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살짝 쳤는데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옆구리에 물이 찼다고 하더군요.”
“남편이 인터넷쇼핑 중독이에요. 돌~아버리겠어요.”
온몸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남편과 코스모스처럼 하늘하늘한 아내. 박재훈(39) 박혜영(35) 부부는 언뜻 ‘남녀조합의 고전’같다. 하지만 실상은 반대. 남편은 만원 단위 영수증까지 챙길 정도로 세심한 반면 아내는 말투도 성격도 주먹도 털털하다. ‘스타 부부쇼 자기야’(이하 자기야)와 ‘결혼은 미친 짓이다’(결미다)에 출연해 관심을 모은 이들을 서울 대학로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2006년 소개팅으로 만났다. 시드니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심권호 코치가 다리를 놓았다. 심 코치가 자진해 마련한 자리는 아니었다. 박혜영이 평소 이상형이던 박재훈을 만나게 해달라고 심 코치에게 졸랐다. 직접 자리를 세팅한 여자와 아무것도 모르고 나온 남자. 박재훈은 상대가 전직 국가대표 레슬러라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운동을 했다기에 처음에는 체조선수인 줄 알았어요. 체격도 호리호리하고 외모도 여성스러워 레슬러인 줄은 꿈에도 몰랐죠. 이야기를 듣고도 농담으로 흘렸는데, 조르기를 한번 당하고는 바로 꼬리를 내렸어요(웃음).”
이상형이던 남자는 만나보니 더 멋졌다. 유머러스하고 자상한데다 책임감도 강했다. 남자도 터프함 속에 감춰진 여자의 따뜻함에 반했다. 반년간의 연애를 거쳐 이듬해 3월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18개월 전 아들 준성이가 태어나면서 장난꾸러기 부부는 의젓한 부모로 신고식을 치렀다.
#“활동 뜸한 남편 기 살리려 무조건 잘해줘요”
티격태격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는 부부.
지난해 8월 ‘자기야’에 첫 동반 출연한 날, 아내는 그만 눈물을 보였다. 시원 솔직하게 부부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감정이 북받쳤다. “내가 강한 캐릭터이지만 남편 말만큼은 거역한 적이 없다. 남편이 활동이 많은 것도 아닌데 안에서라도 기를 세워주고 싶어서다”라는 대목에서다. 제작진도 프로그램을 빛낸 이들이 고맙지만 부부 또한 그렇다. 겸연쩍어 삼키곤 하던 속내를 방송에서 나눴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
“평소 남편은 표현을 자주 하는 편이지만 저는 속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아요. 가령 영화를 보며 연기를 따라 하는 남편을 보면 안타깝고 애틋하지만, 그런 마음을 전하진 않죠. 방송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마음으로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에요. 남편도 ‘그런 생각을 했느냐’며 눈이 동그래지더군요.”
감동의 눈물만 있었던 건 아니다. ‘결미다’에서는 과격한 부부싸움으로 눈길을 끌었다. 얼마 전 있었던 부부싸움을 재연하다가 감정이 다시금 폭발한 것. 박재훈이 리모컨을 집어던지면서 결국 촬영이 중단됐다.
‘결미다’는 이런 점에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자기야’는 스튜디오에서 토크 형식으로 부부생활을 전한다. ‘결미다’는 아니다. 부부도 모르는 구석까지 소리 없이 카메라에 담긴다. 부부가 말하는 실제 결혼생활 반영도는 98%. 정해진 상황에서 촬영을 진행한다 해도 현장 분위기가 워낙 편안해 어느새 진짜 내가 나와 버린다고. 공인인 남편은 그렇다 쳐도 아내는 출연을 망설이진 않았을까.
“결혼 전에는 수줍음이 많아 레슬링 타이즈 입는 것도 엄청 신경이 쓰였죠. 하지만 지금은 저를 보여주는 게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아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아줌마잖아요(웃음). 다만 레슬링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좀 그래요. 운동을 했다고 하면 일단 ‘힘세고 거칠다’는 선입견을 갖거든요. 참, 길에서 ‘팔씨름 한 판 하자’는 남자분이 많아진 것도 난감하고요.”
아줌마라서 괜찮다지만 얼굴이 알려지는 불편함은 생각보다 크다. 박혜영이 TV 출연을 결심한 것은 순전히 남편에게 도움이 될까 해서다. 그간 박재훈의 연예계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오랜 기간 연예계를 떠나 있었고, 지난해 트로트 가수로 재기를 노렸으나 그마저 일이 꼬였다.
#“빚 갚던 습관 남아 지금도 아내에게 돈 씀씀이 보고해요”
출발은 화려했다. 94년 국민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 장동건의 친구이자 라이벌로 출연했다. 개성 강한 외모와 실제 농구선수 경력으로 금세 스타 반열에 올랐다. 이후 드라마 ‘느낌’ ‘아이싱’ ‘딸부잣집’에 출연하며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IMF 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인생은 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빚이 많이 생겼어요. 제가 외아들이라서, 그 빚을 갚아나가야 했죠. 연기를 할 여유가 없었어요. 낮에는 헬스 트레이너와 막일을, 밤에는 DJ와 대리운전을 하면서 돈을 모았죠. 결혼하기 직전까지 거의 10년간 번 돈을 죄다 부모님께 갖다드렸어요. 부모님 사실 집까지 마련해드리고 결혼했죠.”
