실한데도 믿지 않고 불륜의 증거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죠.”
김 위원은 “의부증이나 의처증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블랙홀”이라고 말한다. 증세가 시작되면 휴대전화 통화 내역 확인은 물론이고 도청, 미행,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다른 면에서는 정상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치료가 어렵다. B씨 아내의 경우는 아이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다.
“‘툭하면 기자회견을 하겠다, 총장을 만나겠다고 하는데 만의 하나 불륜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 할 일인가. 당신은 남편과 자식까지 불행하게 하는 참 나쁜 엄마다. 차라리 이혼을 하라’고 호통을 쳤어요. 그리곤 ‘상담자인 내가 이렇게 힘든데 가족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생각해보라’고 했죠.”
진심 어린 충고에 B씨의 아내는 “어쩌면 오해일지도 모른다. 오해라면 남편을 의심하고 살았던 지난 5년의 세월이 억울해서 어떡하냐”고 흐느꼈다.
“잘못을 인정한 것만으로도 희망적입니다. 남편과 아이들의 따뜻한 사랑만이 B씨의 아내를 블랙홀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게 할 수 있습니다.”
CASE_ 3 외도하면서도 적반하장 남편
C씨는 남편의 외도로 맘고생을 했다. 이웃집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 들킨 남편은 “다른 집 아내들은 남편을 하늘같이 떠받든다는데”라면서 아내 탓을 했다. 끊임없이 감시받는 것 같아서 귀찮다고도 했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남편은 적반하장이었다. 섹스할 때 아내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다고 푸념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사정이 있었다. 쌍둥이 아이 중 하나가 장애아였기 때문에 남편에게 신경 쓸 틈이 없었던 것.
“아내는 남편의 외도가 끔찍하게 싫었지만 이혼할 생각도 없었어요. 생활력도 없고 아이들도 맘에 걸리고, 무엇보다 가난했던 연애시절 바지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은 2만원을 내밀며 ‘분식집 가서 국수나 먹자’고 데이트 신청을 했던 남편에게 아직 정이 남아 있었죠.”
남편 역시 가정을 깰 마음은 없었다. 김 위원은 남편에게 협상을 제안했다. 남편이 아내에게 원하는 것은 휴대전화 뒤지지 말 것, 감시의 눈초리로 쳐다보며 숨통을 조이지 말 것, 아이들을 시켜 빨리 들어오라고 다그치지 말 것이었다. 김 위원은 남편에게 절대로 외박 안 하기, 늦어도 새벽 1시까지 들어오기, 토·일요일은 무조건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기를 내걸었다. 그러고는 남편을 붙잡고 말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생각해보라. 목이 말라서 물을 달라고 하면 간병인은 주전자에 있는 물을 무심히 따라주지만 남편과 아내는 컵이 깨끗한지, 주전자의 물이 오래된 건 아닌지 확인해 보고 물을 따른다. 당신에게 깨끗한 물을 따라줄 사람은 아내밖에 없다. 더 이상 아내를 울리지 말라”고.
“누구보다 힘들었던 결혼생활, 이혼했더라면 지금의 행복 누리지 못했을 것”
위기의 부부를 화해시키는 데 도가 튼 그의 실제 결혼생활은 어떨까. 김 위원 역시 자신을 찾아오는 수많은 이혼 부부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많이 맘속으로 이혼을 고민하고 살았다.
부잣집 외동딸로 자란 그는 스물네 살에 부모 반대를 무릅쓰고 신문기자였던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은 지독한 술꾼이었다. 월급은 술값으로 모두 날려 빈 봉투만 들고 들어오는 날이 잦았고 그나마 집에 들어오는 날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였다. 어린 세 아이를 먹이고 키우고 보듬는 건 전부 그의 몫이었다.
“아이를 낳고 먹지를 못해서 모유가 안 나오더라고요. 생쌀을 갈아 먹였더니 아이가 그걸 받아먹고는 넘기지도 못한 채 온몸이 파랗다 못해 보라색으로 질리더라고요. 잘 먹이지 못해 미안해서 울고, 비 오는 날엔 축대 무너질까봐 아이들 끌어안고 울고….”
남편의 외도로 속을 썩은 적도 있다. 한번은 동창회에 나갔는데 사람들이 다들 그를 쳐다봤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한 친구가 “너희 남편이 선배 언니랑 바람났다고 소문이 자자하다”고 귀띔해주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했지만 그는 남편에게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남편이 집에 안 들어오는 날에는 인삼 달인 물, 와이셔츠와 속옷을 싸들고 숙직실로 남편을 찾아갔어요. 가져간 물건을 전해주고 버스를 타고 돌아올 때면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한 번도 왜 안 들어오느냐고 묻지 않았어요. 어차피 거짓말을 할 게 뻔하고, 그럼 저는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될 게 뻔했으니까요.”
이런 아픈 경험 덕분에 부부들의 사연을 가슴으로 들을 줄 알게 됐다. 95년부터 서울 가정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하며 이혼조정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2003년 대법원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은 김 위원은 이날 행사장에서 받은 코사지를 남편에게 꽂아주며 “당신이 나를 힘들게 해서 오늘의 영광이 있는 거야”라고 말하며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그가 모진 세월을 묵묵히 이겨내는 동안 남편도 조금씩 바뀌었다. 하루는 그가 몸이 아파 머리를 싸매고 자리에 눕게 됐다. 이때 평소 관심도 없이 무뚝뚝하기만 하던 남편이 화채 한 그릇을 만들어서 김 위원에게 가져와 “이것 좀 먹어봐”라고 말했다. 남편이 생전 처음으로 만든 사과와 수박을 삐뚤빼뚤 썰어 만든 화채를 바라보는데, 그 속에 남편의 사랑이 보이는 듯해 눈물이 났다고 한다. 술을 완전히 끊은 남편은 더 일찍 끊지 못한 걸 아쉬워한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3남매는 모두 좋은 배우자를 만나 그림같이 잘 살고 있고 부모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잘한다. 김 위원은 “젊어서 이혼을 했더라면 나는 행복했을지 모르지만 우리 가족의 행복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근 상담을 통해 만난 부부의 사례와 자신의 결혼생활 고백을 담은 ‘Why me?’(도서출판 하우)라는 책을 펴낸 그는 “어느 부부에게나 위기가 찾아온다. ‘왜 나만?’이라고 괴로워하지 말고 배려와 양보, 이해로 상대를 보듬어라”고 당부했다.
“부부는 하나를 위해서 아홉을 내줄 수도 있어야 해요. 당장은 손해 본 것 같지만 가족에게는 열이 돼 돌아오죠.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언젠가는 돌아갈 곳, 가정이라는 둥지를 위해서요.”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