지금은 담담히 말하지만 그 시절, 많이 고달팠다. 기계처럼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에서 연예인의 타이틀은 오히려 굴레였다. 막일을 하다가 ‘체험 삶의 현장’을 찍느냐는 오해를 받았고, 대리운전을 하면서 취객에게 구타도 당했다. DJ로 일하던 업소에서는 개그맨 리마리오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었다. 힘든 속에서도 간간이 뮤지컬과 연극무대에 섰다.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본 아내도 남편의 힘든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저와 만나면서도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을 했어요. 종일 일하고 새벽에 잠깐 눈을 붙이며 돈을 갚아나갔죠. 고생 안 한 사람은 없겠지만, 남편은 곁에서 보기 힘들 정도였어요. DJ로 일하는 업소에서 잘리지 않게 노력한 것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죠. 자신을 위해 하는 것 없이 땀 흘리는 모습이 든든해 결혼을 결심했어요.”
고비를 넘기고 이제 신발끈을 맬까 싶을 때 또다시 시련이 왔다. 이번엔 더 심각했다. 지난해 초여름 전립선에 종양이 생겨 몸무게가 10kg이나 빠지며 체력이 고갈됐다. 연타로 날아드는 포탄에 전의를 상실한 그는 그만 아내와 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을 하고 만다. 화장실에서 수건으로 목을 맸다.
“왜 나한테만 힘든 일이 이어지나 하는 생각에 절망했어요. 매일 울다가 문득 자살이 떠올랐죠. 봉이 부러져서 실패했어요.”
“책임감 강한 남편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무리 그래도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는데요. 슬프기보다 화가 났어요.”
하지만 남편은 곧 믿음직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빚을 갚던 습관이 남아 지금도 돈이 들어오면 그대로 아내에게 바친다. 돈 쓴 내역도 꼬박꼬박 보고한다. 아내의 표현에 따르면 소비습관이 검소하다 못해 ‘잘다’. 주종은 소주와 막걸리를 벗어나지 않고,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15만원짜리 의자와 똑같은 제품을 1만5천원에 산다. 그의 금고에는 저렴하게 산 수분팩과 자잘한 화장품이 ‘모셔져’ 있다. 화장품도 조금씩 덜어 쓴다. 눈을 흘기며 말하지만 아내는 그런 남편의 ‘작은 배려’가 고맙다.
“카드를 막 긁어서 미안하다며 영수증을 건네면 6만4천원이에요. 저는 궁금하지도 않은데 꼭 영수증을 화장대에 올려둬요. 돈이 그렇게 없는데 술은 어떻게 마시고 다니는지 그게 신기해요.”
“돈을 잘 안 쓰는데, 꼭 가야 하는 술자리면 노하우가 있어요. 일단 차에서 DMB를 보며 김치랑 소주 2병을 마셔요. 그리고 ‘3차째라 죽을 거 같다’며 늦게 합석해요. 그리고 거기 있는 것들을 하나도 안 건드려요. 그러면 돈 내라는 소리는 안 하죠(웃음).”
#“다시 태어나도 내 아내와 결혼할 것”
방송이 나간 후 여러 지인이 박재훈에게 “아내 정말 멋지다”라는 이야기를 건넸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고 남편을 그렇게 위해주는 아내는 몇 없다는 것이다. 그 역시 아내의 고마움을 잘 안다. 다시 태어나도 박재훈은 아내와 결혼하고 싶다.
“결혼을 아예 안 하면 몰라도 한다면 아내를 만날 거예요. 배우의 아내가 참 힘들어요. 공연을 할 때는 예민하고 공연이 끝나면 조용히 쉬어야 하니까요. 수입도 고정적이지 않고요.”
같은 질문에 아내 역시 지금 남편을 만나겠다고 한다. 단 거기에는 단서가 있다. 다음 세상에는 남녀 성별을 바꿔 남편 기를 누르며 사는 게 꿈이다. 천성이 그런지 참을성이 강해 욱하는 남편을 대체로 받아주는 편이다. 크게 싸우고 격하게 외로운 순간 결혼을 후회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부부라면 누구나 그렇다는 것을 알아서다. 그래서 ‘결미다’에서도 굳이 사이좋은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는다.
결혼생활에도 보편적인 단계가 있다. 부부는 멋모르던 신혼을 지나 2년째 부모가 됐고, 3년째 접어들며 튼튼해진 가족의 울타리를 실감했다. 다사다난했던 지난날을 접고 이제는 앞으로만 나아가고 싶다. 박재훈은 “열심히 연기하고 성실히 돈을 벌어 당당한 가장이고 싶다”고 말한다.
“10년 후 우리 부부의 미래요? 글쎄 통장에 50억 정도 있으면 좋겠어요(웃음). 가장으로서 돈을 이만큼 벌어서 편하게 해주고 싶죠. 그간 제가 고생만 시켜서 너무 미안하거든요. 아내가 주얼리숍을 하면서 지금도 늦게까지 일을 해요. 또 연기에 명운을 걸어보고 싶어요. 어린 시절엔 몰랐는데, 연극과 뮤지컬을 하면서 연기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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